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게임 (VRMMO)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고요한 밤, 하준의 아파트는 온통 어둠에 잠겨 있었다. 오직 모니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만이 그의 얼굴을 간헐적으로 비출 뿐이었다. 그의 머리에는 최신형 VR 헤드셋이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고, 손에는 특수 컨트롤러가 쥐어져 있었다. 그는 지금 현실이 아닌, 광활한 가상현실 게임 ‘아르카나: 황혼의 그림자’의 심연에 있었다.

“하, 겨우 잡았다!”

하준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으스스한 분위기의 ‘어둠의 전당’ 던전 최종 보스, 거대한 촉수를 휘두르는 ‘심연의 망령’이 그의 손에서 결국 쓰러졌다. 화려한 스킬 이펙트와 함께 보스의 육체가 소멸하고, 눈부신 전리품들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황금빛 아이템 하나를 줍는 순간, 그의 귓가에 보상 획득을 알리는 경쾌한 시스템 사운드가 울렸다. 피로했지만 벅찬 만족감에 하준은 잠시 눈을 감았다. 이 순간만큼은 그는 현실의 좁고 답답한 원룸이 아닌, 전설적인 영웅이었다.

그때였다.

‘…끼이익?’

아주 미세한 소리였다. 마치 낡은 나무 문이 바람에 흔들리는 듯한. 하준은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게임 속 배경음악이 워낙 웅장해서, 혹시 게임 내의 효과음일까 생각했다. 아니, 이건 좀 다른데.

“흠, 슬슬 잘 시간인가.”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다시 게임에 몰두했다. 보스전 후 남은 잔몹들을 처리하고, 던전 밖으로 나가는 포탈을 작동시키려던 참이었다.

‘끼이이익… 쿵.’

이번엔 확실했다. 게임 속 소리가 아니었다. 등골을 타고 오싹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 분명히 저 소리는… 주방 쪽에서 난 소리였다. 하준은 무의식적으로 헤드셋을 벗으려다 멈췄다. 설마? 누가 침입이라도 했나? 낡은 아파트라 방음이 잘 안 되니, 옆집 소리겠거니 애써 자신을 위로했다.

“젠장, 피곤해서 헛것이 들리나.”

그는 다시 게임에 집중했다. 하지만 한번 신경 쓰이기 시작하자, 모든 것이 거슬렸다. 화면 속에서 그의 캐릭터가 퀘스트를 완료하고 마을로 귀환하는 동안에도, 그의 신경은 온통 등 뒤의 주방에 곤두서 있었다.

그리고 사건은, 더욱 명확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쨍그랑!’

이번엔 아예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하준은 저도 모르게 비명을 삼키며 헤드셋을 확 벗어던졌다. 퀘스트 완료 창이 떠 있는 모니터 화면이 순식간에 시야에서 멀어졌다. 정적만이 가득한 아파트.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누구… 없어?”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손을 뻗어 방의 스탠드 조명을 켰다. 은은한 오렌지빛이 방 안을 채웠지만, 그의 불안감을 가라앉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분명히 소리는 주방 쪽에서 났다.

조심스럽게 의자에서 일어선 하준은 발소리도 내지 않으려 애쓰며 주방으로 향했다. 복도를 지나 주방 입구에 섰을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광경은 그의 심장을 다시 한번 철렁하게 만들었다.

싱크대 위에 놓여 있던 머그컵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 있었다. 컵 조각들이 온 사방에 흩어져 있었고, 그 옆에는 방금 전까지 하준이 마시던 물이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이게… 뭐야?”

누가 들어온 흔적은 없었다. 문은 잠겨 있었고, 창문도 굳게 닫혀 있었다. 하준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누가 컵을 떨어트렸단 말인가? 자신 말고는 아무도 없는데? 혹시 고양이라도 들어왔나 싶어 주위를 둘러봤지만, 그의 집에는 고양이가 없었다. 애초에 동물 알레르기 때문에 기를 수도 없었다.

하준은 재빨리 컵 조각들을 치우고 바닥의 물기를 닦았다. 그리고는 식은땀을 흘리며 다시 컴퓨터 의자에 앉았다.

‘내가 너무 피곤해서 그런가? 잠결에 컵을 건드렸나?’

아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는 방금까지 헤드셋을 쓰고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다. 컵은 싱크대 가장자리가 아닌, 안쪽에 깊숙이 놓여 있었다. 저절로 떨어질 리가 없었다.

그는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심장이 진정되기를 기다리며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봤다. 게임 속 캐릭터는 여전히 마을에서 평화롭게 서 있었다. 가상세계의 평화로움이 지금 그의 현실과 너무나도 대비되어 이질적이었다.

그때, 그의 등 뒤, 침대 쪽에서 묵직한 소리가 났다.

‘툭.’

하준은 번개처럼 뒤를 돌아봤다. 침대 협탁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던 책 한 권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방금 그가 보았던 책이었다. 명백히 누군가가 손으로 밀어서 떨어트린 것 같은 위치였다.

“말도 안 돼….”

그는 공포에 질려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는 더 이상 ‘피곤해서’, ‘잘못 들었겠지’로 치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누가 침대 옆으로 다가와 책을 떨어트렸단 말인가?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하준은 거의 반사적으로 스탠드 조명을 끄고 방 안을 완전히 어둠으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눈을 부릅뜨고 주위를 살폈다. 그의 시야는 밤에 적응하려 애썼지만, 어둠은 어떤 것도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았다. 그저 침묵만이 그를 옥죄었다.

‘탁… 탁… 탁.’

어둠 속에서 규칙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작은 돌멩이가 유리창에 부딪히는 듯한 소리였다. 하준은 숨을 멈췄다. 소리의 근원지는 그의 모니터 화면이었다. 모니터 중앙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나고 있었다. 빛을 내던 모니터는 꺼져 있었고, 그 검은 화면 위로 소리만 울렸다.

“흐읍… 흐읍…”

하준은 패닉에 빠져 숨을 헐떡였다. 손가락이 닿지도 않았는데, 모니터 화면이 스스로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했다. ‘아르카나: 황혼의 그림자’의 로그인 화면이 어둠 속에서 섬뜩하게 번쩍였다가, 이내 다시 꺼지고, 또다시 켜졌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처럼, 아이디와 비밀번호 입력창에 알 수 없는 글자들이 빠르게 타닥타닥 입력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의미 없는 문자들의 나열이 아니었다.

`[누구세요]`

`[나여기있어]`

모니터 화면에 입력된 글자들을 본 순간, 하준의 심장이 멎는 듯했다. 그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온몸의 근육이 경직되고, 식은땀이 그의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리고 이어진 문자열은, 그를 완전히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돌아와]`

마지막 글자가 입력되는 순간, 모니터 화면이 갑자기 지직거리며 일그러졌다. 게임 로그인 화면은 사라지고, 대신 정체를 알 수 없는 검고 붉은 이미지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마치 온갖 공포 영화의 장면들이 뒤섞인 듯한, 이해할 수 없는 영상들이었다. 그리고 그 영상들 사이로, 한순간 그의 게임 캐릭터의 얼굴이 확대되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것은 분명 하준이 직접 커스터마이징한, 그의 캐릭터였다. 하지만 그 얼굴은 게임 속 영웅의 표정이 아니었다. 눈은 뒤집혀 있었고, 입은 귀까지 찢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찢어진 입가에서, 피처럼 붉은 글자들이 흘러내렸다.

`[하준아]`

모니터는 이내 완전히 먹통이 되어 암전됐다. 방 안은 다시 깊은 어둠에 잠겼다. 하지만 하준의 눈에는 여전히 그 끔찍한 이미지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의 캐릭터가 그를 부르는, 그 섬뜩한 모습이.

그때, 그의 귓가에 차가운 속삭임이 들려왔다.

“…너는, 결코 벗어날 수 없어.”

소리는 너무나도 가까웠다. 마치 누군가 그의 귓가에 직접 대고 말하는 것처럼. 동시에 그의 목덜미에 차가운 숨결이 느껴졌다. 하준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그는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문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갔다.

문고리를 잡으려 손을 뻗는 순간, 차가운 금속이 아닌 부드러운 머리카락 같은 감촉이 손가락에 닿았다. 그리고 동시에 방문이 쿵 하고 저절로 닫히더니, 안쪽에서 잠금쇠가 ‘철컥’ 하고 걸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준은 얼어붙었다. 닫힌 방문 너머로, 희미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 웃음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마치 여러 사람의 웃음소리가 뒤섞인 것처럼 기괴하게 울려 퍼졌다.

그는 절규하듯 소리쳤다. “나가! 나가라고!”

하지만 그의 절규는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뿐이었다. 방 안의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두 개의 붉은 점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의 눈높이보다 약간 높은 곳에, 멀어지는 듯하다가 다시 가까워지는 섬뜩한 붉은 점들. 그것은 마치… 누군가의 눈 같았다.

하준은 벽에 등을 기댄 채 주저앉았다. 심장이 찢어질 듯이 아파왔다. 그는 도망칠 곳이 없었다. 좁은 원룸 안에서,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함께 갇혀 있었다.

그리고 그 붉은 눈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 그의 등 뒤에 있던 옷장이 갑자기 크게 흔들리며, 문이 ‘쾅’ 하고 활짝 열렸다. 옷장 안 가득 걸려 있던 그의 옷가지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로, 섬뜩한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리 와, 하준아.”

그것은 분명, 그의 엄마 목소리였다. 하지만 등골을 타고 흐르는 전율은, 결코 따뜻한 부름이 아니었다.

하준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의 아파트는 더 이상 안전한 안식처가 아니었다. 이곳은 이제, 살아있는 악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