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카 액션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제1장: 철혈의 맹세, 심장의 파동

“콰아앙!”

전장을 뒤흔드는 폭음이 조종석의 방음벽을 뚫고 도윤의 고막을 때렸다. 육중한 강철 프레임이 비명을 지르며 덜컥거렸지만, 그의 애기(愛機), 거대 강철병기 ‘천둥매’는 붉게 물든 혜성 꼬리처럼 적진을 가르고 있었다. 망막에 투영되는 전술 디스플레이는 아비규환의 전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온갖 경고등이 비명을 질렀지만, 도윤의 시선은 오직 하나, 저 멀리 섬광처럼 빛나는 적의 기함 ‘쉐도우 코어’에 고정되어 있었다. 인류 연합의 최정예 부대 ‘철혈 기사단’ 소속, 김도윤. 그의 임무는 명확했다. 저 이종족, ‘헤카톤’의 침략을 막고, 그들의 심장을 꿰뚫는 것.

그의 왼팔에 장착된 거대한 ‘파쇄권’이 굉음을 내며 전방의 헤카톤족 전투 기체를 박살 냈다. 강철 파편과 함께 푸른 피가 우주 공간에 흩뿌려졌다. 헤카톤족의 피는 늘 저렇게 차가운 푸른색이었다. 그 색은 도윤에게 언제나 생경한 적의를 상징했다.

“제11구역 돌파 완료! 후방 지원 요청!” 도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통신했다.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이 전투가 벌써 몇 시간째인가. 수많은 동료들이 스러져갔고, 천둥매 역시 곳곳에 스크래치와 탄흔으로 뒤덮여 있었다. 메인 카메라의 시야도 전자기 간섭으로 자글거렸다.

“김도윤 소위! 후방에 적 잔존 병력 다수! 엄호가 어렵습니다!” 지휘관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다. 절박함이 섞인 음성에는 언제나 들리던 기계적인 차분함이 사라져 있었다.

젠장! 도윤은 이를 악물었다. 이때다, 싶었는지 헤카톤의 전투 기체들이 마치 약탈자들처럼 천둥매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푸른색 레이저 포화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회피 기동을 시도했지만, 이미 기체는 한계에 달해 있었다. 반응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크윽…!”

좌측 날개에 직격탄을 맞았다. 기체가 격렬하게 흔들리며 도윤의 몸이 조종석에 처박혔다. 경고등이 미친 듯이 깜빡였다. 시스템 경고: 좌익 추진부 손상. 비상 착륙 권고.

“시끄러워! 아직 끝이 아니야!” 도윤은 기합을 지르며 조종간을 거칠게 꺾었다. 천둥매는 비틀거리면서도 맹렬하게 돌진했다. 그는 이대로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저 쉐도우 코어가 눈앞인데! 놈들의 심장을 꿰뚫어야 했다.

그 순간, 멀리서 빛나는 섬광이 그의 시야를 사로잡았다. 아군인가? 아니, 저것은… 헤카톤족의 특수 정찰기 ‘나이팅게일’이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나이팅게일과는 달랐다. 순백의 기체는 우아하게, 그러나 놀라운 속도로 전장을 가로질렀다. 마치 전장의 혼돈 속에서 피어난 한 떨기 순결한 꽃처럼, 기묘한 아름다움을 발하고 있었다.

그 ‘꽃’은 도윤의 천둥매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공격인가? 그는 본능적으로 ‘파쇄권’을 조준했다. 망가진 왼팔이 기계적인 마찰음을 내며 힘겹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 순간, 나이팅게일 기체에서 예상치 못한 메시지가 전송되어 왔다. 음성도, 암호도 아닌, 마치 심장 박동처럼 미약하고도 강렬한, 순수한 ‘의념’의 파동.

[…멈춰…]

도윤의 머릿속에 직접적으로 울리는 목소리. 그의 뇌가 일시적으로 정지했다. 환청인가? 이종족이 이런 방식으로 통신을 해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조종석에서 몸을 흠칫 떨었다. 그 짧은 순간, 나이팅게일은 도윤의 천둥매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기체는 무장을 해제한 상태였다. 아니, 애초에 나이팅게일은 전투기가 아니었지. 하지만 그 우아한 자태는 충분히 위협적일 수 있었다. 도윤은 방아쇠를 당길 수 없었다. 그 파동, 그 ‘목소리’가 그의 손을 묶어버린 듯했다. 끈적이는 거미줄처럼, 그의 의지를 얽어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이팅게일 기체의 중앙 코어가 천천히 열렸다. 그 안에서, 푸른빛으로 반짝이는 에너지체가 드러났다. 형체는 인간과 비슷했지만, 완전히 달랐다. 매끈하고 투명한 재질, 그 안에 은하수를 가둔 듯 반짝이는 푸른 심장. 그것은 헤카톤족의 ‘아리아’ 코어였다. 헤카톤족의 생명력이자 정신의 핵. 하지만, 저렇게 순수한 에너지 형태로 노출된 것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저토록 영롱하게 빛나는 코어라니.

코어에서 다시 한번 파동이 울렸다. 이번에는 좀 더 선명하게, 그러나 여전히 애틋하게.

[…싸우지 마…]

도윤은 말문이 막혔다. 싸우지 말라고? 지금 전장의 한가운데서, 적국의 심장 앞에서, 적이 자신에게 싸우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 정도로 약한 형태의 코어를 드러내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헤카톤족은 동족에게도 잔인했다. 저 코어를 노리는 건 아군일 수도 있었다.

“너… 넌 대체…” 도윤의 목소리가 떨렸다. 어둠과 분노로 가득했던 전장에서, 그녀의 푸른빛은 너무나도 이질적이고 불안했다.

그때, 나이팅게일의 후방에서 강력한 에너지포가 날아왔다. 그것은 도윤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나이팅게일’ 자신을 향한 공격이었다. 헤카톤족의 아군 함선에서 발사된 포격이었다. 내부 숙청인가? 아니면, 그녀가 감히 자신을 드러낸 것에 대한 처벌인가.

[…!!]

아리아 코어는 급히 코어를 닫고 회피 기동을 시작했지만, 이미 늦었다. 포격은 나이팅게일의 옆구리를 강타했고, 순백의 기체는 비명을 지르며 굉음을 내며 추락하기 시작했다. 푸른 심장 같은 빛이 흔들렸다. 부서진 외장재가 우주 공간으로 흩뿌려졌다.

도윤은 순간적으로 망설였다. 지금이야말로 적을 완전히 제압할 기회였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 아까 그 ‘목소리’가 맴돌았다. […싸우지 마…]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는 조종간을 거칠게 틀었다. 천둥매가 굉음을 내며 방향을 바꾸었다.

“이봐! 김도윤 소위! 뭘 하는 거야!?” 지휘관의 불벼락 같은 목소리가 통신망을 뚫고 들어왔지만, 도윤의 귀에는 닿지 않았다. 그의 눈은 오직 추락하는 나이팅게일을 쫓고 있었다.

그는 나이팅게일을 향해 돌진했다. 망설일 틈도 없었다. 이성보다 본능이 먼저 반응했다.

“젠장! 누가 뒤통수를 치래!”

그는 나이팅게일의 추락 궤적을 예측해 그 아래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좌측 파쇄권 대신, 오른팔에 장착된 ‘방어막 발생기’를 최대로 출력했다. 녹색의 에너지 방어막이 천둥매의 앞을 가로막았고, 뒤이어 추락하는 나이팅게일 기체가 그 방어막에 부딪히며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강철과 강철이 부딪히는 끔찍한 마찰음이 우주에 울려 퍼졌다. 거대한 강철이 긁히는 소리는 마치 두 거수가 서로의 몸을 뜯어내는 듯했다.

천둥매의 기체가 휘청거렸다. 방어막이 깨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도윤은 온 힘을 다해 조종간을 붙잡았다. 팔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젠장… 무거워! 이 망할 외계인!” 그가 욕설을 내뱉었지만, 그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간신히 나이팅게일의 추락 속도를 상쇄시킨 천둥매는, 그대로 나이팅게일을 끌어안듯이 지상으로 내려앉았다. 착륙한 곳은 헤카톤 기함 쉐도우 코어에서 멀지 않은, 폐허가 된 전초기지 위였다. 과거 인류의 정거장이었던 곳이 헤카톤족의 공격으로 완전히 파괴된 채, 잔해만이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천둥매의 방어막은 이미 한계치를 넘어 파괴되었고, 기체는 곳곳에서 증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도윤은 숨을 헐떡이며 조종석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앞에는, 천둥매의 팔에 기댄 채 옴짝달싹 못 하는 순백의 나이팅게일이 있었다. 마치 천둥매에게 기대어 잠든 것처럼 고요했다.

나이팅게일의 중앙 코어가 다시 한번 열렸다. 아까보다 훨씬 흐릿하고 약해진 푸른빛이 깜빡였다. 그리고 그 빛 속에서, 하나의 형체가 희미하게 윤곽을 드러냈다. 그것은 완벽하게 인간의 여성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었다. 투명한 푸른빛으로 빛나는 피부, 길게 늘어진 은빛 머리카락, 그리고 깊이를 알 수 없는 푸른 눈동자.

그녀의 눈동자가 도윤을 응시했다. 마치 수천 년을 살아온 존재처럼, 고요하고도 슬픈 시선이었다.

[…왜…?]

아주 작은 파동이 다시 한번 도윤의 심장을 흔들었다. 왜 자신을 구했냐는 물음이었다.

도윤은 대답할 수 없었다. 그도 몰랐으니까. 자신이 왜 적을 구했는지. 다만, 그 푸른 눈동자를 보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흘렀을 뿐이었다. 온 세상이 조용해진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전장의 모든 소음이 사라지고, 오직 그녀의 존재만이 그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난…” 그는 겨우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잔뜩 쉬어 있었다. “그냥… 널 죽이고 싶지 않았어.”

그의 대답에,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희미한 파장이 공간을 울렸다.

“젠장! 김도윤! 당장 적 기체를 파괴하고 복귀해라! 명령이다!” 지휘관의 통신이 다시금 불벼락처럼 쏟아졌다. 통신 오류로 목소리가 끊기지 않는 것이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도윤은 흠칫했지만, 그녀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녀의 코어는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었다. 곧 사라질 것처럼, 꺼져가는 별처럼.

“넌… 누구야?” 그가 물었다.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투명한 입술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도윤은 그녀가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아리엘.’

그 이름이 그의 머릿속에, 마치 깊은 인장처럼 새겨졌다.

그 순간, 폐허 위로 헤카톤의 전투 기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이팅게일을 파괴하려 달려드는 것처럼 보였다.

“젠장! 이 미친놈들!” 도윤은 이를 악물었다. 아군도 적군도, 모두 그녀를 노리고 있었다. 자신이 그녀를 구한 행동이, 양 진영 모두에게 이단으로 낙인찍히는 순간이었다.

그는 다시 조종간을 움켜쥐었다. 천둥매는 만신창이였지만, 아직 완전히 죽지는 않았다. 마지막 힘을 쥐어짜냈다.

“아리엘!” 그가 소리쳤다. “빨리… 도망쳐!”

푸른 심장은 희미하게 빛나며 그를 응시했다. 마치 이 모든 상황을 초월한 존재처럼, 혹은 이 모든 고통을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녀는 떠나지 않았다. 아니, 떠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헤카톤족의 전투기들이 포위망을 좁혀오자, 아리엘의 나이팅게일 기체는 천둥매의 그림자 아래 더욱 깊이 숨어들었다. 마치 의지하는 것처럼, 그 거대한 강철 덩어리에 몸을 기댔다.

“이봐! 어서 움직여! 둘 다 죽을 셈이야?” 도윤은 절규했다. 하지만 그의 손은 이미 천둥매의 조종간을 다시 붙잡고 있었다. 망가진 기체에서 마지막 힘을 쥐어짜냈다.

그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헤카톤족의 레이저포를 간신히 회피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인간 연합군의 공중 지원기가 접근하고 있었다. 그들은 도윤을 구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적 기체 제거’라는 명령을 받들고 온 것이 분명했다. 그들의 냉정한 시선은 천둥매의 옆에 선 나이팅게일을 향해 있었다.

도윤은 이중의 적 사이에서 고립되었다. 사면초가.

“젠장, 젠장, 젠장!”

그는 격렬하게 조종간을 움직여 천둥매를 일으켜 세웠다. 파괴된 좌측 추진기 대신 우측 추진기만으로 간신히 공중 부양했다. 불균형한 움직임이었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적들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헤카톤족의 전투기 한 대가 천둥매의 후방으로 빠르게 접근했다. 도윤은 이를 악물고 ‘파쇄권’을 휘둘렀다. 굉음과 함께 적 기체는 산산조각 났다. 그러나 그 반동으로 천둥매는 더 큰 피해를 입었다. 엔진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시스템은 완전히 마비 직전이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여전히 천둥매의 그림자 아래에서 푸른빛을 깜빡이는 아리엘의 나이팅게일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그를 떠나지 않았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속에는 공포도, 분노도 없었다. 오직… 깊은 슬픔만이 가득한 듯했다.

“왜…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도윤은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는 절규에 가까웠다. “날 죽이려는 거라면 어서 죽여! 아니면 도망치라고!”

그 순간, 아리엘의 코어에서 미약한 진동이 울렸다.

[…도망칠 곳은… 없어…]

그 말은 도윤의 가슴을 찢는 것 같았다.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도망칠 곳은 없었다. 이 전쟁은, 이 증오는 끝이 없었다. 그들이 발붙일 곳은, 이 광활한 우주 어디에도 없었다.

“그럼… 같이 죽자고?” 도윤은 허탈하게 웃었다. 입술 사이로 피 맛이 느껴졌다.

그때, 연합군의 지원기가 발사한 미사일이 아리엘의 나이팅게일을 향해 날아왔다. 명백히 그녀를 노린 공격이었다.

“안 돼!” 도윤은 온몸의 힘을 쥐어짜 천둥매를 돌려 미사일의 경로를 막아섰다.

콰앙!

천둥매의 방패가 미사일의 직격을 받았다. 폭발의 충격파가 조종석을 강타했고, 도윤은 의식을 잃을 뻔했다. 온몸의 뼈가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이제 정말 끝이었다. 기체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모든 시스템이 침묵했다.

그러나 미사일은 아리엘에게 닿지 않았다. 천둥매가, 그가, 그녀를 막아선 것이다.

천둥매는 고철 더미가 되어 추락하기 시작했다. 조종석의 모든 불이 꺼졌다. 통신은 끊어졌다.

의식이 혼미해지는 와중에도, 도윤은 마지막으로 그녀의 푸른 눈동자를 보았다. 그 속에는 여전히 슬픔이 있었지만, 아주 미세하게, 어떤 ‘결의’ 같은 것이 스치는 듯했다.

[…나의… 수호자…]

그녀의 목소리가, 마치 처음 만났을 때처럼, 그의 뇌리에 직접적으로 울렸다. 처음보다 훨씬 강력하고 선명하게.

그리고 모든 것이 어둠으로 변했다.

***

차가운 금속 바닥에 몸이 곤두박질치는 충격에 도윤은 겨우 정신을 차렸다. 조종석이 뒤집어진 채였다.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온몸이 산산조각 난 것처럼 아팠다. 의식을 유지하는 것조차 기적이었다. 조종석 안전벨트가 풀린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는 겨우 눈을 떴다. 흐릿한 시야 속에서, 폐허가 된 전초기지의 잔해가 보였다. 그리고 그 잔해 위로, 순백의 나이팅게일이 떠 있었다. 파괴된 천둥매의 잔해 위에서, 아리엘은 마치 아무런 손상도 입지 않은 것처럼 우아하게 서 있었다.

그녀의 푸른 코어는 이제 전례 없는 밝기로 빛나고 있었다. 그 빛은 점차 강렬해지더니, 주변의 모든 헤카톤족 전투기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푸른 빛의 파장이 전장을 뒤덮었고, 전투기들의 시스템이 순간적으로 멈추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빛 속에서, 그녀의 육체가 더욱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순수한 에너지로 이루어진, 인간 형태의 여신 같은 존재. 그녀의 손짓 한 번에, 멀리 있던 헤카톤족 함선들이 움찔거렸다.

헤카톤족의 전투기들이 뒤늦게 후퇴하기 시작했다. 연합군의 지원기들조차 망설이는 듯했다. 그녀의 존재감이 모든 것을 압도했다.

아리엘은 천둥매의 잔해 위에 서서, 도윤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그 어떤 헤카톤족에게서도 본 적 없는, 강력한 의지가 뿜어져 나왔다. 압도적이면서도, 따스한.

그녀의 입술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도윤의 뇌리에 직접적으로 울리는 그 ‘목소리’가, 명확한 음성으로 변해 전장에 울려 퍼졌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새벽별의 노래처럼 청아했지만, 그 안에는 강철 같은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

“김도윤.”

그의 이름이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인간의 언어. 완벽하고 유려한 발음이었다.

“나는… 널 보호하겠어.”

그 말과 함께, 아리엘의 전신에서 거대한 푸른빛 에너지가 폭발했다. 그 빛은 폐허가 된 전초기지를 감싸더니, 거대한 구체를 형성했다. 마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는 듯이, 그 빛은 모든 전쟁의 상처를 지우는 듯했다.

도윤은 그녀의 압도적인 힘에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적이었다. 인류의 적. 그런데 왜… 자신을?

그의 의식이 다시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어둠 속으로 가라앉으면서, 마지막으로 그녀의 눈빛을 보았다. 거기에는 이제 슬픔 대신, 확고한 ‘사랑’과 ‘맹세’가 서려 있었다.

이것은, 종족을 뛰어넘는 금지된 서약의 시작이었다. 우주를 뒤흔들, 파멸과 구원의 서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