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오페라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우주선 ‘별똥별호’의 조종석은 익숙한 저음의 기계음과 산소 순환기의 규칙적인 웅웅거림으로 가득했다. 은하계에서도 가장자리, 아무도 찾지 않는 망각의 구역. 이곳은 성간 먼지와 버려진 함선들의 잔해가 억겁의 시간 동안 부유하며 거대한 유골 암초를 형성한 곳이었다. 카이에게는 익숙한 사냥터였다. 그에게는 매일 똑같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녹슬고 뒤틀린 강철 파편들 속에서 쓸만한 부품이나 운 좋으면 희귀 광물을 건져 올리는 것. 고독했지만, 적어도 속박은 없었다.

“시리우스, 좌현 센서 감도 10% 증폭.”
카이가 홀로그램 패드를 능숙하게 조작하며 명령하자, 별똥별호의 인공지능 ‘시리우스’가 차분한 음성으로 답했다.
“명령 확인, 카이 선장. 주변 소행성군의 자기장 간섭으로 탐색 효율이 저하되고 있습니다. 이 구역에서의 추가 탐색은 비효율적입니다.”
“시리우스, 네 효율성 계산은 가끔 내 직감을 무시해. 그리고 내 직감은 꽤 쓸모 있었지, 안 그래?”
카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피식 웃었다. 별똥별호는 그의 유일한 동반자이자, 한때는 꿈을, 지금은 그저 생존을 위한 모든 것이었다. 그의 손에 익은 조종간은 작은 자갈들 사이를 스치는 물고기처럼 기체를 미끄러뜨렸다. 고요한 우주에 파고드는 미세한 떨림만이 존재를 알렸다.

오랜 시간, 아무것도 건질 것 없는 허탕이 이어졌다. 카이는 하품을 삼키며 초점 없는 눈으로 모니터를 응시했다. 수백 번도 더 본 똑같은 파편, 똑같은 먼지 구름, 똑같은 공허함. 그의 삶은 언제부터 이렇게 잿빛이 되었던가.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내려 할 때였다.

삐빅-!

경고음이 아닌, 이질적인 신호음이 조종석을 울렸다. 카이의 눈이 번뜩 뜨였다.
“시리우스, 무슨 신호지?”
“미확인 물질 감지. 밀도 분석 불가, 에너지 반응 극히 미약. 기존 데이터베이스에 일치하는 기록 없음. 현재 위치에서 전방 2.3킬로미터, 거대 잔해물 근접.”
카이는 조종간을 틀어 별똥별호를 낯선 신호가 온 방향으로 향했다. 거대한 우주선 잔해물들의 미로 속으로 들어갈수록, 시리우스의 신호음은 더욱 선명해졌다. 마침내, 거대한 함선의 동력로가 통째로 뽑혀 나간 듯한 뻥 뚫린 구멍 안쪽, 미세하게 빛나는 무언가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탐색 로봇 팔이 조심스럽게 잔해를 헤치고 다가가자, 모니터에 선명한 영상이 맺혔다.
길이 30센티미터 남짓한 검은색 육면체. 다른 파편들과는 달리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고, 표면에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미세한 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그것은 금속도, 암석도, 알려진 어떤 물질도 아니었다. 육면체의 한쪽 면에는 복잡하고 기묘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너무나 완벽하고 이질적이어서, 카이는 한순간 숨을 들이켰다.

“이게… 뭐지?” 카이는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그의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미확인 물질입니다. 스캔 결과, 최소 7만 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어떤 에너지원으로부터도 독립적으로 미약한 전자기장을 방출하고 있습니다.” 시리우스의 음성에는 평소와 다른 미세한 긴장감이 섞여 있었다.
7만 년. 그 아득한 시간은 은하계에 알려진 대부분의 문명 역사보다도 길었다. 고대 문명의 유물에는 관심 없던 카이였다. 보통은 고철보다도 쓸모없는 골칫덩이일 뿐. 하지만 이건 달랐다. 차가운 우주의 심연에서 발견된, 너무나도 완벽한 미지의 조각.

카이는 로봇 팔로 육면체를 조종석으로 가져왔다. 투명한 보호막 너머로, 검은 육면체가 손바닥만 한 크기로 떠 있었다. 희미한 푸른빛이 그것을 감쌌다. 카이가 장갑 낀 손으로 보호막을 뚫고 육면체를 잡았다. 차가우면서도 묘한 온기가 느껴지는 촉감. 미세한 진동이 손안에서 고동치는 듯했다.

카이가 손가락으로 육면체의 문양을 조심스럽게 따라 쓸었다. 그 순간, 육면체 전체가 투명하게 빛나며 마치 잉크가 번지듯 표면에 공간이 생겨나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이내 육면체의 한 면이 마치 유리처럼 투명하게 변하더니, 그 안에서 복잡한 입체 지도가 솟아올랐다. 홀로그램처럼 허공에 펼쳐진 지도는 은하계의 한 특정 성계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푸른빛 행성 하나가 유독 강조되어 있었다.

“시리우스, 이 좌표 분석.” 카이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분석 중… 해당 성계는 은하 연합의 비탐사 구역, 코드명 ‘에버게이트’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해당 행성은 ‘루마’입니다.”
“루마….” 카이가 읊조렸다. 루마는 전설 속의 행성이었다. 잊혀진 고대 문명의 유적이 잠들어 있다는 소문만 무성한, 누구도 발을 들여놓지 못한 미지의 행성. 수많은 탐험가들이 그곳을 찾다 사라졌다. 그렇기에 더욱 신비로웠다.

지도는 루마 행성의 표면 아래, 아주 깊은 곳에 자리한 거대한 구조물을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거미줄처럼 얽힌 통로들, 거대한 돔형 홀, 그리고 알 수 없는 에너지 코어의 흔적까지. 단순한 지하 시설이 아니었다. 거대한 도시, 혹은 문명 전체를 품고도 남을 만한 규모의 잊혀진 지하 유적. 고대의 힘이 잠들어 있을 것만 같은 웅장하고 신비로운 이미지였다.

“이게… 진짜라고?” 카이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전설로만 전해지던 ‘아칼리아의 심장’인가? 7만 년 전, 갑자기 은하계에서 자취를 감췄다는 초고대 문명의 흔적? 그들의 유적에 도달할 수 있는 열쇠가 이 검은 육면체 안에 있었다니.

“카이 선장, 루마 성계는 오래전부터 접근 금지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극심한 시공간 왜곡과 미확인 에너지 반응이 주기적으로 감지됩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들이 빈번히 발생하며, 심지어 지각 변동 또한 매우 활발합니다. 위험도가… 매우 높습니다.” 시리우스의 음성에는 평소보다 더 많은 우려와 함께, 거의 경고에 가까운 단호함이 섞여 있었다.

카이는 육면체를 꽉 쥐었다. 손안의 진동이 심장을 타고 전신으로 퍼지는 듯했다. 그의 눈은 이미 미지의 세계를 향한 갈망으로 불타고 있었다. 잿빛 우주에서 살아온 그의 인생에서, 이런 ‘미지’는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위험? 그게 바로 모험이지. 시시한 고철 줍기에 지쳐가던 그의 심장에, 오랜만에 불꽃이 피어올랐다.

“시리우스, 루마 행성으로 항로 설정. 최고 속도로.”
“…명령 확인. 경고를 재차 드립니다, 카이 선장.”
“알아. 하지만 가봐야겠어.”

별똥별호의 주 엔진이 굉음을 내며 점화되었다. 선체 전체가 희미하게 진동하더니, 이내 푸른빛 섬광이 기체를 감싸 안았다. 주변의 암석들이 뒤로 밀려나는가 싶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공간 도약에 들어갔다. 고대 문명의 유물은 홀로그램 형태로 여전히 카이의 앞에 떠 있었다. 카이는 그것을 뚫어지라 응시했다.

별똥별호는 미지의 어둠 속으로, 잊혀진 전설을 향해 날아갔다.
과연, 루마 행성 지하에 잠들어 있는 ‘아칼리아의 심장’에는 어떤 비밀이 기다리고 있을까.
카이는 미지의 설렘과 함께,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