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 독립적인 단편 소설

천둥이 울부짖었다. 번개는 밤하늘을 갈랐고, 빗줄기는 차창을 사정없이 때려댔다. 이런 밤에 사건 현장이라니. 유은채 경위는 한숨을 쉬며 핸들을 꽉 쥐었다. 옆자리에서는 강세현이라는 이름의 천재 탐정이 묘한 빛을 띠는 눈으로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번갯불에 비쳐 은회색으로 번득였다.

“강세현 씨, 제가 분명히 말씀드렸죠. 이번 사건은 평범한 변사 사건일 뿐이라고요. 굳이 여기까지 오실 필요 없다고요.”
은채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그녀는 이 천재 탐정이라는 작자를 ‘평범한 인간의 상식을 벗어난 귀찮은 존재’로 분류하고 있었다.

세현은 피식 웃었다. 입꼬리만 살짝 올라가는, 무심한 듯 보이는 웃음이었다. “유 경위님, 모든 평범함의 뒤에는 비범함이 숨어있는 법입니다. 그리고 제 직감은… 이번 비는 단순한 비가 아니라고 속삭이는군요.”

“직감 같은 추상적인 소리 하지 마세요. 제 직감은 지금 당장 따뜻한 어묵탕 국물에 소주 한잔이 간절하다고 외치고 있어요.”
은채가 신경질적으로 액셀을 밟았다. 차는 빗물을 튀기며 굽이진 언덕길을 올랐다. 이윽고 시야에 거대한 실루엣이 들어왔다. 고풍스러운 양식의 대저택. 오늘 밤의 무대가 될 곳이었다.

저택 앞마당에는 이미 순찰차 몇 대와 구급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비상등이 깜빡이며 어두운 밤을 더 음산하게 만들었다. 세현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우산도 쓰지 않고 저택 입구로 향했다. 은채는 그 뒤를 쫓으며 얼른 우산을 씌워주려 했지만, 세현은 이미 저택 현관에 서 있었다. 그의 머리카락과 얇은 재킷은 이미 빗물에 젖어 있었다.

“아니, 우산 좀 쓰세요! 감기 걸리시면 누가 돌봐준다고….”
은채의 잔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세현은 현관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저택은 이미 외부인 출입이 통제된 상태입니다, 강세현 씨.”
경찰 제복을 입은 남자가 그를 가로막으려 했지만, 세현은 그 남자의 어깨 너머로 저택 내부를 훑어볼 뿐이었다.

“류 회장 댁인가요? 예술품 수집으로 유명한 분이었죠. 그런데 이런 고즈넉한 곳에 숨어 사셨다니, 뜻밖이군요.”
세현의 눈동자가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마치 스캐너처럼 주변 모든 것을 흡수하는 듯했다.

“강세현 씨! 거기서 이러지 마시고요. 유 경위님, 저분 좀 통제해 주시죠!”
현장 지휘를 맡은 듯한 최 반장이 다가와 은채에게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은채는 어색하게 웃으며 세현의 팔을 잡아끌었다. “강세현 씨, 일단 제가 상황 설명을 듣고 브리핑해 드릴게요. 함부로 돌아다니지 마시고요.”

세현은 순순히 끌려왔지만, 그의 시선은 여전히 저택 내부의 복잡한 그림자와 희미한 불빛을 탐색하고 있었다.

***

“사망자는 류회장, 류지한 씨입니다. 발견 시각은 밤 8시 30분경. 비서가 보고했습니다.”
최 반장이 간략하게 설명했다. “서재에서 발견됐고요. 문제는… 밀실입니다.”

그 말에 세현의 눈이 일순 흥미롭게 빛났다. “밀실이라…”

“네. 서재 문은 안에서 걸쇠로 잠겨 있었고, 창문들은 모두 굳게 닫힌 채 안에서 빗장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내부를 살펴본 결과, 침입 흔적은 전혀 없었습니다. 자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만, 류 회장님의 성향상… 그리 쉽게 결론 내릴 문제는 아닙니다.”

세현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그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서재 앞으로 향했다. 은채는 한숨을 쉬면서도 그를 따라갔다. 서재 문은 이미 경찰들이 부수고 들어간 상태였다. 문틈으로 스며 나오는 차가운 공기와 희미한 피 냄새가 은채의 코끝을 스쳤다.

서재 안은 고풍스러운 책장과 가구들로 가득했다. 중앙에는 거대한 원목 책상이 놓여 있었고, 그 뒤편 바닥에 류 회장이 쓰러져 있었다. 칼에 찔린 상처가 선명했지만, 칼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사망자는 말 그대로 흔적도 없이 살해당한 채 밀실에 갇혀 있었다.

세현은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묘하군요.”

“뭐가 묘하다는 건데요?” 은채가 물었다.

“이 방의 공기요. 너무… 고요합니다. 죽음의 고요함이 아니라, 마치 모든 것이 제자리에 완벽하게 놓여있는 듯한 부자연스러운 고요함이랄까요.”

은채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공기 상태까지 분석하시는 건가요?”

세현은 은채의 말을 무시하고, 마치 춤을 추듯 방 안을 천천히 훑었다. 그의 시선은 책장 위 먼지 한 톨, 바닥에 놓인 양탄자의 무늬, 심지어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의 미세한 흔들림까지 놓치지 않았다.

“회장님 시신은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어떤 상태로 발견되었는지 확인해 보세요.”
최 반장이 수사팀에게 지시했다.

“손에 쥐고 있던 건 없었습니까? 유서라든가, 암시하는 메모 같은 거요.” 세현이 뜬금없이 물었다.

최 반장이 어이없다는 듯 세현을 쳐다봤다. “강세현 씨, 그건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그런 건 없었습니다. 다만… 이상한 게 하나 있긴 했습니다.”

“뭔데요?” 이번엔 은채가 재빨리 물었다.

“회장님 왼손에… 조그만, 주황색 젤리 한 개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녹아서 거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었지만요.”

세현의 눈이 번쩍 빛났다. 그는 류 회장의 시신 쪽으로 다가섰다. 의료진이 아직 시신을 처리하지 않아 그의 주장은 먹혔다. 그는 무릎을 굽히고 앉아, 피로 얼룩진 손바닥 안의 젤리 흔적을 유심히 살폈다.

“주황색 젤리라… 흥미롭군요.” 세현이 중얼거렸다.

“젤리가 뭐 어떻다는 건데요? 범인이 류 회장님에게 젤리를 먹이고 살해했습니까?” 은채가 비꼬듯 말했다.

세현은 일어서서 방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섰다.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은 천장의 샹들리에를 향했다. 샹들리에는 육중한 철제 체인으로 천장에 고정되어 있었고, 그 아래로 크리스탈 조각들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유 경위님, 저 샹들리에의 무게는 대략 어느 정도쯤 될까요?” 세현이 물었다.

은채는 어이가 없어서 실소를 터뜨릴 뻔했다. “강세현 씨, 지금 농담하실 때가 아닙니다. 샹들리에 무게를 어떻게 알아요? 몇 백 킬로그램은 족히 나가지 않을까요?”

“흐음… 몇 백 킬로그램이라.” 세현이 턱을 문질렀다. 그의 눈빛은 이미 다른 차원의 공간을 보고 있는 듯했다.

그는 다시 방을 천천히 둘러봤다. 책상, 책장, 소파, 그리고 벽에 걸린 거대한 유화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완벽하게 놓여 있었다. 하지만 세현은 무언가 미묘하게 어긋난 부분을 찾으려는 듯했다.

그의 발걸음이 방 한쪽 벽에 걸린 큼지막한 태피스트리 앞으로 멈췄다. 중세 기사들의 전투 장면이 수놓아진 화려한 태피스트리였다. 세현은 손을 뻗어 태피스트리 뒷면을 더듬었다.

“강세현 씨, 갑자기 태피스트리는 왜요? 거기에 뭐라도 있을 리가….” 은채가 막 말을 시작하려 할 때였다.

세현의 손끝이 무언가에 닿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태피스트리를 옆으로 걷어냈다. 그리고 그 아래 드러난 벽에는…

작고 낡은 나무로 된 패널 하나가 있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패널은 벽의 다른 부분과는 확연히 다른 색깔과 질감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벽의 일부가 아닌 듯, 억지로 끼워 넣은 것처럼 보였다.

“이게… 뭐죠?” 은채의 목소리에서 경계심이 묻어났다.

세현은 패널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소리가 다릅니다. 비어 있는 듯한 소리죠. 류 회장님은 분명 이 공간을 자주 사용했을 겁니다. 그의 손때가 묻어있지 않은 이곳은… 역설적으로 가장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주머니에서 얇은 금속 막대를 꺼내 패널 틈새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는 힘을 주어 지렛대처럼 밀어 올렸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패널이 안쪽으로 밀려 들어갔다.

드러난 것은 좁고 어두운 통로였다. 먼지가 잔뜩 쌓여 있었고, 그 안쪽으로는 희미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했다.

“비밀 통로… 였습니까?” 은채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세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말하면, 비밀 환기구입니다. 하지만 성인 남성 한 명이 충분히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개조되어 있었군요.”

그는 통로 안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그의 눈은 통로 벽에 새겨진 희미한 자국을 발견했다.

“이건… 긁힌 자국입니다. 누군가 이곳을 드나들며 남긴 흔적이죠. 그리고…”
세현의 눈동자가 통로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작은 금속 조각에 멈췄다. 그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주워 올렸다.

“이것은 샹들리에의 체인을 고정하는 데 쓰이는 부품입니다. 녹이 슬었군요. 원래는 천장에 박혀 있어야 할 부품이, 왜 이런 곳에 떨어져 있는 걸까요?”

은채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세현을 바라봤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조각들이 뒤섞이고 있었다. 젤리, 샹들리에, 비밀 통로, 그리고 녹슨 부품. 이 모든 것이 어떻게 밀실 살인과 연결될 수 있을까.

세현은 빙긋 웃었다. 이제야 퍼즐의 첫 조각을 찾은 탐정처럼 만족스러운 미소였다. “유 경위님, 이제야 이 방의 고요함이 왜 부자연스러웠는지 알 것 같군요.”

***

세현은 손에 쥔 금속 부품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의 눈빛은 이 방 안의 모든 수수께끼를 꿰뚫어 보려는 듯 날카로웠다.

“이 부품, 분명 샹들리에를 지탱하는 체인과 연결되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보세요. 완전히 부러진 것이 아니라, 마치 억지로 뜯어낸 듯한 자국이 남아있습니다.”
세현은 은채에게 부품을 내밀었다.

은채는 부품을 받아들고 자세히 살폈다. 꽤나 튼튼해 보이는 철제 부품이었다. 이것이 부러진 것도 아니고 뜯겨 나갔다면, 엄청난 힘이 가해졌다는 뜻이거나…

“유 경위님, 저 태피스트리 뒤의 통로가 왜 비밀 통로로 개조되었을까요? 그리고 왜 하필 회장님 방에 연결되어 있을까요? 회장님은 혼자만의 은밀한 취미라도 있었던 걸까요?”
세현이 빙글거리며 물었다.

“추측은 나중에 하시죠, 강세현 씨. 우선 이 부품이 왜 저기에 떨어져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밀실 트릭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은채가 피곤한 표정으로 말했다.

세현은 피식 웃더니 턱을 쓱 문질렀다. “물론이죠. 이제 모든 것이 명확해졌으니까요. 사실, 범인은 밀실 트릭을 두 번 사용했습니다.”

“두 번이요?” 최 반장이 끼어들었다.

“네. 처음엔 류 회장님을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이 방을 잠근 후, 이 비밀 환기구를 통해 빠져나갔죠.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범인은 류 회장님의 죽음을 단순한 밀실 살인이 아닌, ‘완벽한 밀실 살인’으로 위장하고 싶었던 겁니다.”

세현은 다시 방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범인은 류 회장님을 죽인 후, 방을 떠나기 전에 문을 안에서 잠급니다. 그리고 이 태피스트리 뒤의 환기구를 이용해 밖으로 나갑니다.”

“그럼 잠긴 문은 어떻게 된 거죠? 밖에서 잠글 수 있는 방법은 없는데요?” 은채가 의문을 제기했다.

“그렇습니다. 밖에서 잠글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안에서 잠근 문을 밖에서 ‘잠긴 것처럼 보이게’ 할 수는 있죠.”
세현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범인은 이 방을 나간 후, 밖에 숨겨둔 얇고 긴 낚싯줄 같은 것을 이용했습니다. 류 회장님은 평소 습관적으로 젤리를 즐겨 드셨다고 합니다. 아마도 책상 위에 놓인 젤리를 드시려 했을 겁니다. 범인은 류 회장님이 죽고 난 뒤, 의도적으로 녹아내린 젤리 흔적을 회장님의 손에 쥐여주었죠. 마치 회장님이 무언가를 말하려다 죽은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서요.”

“하지만 젤리가 밀실과 무슨 상관인데요?” 은채가 따져 물었다.

“상관이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상관이죠. 이 샹들리에 말입니다.”
세현은 다시 천장의 샹들리에를 가리켰다. “저 샹들리에는 평소에도 미세하게 흔들렸을 겁니다. 이 오래된 저택의 구조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의도적인 결과일 수도 있죠.”

“범인은 환기구를 통해 방을 나간 후, 밖에서 특수하게 개조된 긴 낚싯줄이나 철사를 이용해 샹들리에의 고정 부품 중 하나를 억지로 뜯어냅니다. 그 과정에서 부품이 환기구 안으로 떨어졌고, 샹들리에는 더 격렬하게 흔들렸겠죠. 그리고 이 흔들림이… 방 안에 있던 ‘무언가’를 작동시킨 겁니다.”

모두의 시선이 세현에게 집중됐다. 그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그 속에는 폭풍 전야의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이 방에는 아주 오래된, 하지만 견고한 자동 잠금장치가 숨겨져 있습니다. 아마도 류 회장님이 자신의 귀중한 수집품들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겠죠. 이 잠금장치는 특정 조건이 충족되면 작동하는데, 그 특정 조건 중 하나가 바로… 이 방 안의 ‘진동’입니다.”

세현은 책장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유난히 두꺼워 보이는 책들이 꽂혀 있었다. “저 책장 뒤에 잠금장치의 핵심 부품이 숨겨져 있습니다. 샹들리에의 격렬한 흔들림이 이 진동 감지 센서를 작동시킨 겁니다. 센서가 작동하면서, 문에 연결된 잠금장치가 다시 한 번 굳게 잠기게 된 거죠. 처음에는 범인이 안에서 잠갔지만, 두 번째 잠금은… 이 방 스스로가 해낸 겁니다.”

“그럼 류 회장님 손에 있던 젤리는요?” 은채가 다시 물었다.

“그 젤리는 어쩌면 범인의 실수였을 수도 있습니다. 류 회장님이 죽기 직전, 범인이 강제로 젤리를 먹이려 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젤리가 범인의 특징이었을 수도 있죠. 하지만 제가 주목한 것은 그 젤리가 ‘주황색’이었다는 겁니다. 류 회장님은 초록색 젤리를 좋아했습니다. 주황색 젤리는… 이 저택에 드나드는 누군가의 취향이라는 뜻이죠.”

세현은 빙긋 웃었다. “그리고 제가 아는 한, 주황색 젤리를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은… 딱 한 명 있습니다.”

그의 시선이 저택의 비서인 ‘박 실장’에게로 향했다. 박 실장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온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박 실장님. 류 회장님의 비서로서, 저택의 구조와 회장님의 습관을 누구보다 잘 아는 분이죠. 그리고 주황색 젤리를 즐겨 드시는 분이기도 하고요.”
세현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아…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회장님을….” 박 실장이 더듬거렸다.

“아니요, 박 실장님. 당신은 회장님의 유산을 노렸습니다. 회장님의 까다로운 성격을 참다못해 결국 살해하고, 자신이 저택을 떠난 후 자동으로 잠기는 ‘완벽한 밀실’을 연출하려고 했던 겁니다. 하지만 샹들리에 부품이 환기구에 떨어지는 작은 변수를 예상하지 못했죠. 그리고 류 회장님의 손에 남은 주황색 젤리 흔적은… 당신의 사소한 습관이 남긴 치명적인 단서입니다.”

박 실장은 결국 고개를 떨궜다. 그의 입술 사이로 절망적인 탄식이 터져 나왔다.
“젠장… 젠장할!”

***

사건 해결 후, 경찰들은 박 실장을 체포하고 현장 정리에 들어갔다. 은채는 복잡한 마음으로 세현을 바라봤다. 그의 천재적인 추리력에 매번 놀라면서도, 그의 비상식적인 행동에 질색하는 자신이 우스웠다.

세현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폭풍우는 잦아들고, 먹구름 사이로 희미한 달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강세현 씨, 수고하셨습니다.”
은채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세현은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지적인 고뇌의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이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유 경위님도요. 제가 없었다면 이 ‘완벽한 밀실’은 영원히 미궁에 빠졌을 겁니다.”

“네, 네. 자화자찬은 여전하시네요. 덕분에 제 두통은 해결됐지만요.”
은채가 픽 웃었다. “그런데 아까 젤리 얘기 말이에요. 정말 주황색 젤리가 박 실장 취향인지는 어떻게 아셨어요? 그렇게 사소한 것까지 다 파악하고 다니시는 건가요?”

세현은 어깨를 으쓱했다. “음… 사실, 지난번에 유 경위님 사무실에 갔을 때, 책상에 주황색 젤리가 잔뜩 있더군요. 봉지도 뜯지 않은 채로요. 그게 유 경위님 것이 아니라는 건 너무나 명백했죠. 유 경위님은 그런 달콤한 것을 즐기지 않는 타입이니까요.”

은채는 순간 당황했다. 자신의 사무실까지 유심히 관찰했던 건가? 게다가 자신의 취향까지?

“그래서… 주변에 물어봤습니다. 유 경위님 주변에 주황색 젤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지.”
세현의 눈동자가 장난스럽게 빛났다.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박 실장이더군요. 회장님이 드시는 젤리까지 챙겨주는 비서니까요. 굳이 주황색으로.”

은채는 얼굴이 살짝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왠지 모르게 자신의 사생활을 속속들이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제 사무실에 있던 젤리는… 박 실장이 준 거였다고요? 그걸 굳이 확인까지 했다는 건가요?”

세현은 씩 웃었다. “궁금했으니까요. 그리고… 누군가에게 선물을 줄 때, 상대방의 취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건… 실례라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유 경위님 같은 분에게는요.”

은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말은 왠지 모르게 설렘과 불편함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그녀는 그가 자신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에 심장이 간질거렸지만, 동시에 그의 과도한 관찰력에 약간의 소름이 돋기도 했다.

“하여튼… 사소한 것 하나 놓치지 않는 건 알아줘야겠네요.” 은채가 애써 태연한 척 말했다.

“그게 제 일이니까요.” 세현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하지만 유 경위님의 감정 변화를 읽는 건 아직 좀 어렵습니다. 특히 지금처럼 얼굴이 빨개졌을 때가 가장 미스터리하군요.”

“이… 이건 그냥 추워서 그래요! 지금 몇 시인데 아직도 이러고 있습니까!”
은채는 황급히 뒷목을 쓸어 올리며 헛기침을 했다.

세현은 그런 은채를 보며 작게 웃었다. 이번에는 입꼬리만 올라가는 무심한 미소가 아니라, 눈가까지 살짝 접히는 따뜻한 미소였다.
“네, 알겠습니다. 이제 돌아가죠. 유 경위님이 좋아하는 어묵탕이라도 한 그릇 해야겠군요. 물론… 소주는 빼고요.”

은채는 그의 말에 깜짝 놀랐다. 자신이 어묵탕에 소주 한잔을 간절히 바랐다는 말을 그가 기억하고 있었다니. 그리고 소주는 빼고라니, 은근히 그녀를 챙기는 듯한 말투까지.

“강세현 씨, 혹시 저….”

“네?”

“아닙니다. 됐어요. 그냥… 빨리 가요.”
은채는 서둘러 저택을 나섰다. 젖은 머리카락이 빗물에 젖어 있었지만, 그녀의 심장은 왠지 모르게 따뜻해지고 있었다. 강세현이라는 천재 탐정과의 다음 사건이 조금은 기대되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