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언제나 예측 불가능한 거대한 빈 페이지였다. 하지만 캡틴 카이는 그 빈 페이지가 사실은 수천 년 된 기업 문서의 뒷장이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탐사는 명분일 뿐, 진정한 목적은 언제나 자원이었고, 그들, 레비아탄 호의 승무원들은 그 문서의 가장자리에 덧그려진 작은 삽화에 불과했다.
“젠장, 또 잡동사니인가?”
기술장교 세라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왼쪽 눈동자는 푸른빛으로 깜빡이는 망막 임플란트 덕분에 일반인보다 세 배는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하고 있었다. 콘솔에는 우주를 떠다니는 수십만 개의 미세 암석 조각들의 스펙트럼 데이터가 어지럽게 춤추고 있었다. 레비아탄 호는 미지 영역 57번 섹터, 코퍼스 기업의 불모지 탐사선 중 가장 오래되고 너덜너덜한 함선이었다. 보너스는 고사하고 생존을 장담하기도 어려운 곳.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라고, 세라. 언젠가 한 방 터질 수도 있지 않나.” 닥터 한이 너스레를 떨었다. 그의 얼굴은 피로에 절어 있었지만, 희미한 웃음기는 여전했다. 생체학자로서 그의 주요 임무는 승무원들의 신체 데이터를 관리하는 것이었으나, 이 망할 심우주에서는 미지의 생명체를 발견하는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세라의 임플란트가 번쩍였다. 콘솔의 데이터 흐름이 순간 얼어붙었다가, 이내 비정상적인 패턴으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캡틴, 이건… 뭐죠?” 세라의 목소리에 당혹감이 깃들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신호입니다. 주파수 대역이 너무 복잡해서 분류가 안 돼요. 자연적인 게 아닙니다.”
카이는 모니터를 응시했다. 무수한 점들로 이루어진 성운의 지도 위에, 하나의 점이 마치 살아있는 세포처럼 확장되고 수축하며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추적해, 세라. 출처를 찾아.”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캡틴.” 렉스의 우렁찬 목소리가 브릿지를 울렸다. 보안팀장인 그는 평소 과묵했지만, 그의 오른팔은 티타늄 합금으로 강화된 거대한 기계팔이었다. “방금 센서에 잡혔습니다. 정지 상태의 거대 물체. 크기는… 이봐, 이거 스캔 오류 아니야?”
렉스의 말대로, 물체의 크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직경 수십 킬로미터. 그들의 함선이 그 앞에서는 먼지 한 톨에 불과했다.
레비아탄 호가 미지의 물체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우주선 내부에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모니터에 물체의 형상이 선명하게 드러나자, 모두는 숨을 죽였다.
“이게… 뭐야?” 닥터 한이 경외감과 함께 중얼거렸다.
그것은 완벽한 정육면체였다. 매끄럽고, 검은색이며,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듯한 물질로 이루어져 있었다. 거대한 건축물이나, 자연적으로 생성될 수 없는 완벽한 기하학적 형태. 표면에는 어떠한 문양이나 이음새도 없었다. 마치 태초부터 그곳에 존재했던 것처럼, 텅 빈 우주 한가운데 떠 있었다.
“스캔 데이터는요?” 카이가 물었다.
세라가 콘솔을 두드렸다. “전무합니다, 캡틴. 모든 스캔이 튕겨 나옵니다. 밀도는 측정 불가, 재질은 알 수 없음. 내부 구조도 파악이 안 돼요. 그냥… ‘블랙 박스’입니다.”
“이건… 우리가 찾던 희귀 자원이 아닐 수도 있겠군.” 렉스의 기계팔이 삐걱거렸다. 그의 눈에는 경계심이 역력했다.
“분명 인공물입니다.” 닥터 한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이런 완벽한 구조는 자연적으로는 불가능해요. 누가, 언제, 왜 만들었을까요?”
카이는 심호흡을 했다. “함선, 최소 안전거리 유지. 세라, 원거리 정밀 스캔 계속 시도해. 닥터 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렉스, 보안 시스템 최대 가동.”
명령이 떨어지자, 모두가 각자의 위치로 돌아갔다. 정적 속에서 레비아탄 호는 거대한 검은 정육면체 주변을 서서히 선회했다.
몇 시간이 흘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모두는 어딘가 모르게 초조했다. 침묵이 주는 압박감은 어떤 우주 폭풍보다도 강력했다.
“캡틴, 이건… 아무것도 안 나옵니다.” 세라가 결국 두 손을 들었다. “아무리 긁어봐도 그냥 완벽한 블랙박스예요. 에너지 신호도 없고, 통신 시도도 무반응. 죽어 있는 것 같습니다.”
“죽어 있다고?” 카이가 반문했다. “그렇게 거대한 것이?”
그 순간, 세라의 망막 임플란트가 격렬하게 깜빡였다. 그녀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경직되었다.
“세라? 무슨 일이야?” 닥터 한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세라의 손이 허공에서 허우적거렸다. 그녀의 다른 쪽 눈은 초점을 잃은 듯 흔들리고 있었다. “아니… 이건… 죽어 있지 않아… 캡틴… 이 벽… 이 벽이….”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브릿지의 모든 모니터가 일제히 지지직거렸다. 그리고 이내, 알 수 없는 이미지들로 채워졌다. 불타는 행성, 춤추는 은하, 거대한 그림자의 행렬… 무의미한 시각적 노이즈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어떤 거대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시스템 오류인가?” 렉스가 총을 뽑아 들었다.
“아니요! 이건… 이건 스캔이 아니에요!” 세라가 비명을 질렀다. “내 뇌로… 직접… 직접 들어오고 있어요!” 그녀는 머리를 움켜쥐었다. 임플란트에서 푸른 섬광이 미친 듯이 뿜어져 나왔다.
그때, 모두의 머릿속에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목소리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이질적이었다. 언어의 형태를 띠고 있지 않았지만, 감정과 정보가 뒤섞인 채 직접적으로 주입되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고통이자, 동시에 압도적인 지식이었다.
*…너희는 작은… 너무나 작은… 먼지 같은 존재들…*
카이의 눈앞에 번쩍이는 이미지들이 스쳐 지나갔다. 고층 빌딩이 거미줄처럼 얽힌 도시,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계 문명, 그리고 그 중심에 떠 있는 저 검은 정육면체. 그는 무릎을 꿇었다. 두통이 머리를 깨부술 듯이 밀려왔다.
“닥터 한! 렉스! 무슨 일이야!” 카이가 신음했다.
닥터 한은 이미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렉스는 기계팔을 휘두르며 허공에 대고 욕설을 내뱉었다. 그의 강화된 팔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는 흥미롭다…*
세라가 흐느끼며 웃기 시작했다. 그녀의 임플란트 눈은 이제 완전히 검게 변해 있었고, 거기서 뿜어져 나오던 푸른빛은 사그라졌다. 하지만 그 검은 눈은 비정상적으로 빛나고 있었다.
“보여요… 캡틴…” 세라의 목소리는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여러 개의 목소리가 겹쳐지는 듯한, 기계적이고 동시에 영혼 없는 음성이었다. “이 우주의 모든 시작과 끝이… 이 벽 안에 있어요… 우리가 찾아 헤매던 모든 답이….”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비아탄 호의 모든 조명등이 깜빡이며 꺼졌다. 브릿지는 어둠 속에 잠겼고, 오직 세라의 검은 눈만이 기괴하게 빛나고 있었다.
“우린 이제… 하나가 될 거예요….”
함선 전체가 거대한 심장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엔진이 비명을 지르고, 통신이 끊어졌다. 거대한 검은 정육면체는 여전히 말없이 그 자리에 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침묵은 더 이상 공허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삼키고,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고요한 울림이었다.
카이는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머릿속은 아직도 알 수 없는 이미지와 소리로 가득했다. 그는 세라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눈앞에, 세라의 임플란트 눈에서 검은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액체는 마치 살아있는 촉수처럼 그녀의 얼굴을 타고 내려와, 옷 속으로 스며들었다.
“세라…?”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카이를 응시했다. 아니, 응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눈은 이미 세라의 것이 아니었다. 우주의 가장 깊은 곳에서 온, 너무나도 거대하고 오래된 무언가의 반영이었다.
그리고 레비아탄 호는 미지 영역 57번 섹터의 어둠 속으로, 마치 흔적도 없이 사라진 수많은 탐사선들처럼, 서서히 녹아들기 시작했다. 거대한 검은 정육면체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그 속에서 새로이 태어난, 혹은 흡수된 모든 존재들의 침묵을 품은 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