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 에테리움 학원의 거대한 그림자가 달빛 아래 길게 드리워졌다. 모든 학생이 꿈에 잠겼을 시간, 아린은 숨죽인 채 지하 7층으로 향하는 낡은 비상 통로의 철문을 밀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뼈아프게 울렸지만,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묵직한 마력 보호 룬 문자를 해제하는 데 성공한 직후였다. 이곳은 학원 지도에도, 그 어떤 금지 구역 표지에도 존재하지 않는, 완전히 잊힌 공간이었다.
철문 너머는 차갑고 습한 공기로 가득했다. 시멘트 벽은 이끼와 곰팡이로 얼룩져 있었고, 어둠은 그녀의 손전등 불빛마저 집어삼킬 듯 짙었다. 발소리가 먹먹하게 울렸다. 복잡하게 얽힌 배관과 전선들이 거미줄처럼 천장을 뒤덮고 있었고, 이따금씩 어디선가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적막을 깼다. 아린은 자신의 심장 박동이 귀청을 때리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두근거릴 때마다 손에 쥔 손전등이 미세하게 떨렸다.
한참을 걸었을까, 굽이진 통로 끝에 거대한 철문이 나타났다. 그 문은 지금까지 지나온 낡은 흔적들과는 이질적으로, 매끄러운 강철로 되어 있었다. 중앙에는 복잡한 마법 문양과 함께 알 수 없는 기계 장치가 박혀 있었다. 아린은 조심스럽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문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약한 마력 흐름은 기존 에테리움 학원에서 사용하는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고대 마법과 현대 기술이 기묘하게 융합된 듯한, 불길한 에너지였다.
“이건… 대체 무슨 문이지?”
아린은 중얼거렸다. 그녀의 손가락이 문양 위를 스쳤다. 마치 살아있는 듯, 문양의 선들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고대 룬 문자 해독 장치를 꺼내 문에 가져다 댔다. 장치에서 희미한 녹색 빛이 뿜어져 나오며 문양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띠링’ 하는 작은 알림음과 함께 장치 화면에 난해한 글자들이 떴다. 해독된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코어 제어 시스템. 무단 침입 시 자동 격리 및 소멸.’
아린은 침을 꿀꺽 삼켰다. 소멸이라니. 이곳에 숨겨진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위험한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녀는 이 불길한 마력 흐름을 쫓아 여기까지 왔다. 어쩌면 학원 전체를 뒤덮고 있는 미세한 이상 현상의 근원이 여기 있을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그녀를 이끌었다.
몇 분간의 집중 끝에, 아린은 장치를 통해 문양에 미세한 마력 조정을 가했다. 일종의 우회 코드였다. 그러자 웅장한 기계음과 함께 철문이 서서히 안쪽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며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공기는 살을 에는 듯했다.
문 너머는 거대한 돔 형태의 공간이었다. 손전등 불빛이 닿는 곳마다, 거대한 유리관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마치 거대한 수족관을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수족관에 물고기 대신, 알 수 없는 것들이 담겨 있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비치는 액체는 짙은 녹색을 띠고 있었다.
아린은 홀린 듯 유리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기분 나쁜 맥동음이 심장을 울렸다. 쿵, 쿵, 쿵. 마치 거대한 심장이 뛰는 소리 같았다. 가장 가까운 유리관에 손전등을 비추자, 아린은 숨을 들이켰다.
유리관 안에는 탯줄 같은 수많은 관들에 연결된 채, 거대한 무언가가 떠 있었다. 그것은 완벽하게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피부는 창백하다 못해 투명했고, 눈은 감겨 있었다. 하지만 가장 소름 끼치는 것은, 그것의 온몸에 복잡한 마법 문양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다는 점이었다. 문양들은 녹색 액체 속에서 스스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의 이마 한가운데에는 작은 수정처럼 빛나는, 심장과 같은 물체가 박혀 있었다. 그 물체가 쿵, 쿵, 하고 주기적으로 맥동하며 유리관 전체를 떨게 만들었다.
“이건… 생명체가 아니야.” 아린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만들어낸… 인공 마법체?”
그녀는 다른 유리관들을 둘러봤다. 하나같이 똑같은 모습의 인공 마법체들이 잠들어 있었다. 마치 거대한 생산 라인에서 찍어낸 것처럼, 완벽하게 동일한 형상과 동일한 마법 문양, 동일한 이마의 수정 코어.
갑자기, 등 뒤에서 ‘윙-‘ 하는 기계음과 함께 작은 패널이 벽에서 튀어나왔다. 아린은 화들짝 놀라 몸을 돌렸다. 패널의 화면에는 ‘로그인’ 창이 떠 있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그곳에 접속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원 지하에서 발견된 이 끔찍한 진실의 실마리가 저 안에 있을 터였다.
아린은 능숙하게 해킹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몇 초 만에 ‘환영합니다, 관리자님’이라는 문구와 함께 수많은 파일과 폴더들이 화면에 나타났다. 그녀는 가장 최근 날짜의 ‘프로젝트_에덴_보고서’라는 폴더를 열었다.
내용은 충격 그 자체였다.
[대상 7-알파: 코어 활성화율 98.7%. 마력 폭주 징후 보임. 안정화 필요. 희생자 데이터 재검토.]
[대상 7-베타: 코어 안정화 성공. 마력 추출량 기존 인공 마도 코어 대비 200% 증폭 확인. 실험 성공.]
[대상 7-감마: 코어 이식 과정 중 육체 거부 반응. 융합 실패. 폐기.]
‘희생자 데이터’, ‘폐기’. 이 단어들이 아린의 뇌리를 강하게 때렸다. 설마, 저 인공 마법체를 만드는 데 인간이 희생되었다는 말인가? 아니면 마법적인 존재들이? 학원의 비밀은 단순한 금기 마법 실험을 넘어,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끔찍한 윤리적 범죄였다.
그때였다. 돔 전체를 뒤흔드는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붉은 비상등이 깜빡이기 시작했고, 천장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차가운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무단 침입 감지. 보안 절차 가동. 모든 대상, 활성화 준비.”
아린은 얼어붙었다. ‘활성화 준비’라는 말과 함께, 유리관 속의 인공 마법체들이 일제히 눈을 번쩍 떴다. 그들의 눈은 녹색으로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마의 코어 수정은 격렬하게 맥동하며, 유리관을 가득 채운 녹색 액체를 부글부글 끓어오르게 만들었다.
가장 중앙에 있던, 가장 거대한 유리관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투명한 액체가 새어 나오며 바닥을 적셨다. 그 안의 인공 마법체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고통스러운 듯, 아니면 깨어나는 듯한 섬뜩한 움직임이었다.
아린은 패널을 든 손을 떨어뜨렸다. 온몸의 피가 식는 듯한 공포가 그녀를 덮쳤다. 이곳은 단순한 연구소가 아니었다. 거대한 무언가를 생산하고, 지배하는, 생체 마법 병기 공장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그 끔찍한 금기의 한가운데에서 깨어나는 괴물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유리관의 균열은 더욱 빠르게 번져 나갔다. 쩌저적! 소리와 함께, 거대한 인공 마법체의 손이 유리벽을 뚫고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 손은 창백했지만, 엄청난 힘을 내포하고 있었다. 다음 순간, 유리관이 완전히 박살나며 녹색 액체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액체 속에서 풀려난 존재가 아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텅 빈 녹색 눈동자와 이마에서 섬뜩하게 빛나는 수정 코어가 아린의 영혼을 꿰뚫는 듯했다. 그것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침입자.”
그 목소리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메아리가 겹쳐진 듯, 차갑고 잔인한 기계음이었다. 다른 유리관들도 일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린은 도망쳐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공포에 질려 발이 땅에 박힌 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 순간, 돔 전체를 뒤덮는 섬뜩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것은 인공 마법체의 목에서 터져 나온, 인간의 절규와 기계음이 뒤섞인 듯한 기괴한 소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