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1. 녹슨 자물쇠의 비명
낡고 육중한 철문이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짙은 흙냄새와 함께 비릿한 피 냄새가 코를 찔렀다. 늦여름의 습기 머금은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은 오래된 저택의 서재였다. 붉은 카페트는 이미 검붉게 변색되어 있었고, 그 위에 엎어진 채 싸늘하게 굳어버린 시신이 놓여 있었다.
“강태준 씨, 향년 60세. 골동품 수집가이자 은둔형 외톨이셨습니다. 사인은 등 부위에 박힌 날카로운 도구에 의한 과다 출혈.”
현장 책임자인 최 형사가 찌푸린 미간으로 설명을 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설명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짜증과 피로가 묻어났다.
“보시다시피 밀실입니다. 문은 안에서 빗장이 걸려 있었고, 창문들도 모두 안쪽에서 단단히 잠겨 있었습니다. 외부 침입 흔적은 전무하고요.”
최 형사의 말은 사실이었다. 두껍고 오래된 서재 문에는 묵직한 철제 빗장이 걸려 있었고, 그 옆 나무 문설주는 빗장으로 인해 미세하게 파인 흔적이 선명했다. 창문은 앤티크한 무쇠 잠금장치로 단단히 걸려 있었다. 아무리 숙련된 도둑이라도 이런 식으로 안에서 잠긴 문을 통과할 수는 없을 터였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눈을 감았다. 언제나처럼, 이현 선배의 목소리가 들리기 전의 잠시 동안 찾아오는 고요였다. 옆에서 내 표정을 살피던 서윤이 걱정스러운 듯 나를 바라봤다.
“선배, 괜찮으세요?”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트릭은 아닐 텐데,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는군.”
이현 선배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시신 주변을 천천히 맴돌았다. 그의 손에는 흰 장갑이 끼워져 있었고, 마치 연극 무대를 감상하는 관객처럼 여유로운 태도였다. 다른 형사들이 증거 사진을 찍고 지문을 채취하는 동안, 선배는 오직 ‘보는’ 것에만 집중했다.
“피해자는 책상에 앉아 있다가 습격당한 것 같군요. 저 편지칼… 상당히 섬뜩하네. 강렬한 메시지인가, 아니면 그저 손에 잡히는 대로?”
그의 시선은 시신의 등에 박힌, 으스스하게 빛나는 은제 편지칼에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저절로 침을 삼켰다.
“시체 굳기, 온도 등으로 미루어 새벽 2시경 사망으로 추정됩니다. 발견된 건 오늘 아침 8시고요.” 최 형사가 덧붙였다.
“그럼 발견 당시에는 이미 빗장이 잠겨 있었다는 거군요?” 이현 선배가 묻자, 최 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안에서 잠겨 있었습니다. 문을 부수고 들어왔습니다.”
이현 선배는 이제 창문으로 향했다. 두꺼운 암막 커튼을 걷어내자 바깥의 흐린 하늘이 드러났다. 창문은 이중으로 되어 있었고, 안쪽 창문은 묵직한 무쇠 잠금장치로 단단히 걸려 있었다. 바깥 창문은 옛날식으로 뻑뻑하게 닫혀 있을 뿐, 잠금장치가 따로 없는 형태였다. 하지만 틈새 하나 없이 외부와 단절되어 있었다.
“벽난로나 환풍구도 없습니다. 완벽한 밀실입니다.” 내가 확인하듯 말했다.
이현 선배는 잠시 창문틀을 어루만지더니, 갑자기 몸을 돌려 서재 중앙에 놓인 커다란 책상을 응시했다. 책상 위에는 잉크병과 깃털 펜, 그리고 여러 장의 서류들이 흐트러져 있었다. 그 중 돋보이는 것은 묵직한 은제 열쇠 한 꾸러미였다.
“이건 뭔가요?” 이현 선배가 손짓하자, 최 형사가 다가와 설명했다.
“저택의 모든 방 열쇠입니다. 피해자만 가지고 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현 선배의 시선은 열쇠 꾸러미에서 서재 문 쪽으로 옮겨갔다. 그리고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서재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문에 바짝 다가서서 마치 문과 대화라도 하려는 듯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는 손가락 끝으로 문설주의 빗장 홈 주변을 쓸어보았다.
“이 빗장, 좀 이상하군요.” 이현 선배가 중얼거렸다.
“이상하다니요?” 내가 다가가 물었다.
“이 빗장, 아주 오래된 방식이죠. 쇠막대를 홈에 끼워 돌려서 잠그는 방식. 그런데 보통 이런 빗장은 안에서 잠글 때, 빗장이 홈에 완전히 들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이곳은… 아주 미세하게, 빗장이 홈에 완전히 들어가지 않은 흔적이 있군요.”
이현 선배는 검지로 빗장이 들어가 있던 홈의 가장자리를 가리켰다. 자세히 보니, 홈의 안쪽 깊숙한 곳보다 바깥쪽 가장자리에 미세한 마모와 함께 나무가 긁힌 자국이 보였다. 마치 빗장이 제대로 잠기기 전에 무언가에 부딪혀 강제로 밀려 들어간 것처럼.
“아니, 안에서 잠갔다면 빗장이 홈에 완전히 들어가야 맞는 거 아닙니까?” 최 형사가 의아해했다.
“그렇죠. 그런데 마치… 외부에서, 억지로 밀어 넣은 듯한 자국입니다. 빗장이 홈에 완전히 들어가지 않은 채로 마찰을 일으킨 것처럼.”
그는 빙긋이 웃었다. 그 웃음은 언제나처럼 기묘한 확신과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범인이 이 방에 들어왔고, 피해자를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범인은 이 방에서 나갔죠. 하지만 나가는 순간, 이 문은 다시 안에서 잠겼습니다. 어떻게?”
그의 질문에 모두가 침묵했다. 바로 그것이 밀실 살인의 핵심이었다.
“누군가는 이 방에서 나가면서 빗장을 잠갔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빗장은 안쪽에 있습니다.” 서윤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그럼 범인은 빗장을 외부에서 잠근 겁니다.” 이현 선배가 단호하게 말했다.
최 형사와 나는 동시에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외부에서 빗장을 잠갔다고? 그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빗장은 문 안쪽에 달려 있었다.
이현 선배는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는 아이처럼 즐거운 표정으로 방 안을 다시 쓱 훑었다. 그의 시선은 피해자의 시신, 책상 위의 물건들, 그리고 오래된 가구들을 천천히 훑어 내려갔다. 그리고 멈춘 곳은 벽 한쪽에 기댄 채 놓여 있는 낡은 우산꽂이였다. 그 우산꽂이 안에는 여러 개의 지팡이와 함께, 기다란 낚싯대가 하나 꽂혀 있었다. 먼지가 쌓여 있었지만, 릴에 감긴 낚싯줄은 가늘고 튼튼해 보였다.
“최 형사님, 이 낚싯대, 혹시 평소에도 여기 있었습니까?” 이현 선배가 물었다.
“네, 피해자가 낚시를 즐겼다고 들었습니다. 저택 관리인 말로는 늘 저기에 두었다고 합니다만…”
이현 선배는 우산꽂이에서 낚싯대를 꺼내 들었다. 릴을 돌리자 얇지만 견고해 보이는 낚싯줄이 스르륵 풀려 나왔다. 그의 눈이 번뜩였다.
“피해자는 등 뒤에서 기습당했습니다. 아마 책상에 앉아 작업을 하던 중이었겠죠. 범인은 피해자를 죽인 후, 이 방에서 나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문은 안에서 잠겨야 했죠.”
그는 낚싯대를 들고 문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문 아래쪽의 미세한 틈새를 유심히 살펴봤다. 오래된 문이라 아래쪽과 바닥 사이에 손가락 하나 들어갈 정도의 틈이 있었다.
“범인은 이 틈새를 이용한 겁니다. 살해 직후, 범인은 빗장을 ‘반쯤’만 걸어두고 문을 닫았습니다. 빗장이 완전히 잠기지 않았으니, 문은 닫히기만 하고 완벽하게 잠기지는 않았겠죠.”
이현 선배는 허공에 손짓하며 상상 속의 범인의 움직임을 재현했다.
“그리고 범인은 문 아래 틈새로 이 낚싯줄을 통과시켰습니다. 낚싯줄 끝에는 아마 갈고리 모양으로 구부러진 얇고 단단한 철사 같은 것을 달았겠죠. 그 갈고리로 빗장을 걸어, 외부에서 낚싯줄을 당긴 겁니다.”
그의 설명에 최 형사와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외부에서 빗장을 조작한다니!
“빗장이 완전히 잠기기 전까지는 문 아래 틈새로 낚싯줄이 통과할 수 있습니다. 빗장을 완전히 잠근 후에는 줄을 빼낼 수 없죠. 그래서 범인은 빗장을 완전히 잠그기 전에 낚싯줄을 다시 잡아당겨 빼낸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빗장이 완전히 잠기지 않고 문이 잠긴 상태가 되잖아요?” 내가 의문을 제기했다.
이현 선배가 다시 문설주의 빗장 홈을 가리켰다.
“이 홈의 긁힌 자국을 보십시오. 빗장이 완전히 들어가지 못한 채 외부에서 힘을 받아 억지로 마찰하며 밀려 들어갔다는 증거입니다. 낚싯줄로 빗장을 당겨 완전히 잠근 후, 낚싯줄을 빼려면 빗장이 다시 약간 풀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겠죠. 혹은 낚싯줄을 빼낸 후에, 문에 달려있던 빗장 자체의 무게나, 어떤 장치를 이용해 빗장을 ‘덜컥’하고 완전히 밀어 넣었을 수도 있고요. 이 자국은 빗장이 완전히 잠긴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강제로 ‘닫혔다’는 증거입니다.”
그의 설명은 명쾌했다. 범인은 낚싯줄 같은 도구를 이용해 외부에서 빗장을 잠근 후, 줄을 회수하고 사라진 것이다. 문제는 이제 누가 그 ‘범인’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낚싯대를 사용하는 트릭이라면… 범인도 낚시를 아는 사람이겠죠?” 서윤이 추리하듯 말했다.
이현 선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은 다시 책상 위의 열쇠 꾸러미로 향했다.
“열쇠 꾸러미는 방 안에 있습니다. 범인은 열쇠를 들고 나가지 못했죠. 즉, 이 방은 열쇠로 잠글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오직 빗장만이 유일한 잠금장치였던 셈입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갑자기 서재 문을 다시 한 번 유심히 살폈다. 그의 눈이 문에 박힌 작은 못 자국 하나에 고정되었다. 아주 오래되어 녹이 슬어 눈에 띄지 않던 못 자국이었다.
“최 형사님, 이 저택 관리인 말로는 피해자가 매우 깔끔한 성격이었다고 했죠?”
“네, 완벽주의자였다고 합니다. 흐트러진 꼴을 못 보는 성격이라 늘 정돈되어 있었다고…”
“그럼 이 못 자국은 뭔가요?” 이현 선배가 못 자국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못 자국은 문 중앙보다 약간 아래쪽에, 마치 무언가를 걸어두었던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았다.
“피해자가 이곳에 무언가를 걸어두었을 가능성… 혹은 누군가 무언가를 걸어두고 철거한 흔적일 수도 있겠군요.”
이현 선배는 다시 낚싯대를 들었다. 그리고는 낚싯대 끝을 문 아래 틈새로 조심스럽게 밀어 넣어보았다. 낚싯줄은 쉽게 문 아래를 통과했다.
“만약 범인이 낚싯줄에 갈고리를 달아 빗장을 걸었다면, 빗장이 완전하게 잠겼을 때 낚싯줄을 빼는 게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만약 빗장에 무언가 걸려 있었다면… 예를 들어, 얇고 튼튼한 고리 형태의 끈 같은 것이 말이죠.”
그의 목소리가 점차 빨라졌다.
“범인은 미리 빗장에 끈을 묶어둡니다. 그리고 그 끈의 끝을 문 아래 틈새로 통과시켜 외부로 빼놓는 거죠. 살해 후, 범인은 문을 닫고 나갑니다. 그리고 문밖에서 그 끈을 잡아당겨 빗장을 잠급니다. 빗장이 잠기면 끈은 문 안쪽에 걸린 채로 남겠죠.”
“그럼 그 끈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입니까?” 최 형사가 다급하게 물었다.
“사라진 게 아닙니다. 그 끈을 회수할 방법이 있습니다. 만약 빗장에 묶인 끈이 ‘끊어지도록’ 만들어져 있었다면?”
이현 선배의 시선은 다시 못 자국으로 향했다.
“피해자는 깔끔한 성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못 자국은 오랫동안 방치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 못 자국이… 아주 미묘하게, 최근에 뭔가에 의해 힘을 받은 것처럼 안쪽으로 약간 찌그러져 있습니다. 마치 얇고 단단한 무언가가 계속해서 이 못 자국에 눌려 있었던 것처럼.”
“설마…” 최 형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네, 설마 그겁니다. 범인은 빗장에 아주 얇고 질긴 끈을 묶어뒀고, 그 끈은 저 못 자국에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빗장을 잠근 후, 범인은 문밖에서 그 끈을 강하게 잡아당겨 빗장을 잠그고, 이 못 자국을 지렛대 삼아 끈을 끊어버린 겁니다. 끊어진 끈은 빗장과 함께 방 안에 남게 되겠죠. 그리고 낚싯줄로 끈을 회수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끈을 끊어서 없애는 방법이죠.”
“그럼 그 끈은 어디에 있습니까?” 서윤이 흥분해서 물었다.
“끈이 빗장에 묶여 있었다면, 범인이 나간 후에는 문을 열기 위해 강제로 문을 부쉈을 때, 빗장이 문 안쪽으로 밀려 들어가면서 끈은 자연스럽게 빗장과 함께 떨어졌을 겁니다.”
이현 선배는 빗장이 들어있는 문 안쪽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쭈그리고 앉아 문 아래의 틈새를 다시 살폈다.
“이 틈새… 아주 미세하게, 아주 미세하게 무언가에 긁힌 자국이 있습니다. 끈이 끊어지면서 아래로 떨어질 때, 마지막으로 이 틈새에 스쳤을 흔적입니다. 아주 가늘고 질긴 끈이 남긴 흔적이죠.”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범인은 이 저택의 구조를 잘 알고 있고, 피해자의 습관도 잘 알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낚시를 즐기는 피해자의 취미를 이용해, 그 낚싯대와, 평소 피해자가 방치했을 법한 못 자국까지 이용했죠.”
그의 시선은 서재 문을 굳건히 지키고 서 있는 박 집사를 향했다. 박 집사는 꼿꼿한 자세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불안한 표정으로 손을 꼼지락거리는 피해자의 조카, 강수아 씨가 서 있었다.
“강태준 씨의 가족은 강수아 씨 뿐이고, 박 집사님은 평생 이 저택에서 일하셨죠. 두 분 중 한 명이 범인이라면, 이 트릭은 완벽하게 설명됩니다.”
이현 선배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그 안에 담긴 날카로움은 차가운 칼날 같았다. 밀실 살인의 트릭은 깨졌고, 이제 남은 것은 범인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 얼굴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