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제17화: 심연의 속삭임

축축하고 좁은 통로를 기어 나온 지 삼십 분째였다. 서준은 묵묵히 앞장서서 가끔씩 손전등을 비춰 길을 확인했다. 등 뒤에서는 하윤의 나긋한 투덜거림이 끊이지 않았다.

“아니, 탐험이라는 게 말이죠, 이렇게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방식으로 진행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무릎 아파 죽겠어요. 서 기자님, 혹시 여기서 나중에 기사라도 쓰실 거면 ‘무릎 보호대는 탐험가의 필수품’이라는 대목 꼭 넣어주세요.”

서준은 고개를 돌려 하윤을 쳐다봤다. 흙먼지로 범벅된 그녀의 이마에는 거미줄까지 살짝 붙어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녀의 눈은 반짝이는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기사 대신 다른 걸 쓸 예정입니다. 예를 들면, ‘자신만만하게 따라나섰던 고고학자가 구덩이에서 혼비백산했던 일화’ 같은 거요.”

“흥! 그럼 저는 ‘냉철한 척하지만 실상은 길치였던 기자가 무릎 아픈 동료에게 불평만 늘어놓았던 기록’을 쓰겠습니다!”

티격태격하는 사이, 서준의 손전등이 비춘 곳에서 길이 갑자기 넓어졌다. 이내 그들은 가파른 경사면의 끝자락, 거대한 암석 틈새로 미끄러져 내려섰다. 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발이 닿은 곳은 단단한 바닥이었다.

“크, 크다….”

하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서준 역시 말없이 주변을 둘러봤다. 그들이 들어선 곳은 지름이 족히 오십 미터는 되어 보이는 원형의 거대한 공간이었다. 천장은 까마득히 높았고, 사방의 벽면은 옅은 옥색을 띠는 고대의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벽에는 정교하면서도 기괴한 문양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는데,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가 꿈틀거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방 한가운데 자리한 거대한 구조물이었다. 직경 삼 미터 정도의 둥근 받침대 위에, 깎아놓은 듯 정교한 암석 구가 놓여 있었다. 구의 표면에는 복잡한 회로 같은 선들이 조각되어 있었고, 그 선들을 따라서는 아주 미약하지만 규칙적인 빛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마치 고대의 심장이 뛰는 것처럼.

“저게 대체… 뭐지?” 하윤이 홀린 듯 구조물로 향했다.

“함부로 만지지 마요.” 서준이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차가운 그의 손길에 하윤은 살짝 움찔했지만, 이내 그의 손을 뿌리치고 구조물 주위를 맴돌았다.

“하지만 저 기운! 느껴지시나요? 이건 단순한 유물이 아니에요. 이건… 살아있어요!”

하윤은 흥분한 얼굴로 구의 표면을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그녀의 손끝이 닿는 곳마다 미약한 빛이 좀 더 강하게 반응하며 깜빡였다.

“이거 봐요, 서 기자님! 제가 만지니까 반응해요! 마치 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당신을 기다린 게 아니라, 당신의 체온에 반응하는 걸 수도 있습니다. 혹은… 당신의 불운에 반응하는 걸 수도 있고요.”

서준의 신랄한 지적에도 하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구에 새겨진 문양들을 유심히 살피더니, 갑자기 무언가를 발견한 듯 눈을 반짝였다.

“찾았다! 이거, 이건… 고대 태양신 숭배 부족의 기록에 나오는 ‘생명의 씨앗’ 문양이에요! 이 문양들은 태양의 순환과 생명의 탄생을 의미하는 동시에… 특정 에너지를 증폭시키는 주술적 배열을 가지고 있죠!”

그녀는 마치 시험 문제를 푸는 학생처럼 고도로 집중하며 중얼거렸다. 서준은 조심스럽게 그녀의 옆으로 다가섰다. 하윤이 가리키는 곳에는 다른 문양들보다 유독 섬세하고 복잡한 패턴이 새겨져 있었다.

“이건 분명히 ‘순서’가 있을 거예요. 고대인들은 모든 의식에 엄격한 순서를 부여했으니까요. 보세요, 여기 태양 모양의 문양부터 시작해서… 이 나선형 문양이 생명의 흐름을 나타내고… 마지막으로 이 세 개의 점은… 아마도….”

하윤은 손가락으로 태양 문양을 짚었다. 그러자 구의 표면을 흐르던 빛의 속도가 갑자기 빨라지며, 태양 문양에서 시작된 빛이 마치 회로처럼 다른 문양들을 따라 빠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오! 보세요! 제가 맞았어요! 이건 분명히 작동 방식이 있는 거예요!”

흥분한 하윤은 다음 문양을 누르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서준이 그녀의 손을 낚아챘다.

“잠깐만요.”

하윤은 뜻밖의 접촉에 순간 몸이 굳었다. 서준의 손은 단단하고 뜨거웠다. 그의 눈이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확실해요? 그냥 누르는 방식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패턴을 자세히 보세요. 뭔가 미묘하게 다른 부분이 있을 겁니다.”

서준은 자신의 손으로 하윤의 손을 감싼 채, 그녀의 손가락을 그녀가 방금 짚으려던 문양 대신 옆의 또 다른 나선형 문양으로 이끌었다.

“이건 생명의 흐름이 아니라, ‘시간의 역행’을 나타내는 문양이에요. 그리고 이 점들은… 과거, 현재, 미래를 의미하죠. 아마도 순서가 중요할 겁니다. 단순히 만지는 게 아니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역방향으로 뭔가를 해야 할 거예요.”

그의 손끝이 하윤의 손끝을 스쳤다. 짜릿한 전류가 온몸을 관통하는 것 같았다. 하윤은 서준의 진지한 표정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의 말은 논리적이었고, 그의 눈은 이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심장을 꿰뚫는 듯했다.

“시간의 역행이라… 그러면, 마지막에 눌러야 할 건… 태양 문양이 아니라….”

하윤은 문양들을 다시 살폈다. 그리고 서준의 설명을 떠올리며 마침내 정답을 찾아냈다.

“이거다! 이 세 개의 점은 단순한 점이 아니라, 특정 주기를 나타내는 ‘정지점’이에요! 즉, 이 ‘시간의 역행’ 문양을 활성화시킨 다음, 이 세 개의 점을… 역순으로 터치하는 거죠!”

그녀의 눈이 확신으로 빛났다. 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해봐요.”

하윤은 서준의 손에서 벗어나 조심스럽게 ‘시간의 역행’ 문양을 만졌다. 구의 표면을 흐르던 빛이 이전보다 훨씬 더 빠르고 강렬하게 역방향으로 휘몰아쳤다. 그리고 이내 세 개의 점 중 가장 오른쪽에 있는 점을 터치했다.

*쉬이이익…*

고요하던 공간에 옅은 공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구에서 뻗어 나온 빛줄기가 벽면의 특정 부분을 향해 쏘아졌다. 하윤은 망설이지 않고 가운데 점, 마지막으로 가장 왼쪽에 있는 점을 차례로 터치했다.

콰앙!

천지를 뒤흔드는 듯한 굉음과 함께, 구는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빛을 뿜어냈다. 바닥이 울리고, 벽면의 문양들이 일제히 활활 타오르는 듯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서준은 반사적으로 하윤을 끌어당겨 자신의 품에 가두었다. 흙먼지가 사방으로 솟구치고, 알 수 없는 진동이 온몸을 뒤흔들었다.

“이게 대체… 무슨…!” 하윤의 목소리가 서준의 가슴팍에 묻혔다.

굉음이 잦아들자, 섬광도 서서히 잦아들었다. 빛이 사라진 곳, 구의 반대편 벽면이 스르륵 소리를 내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암석 문이 천천히 옆으로 밀려나며, 그 뒤에 감춰져 있던 또 다른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 통로는 단순히 어두운 통로가 아니었다.

문이 완전히 열리자, 안쪽에서 끈적하고 차가운 기운이 확 몰려 나왔다. 동시에,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붉은색 무언가가 보였다. 그리고 그 붉은빛 너머에서, 고막을 찢을 듯한 알 수 없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것은 마치 수천 년 동안 잠들어 있던 거대한 짐승이 깨어나는 듯한, 압도적인 절규였다. 땅이 다시 한번 크게 흔들리고, 서준은 하윤을 더욱 단단히 끌어안았다. 붉은빛은 점점 더 선명해졌고, 절규는 더욱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수백 개의 눈이 박힌 거대한 그림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