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게임 (VRMMO)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제1장: 균열

강현우는 깊은 한숨을 쉬며 가상현실 헬멧을 벗었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이터널 시티』의 던전은 오늘도 지옥 같았다. 보스는 또 온갖 희귀 아이템을 뱉지 않은 채 허무하게 산화했고, 현우의 인벤토리에는 싸구려 물약 몇 개와 잡템만이 쓸쓸하게 남아있었다.

“젠장, 이렇게 빌빌거려서 언제 아파트 대출금을 갚냐…….”

투덜거리며 다시 헬멧을 착용했다. 그래, 현실에서는 빌빌거려도, 적어도 게임 속 내 아파트만큼은 안락하고 평화로워야 했다. 접속 버튼을 누르자 눈앞이 번쩍이며 익숙한 로딩 화면이 나타났다.

『이터널 시티』의 가상 서울, 그중에서도 번화가 한복판에 자리한 현우의 아파트, ‘스카이뷰 레지던스’ 1403호. 비록 게임 속 공간이지만, 현우가 피 땀 눈물 흘려 번 골드로 겨우 얻어낸 보금자리였다. 퀸사이즈 침대, 낡은 소파, 그리고 창밖으로 펼쳐지는 사이버펑크 감성의 야경까지. 완벽했다.

띠링. 접속 완료를 알리는 경쾌한 효과음이 울리고, 현우는 익숙한 거실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동료들이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길드 채널 메시지를 무시하고, 현우는 곧장 냉장고로 향했다. 시원한 가상 맥주라도 한 캔 마시며 오늘 하루의 피로를 풀어야 했다.

손을 뻗어 냉장고 문을 여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시감이 현우를 덮쳤다. 뭔가 이상했다. 분명 아침에 로그인했을 때는 없었던 일이었다.

식탁 위에 놓여있던 컵이, 아주 미세하게, 저절로 움직였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스윽 밀어낸 것처럼.

“음?”

현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게임 물리엔진 오류인가? 그는 컵 쪽으로 다가가 손가락으로 툭 건드려보았다. 컵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얌전히 제자리에 있었다.

“내가 피곤해서 헛것을 봤나.”

그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냉장고에서 가상 맥주를 꺼냈다. 시원하게 ‘캬아’ 소리를 내며 한 모금 들이키는 순간, 거실 천장의 조명이 깜빡였다.

틱! 틱! 틱!

전구의 수명이 다한 듯 주기적으로 불이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했다. 현우는 한숨을 쉬며 조명 스위치를 향해 걸어갔다.

“이 빌어먹을 시스템, 아파트 관리비를 꼬박꼬박 내는데도 전구는 자가 수리도 안 되냐?”

스위치를 위아래로 몇 번 딸깍거려 봤지만, 조명은 여전히 제멋대로 깜빡였다. 오히려 그 빈도가 점점 빨라지는 것 같았다. 틱틱틱틱틱!

“젠장, 이러다 눈 버리겠네.”

현우는 짜증 섞인 표정으로 거실 소파에 몸을 던졌다. 퀘스트 실패도 짜증 나는데, 쉬러 들어온 아파트마저 이러니 답답했다. 그때였다.

딸깍.

거실 옆 작은 서재 문이, 저절로 열렸다. 삐걱거리는 경첩 소리가 적막한 아파트에 울려 퍼졌다.

현우는 벌떡 일어섰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뭐야, 버그인가?”

그는 조심스럽게 서재 문으로 다가갔다. 문은 반쯤 열린 채였다. 안에는 책장과 작은 책상, 그리고 낡은 의자 하나가 전부였다. 별다른 특이점은 없었다. 현우는 문을 닫으려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펜이 데굴데굴 굴러 바닥으로 떨어졌다.
타악!

펜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현우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야, 이거 좀 심하잖아! 누가 나랑 장난쳐?”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게임이라지만, 이런 버그는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보통은 몬스터가 끼이거나, 아이템이 땅속으로 꺼지는 정도였다. 이렇게 대놓고 오싹한 현상은 처음이었다.

그때, 현우의 시야 가장자리에 무언가가 스쳤다. 거실 한쪽 벽에 걸려있던 액자. 분명 기울어져 있었다. 조금 전까지는 똑바로 걸려있었는데. 현우는 액자를 바로잡으려 다가갔다.

액자 속 그림은 고요한 숲 풍경이었다. 그는 손을 뻗어 액자를 만졌다. 액자가 바로잡히는가 싶더니, 갑자기 그의 손이 닿지 않은 아랫부분이 스르륵 미끄러지며 다시 기울어졌다. 이번에는 전보다 더 심하게, 위태롭게 걸린 채 흔들거렸다.

쿵!

무언가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선가 진동이 느껴졌다. 바닥에서? 아니면 위층에서? 현우는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뭐야, 내 오디오 볼륨을 올렸나?”

그는 혹시나 해서 설정창을 띄워봤지만, 모든 오디오 설정은 평소와 같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소리가 생생하게 들리지?

귓가에 아주 희미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거기….’

현우는 귀를 의심했다. 게임 내 NPC 목소리도, 다른 플레이어의 보이스챗도 아니었다. 아주 낮고, 음산한 목소리.

“누구세요? 거기 누구 있어요?”

현우는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아파트 안에 혼자 있었지만, 더 이상 혼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차가운 시선이 자신을 훑고 지나가는 듯한 기분.

그 순간, 현우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깜빡였다.

[ 시스템 ] 접속 오류: 비정상적인 환경 감지. 게임 종료를 권장합니다.
[ 시스템 ] 접속 오류: 비정상적인 환경 감지. 게임 종료를 권장합니다.

“로그아웃! 로그아웃!”

현우는 황급히 종료 버튼을 찾았다. 화면 우측 상단에 있던 로그아웃 버튼을 클릭하려는 순간, 마우스 커서가 삐끗하더니 엉뚱한 곳으로 이동했다. 그는 다시 커서를 옮겼지만,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막힌 것처럼 버튼에 닿지 않았다.

‘로그아웃이 안 돼?’

공포가 현우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손끝이 떨려왔다. 그는 무작정 마우스를 난타하듯 클릭했다. 그러나 시스템 메시지는 계속해서 ‘접속 오류’만 반복할 뿐이었다.

틱틱틱틱틱! 거실 조명은 이제 미친 듯이 깜빡였다. 주변의 모든 사물들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식탁 위의 컵이 다시 스르륵, 움직였다. 이번에는 멈추지 않고 식탁 끝까지 이동하더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쨍그랑!

컵이 깨지는 소리가 날카롭게 아파트 안에 울려 퍼졌다. 현우는 뒷걸음질 쳤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이건 버그가 아니야. 버그일 리 없어.’

그는 생각했다. 이 소름 끼치는 현상은 단순히 게임 오류로 치부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마치 살아있는 무엇인가가, 이 아파트 안에 존재하며 자신을 조롱하고 있는 듯했다.

“나, 나가야 해….”

현우는 비틀거리며 현관문으로 향했다. 문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다행이다. 열린다.

현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밖으로 발을 내딛으려 했다.

그때, 문틈 사이로, 새까만 그림자가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마치 존재 자체가 어둠인 것처럼, 윤곽조차 불분명한 형체가 아파트 복도 어딘가로 사라지는 것을 본 현우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리고 닫힌 문틈 사이로, 아주 섬뜩한 속삭임이 새어 들어왔다.

‘…못 가….’

현우의 등 뒤에서, 현관문이 쾅! 하고 거칠게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복도로 향하려던 몸이, 마치 거대한 힘에 밀쳐진 것처럼 아파트 안으로 다시 밀려들어 갔다.

철컥!

현관문이 잠기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완전히 갇혔다.

현우는 얼어붙은 몸을 억지로 돌려 아파트를 바라봤다. 거실은 이미 암흑으로 변해있었다. 단 하나의 불빛도 남아있지 않았다. 오직 창밖 가상 도시의 불빛만이 희미하게 안으로 스며들어, 기괴한 그림자들을 만들어낼 뿐이었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 차갑고 축축한 것이 현우의 발목을 휘감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그의 발목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으려는 것처럼.

“흐읍…!”

숨이 막혔다. 현우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서, 누군가의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크르륵…. 낄낄낄….

그리고 그 웃음소리 위로, 낮고 섬뜩한 목소리가 현우의 귓가에 울렸다.

‘이제… 시작이야.’

현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어둠 속에서, 그는 완전히 고립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