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게임 (VRMMO)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아스테라 변경 백작령, 그 중에서도 오로지 부와 권력의 정점만이 허락된 이들만을 위한 호화로운 거주지, ‘일루미나 저택’은 지금 섬뜩한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황금빛 샹들리에가 드리운 응접실의 대리석 바닥은 평소라면 하녀들의 분주한 발걸음으로 바빴을 테지만, 지금은 경비병들의 묵직한 가죽 장화 소리만이 간간이 울릴 뿐이었다.

“말도 안 돼…! 에드윈 경이… 저렇게 가셨을 리가 없어!”

저택의 집사인 클로드가 핏기 없는 얼굴로 덜덜 떨리는 손을 연신 비볐다. 그의 회색빛 눈동자는 방금 전 서재에서 본 광경을 잊으려는 듯 허공을 헤맸다. 강철처럼 단단한 그의 표정이 이렇게까지 무너진 것은 에드윈 경을 모신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진정하십시오, 클로드. 흥분한다고 상황이 나아지는 건 아닙니다.”

경비대장 가레스가 묵직한 목소리로 그를 다독였지만, 그의 표정 역시 굳어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거대한 체구에 갑옷을 겹겹이 두른 가레스마저도 이번 사건 앞에서는 무력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현장은 완벽한 밀실이었다.

에드윈 경의 서재는 저택 2층의 가장 안쪽에 위치해 있었다. 두꺼운 참나무 문은 안쪽에서 걸쇠로 굳게 잠겨 있었고, 창문들은 모두 밖에서 침입이 불가능하도록 단단한 철창으로 막혀 있었다. 게다가 창문의 잠금장치마저도 안쪽에서 단단히 걸려 있었다. 문을 부수고 들어간 경비병들이 발견한 것은, 책상에 엎드린 채 등 뒤에 날카로운 단검이 박혀 싸늘하게 식어버린 에드윈 경의 시신뿐이었다.

누구도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는 공간. 그곳에서 살인이 벌어진 것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대체! 유령의 짓이라도 된단 말입니까?!” 클로드가 절규했다.

그때였다. 저택의 현관문이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열리고, 등 뒤에서 따스한 오후의 햇살을 짊어진 한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그의 은발은 햇빛을 받아 반짝였고, 차분하게 가라앉은 푸른 눈동자는 주변의 모든 혼란을 비웃기라도 하듯 차분했다. 그는 명문가 도련님 같은 단정한 차림새였지만, 그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기류는 분명 평범한 존재가 아님을 알리고 있었다.

“흐음, 꽤나 고약한 냄새가 나는군요.”

나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살짝 찌푸린 미간, 얇은 입술 끝에 희미하게 드리운 비웃음. 그를 본 클로드와 가레스는 동시에 긴장했다. 아스테라 전역에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남자. ‘고민 해결사’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정작 본인은 그 별명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는 남자.

카이젠.

“당신이 이 사건을 맡아주실 분이군요. 예상보다… 젊으시네요.” 가레스가 얼떨떨하게 말했다. 카이젠은 그저 픽, 하고 짧게 웃었을 뿐이었다.

“젊다고 해서 눈썰미까지 풋내기일 거라고 생각하진 마시죠. 자, 밀실이라던 그곳은 어디입니까?”

카이젠은 대답을 들을 새도 없이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뒤따라 올라온 가레스가 서재 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자, 카이젠은 문을 잠시 응시했다. 거친 나무 표면과 박살 난 잠금장치의 잔해가 보였다.

“이미 부수고 들어갔으니 밀실이 아니잖습니까?” 카이젠이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그, 그게… 발견 당시에는 분명 안에서 잠겨 있었습니다! 경비병들이 직접 확인했고, 안에서 인기척이 없어 부수고 들어간 겁니다!” 가레스가 당황하여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 문은 다시 잠겨야 하는군요.”

카이젠은 바닥에 뒹구는 거대한 쇠락을 주워 들고, 부서진 문틈에 끼워 넣었다. 그리곤 손을 뻗어 문을 닫았다. 다시 한번, 서재 문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굳게 닫혔다. 물론, 자물쇠는 부서진 채였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카이젠은 문을 부드럽게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퀴퀴한 오래된 책 냄새와 피 냄새, 그리고 무언가 묘한 향이 뒤섞여 코를 찔렀다. 서재는 중후한 가구들로 가득 차 있었고, 벽면에는 빼곡하게 책이 꽂힌 거대한 책장들이 자리했다. 그 한가운데, 에드윈 경이 쓰러져 있었다.

“시신은…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가레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카이젠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곤, 시신 주변을 천천히 훑었다. 그의 시선은 에드윈 경의 시신을 지나, 바닥에 떨어진 펜, 엎어진 잉크병, 그리고 피가 묻은 단검에 머물렀다. 그러다 문득, 그의 시선이 허공에 멈췄다.

“이 방, 원래 이런 향이 났습니까?”

카이젠의 질문에 클로드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경께서는 향수에 민감하셔서 서재에서는 향을 일절 피우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군요.” 카이젠은 천장을 한번 올려다보더니, 창가로 다가갔다. 굳게 닫힌 창문과 단단한 철창. 그는 손가락으로 창문틀을 쓸어보았다. 먼지 한 톨 없는 깨끗함. 그리고 잠금장치에 미세하게 남은 긁힌 자국.

“이 긁힌 자국, 누군가 밖에서 억지로 열려고 한 흔적은 아니군요. 오히려 안에서… 급하게 잠그려다 생긴 것 같습니다.” 카이젠이 중얼거렸다.

가레스는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창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밖에서는 철창이 막고 있어 애초에 드나들 수 없죠.”

카이젠은 대답 없이 다시 문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문틈과 문지방, 그리고 문이 닫히는 경첩 부근을 아주 면밀하게 살폈다. 그의 시선은 마치 현미경처럼 작은 틈새 하나 놓치지 않았다.

“흠… 흠… 여기로군.”

카이젠의 손가락이 문지방의 아주 미세한 틈새를 가리켰다. 육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는, 나무의 결처럼 보이는 아주 얇은 실금이었다.

“무엇 말입니까? 저건 원래 있던 나무 흠집 아닙니까?” 가레스가 고개를 숙여보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나무 흠집치고는 너무도 인위적입니다. 마치 얇고 가는 무언가가 이 틈새를 오가며 마찰을 일으킨 것처럼… 자, 보시죠.”

카이젠은 주머니에서 작은 렌즈를 꺼내 틈새에 비춰주었다. 그제야 가레스와 클로드의 눈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들어왔다. 실금처럼 보이던 틈새의 양쪽 가장자리가 아주 미세하게 마모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아주 희미한, 거의 투명에 가까운 잔류물이 묻어 있었다.

“이건… 실크입니다. 특수한 처리 과정을 거친 실크죠. 아마도 최고급 낚싯줄이나, 아니면 게임 내에서만 구할 수 있는 특수한 거미줄로 만들어진 물건일 겁니다.” 카이젠이 차분하게 설명했다.

“낚싯줄이요? 그게 왜 여기에…?” 클로드가 경악했다.

“간단합니다. 범인은 이 방에서 살인을 저질렀고, 에드윈 경은 이미 죽기 직전 문을 걸쇠로 잠갔을 겁니다. 아마도 위험을 감지했겠지요. 범인도 예상치 못한 행동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범인은 이 방 안에 갇히게 된 겁니다.”

가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떻게 범인이 밖으로…!”

“범인은 이 틈새를 이용했습니다.” 카이젠은 렌즈를 치우고 일어섰다. “살해 후, 범인은 문 안쪽의 걸쇠에 이 실크 줄을 매달았습니다. 그리고 이 미세한 틈새를 통해 줄을 밖으로 빼냈겠죠. 그 후에 밖에서 줄을 잡아당겨 걸쇠를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줄을 회수할 수 없지 않습니까? 문이 잠긴 상태로 줄을 다시 안으로 밀어 넣을 수도 없을 테고… 그럼 범행의 증거가 남게 될 텐데요?” 가레스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카이젠은 피식 웃었다. “그게 바로 ‘천재’와 ‘범인’의 차이입니다.”

그의 눈동자가 서재 한쪽 구석에 놓인 거대한 괘종시계를 향했다. 낡고 거대한 시계는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저 시계를 보시죠. 시계가 저 위치에 있다는 것, 그리고 저 시계추의 미묘한 흔들림은 범인의 완벽한 퇴장을 가능하게 했을 겁니다.”

카이젠은 말을 마쳤다. 그 말에 가레스와 클로드의 얼굴에는 경악과 혼란이 뒤섞인 표정이 떠올랐다. 그들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밀실 살인’의 트릭이 지금, 그의 입에서 밝혀지고 있었다.

“이 방은, 처음부터 밀실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밀실처럼 보이도록 교묘하게 연출된 연극 무대였을 뿐입니다.”

카이젠의 푸른 눈동자가 섬뜩하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