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 하이 판타지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어둠은 끈질겼다. 잿빛 먼지가 뭉친 공기 속에 겨우 한 줌의 빛이 창문 틈으로 기어들어와 낡은 콘크리트 바닥을 희미하게 비출 뿐이었다. 카인은 한 손으로 옆구리를 짚고 다른 손으로는 녹슨 철근을 붙잡았다. 찢어진 옷자락 사이로 드러난 상처는 둔탁하게 맥동하며 그의 모든 신경을 갉아먹었다.

“카인 오빠, 괜찮아?”

리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작게 떨리는 그 음성은 이 텅 빈 건물에 고인 침묵을 위태롭게 헤집는 것처럼 들렸다. 카인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 괜찮을 리 없었다. 며칠째 제대로 된 식사는커녕, 잠조차 눈치 보며 쪼개 자야 했다. 게다가 이 빌어먹을 상처까지.

“괜찮아. 좀 쉬었다 가자.”

거짓말이었다. 쉬면 안 된다. 그놈들은 냄새를 맡고 올 것이다. 피 냄새, 땀 냄새, 그리고 가장 중요한, 두려움의 냄새를. 카인은 벽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는 방금 지나온 폐허의 잔상이 끊임없이 스쳤다. 무너진 고층 빌딩, 깨진 유리창, 그리고 그 잔해 속에서 솟아난 기괴한 형상의 식물들. 이 모든 것이 대붕괴 이후의 ‘새로운 세계’가 품고 있는 흉터였다.

“아까 그 소리… 뭐였을까?” 리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의 손에는 녹슨 철판으로 만든 작은 방패가 들려 있었다. 한때 아름다웠을 소녀의 얼굴에는 흙먼지와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

“몰라.” 카인은 짧게 대답했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그 둔탁한 진동과 금속이 긁히는 듯한 소리. 이 도시의 가장 깊은 곳에서 기어 나와 폐허를 배회하는, 변이된 기계 생명체. 사람들은 그것을 ‘철혈괴’라고 불렀다. 놈들은 인간의 온기를 찾아, 희미한 생명의 흔적을 쫓아 움직였다.

벽 너머에서 ‘끼이이익—’ 하는 소리가 낮게 울렸다. 금속이 긁히는 소리가 벽을 타고 진동했다. 카인의 심장이 발작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들켰다. 놈들이 이 건물 안으로 들어선 것이다.

“숨어!” 카인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리나의 손목을 잡아챘다. 그가 가리킨 곳은 무너진 잔해 더미 아래 만들어진 좁은 틈이었다. 먼지와 곰팡이 냄새가 가득한 곳이었지만, 적어도 잠시나마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을 터였다. 리나는 망설임 없이 몸을 욱여넣었다. 그녀의 눈은 불안하게 흔들렸지만, 카인을 믿고 있었다. 그 믿음이 카인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짓눌렀다.

카인도 곧이어 몸을 숨겼다. 상처 입은 옆구리가 날카로운 잔해에 긁히며 통증이 번졌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피 냄새가 더 새어나가면 안 된다. 철혈괴는 피 냄새에 미친 듯이 반응했다. 놈들은 인간의 피를 연료 삼아 더욱 거대해지고 흉포해졌다.

쿵, 쿵. 쿵.
발소리인가? 아니, 놈들의 육중한 몸체가 이동하는 소리였다. 금속 다리가 바닥을 긁고, 거대한 몸체가 벽에 부딪히며 먼지 덩어리를 쏟아냈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이 폐건물이 내는 모든 소음들이, 숨죽인 그들에게는 천둥처럼 크게 들렸다.

리나는 입술을 꾹 다문 채 낡은 방패를 꽉 쥐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공포에 질려 있었지만, 그 작은 어깨가 흔들리는 것을 카인은 보았다. 저 아이를 지켜야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끼이이이잉—!”
갑자기 거대한 굉음과 함께 벽이 무너져 내렸다. 카인이 숨어있던 잔해 더미 바로 옆이었다. 흙먼지가 사방으로 솟구치며 시야를 가렸다. 틈새로 겨우 빛이 들어오던 공간은 이제 짙은 어둠 속에 잠겼다. 놈이다. 철혈괴가 바로 눈앞까지 다가왔다.

먼지 속에서 희미하게 드러난 것은 거대한 거미를 연상시키는 형태였다. 수십 개의 뾰족한 금속 다리가 불규칙하게 뻗어 있었고, 그 중심에는 붉게 빛나는 눈들이 박혀 있었다. 온몸에는 녹과 기름때가 뒤엉켜 있었지만, 그 움직임은 놀라울 정도로 민첩하고 잔혹했다. 놈은 붉은 눈을 번뜩이며 주변을 탐색했다. 피 냄새를 맡은 것이다.

카인은 숨을 멈췄다. 폐가 터질 것 같았다. 리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여기서 끝인가? 이 끝없는 생존의 지옥에서, 결국 놈들의 먹이가 되어 녹슨 고철 덩어리 속에 파묻히는 건가?

철혈괴의 한쪽 다리가 카인이 숨어있는 틈새 쪽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뾰족한 끝이 바닥을 긁으며 소름 끼치는 마찰음을 냈다. 놈은 알고 있었다. 이곳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더 이상 숨을 곳은 없었다. 카인은 순간적인 판단을 내렸다. 리나를 먼저 보내야 한다. 자신은 놈의 시선을 끌 것이다. 그래야 저 아이가 살 수 있다.

“리나, 뛰어.” 카인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리나는 그의 눈을 보았다. 거기에는 절박함과 동시에 단호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 리나의 눈에서 물기가 번졌다. 안 돼. 오빠는?

카인은 고개를 아주 살짝 끄덕였다. 그녀의 손을 잡고 놓아주는 대신, 놈에게 등을 보이며 반대쪽으로 돌진할 준비를 했다.

“끼이이이익—!”
철혈괴의 다리가 틈새 속으로 꽂히는 순간, 카인은 몸을 던졌다. 찢어진 옆구리에서 격렬한 통증이 솟구쳤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의 손에 든 낡은 나이프가 철혈괴의 다리 중 하나를 스쳐 지나갔다. 금속이 긁히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이 미친놈아!” 카인이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가 폐허에 메아리쳤다. “나 여기 있다, 이 빌어먹을 고철 덩어리들아!”

철혈괴의 붉은 눈들이 일제히 카인에게 향했다. 놈의 움직임이 멈칫하더니, 모든 다리가 카인을 향해 꿈틀거렸다. 거대한 몸체가 마치 먹이를 덮치려는 포식자처럼 카인에게로 육중하게 몸을 틀었다.

“리나! 지금이야!” 카인은 온 힘을 다해 외쳤다. 그의 온몸에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이제 도망칠 수 없다. 하지만 리나는? 그녀는?

리나는 눈물을 닦을 새도 없이 잔해 틈새에서 빠져나왔다. 오빠가 자신을 위해 위험을 자처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주저할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카인이 알려준 대로, 폐건물의 가장자리를 따라 맹렬히 달리기 시작했다.

카인은 철혈괴의 공격을 피하며 필사적으로 버텼다. 놈의 날카로운 다리가 그를 덮치려 했지만, 그는 민첩하게 몸을 굴려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한계에 다다른 육신은 이미 수많은 상처와 피로에 짓눌려 있었다.

“젠장, 젠장!” 카인은 욕설을 내뱉었다. 놈의 다리 하나가 그의 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팔뚝 살점이 찢어지는 고통이 밀려왔다. 균형을 잃고 바닥에 넘어졌다. 철혈괴는 기다렸다는 듯 그 위로 그림자를 드리웠다. 붉은 눈들이 그의 심장을 꿰뚫는 듯했다.

그때였다.
건물 가장자리에서 ‘콰앙!’ 하는 거대한 폭발음이 울렸다. 그리고 곧이어, 무너지는 콘크리트 잔해들이 철혈괴의 몸을 강타했다. 놈은 잠시 휘청거렸다.

카인은 고개를 들었다. 먼지 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리나의 모습. 그녀는 손에 쥐고 있던 방패를 버리고, 한때 비상시에만 써야 한다며 아껴뒀던 작은 폭발물을 터뜨린 것이 분명했다. 그 작은 몸으로, 저 거대한 괴물을 향해.

“오빠!” 리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절박했지만, 전보다 훨씬 단단했다. “이쪽이야! 지하 통로!”

지하 통로. 그곳은 카인만이 알고 있는, 이 건물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탈출구였다. 하지만 그곳으로 가려면 이 놈을 뚫고 지나가야 했다.

철혈괴는 폭발로 인한 일시적인 혼란에서 벗어나 다시 카인을 향해 몸을 돌렸다. 하지만 리나의 외침 덕분인지, 아니면 그 폭발 때문인지, 놈의 붉은 눈은 잠시 흔들리는 듯했다.

카인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온몸의 힘을 쥐어짜 일어섰다. 상처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지만, 이제는 고통조차 무감각해지는 것 같았다. 리나가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가 살 길을 열어주었다. 이제는 내가 응답할 차례였다.

“좋아… 리나. 이번엔 내가 간다!”

카인은 낡은 나이프를 굳게 쥐고, 미친 듯이 철혈괴를 향해 돌진했다. 그의 등 뒤에서는 리나의 필사적인 외침이 이어졌다. 이 끝없는 어둠 속에서, 작은 소녀의 용기가 지핀 희미한 불꽃이, 그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었다. 과연 그들은 이 지옥 같은 밤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카인은 답을 알 수 없었다. 그저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다음 생존을 위해서. 또다시 찾아올 어둠과 고난을 이겨내기 위해서.

그의 눈빛은 마치 잿빛 폐허 속에서 마지막 남은 불씨처럼 타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