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 판타지 (현대 판타지)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챕터 1: 잿빛 도시의 그림자

숨이 턱 막혔다. 이현은 낡은 방독면 안으로 들이쉬는 잿빛 공기의 탁한 냄새에 미간을 찌푸렸다. 산소 필터가 한계에 다다른 모양이었다. 삐빅, 삐빅. 방독면 측면에 달린 작은 센서가 경고음을 토해냈지만, 지금 당장 교체할 여유는 없었다. 언제나 그랬듯, 모든 것은 부족했다.

그가 발을 딛고 선 곳은 한때 번화했던 상점가의 잔해였다. 유리창은 모두 깨져나가고 앙상한 철근만이 하늘을 향해 비명을 지르는 듯 솟아 있었다. 건물 내부에는 곰팡이와 뒤틀린 금속의 악취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발밑에는 이름 모를 잔해들이 밟을 때마다 으스러지는 소리를 냈다.

이현은 낡은 권총 손잡이처럼 생긴 휴대용 탐지기를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오래된 전자기기나 금속 파편을 찾아내는 단순한 도구였지만, 이런 폐허에서는 생존의 필수품이나 다름없었다. 파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탐지기의 액정에 희미한 초록색 불빛이 깜빡였다. ‘좌측 12미터, 금속 반응.’

그는 망설이지 않고 쓰러진 진열장을 넘어섰다. 먼지투성이의 바닥에는 해골처럼 앙상한 마네킹들이 기괴하게 쓰러져 있었고, 그 사이로 이름 모를 덩굴 식물들이 끈질기게 뻗어 있었다. 이 식물들은 평범한 덩굴이 아니었다. 밤이 되면 희미하게 빛을 발하고, 때로는 움직이는 그림자처럼 주변 환경을 왜곡시키는 기이한 존재였다. 대재앙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젠장, 또 이거잖아.”

탐지기가 가리킨 곳에는 녹슨 철판 조각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이런 식이었다. 한때 유용했던 자원은 이제 대부분 고철 덩어리가 되어 버렸다. 이현은 작게 욕설을 내뱉고 다시 탐지기를 움직였다. 그의 등 뒤로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휘익!

반사적으로 몸을 숙였다. 그가 서 있던 바로 위 벽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고개를 들자, 천장의 파이프에 거꾸로 매달린 거대한 박쥐 형상의 그림자가 보였다. 날개는 찢겨지고 뼈가 뒤틀려 있었지만, 그 눈은 붉은 불꽃처럼 이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둠박쥐.’ 이 지역에서 흔히 보이는 변이체였다. 한때는 작은 박쥐였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어린아이만 한 크기에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을 가진 포악한 존재였다. 한 마리쯤이야 상대할 만했지만, 녀석들은 보통 무리를 지어 다녔다.

이현은 숨을 죽이고 움직임을 멈췄다. 어둠박쥐는 기분 나쁜 쉭쉭거리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파이프를 따라 이현에게 다가왔다. 어둠 속에서 붉은 눈이 더욱 선명하게 빛났다. 이현은 허리에 찬 낡은 낫 형태의 칼자루에 손을 댔다. 긴급할 때 쓰는 비장의 무기였다.

갑자기, 파지직! 탐지기가 강한 신호를 보냈다. 바로 어둠박쥐의 옆, 무너진 벽 뒤쪽이었다. 어둠박쥐가 잠시 탐지기의 소리에 신경을 뺏긴 틈을 타, 이현은 재빨리 몸을 날려 벽 뒤로 숨었다.

벽 뒤는 생각보다 깊었다. 무너진 천장과 벽 사이의 틈새로 겨우 몸을 욱여넣자, 좁고 어두운 공간이 나타났다. 벽에 바싹 붙어 숨을 고르는데, 탐지기가 미친 듯이 울려댔다. 이곳이었다. 아주 강한 금속 반응.

흙먼지를 걷어내자, 희미한 빛을 발하는 금속 상자가 드러났다. 녹슬지 않은 단단한 합금으로 만들어진 상자였다. 이현은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이런 곳에서 이렇게 온전한 물건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는 상자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잠금장치는 없었다. 오래된 방식의 걸쇠를 풀자, 상자 뚜껑이 ‘딸깍’ 소리를 내며 열렸다.

내부에는 작은 단말기 하나와 함께, 한 움큼의 캡슐이 들어 있었다. 캡슐 안에는 푸른색 액체가 가득 차 있었고, 단말기에는 알 수 없는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현은 캡슐 하나를 집어 들었다. 차갑고 단단한 감촉. 그리고 묘하게 익숙한, 하지만 기억나지 않는 문양.

그는 캡슐을 들고 망설였다. 이것이 무엇일까? 독약일 수도, 아니면 또 다른 함정일 수도 있었다. 대재앙 이후, 인류는 미지의 것들에 너무 많이 데였다. 하지만 동시에, 미지의 것이야말로 생존의 열쇠가 될 수도 있었다.

그때, 벽 바깥에서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끼이이익! 어둠박쥐의 비명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들려오는, 녀석들과는 다른, 묵직하고 섬뜩한 발소리.

‘뭐지?’ 이현은 상자를 품에 안고 재빨리 틈새 안쪽으로 더 깊이 몸을 숨겼다.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묵직한 발소리 사이로, 뭔가 질척이는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방독면 안에서도 역겨운 비린내가 느껴졌다. 어둠박쥐들은 감히 다가오지 못하고 바깥에서 비명만 지르고 있었다. 녀석들이 이렇게 겁을 먹는 존재는 많지 않았다.

발소리가 이현이 숨은 벽 바로 앞을 지나쳐갔다. 틈새 사이로 보이는 것은, 거대한 덩치였다. 사람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피부는 썩은 살처럼 검붉게 변색되어 있었고, 군데군데 뼈가 튀어나와 있었다. 한 손에는 부서진 가로등 기둥을 휘두르고 있었다.

‘포식자.’ 이현은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도시의 하수구와 지하 깊은 곳에서 서식하며,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를 먹이로 삼는 끔찍한 변이체. 어둠박쥐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위험한 존재였다. 녀석이 이 근처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었다.

포식자는 벽 너머로 사라졌다. 묵직한 발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후에도, 이현은 한참 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 캡슐이, 과연 저런 것들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수 있을까?

그는 주먹 쥔 손에 캡슐을 꽉 쥐었다. 잿빛 도시의 끝없는 그림자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푸른 캡슐은 마치 꺼져가는 등불 같았다. 이것이 희망일지, 아니면 더 깊은 절망의 시작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현은 이것을 놓지 않을 것이다.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폐허 바깥, 어둠이 서서히 짙어지고 있었다. 희미한 달빛조차 없는 밤은, 포식자들의 시간이었다. 이현은 상자를 단단히 품에 안고, 숨어 있던 틈새 밖으로 조용히 기어 나왔다. 살아남기 위한 그의 밤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