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공검 무영과 흑풍검 현풍. 강호는 우리 둘을 두고 늘 그렇게 불렀다.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처럼,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며 무림의 어둠을 헤치던 존재들. 우리는 서로의 눈빛만으로도 상대의 다음 수를 읽었고, 등에 칼을 맡길 수 있는 유일한 벗이었다. 십 년, 핏빛 강호를 함께 걸으며 수많은 역경을 넘었다. 내 검 끝에 스친 생명 수만큼 현풍의 품에 안겨 뜨거운 눈물을 흘린 밤도 많았다. 우리는 전설이 되고자 했고, 강호의 질서를 바로잡고자 맹세했다.
그날도 그랬다. 암흑 세력의 거점, 비탈진 절벽 끝에 매달린 음습한 동굴 속에서 우리는 마지막 대결을 펼쳤다. 천 년 묵은 사악한 기운이 응축된 ‘마혈석’을 파괴하기 위함이었다. 격렬한 사투 끝에 마침내 마혈석은 산산이 부서졌고, 뿜어져 나오던 검은 기운은 우리 두 사람의 합공에 휩쓸려 사라졌다. 온몸의 힘이 쭉 빠져나갔지만, 현풍과 나란히 서서 동굴 밖으로 비치는 한 줄기 햇살을 바라볼 때의 희열이란. 나는 활짝 웃었다. 현풍도 환하게 웃었다.
“무영아, 해냈어! 마침내 해냈다고!”
현풍의 목소리는 기쁨으로 들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섬뜩한 냉기가 느껴졌다. 번개처럼 몸을 돌리려는 찰나, 차가운 쇠붙이가 내 허리를 꿰뚫는 고통과 함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크헉… 현풍…?”
목구멍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나의 눈에 비친 것은, 배신감과 경악으로 일그러진 내 얼굴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현풍의 시커먼 눈동자였다. 그 눈빛은 내가 알던 현풍의 것이 아니었다. 어둠, 탐욕, 그리고 싸늘한 잔혹함.
“미안하다, 무영아. 하지만… 너는 너무나 눈부셨어. 너의 그림자로 사는 것은 이제 지겨워. 마혈석의 힘은 너처럼 강호의 어리석은 정의를 좇는 자가 아니라, 강호를 지배할 자의 것이 되어야 마땅하다.”
현풍은 비정하게 웃었다. 그의 손에 들린 검은, 내가 현풍에게 선물했던 ‘흑풍검’이었다. 그 검이 내 허리를 꿰뚫고 있었다. 검날이 비틀리며 나의 기해(氣海)를 산산조각 냈다. 몸 안의 모든 기운이 역류하며 격렬한 고통이 온몸을 집어삼켰다. 절벽 끝자락, 나의 몸은 기우뚱 흔들렸다.
“현풍… 너는…!”
마지막 외침은 핏덩이가 되어 터져 나왔다. 현풍은 나의 어깨를 발로 걷어찼다. 몸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아래는 끝도 보이지 않는 심연이었다.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내 세상이 통째로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 나는 살아남았다. 부러진 팔다리, 꿰뚫린 허리. 무엇보다 산산이 부서진 기해는 내가 더 이상 무인이 아님을 말해 주었다. 절벽 아래, 어느 기이한 동굴 속이었다. 마혈석이 부서지며 뿜어냈던 잔여 사기(邪氣)가 웅크려 있던 곳이었다. 그 기운이 내 몸을 파고들었고, 나는 죽음의 문턱에서 기형적인 방식으로 살아남았다.
몸은 불구가 되었지만, 나의 의지는 더욱 단단해졌다. 나는 살아야 했다. 오직 복수만을 위해.
수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동굴 속에서 나는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온몸에 흐르는 사악한 기운을 억누르며, 부서진 기해 대신 다른 곳에 새로운 기운의 흐름을 만들어냈다. 고통은 나의 스승이었고, 증오는 나의 동력이었다. 낮에는 기이한 약초를 캐어 몸을 연단했고, 밤에는 동굴 벽에 새겨진 정체불명의 문양들을 익혔다. 그것은 마혈석이 수천 년간 흡수했던 영물들의 기운이 새겨진 흔적이었다. 나는 그 기운을 역이용하여 새로운 무공을 창조했다. 겉보기엔 사악하고 기괴하지만, 그 파괴력만큼은 이전의 천공검법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내 이름은 이제 무영이 아니었다. 그림자도, 빛도 아닌, 오직 복수를 위해 존재하는 망령이었다.
세월은 강산을 바꾸듯 강호를 뒤흔들었다. 내가 사라진 후, 현풍은 강호의 새로운 지배자가 되어 있었다. 그는 내가 파괴했던 마혈석의 조각을 손에 넣었고, 그 잔여 사기를 흡수하여 절대적인 힘을 얻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흑풍신룡 현풍’. 그는 강호의 모든 문파를 무릎 꿇리고, 자신의 아래에 두었다. 나의 자리를, 아니, 나의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
***
황량한 바람이 휘몰아치는 강호의 변두리, 폐허가 된 절에 홀로 앉아 현풍의 소식을 듣던 나는 피식 웃었다. 드디어 때가 된 것이다. 나는 망령처럼 강호로 다시 스며들었다. 나의 모습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수년의 고통과 연단은 나를 전혀 다른 존재로 바꿔놓았으니까.
흑풍신룡 현풍이 주최하는 ‘강호만파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강호의 모든 무림인을 자신의 발아래 모아놓고, 자신의 위용을 과시하려는 자리. 그곳이 바로 나의 무대였다.
대회는 현풍의 거대한 궁전에서 열렸다. 웅장하고 화려한 연회장에는 수많은 무림인들이 모여 현풍의 권위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나는 그들 속에 섞여 현풍을 바라보았다. 그는 상석에 앉아, 모든 이들의 찬사를 즐기는 오만한 황제 같았다. 그 얼굴에 어린 미소는 내가 알던 순수함이 아닌, 권력에 취한 추악한 그림자였다.
나는 조용히 움직여 연회장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모든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그들 중 누구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당연했다. 나조차도 거울 속 내 모습을 알아보지 못할 때가 있으니.
“누구냐, 감히 연회장의 분위기를 흐리는 자는?”
현풍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눈은 나를 향해 불꽃을 뿜었다. 그의 기세는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나의 심장은 고요했다.
“오랜만이군, 현풍.”
나의 목소리는 낮고 음침했다. 귓가에 맴도는 메아리처럼, 공기를 흔들었다.
현풍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뭔가 낯익은 듯, 그러나 전혀 다른 분위기에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네놈이 누구기에 감히 나의 이름을 부르느냐!”
현풍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수많은 무림인들이 칼을 뽑아 나를 겨냥했다.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들의 검 끝에서 나는 십 년 전의 나를 보았다. 정의를 좇던 어리석은 나를.
“기억 못 하는 것이 당연하지. 나는 너의 과거이자, 너의 미래를 끝낼 망령이니까.”
나는 천천히 가면을 벗었다. 고통과 세월이 빚어낸 흉터투성이의 얼굴이 드러났다. 한때는 미남이라 칭송받던 얼굴은 뼈와 가죽만 남은 채 뒤틀려 있었다. 그러나 그 눈빛만은 십 년 전의 그 눈빛이었다. 복수심으로 불타는, 지옥에서 돌아온 자의 눈빛.
현풍의 눈이 공포로 크게 뜨였다. 그는 뒷걸음질 쳤다.
“무… 무영?! 설마… 네가… 살아있었단 말이냐?!”
그의 목소리는 완전히 흔들렸다. 그제야 주변의 무림인들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강호에 사라진 지 오래인 천공검 무영. 그 이름은 전설처럼 남아 있었다.
“살아남았다, 현풍. 너의 그 비열한 칼날에도 불구하고.”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나의 발걸음마다 바닥의 돌들이 미세하게 갈라졌다. 나에게 흐르는 기운은 더 이상 정통 무공의 것이 아니었다. 사악하고, 음습하며, 강력했다.
“말도 안 돼! 분명히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을 텐데…!”
현풍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의 얼굴은 이제 오만함 대신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절벽이 나를 죽이지 못했듯이, 너도 나를 죽이지 못할 것이다. 현풍. 이제 너는 나의 손에 죽을 것이다.”
나는 손을 뻗었다. 손끝에서 검은 기운이 뱀처럼 꿈틀거리며 뿜어져 나왔다. 나의 새로운 무공, ‘흑암신류(黑闇神流)’의 기운이었다.
현풍은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검을 뽑았다. 흑풍검. 내가 선물했던 그 검. 그의 눈에서 살기가 번뜩였다. 그는 더 이상 내가 알던 친구가 아니었다. 탐욕스러운 괴물일 뿐.
“착각하지 마라, 무영! 이제 너는 그저 한물간 폐인에 불과해! 나의 힘은 네 상상을 초월한다!”
현풍은 자신만만하게 소리치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흑풍검에서 검은 바람이 휘몰아치며 날카로운 검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는 마혈석의 잔여 사기를 흡수하여 더욱 강해졌다고 했다.
나는 그의 검기를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걸음 내디뎌 현풍의 검을 정면으로 받아쳤다. 나의 맨손에서 뿜어져 나온 흑암신류의 기운이 현풍의 검기를 산산조각 냈다. 파괴적인 기운이 현풍의 몸을 강타했다.
“크악!”
현풍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동그라졌다. 바닥에 몸을 부딪힌 순간, 그의 오만함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의 눈에는 순수한 경악과 두려움만이 남아 있었다.
“말도 안 돼… 너의 기운은… 어째서 이렇게…!”
그는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섰다. 흑풍검을 휘두르며 다시 나에게 덤벼들었다. 그의 움직임은 빨랐지만, 나의 눈에는 너무나도 느리게 보였다. 나는 그림자처럼 그의 공격을 스쳐 지나갔다. 내 손이 현풍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이 고통이 느껴지느냐, 현풍? 십 년 전, 네 칼날이 나의 기해를 부수고 나를 절벽으로 떨어뜨릴 때의 고통이.”
나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현풍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는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나의 힘은 그를 압도했다.
“너의 그림자로 사는 것은 지겨웠다고 했지? 그렇다면 이제 영원히 나의 그림자가 되어라.”
나는 현풍의 목덜미를 쥔 채, 그의 몸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온몸에 흐르는 흑암신류의 기운을 그의 몸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의 몸 안에서 격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으아아아악!”
현풍은 절규했다. 그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며, 마혈석의 잔여 사기가 강제로 뽑혀 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는 자신의 힘의 근원이 뿌리 뽑히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무… 무영아… 잘못했다… 살려다오… 제발…”
현풍의 목소리는 비굴한 애원으로 변했다. 십 년 전, 나에게 칼을 박아 넣던 그 비정한 얼굴은 온데간데없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한때는 나의 가장 친한 벗이었던 이의 비참한 최후. 나의 심장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살려달라고? 너는 나를 살려주지 않았다. 현풍.”
나는 현풍의 몸을 바닥에 던졌다. 그의 몸은 이미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모든 기운이 뽑혀나가고, 그는 그저 한 줌의 폐인이 되어버렸다. 그의 눈은 공허하게 천장을 응시했다. 그는 더 이상 흑풍신룡이 아니었다. 그저 패배한 비렁뱅이에 불과했다.
주변의 무림인들은 숨조차 쉬지 못하고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 중 누구도 감히 나에게 덤빌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나는 현풍의 앞에 섰다. 그리고 천천히 나의 흑암신류를 발동했다. 그의 몸에서 마지막 남은 생명력까지 흡수하려는 듯, 검은 기운이 현풍의 몸을 감쌌다.
“이것이… 너의 최후다, 현풍. 너의 어리석은 탐욕이 불러온 파멸.”
나는 현풍의 마지막 숨통을 끊었다. 그의 눈은 영원히 감기지 않은 채, 공허한 증오를 품고 있었다. 마치 십 년 전, 내가 그를 보았던 그 눈빛처럼.
나의 복수는 끝났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홀가분하지 않았다. 강호에 다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나는 다시 돌아온 무영이 아니었다. 나는 오직 복수를 위해 존재했던 망령.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저 텅 빈 연회장 한가운데서, 내 손에 묻은 피를 말없이 응시할 뿐이었다. 강호의 밤은, 길고도 어두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