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힐링 애니메이션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챕터 1. 산산이 부서진 꿈의 조각

따스한 오후의 햇살이 창을 넘어 작은 작업실을 가득 채웠다. 낡았지만 정갈하게 정돈된 나무 탁자 위에는 갖가지 모양의 빵들이 김을 모락모락 피우며 식어가고 있었다.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공기 중에 맴돌며 숨을 쉴 때마다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지우는 갓 구운 머핀 하나를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아직 뜨거웠지만, 손끝에 닿는 온기가 더없이 익숙하고 포근했다.

“완벽해. 역시 지우 너 아니면 이런 맛은 못 내지.”

맞은편에 앉아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던 수아가 고개를 들었다. 반짝이는 눈동자에 장난기 어린 미소가 어려 있었다. 수아는 얇은 스트라이프 티셔츠에 앞치마를 두른 편안한 차림이었다. 그 모습이 꼭 이 작업실의 주인 같기도, 혹은 이 모든 꿈의 설계자 같기도 했다. 지우는 피식 웃으며 머핀을 반으로 갈랐다. 속에서 김이 훅 뿜어져 나왔다.

“과장하긴. 이 레시피 개발하느라 얼마나 밤을 샜는데. 이건 순전히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노력만으로 되는 건 아니지. 타고난 손맛이란 게 있잖아? 너는 분명 요리하는 요정의 축복을 받았을 거야.”

수아가 머핀 한 조각을 받아 한입 베어 물었다. 이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어떡해, 지우야. 이대로 우리 카페 문 열면 사람들 난리 나겠다. 줄 서서 먹으려고 싸움 나면 어떡하지?”
“제발, 수아야.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

지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우리 카페’. 그 단어는 지우와 수아에게 지난 몇 년간의 삶의 전부이자, 가장 찬란한 희망이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붙어 다니던 두 단짝은 각자 다른 길을 걷는 듯 보였지만, 마음 한켠에는 언제나 똑같은 꿈을 품고 있었다. 바쁜 도심 속 지친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휴식을 선물하는 작은 카페를 여는 것. 손수 만든 빵과 정성껏 내린 커피 한 잔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작은 온기를 불어넣는, 그런 ‘치유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지우는 오직 이 꿈을 위해 오랜 시간 제과 제빵 기술을 익혔고, 수아는 탁월한 미적 감각으로 인테리어와 디자인 분야에서 실력을 쌓아왔다. 둘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차곡차곡 돈을 모았고, 주말마다 만나 밤새도록 카페의 밑그림을 그렸다. 메뉴 개발부터 인테리어 컨셉, 심지어는 카페 이름까지. ‘따뜻한 쉼표’. 두 사람의 마음을 담아 지은 이름이었다.

“근데 우리, 그 자리 계약은 언제쯤 하는 게 좋을까?”

수아가 손가락으로 휴대폰 화면을 넘기며 물었다. 화면에는 지우가 발품 팔아 찾아낸 작은 상가 건물의 사진이 떠 있었다. 고즈넉한 골목 어귀에 자리한, 아담하고 햇살이 잘 드는 곳. 오래된 건물이지만 따뜻한 분위기가 둘의 꿈과 완벽하게 어울렸다. 권리금이 조금 비싸 망설였지만, 지우는 이곳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확신에 사로잡혀 있었다. 수아 역시 처음 그곳을 본 순간부터 눈을 떼지 못했었다.

“다음 달에 우리 적금 만기니까, 그거 찾아서 보증금이랑 권리금부터 해결하고, 바로 계약해야지. 사장님도 다른 사람한테는 안 넘기고 우리 기다려주시겠다고 했어. 워낙 우리가 마음에 드셨다나.”
“오오, 지우야! 역시 너는 복덩이야. 어쩜 그런 곳을 찾아냈어? 내가 우리 카페 인테리어는 정말 기가 막히게 뽑아줄게. 지나가던 사람들이 발걸음 멈추게 만들 거야.”

수아는 신이 나서 두 손을 마주 비볐다. 그 모습에 지우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수아의 디자인 감각은 정말 최고였다. 그녀의 손을 거치면 평범한 공간도 특별한 분위기를 뿜어냈다. 지우는 빵을 굽고, 수아는 공간을 꾸미는. 완벽한 조합이었다.

“참, 지우야. 나 이번에 디자인 공모전 마감이 코앞이라 엄청 바쁠 것 같아. 그래서 말인데, 다음 달에 적금 만기 되면 네가 먼저 가서 사장님 만나고 가계약부터 좀 진행해줄 수 있을까? 혹시 다른 사람한테 넘어갈까 불안해서 그래.”
“응? 내가 혼자?”

지우는 살짝 망설였다. 계약이라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서류도 꼼꼼히 봐야 하고, 법적인 부분도 확인해야 할 게 많았다. 하지만 수아의 눈빛에는 간절함이 가득했다. 그녀의 공모전은 둘의 카페만큼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응, 네가 좀 도와줘. 나는 정말 지금 코피 터지기 일보 직전이거든. 서류는 어차피 내가 다 훑어봤으니까, 네가 가서 계약금만 걸어주면 돼. 잔금은 내가 공모전 끝나자마자 바로 처리할게. 어때?”

수아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지우의 팔을 흔들었다. 지우는 한숨을 쉬면서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내가 다음 달에 가서 계약금 걸어놓을게. 대신 너는 공모전 끝나고 나면 바로 나랑 같이 계약서 꼼꼼히 확인하는 거다.”
“당연하지! 고마워, 지우야! 역시 내 단짝은 너밖에 없어!”

수아는 환하게 웃으며 지우를 끌어안았다. 지우는 그녀의 품에서 따스한 행복을 느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 될 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리고 한 달 후.

지우는 설레는 마음으로 은행에서 적금을 해지했다. 통장에 찍힌 액수는 지난 몇 년간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꿈의 씨앗이었다. 건물주 사장님께 연락을 드렸더니, 흔쾌히 만나자고 하셨다. 평소처럼 수아에게 전화해 함께 가자고 하려다, 이내 멈칫했다. ‘공모전 마감 코앞’이라는 수아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 괜히 방해하지 말자. 이 정도는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수아에게는 계약 후에 기쁜 소식을 전해주자.

약속 장소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카페 인테리어는 어떤 색으로 할지, 빵 진열대는 어디에 놓을지, 커피 머신은 어떤 모델로 할지 등등 온갖 행복한 상상으로 머릿속이 가득했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첫걸음을 떼는 것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건물주 사장님을 만난 지우는 어딘가 모르게 싸늘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사장님의 표정은 예상과 달리 딱딱했고, 지우를 알아보지 못하는 듯했다.

“저… 사장님. 따뜻한 쉼표 카페 계약 때문에 왔는데요.”

지우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자, 사장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따뜻한 쉼표요? 제가 그 이름으로 임대하기로 한 적은 없는데요.”
“네? 그게 무슨…”

지우는 당황했다. 사장님은 이내 한숨을 쉬며 차갑게 말했다.

“아, 혹시 당신도 그 여학생이랑 같이 온 사람인가? 이미 보름 전에 계약 끝났어요. ‘블루밍 가든’이라는 이름으로. 임차인 김수아 씨라고.”

사장님의 말이 지우의 귀에 들어오는 순간, 세상의 모든 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졌다. 머릿속이 텅 비어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블루밍 가든’, ‘김수아 씨’, ‘보름 전에 계약 끝났다’. 단어들이 흩어져 지우의 정신을 휘저었다. 가슴 속에서 차가운 칼날이 쑤셔 박히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아니, 그럴 리 없어. 수아가… 수아가 설마.

지우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사장님을 멍하니 바라봤다. 사장님은 그저 무심한 얼굴로 서류 뭉치를 가리켰다.

“여기에 계약서 사본 있습니다. 본인 맞는지 확인해보세요.”

지우의 손이 떨렸다. 겨우 계약서 사본을 받아 들었다. ‘임차인: 김수아’. 선명하게 박힌 세 글자가 지우의 눈을 찢는 듯 아팠다. 그리고 계약일은 정확히 보름 전. 그녀가 수아에게 혼자 계약금을 걸어달라고 부탁했던 바로 그날이었다.

모든 것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수아가 공모전을 핑계 대며 자신에게 계약금을 대신 걸어달라고 한 이유. 그 날짜에 정확히 이 건물이 ‘블루밍 가든’이라는 이름으로 계약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녀가 단 한 번도 ‘따뜻한 쉼표’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

지우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심장이 산산조각 나는 고통과 함께, 뼛속까지 시린 배신감이 전신을 감쌌다. 함께 꿈꾸었던 모든 행복한 순간들이, 순식간에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되어 심장을 꿰뚫는 듯했다.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가장 사랑하고 가장 믿었던 친구가, 자신의 모든 것을 훔쳐 달아났다는 것을.

지우는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간신히 삼켰다. 온몸의 피가 식어버리는 듯한 차가운 분노가 밀려왔다.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내 수아의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끊어지고, 수아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지우야! 웬일이야?”

그 밝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목소리에, 지우의 심장은 더욱 처참하게 바스러졌다.
산산이 부서진 꿈의 조각들이, 지우의 발밑에 흩뿌려지고 있었다.
이젠, 이 조각들을 주워 담아 다른 그림을 그려야 할 시간이었다.
아니, 그려낼 것이었다.
처절하게. 그리고 아름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