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심장” 우주선 브릿지는 늘 그랬다. 푸른빛 홀로그램이 번뜩이는 계기판과, 끝없이 펼쳐진 암흑 우주의 영상을 비추는 주 창. 강민은 조종석에 등을 기댄 채 무심하게 시야를 가득 채운 별들의 점멸을 응시했다. ‘별의 유산’이라는 게임을 시작한 이래, 그는 언제나 이 망망대해 같은 심우주를 헤쳐나가는 것을 택했다. 탐험과 미지의 발견. 그것이 그가 이 가상현실 속에서 추구하는 유일한 가치였다. 퀘스트 마크도, 명확한 목표도 없는 심우주는 마치 진짜처럼 고요하고, 때론 지루했다.
그때였다. 찌르르륵, 조용한 브릿지를 찢는 듯한 경고음이 울렸다. 강민의 개인 인터페이스에 붉은색 경고창이 깜빡였다.
[미확인 물체 감지. 좌표: 87.412, -12.003, 345.998. 거리: 120광초.]
강민은 눈을 비볐다. 버그인가? 이 ‘어둠의 심장’ 호는 이미 은하계 변방, 그것도 행성계 하나 없는 텅 빈 공간을 탐사 중이었다. 예상되는 항로에 그 어떤 인공 구조물이나 자연 천체도 있을 리 없었다. 그것은 마치… 유령 신호 같았다.
“브릿지, 미확인 신호 감지. 혹시 함선 시스템에 오류가 있습니까?” 강민은 보고 버튼을 눌렀다.
곧이어 함장석에서 무게감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선장이었다. “오류라니, 강민. 내게 들어오는 보고는 아무것도 없는데?”
강민은 자신의 화면을 메인 콘솔에 전송했다. 주 창에 붉은 점이 깜빡였다.
“여기에 있습니다. 비정상적인 에너지 패턴, 하지만 실체가… 없습니다.”
그때, 과학 담당 박 교수의 들뜬 목소리가 브릿지를 채웠다. “실체가 없는데 에너지 패턴이 있다고? 강민 씨, 자세히 좀 보시게! 설마 블랙홀 잔해라도 찾은 건가? 아니면 설마, 정말 설마…!”
“설마는 나중에 하시고, 교수님. 안전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보안 담당 이하나 대위의 단호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강민 씨, 센서 범위 최대로 확장하고 재분석 돌리세요. 만약 적대적 존재라면.”
“적대적 존재라면 이 정도 거리에서 진작 탐지되었을 겁니다, 이 대위. 이 신호는… 뭔가 달라요.” 박 교수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마치 심해에서 듣는 고래의 노랫소리 같지 않나? 탐사하지 않으면 직무 유기야!”
윤선장은 잠시 침묵했다. 그의 시선은 강민이 전송한 데이터와 주 창 너머의 암흑을 오갔다. “좋아. 강민, 항로를 수정한다. 해당 좌표로 최저 속도로 접근. 이 대위, 모든 무장 시스템 대기 상태로 전환. 박 교수, 모든 센서 어레이를 동원해 최대한의 정보 수집을 시도하시오. 이것은… 흥미로운 발견이군.”
‘어둠의 심장’은 느릿하게 방향을 틀었다. 120광초는 우주적 거리에서 순식간이었지만, ‘최저 속도’라는 조건 하에선 몇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그 시간 동안 브릿지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몇 시간 후, 주 창 너머로 칠흑 같은 암흑 속에 홀로 떠 있는 무언가가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그저 우주 먼지인 줄 알았다. 하지만 거리가 좁혀질수록 그것의 윤곽은 명확해졌다.
“세상에…” 박 교수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것은 거대한 검은색 오벨리스크였다. 표면은 빛을 완전히 흡수하는 듯 칠흑 같았지만, 간헐적으로 아주 희미한 푸른빛이 맥동하고 있었다. 마치 심장이 뛰는 것처럼, 규칙적인 리듬으로 빛을 내뿜고 다시 삼키기를 반복했다. 완벽하게 매끄러운 표면은 인공적인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너무나 거대하고, 너무나 이질적이었다.
“스캔 결과는 어떻습니까, 박 교수?” 윤선장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기대와 함께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
“불가능… 불가능합니다, 선장님!” 박 교수는 얼굴을 찡그렸다. “밀도 측정 불가! 재질 분석 불가! 에너지원은… 그저 맥동하는 푸른빛 자체에서 나오는 것 같긴 한데, 우리가 아는 어떤 에너지 스펙트럼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말도 안 돼… 이런 건 이론으로도 상상할 수 없었던 거예요!”
이하나 대위는 무심코 자신의 권총 홀스터에 손을 올렸다. “교수님, 진정하시고. 예측 불가능하다는 건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접근 거리를 더 벌려야 합니다.”
“위협이라기엔 너무나… 고요합니다, 이 대위.” 강민은 모니터를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그의 시야에 잡힌 오벨리스크는 마치 우주의 심장부가 뽑혀 나와 떠다니는 것처럼 느껴졌다. 게임 속 가상현실이라지만, 이토록 압도적인 광경은 처음이었다. 이것이 단순한 게임 오브젝트일까? 아니면 ‘별의 유산’이 숨겨둔 거대한 비밀의 일부일까?
“최대한 근접 스캔을 시도해 보겠습니다.” 박 교수가 손을 뻗어 콘솔을 조작했다. 낮은 출력의 스캐닝 빔이 오벨리스크를 향해 발사되었다.
빔이 오벨리스크의 표면에 닿는 순간이었다.
‘우우웅—’
단순한 경고음이 아니었다. 함선 전체가 진동하는 듯한, 거대한 공명음이 브릿지를 덮쳤다. 강민의 몸이 흔들렸고, 홀로그램 인터페이스들이 일제히 깜빡였다. 주 창 너머의 오벨리스크는 방금 전보다 훨씬 강렬하고 선명한 푸른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마치 잠에서 깨어난 거인처럼.
“함선 시스템 전력 불안정!”
“보조 동력 가동 불가!”
“전자기장 교란! 통신 두절입니다!”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강민은 본능적으로 조종간을 움켜쥐었다. 오벨리스크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빛은 순식간에 ‘어둠의 심장’ 호를 감쌌다. 우주선 내부는 푸른 빛으로 뒤덮였고, 동시에 강민의 시야가 새하얗게 변했다.
마지막으로 그의 귓가에 들린 것은 박 교수의 떨리는 목소리였다.
“이것은… 이 유물은… 우리와 소통하려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정지했다. 그의 의식마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