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챕터 1. 잠긴 방의 초대받지 않은 손님
비는 자정을 넘어서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굵은 빗줄기가 창문을 때리는 소리는 마치 세상의 모든 불행이 한데 모여 절규하는 것 같았다. 한지혁 경위는 운전대를 꽉 움켜쥔 채 미끄러운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핸들에 땀이 흥건했다. 이 시간에, 이 악천후에, ‘그곳’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이 그의 신경을 끈까지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금성저택.
도시 외곽, 깊은 산중에 고립된 그 이름난 저택은 언제나 괴담의 중심이었다. 칠흑 같은 밤, 번개가 번쩍일 때마다 거대한 고성이 섬뜩한 실루엣을 드러냈다. 어둠 속에서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숨 쉬는 듯한 음침한 기운이 지혁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도착하자마자 현장을 지키던 형사들이 일제히 거수경례를 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피곤함과 함께 짙은 불안감이 드리워져 있었다.
“경위님, 오셨습니까.”
막내 형사 이원석의 목소리가 떨렸다. 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에서 내렸다. 비바람이 그의 코트를 사정없이 때렸지만, 그의 신경은 이미 저택 내부로 향해 있었다.
“현장 상황 보고해.”
“네, 경위님. 오늘 오전 10시경, 피해자의 집사가 정기 방문을 왔다가 신고했습니다. 저택 문은 잠겨 있었고, 경비 시스템은 정상 작동 중이었습니다. 집사가 가진 비상 열쇠로 진입… 이후 서재에서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피해자는?”
“윤승현 교수입니다. 고고학자이자 고서적 수집가로 유명하죠. 은둔형 생활을 해왔습니다.”
지혁은 안 그래도 복잡한 머릿속이 더욱 뒤엉키는 것을 느꼈다. 윤승현. 기이한 고대 유물과 금기시된 지식에 집착하던 기인으로 세간에 알려진 인물. 그런 그가 평화롭게 죽었을 리 만무했다.
저택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눅진하고 퀴퀴한 공기가 코를 찔렀다. 낡은 목재와 먼지, 그리고 희미한 철분 냄새가 섞여 있었다. 복도에 길게 늘어선 갑옷과 알 수 없는 문양의 태피스트리가 어둠 속에서 음산한 기운을 뿜어냈다.
“시신 발견 장소는 서재입니다. 2층이죠.”
원석의 안내에 따라 삐걱이는 계단을 올랐다. 2층 복도 끝,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서재 문 앞에는 이미 여러 명의 형사와 감식반 요원들이 초조하게 서성이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공포가 깃들어 있었다.
“경위님, 보시죠.”
담당 형사가 문을 가리켰다. 육중한 오크나무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 주변은 폴리스 라인으로 둘러쳐져 있었다.
“현장 보존은?”
“최대한 노력했습니다. 문제는… 문이 안에서 잠겨 있었다는 겁니다.”
“안에서?” 지혁의 미간이 좁아졌다.
“네. 잠금장치는 육중한 빗장이 안에서 걸려 있었고, 열쇠도 안쪽에 그대로 박혀 있었습니다. 창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모두 안에서 단단히 걸쇠가 채워져 있었고, 창살도 틈 없이 붙어있었습니다.”
“이 건물에 비밀 통로나 다른 출입구는 없나?”
“건축 도면을 확인했고, 특수 카메라로 벽면까지 확인했습니다. 없습니다. 완벽한 밀실입니다.”
완벽한 밀실.
형사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퍼졌다. 이들이 공포에 질린 것은 단순히 밀실 살인 사건 때문이 아니었다. 시체를 처음 발견한 형사가 보고한 내용은 훨씬 더 비현실적이었다.
“강진우 씨는 불렀나?” 지혁이 낮게 물었다.
원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연락드렸습니다. 곧 도착한다고 합니다.”
지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 빌어먹을 밀실을 깨부술 수 있는 자는 그 남자 외에는 없었다. 하지만… 과연 이번에도 그가 해낼 수 있을까. 이번에는 그 기이함이 정도를 넘어섰으니까.
잠시 후, 복도 저편에서 익숙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마른 체구에 낡은 트렌치코트를 입은 남자, 강진우였다. 그의 발걸음은 빗소리 속에서도 묘하게 조용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그의 눈은 어둠 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났다. 마치 세상의 모든 비밀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듯한 차가운 시선이었다.
그가 나타나자 복도를 채우던 불안감은 더욱 짙어지는 듯했다. 진우는 아무 말 없이 형사들을 스쳐 지나갔다. 마치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그의 시선은 오직 서재 문에 고정되어 있었다.
“강 선생.” 지혁이 나직이 불렀다.
진우는 그제야 지혁에게 눈길을 주었다. 희미한 미소가 그의 입가에 걸렸다 사라졌다. “오랜만이군요, 한 경위. 이번엔 또 어떤 ‘불가사의’가 당신을 불렀습니까?”
그의 말은 언제나 빈정거리는 듯했지만, 그 속에는 비범한 통찰력이 숨겨져 있었다.
“말 그대로 불가사의입니다. 밀실 살인. 그것도… 아주 기이한.”
진우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문 앞에 섰다. 그는 문고리에 손을 대는 대신, 육중한 나무 문에 귀를 바싹 가져다 댔다. 그리고는 천천히, 마치 문 안의 모든 소리를 듣는 듯이, 문 전체를 손바닥으로 쓸어내렸다. 그의 손끝이 문틈을 더듬었다. 모든 형사들이 침묵한 채 그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마침내 진우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눈빛에는 흥미와 함께 깊은 의문이 서려 있었다.
“문 열어도 되겠습니까?”
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감식반 요원이 조심스럽게 봉인을 해제하고, 특수 장비로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육중한 문이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열렸다.
어둠과 함께 차가운 공기가 밀려 나왔다.
서재 안은 기묘한 침묵에 잠겨 있었다. 두꺼운 암막 커튼 때문에 바깥의 빗줄기 소리조차 희미하게 들릴 뿐이었다. 앤티크 가구들과 벽을 가득 채운 고서적들 사이로, 불길한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진우가 가장 먼저 발을 들였다. 그의 뒤를 이어 지혁과 감식반 요원들이 조심스럽게 들어섰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서, 윤승현 교수를 발견했다.
교수는 책상에 기댄 채 앉아 있었다. 마치 누군가와 대화하던 중, 그대로 시간이 멈춰 버린 듯한 자세였다. 그의 눈은 형언할 수 없는 공포로 크게 뜨여 있었고,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굳어 있었다. 하지만 가장 끔찍한 것은 그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의 심장 부근에서 시작된 검붉은 얼룩이 셔츠를 적시고 책상 위까지 번져 있었다. 마치 잉크처럼 검고 끈적해 보이는 액체였다.
그리고… 그 액체 위에 그려진 기이한 문양.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기하학적 형태의 문양은 검붉은 액체로 그려져 있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듯했다. 그 문양은 흡사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그 주변을 감싸는 공기는 마치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비정상적으로,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로.
“젠장…” 감식반 요원 중 한 명이 헛구역질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윤 교수의 몸에는 외상이 없었다. 날카로운 칼이나 둔기에 의한 상처도 없었다. 그저 극심한 공포에 질린 채, 심장 부근에서부터 시작된 검은 얼룩만이 퍼져 있을 뿐이었다.
진우는 아무 말 없이 책상 앞으로 다가섰다. 그는 몸을 숙여 윤 교수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얼룩이 번진 가슴팍에 손을 댔다. 그의 손끝에서 차가운 기운이 전해지는 듯했다. 그리고는 끔찍한 문양이 그려진 책상에 손을 올렸다.
“온도가… 영하에 가까워요. 시반도 없고, 사후 경직도 비정상적으로 늦습니다.” 감식반 요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했다.
진우는 그들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오직 문양에만 집중했다. 그의 눈이 그림자를 좇아 움직였다. 문양을 가로지르는 미세한 균열, 그리고 그 균열 속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아주 작은 결정체들.
그는 다시 윤 교수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극도의 공포. 그리고… 무언가를 갈망하는 듯한, 혹은 무언가에 사로잡힌 듯한 희미한 황홀경마저 감돌고 있었다.
진우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차가운 서재의 공기 속에서도 선명하게 울렸다.
“이 방에 ‘살아있는’ 범인은 없었어.”
형사들의 눈이 일제히 진우에게로 향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당혹감과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강 선생? 그럼… 유령이라도 왔다는 겁니까?” 지혁이 애써 침착하게 물었다.
진우는 지혁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섬뜩하게 빛나는 문양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건… 인간의 짓이 아니군.”
그의 마지막 말이 서재 안을 감도는 기괴한 침묵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빗소리는 멀리서 울부짖는 짐승의 울음처럼 들렸다. 그들은 이제 밀실에 갇힌 시체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마주하고 있었다. 과연 이 완벽한 밀실의 트릭을 깨는 것이 가능할까? 아니, 그전에 이 방에 도대체 무엇이 존재했던 것일까? 진우의 눈빛은 그 질문의 답을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 답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