강혁은 식은땀이 흐르는 손으로 녹슨 철문을 밀었다. 삐걱이는 소리가 폐허의 정적을 깨고 먼지를 흩뿌렸다. 한때 찬란했을 백화점의 입구는 이제 무너진 콘크리트 잔해와 덩굴로 뒤덮인 괴물처럼 입을 벌리고 있었다. 칙칙한 공기가 습하고 차가웠다. 썩은 냄새와 곰팡이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그의 손에 쥐인 개량형 강철 파이프는 묵직했지만, 이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 속에서 그를 얼마나 지켜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젠장, 또 여기냐.”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 식량은 바닥났고, 물도 간당간당했다. 어제 밤, 쥐새끼 같은 그림자들이 캠프 주변을 맴돌았고, 그는 잠 한숨 제대로 자지 못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곳, ‘검은 백화점’이라 불리는 폐허는 위험하기로 악명 높았지만, 동시에 아직 건질 만한 것이 남아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했다. 죽음과 생존이 종이 한 장 차이로 공존하는, 지긋지긋한 이 세계의 축소판 같은 곳이었다.
강혁은 낡은 손전등을 켜 어둠을 갈랐다. 빛줄기가 닿는 곳마다 부서진 쇼윈도와 뒤집힌 진열대가 기괴한 형상으로 드러났다. 마네킹 팔 조각이 바닥에 나뒹굴고, 찢어진 옷가지들이 곰팡이와 함께 널브러져 있었다. 한때 번영을 자랑했을 이 공간은 이제 모든 생명이 사라진 망자의 도시처럼 고요했다. 그는 바닥에 깔린 유리 조각들을 피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바스락, 바스락’ 하는 소리조차 주변의 침묵을 더욱 강조하는 듯했다.
지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는 완전히 붕괴되어 거대한 시소처럼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었다. 강혁은 벽에 박힌 철근을 잡고 조심스럽게 몸을 내렸다. 발아래 콘크리트 부스러기가 우수수 떨어지는 소리가 불안하게 울렸다. 그의 심장이 불안정하게 뛰었다. 이곳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항상 긴장해야 했다. 단 한순간의 방심이 곧 죽음으로 이어지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지하 1층에 도착하자 습기와 썩은 냄새가 더욱 강해졌다. 어둠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그의 시야를 집어삼키려 했다. 손전등 빛이 닿는 곳 너머는 아득한 암흑뿐이었다. 이곳은 식품 코너였다는 것을 짐작게 하는 낡은 간판 조각이 희미하게 보였다. 강혁의 눈이 날카롭게 주변을 훑었다. 그의 목표는 단 하나, 먹을 것. 썩지 않은 통조림이나, 어쩌면 폐기된 비상식량 창고 같은 곳에 남았을지도 모를 보급품이었다.
복도를 따라 걷던 강혁의 발걸음이 문득 멈췄다. 흙먼지가 쌓인 바닥에 희미한 자국이 보였다. 마치 무언가가 끌려간 듯한 흔적이었다. 그리고 그 흔적은 얼마 되지 않은, 비교적 선명한 것이었다.
‘젠장, 선객이 있었나?’
그의 손에 쥔 파이프가 저절로 꽉 쥐어졌다. 이 폐허에 남아있는 것은 대부분 돌연변이 괴물들이나, 그 괴물들과 다를 바 없는 인간들이었다. 어느 쪽이든 반가울 리 없었다. 그는 숨소리마저 죽이고 발소리를 최소화하며 흔적을 따라갔다. 코너를 돌자, 어둠 속에 거대한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그림자. 그것은 폐쇄된 냉동 창고의 문틈이었다. 녹슨 철문은 비스듬히 열려 있었고, 그 틈새로 음산한 기운이 새어 나왔다. 강혁은 망설였다. 위험한 냄새가 진동했지만, 동시에 그의 본능이 그곳에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속삭였다. 식량일 수도 있고, 아니면 더 심한 위험일 수도 있었다.
선택의 여지 없이, 그는 문틈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안은 칠흑 같았다. 손전등 빛이 겨우 닿는 곳에는 선반이 무너져 있고, 곰팡이 핀 박스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희망이 사그라지는 듯한 풍경이었다. 그는 실망감에 한숨을 내쉬려는 순간, 바닥에 굴러다니는 캔 하나를 발견했다.
빛을 비추자, 통조림이었다. 비록 찌그러지고 먼지가 가득했지만, 아직 개봉되지 않은 상태였다. 강혁은 떨리는 손으로 캔을 집어 들었다. 그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차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크으으…’
등 뒤에서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강혁은 본능적으로 몸을 날려 피했다. ‘촤악!’ 하고 살을 찢는 듯한 소리와 함께 그의 등 뒤 벽에 날카로운 발톱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 움직였다. 강혁은 숨을 죽였다. 바닥에 뒹구는 부서진 쇼윈도 조각 위로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그것은 마치 사람의 형상을 흉내 낸 듯했지만, 뼈마디가 기괴하게 뒤틀리고 피부는 시커멓게 말라붙은 괴물이었다. 눈 대신 박힌 두 개의 붉은 점이 섬뜩하게 빛났다. 아귀(餓鬼). 이 폐허의 가장 흔한 주민 중 하나였다. 배고픔에 미쳐버린 인간의 잔해, 혹은 그 이상의 무언가였다.
“크으으…”
목구멍에서 찢어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아귀가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왔다. 날카로운 손톱이 강혁의 얼굴을 향해 뻗어왔다. 강혁은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젖히며 공격을 피했다. ‘휙!’ 하고 바람 가르는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그는 곧장 파이프를 휘둘렀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아귀의 팔이 꺾이는 느낌이 전해졌다. 괴물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지만, 금세 다시 자세를 잡았다. 폐허에서 살아남은 모든 생명체는 질겼다.
아귀는 한쪽 팔을 축 늘어뜨린 채, 다른 손으로 바닥을 짚고 기어오듯 달려들었다. 그 속도는 생각보다 빨랐다. 강혁은 겨우 몸을 돌려 피했지만, 아귀의 발톱이 그의 왼쪽 어깨를 스쳤다. ‘찍!’ 살점이 찢기는 고통이 온몸을 강타했다. 뜨거운 피가 솟구쳤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여기서 주저앉으면 끝이었다.
“꺼져, 빌어먹을!”
그는 있는 힘껏 파이프를 휘둘러 아귀의 머리를 강타했다. ‘꽈직!’ 하는 소리와 함께 괴물의 붉은 눈이 잠시 흐려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잠시뿐, 아귀는 여전히 끈질기게 목숨을 이어가려는 듯 몸부림쳤다. 강혁은 망설이지 않았다. 쓰러진 아귀의 몸 위로 올라타 파이프를 들고 다시 내려찍었다. ‘우두둑!’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마침내 아귀의 움직임이 멎었다.
강혁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왼쪽 어깨에 길게 찢어진 상처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하지만 그는 해냈다. 아귀는 이제 축 늘어진 그림자처럼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싸움이 끝나자 주변의 침묵이 더욱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는 파이프를 짚고 일어섰다. 몸의 모든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그의 눈앞에는 아귀가 숨어있던 곳, 즉 냉동 창고의 가장 안쪽 벽이 보였다. 아귀는 그곳을 지키고 있었던 것일까. 빛을 비추자, 무너진 벽 뒤에 숨겨진 작은 공간이 드러나 있었다. 누군가 급히 피난하며 버리고 간 듯한 작은 상자가 보였다. 기대 반, 절망 반으로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녹슬지 않은 통조림 몇 개와 깨끗한 물통, 그리고 낡았지만 쓸 만한 나이프가 들어 있었다. 가장 귀한 것은, 손바닥만 한 태양열 충전식 손전등이었다. 이 지옥 같은 밤에 밝게 빛날 한 줄기 희망이었다.
“젠장… 고맙다.”
그는 피식 웃었다. 한숨 돌릴 수 있는 생존의 파편들. 이것으로 그는 또 하루를, 어쩌면 이틀을 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어깨의 고통은 여전했지만, 마음속의 무게는 조금이나마 가벼워졌다. 그는 상자를 품에 안고 밖으로 향했다. 폐허의 어둠은 여전했지만, 그의 발걸음은 조금 더 가벼워졌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처절한 생존 게임에서, 그는 오늘도 잠시나마 승리했다. 내일은 또 다른 어둠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그래도 살아남아야 했다. 살아남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였다. 오늘도 그는 다시 한번, 이 잔인한 세상에 존재를 증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