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 호러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첫 번째 장. 붉은 노을 아래 그림자**

지훈은 삭막한 콘크리트 잔해 속에서 겨우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건물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낡은 방수포와 주워온 철판으로 대충 가려둔 창문 틈새로 붉고 탁한 노을이 스며들어, 먼지 앉은 실내를 기분 나쁜 색으로 물들였다. 희미하게 깜빡이는 손전등 불빛 아래, 민서가 얕고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작은 몸은 담요 몇 장에 둘둘 말려 있었지만, 미열은 여전한 듯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괜찮아, 민서야. 오빠가 약 구해올게.”

지훈은 민서의 이마를 짚었다. 뜨거웠다. 며칠 전부터 시작된 기침은 이제 가래 끓는 소리로 변해 아이의 작은 폐를 괴롭혔다. 마지막으로 남은 항생제는 이틀 전 바닥을 드러냈고, 이제 남은 건 상처 소독용 알코올과 통증을 줄여줄 몇 알의 해열진통제가 전부였다. 식량은 사흘 치가 채 남지 않았다. 물도 간당간당했다.

민서는 눈을 감은 채 미동도 없었다. 아마 잠이 들었거나, 아니면 기력이 너무 쇠해 눈을 뜰 힘조차 없는 것일지도 몰랐다. 지훈은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 차갑고 가느다란 손이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그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나가야 했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저 바깥으로.

지훈은 삐걱거리는 철제 사물함을 열었다. 속은 텅 비어 있었다. 남은 것이라곤 닳고 닳은 칼날이 아슬아슬하게 박혀 있는 나이프, 배터리가 거의 방전된 손전등, 그리고 낡은 등산용 배낭뿐이었다. 배낭 속에는 한 줌의 말린 육포와 물통이 전부였다. 그는 육포를 한 조각 꺼내 입에 넣고 천천히 씹었다. 짠맛과 비린 맛이 혀에 감돌았다.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내는 기분이었다.

낡은 코트 주머니에서 손때 묻은 작은 나무 조각을 꺼냈다. 투박하게 깎인 십자가 모양이었다. 특별한 힘이 있다고 믿는 건 아니었지만,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작은 부적 하나라도 의지할 게 필요했다. 그건 흡사 미친 사람들이 벽에 칠해놓은 핏빛 그림이나, 희생된 시체 위에 놓인 기이한 돌멩이 같은 것들처럼, 어둠 속에서 작게나마 안심을 주는 존재였다.

지훈은 묵직하게 가라앉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서의 이마를 다시 한번 쓸어주고는 조심스럽게 방을 나섰다.

밖은 침묵의 장막에 갇혀 있었다.
회색빛 하늘은 핏빛 노을을 머금고 있었고, 무너진 건물들의 잔해가 뾰족한 이빨처럼 솟아 있었다. 먼지 섞인 바람이 으스스한 소리를 내며 텅 빈 거리 위를 맴돌았다. 모든 것이 죽어 있었다. 아니, 죽은 것들만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발소리가 최대한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부서진 유리 조각이나 굴러다니는 철근을 밟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발끝에 집중했다. 저들은 소리에 민감했다. 아주 작은 소리에도 반응했다. 그리고 한번 눈치채면… 살아남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저들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히 존재했다. 이 세상의 모든 틈새와 그림자 속에 도사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잔재’라고 불렀다. 재앙 이후, 이 세상에 스며든 이계의 그림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자 더욱 신경이 곤두섰다. 해가 지면 잔재들은 더욱 활발하게 움직였다.
지훈의 목표는 이곳에서 서너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약국이었다. 폭격을 맞은 것처럼 폐허가 된 건물들 사이에서 기적적으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곳이었다. 지난번 탐색 때 입구까지는 확인했지만, 안쪽으로 들어갈 엄두는 내지 못했었다. 약국은 특히 위험한 장소였다. 약품 냄새와 더불어 사람들의 절박한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 곳은 잔재들이 모여들기 쉬웠다.

무너진 버스 잔해를 지나고, 뼈대만 남은 아파트 건물을 우회했다. 길가의 상점들은 이미 약탈당한 지 오래였고, 깨진 진열장 안에는 빛바랜 마네킹만이 멍하니 서 있었다.
갑자기, 멀리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쿵!*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지훈은 즉시 가장 가까운 폐차 잔해 뒤로 몸을 숨겼다. 숨을 죽인 채 소리가 난 방향을 응시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바람 소리뿐이었다.
착각이었을까? 아니, 이런 곳에서 착각은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는 십여 분을 그렇게 숨어 있었다.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서 작은 변화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다시 움직였다.

마침내 약국이 시야에 들어왔다. 유리문은 산산조각 나 있었고, 안쪽은 컴컴한 어둠에 잠겨 있었다. 입구에는 ‘약국’이라고 쓰인 낡은 간판이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지훈은 나이프를 꺼내 들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발을 들였다.
퀴퀴한 먼지 냄새, 곰팡이 냄새, 그리고 희미하게 남아있는 소독약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선반들은 대부분 쓰러져 있었고, 약병들은 바닥에 나뒹굴며 깨져 있었다. 발 밑에는 으스러진 약품 포장재와 종이 조각들이 쌓여 있었다.

손전등 불빛을 비춰가며 조심스럽게 내부를 살폈다. 그의 눈은 오직 선반 뒤편, 약품 보관실을 찾고 있었다. 그곳에 남아있을지 모를 온전한 약들을 찾아야 했다.
발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
“여보세요?”
갑자기, 아주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지훈은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숨이 멎었다.
그것은 실제 목소리가 아니었다. 누군가 내는 소리가 아니라, 머릿속에서 울리는 메아리 같은 것이었다. 아니, 메아리보다 더 기분 나쁜, 공간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소리였다.
“여보세요…?”
다시 한번. 이번에는 조금 더 또렷했다. 어린아이의 목소리 같기도 하고, 어른의 목소리 같기도 했다. 형태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그의 심장을 짓눌렀다. 잔재들이었다. 이 약국에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지훈은 손전등 불빛을 껐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 오직 자신의 심장 소리만이 귓가에 울렸다.
움직이지 않고 버텼다. 잔재들은 시각이 없었다. 소리와 움직임, 그리고 아마도 ‘감정’에 반응할 터였다.
그는 폐허가 된 카운터 뒤로 몸을 숨겼다. 코를 막고 숨을 죽였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 기어 다니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스스스륵…* 마치 수많은 뱀이 바닥을 기는 소리 같기도 하고, 찢어진 비닐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같기도 했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온몸의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졌다. 등골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때, 눈앞의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이 번쩍였다. 마치 오래된 사진 필름이 타는 것처럼, 파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한 남자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분명히 보았다. 절규하는 듯한 얼굴.
지훈은 이를 악물었다. 환상이었다. 잔재들이 사람의 감각을 가지고 노는 방식이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민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카운터 뒤편에 있던 문을 더듬어 찾았다. 잠겨 있지는 않았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삐걱거리는 경첩 소리가 어둠 속에서 너무나 크게 울렸다.
*스스스륵…* 소리가 문쪽으로 향하는 것을 느꼈다.
지훈은 재빨리 문 안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약품 보관실이었다. 어둡고 좁은 공간이었다.
그는 다시 손전등을 켰다. 불빛이 떨렸다.
선반 위에는 몇몇 약품들이 먼지에 뒤덮인 채 놓여 있었다. 그는 빠르게 스캔했다. 항생제, 소염제, 진통제…
“찾았다!”
작게 외마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오래된 항생제 약통과 해열제 몇 통이 눈에 들어왔다. 유통기한이 지났을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그가 약통을 집어 드는 순간, 등 뒤에서 싸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쉬이익…*
마치 누군가 그의 목덜미에 차가운 숨을 불어넣는 듯한 느낌.
지훈은 본능적으로 몸을 돌렸다.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약품 보관실의 굳게 닫힌 문 틈새로 희미한 어둠이 스며들어 마치 손가락처럼 기어들어 오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그림자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공기 중의 먼지도 아니었다. 형태는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무언가였다.
그리고 다시, 머릿속에서 속삭임이 들려왔다. 수십 개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중얼거리는 듯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 그의 정신을 잠식하려는 듯한 불쾌한 진동.

“젠장!”
지훈은 욕설을 내뱉으며 약들을 배낭에 쑤셔 넣었다.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수 없었다.
약품 보관실 문을 열고 약국 홀로 나왔다. 어둠 속에서 잔재들의 속삭임이 더욱 강렬해졌다. 그들은 분명히 이 약국 안에 가득 차 있었다. 보이지 않는 형상들이 그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출구는 저쪽이었다. 깨진 유리문 틈새로 붉은 노을이 여전히 스며들고 있었다.
그는 뛰었다. 전속력으로.
발 밑에서 깨진 유리 조각들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으스러졌다. *쨍그랑!*
소리가 너무 컸다.
그 순간, 약국 안의 모든 잔재들이 폭주하듯 반응했다. *우우우웅!* 하는 낮은 울림과 함께, 약국 안의 모든 선반들이 일제히 삐걱거렸다. 깨진 유리 조각들이 공중으로 솟아올랐고, 바닥에 뒹굴던 약병들이 제멋대로 굴러다니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끄아아악!”
지훈은 본능적으로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들의 존재가 너무나도 명확하게 느껴졌다. 사방에서 무언가 그를 덮쳐오는 듯한 압박감. 머릿속의 속삭임은 이제 고통스러운 비명으로 변해 귓속을 파고들었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약국을 뛰쳐나왔다.
붉은 노을이 아직 남아있는 거리로 나오자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하지만 잔재들의 비명은 여전히 그의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그는 폐허가 된 거리를 미친 듯이 달렸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고 폐가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저들이 쫓아오고 있었다. 보이지 않지만, 그 존재감이 그의 뒤를 바싹 따라붙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겨우 자신의 은신처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그는 배낭을 바닥에 던지고 문을 닫았다. 주워온 무거운 철근으로 문을 단단히 막아 세웠다.
벽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온몸의 근육이 찢어질 듯 아팠고, 심장은 광란하듯 뛰었다.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겨우 정신을 가다듬었다.
잔재들의 존재감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은 정해진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아마 약국을 벗어나면서부터 멀어진 것 같았다.

“오빠?”
희미한 목소리. 민서였다.
지훈은 고개를 들었다. 민서가 눈을 뜨고 있었다. 아직 힘이 없었지만, 그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민서야!”
그는 허둥지둥 배낭을 뒤져 약통을 꺼냈다. 물통을 들어 민서의 입가에 대어주었다. 민서는 힘겹게 약을 삼키고 물을 마셨다.
“괜찮아… 이제 괜찮아질 거야.”
그는 민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민서는 그의 손길에 작게 기침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창문 틈새로 보이던 붉은 노을은 이제 완전히 사라지고, 세상은 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손전등 불빛이 민서의 작은 얼굴을 비췄다. 희미하게나마 생기가 돌아오는 듯했다.
지훈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저 어둠 속 어딘가에서, 잔재들이 여전히 이 황폐한 세상을 배회하고 있을 터였다.
오늘 밤은 넘겼다. 하지만 내일은? 그리고 또 그다음 날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괜찮았다. 적어도 지금은.
그는 민서의 손을 다시 잡았다. 차가웠던 손에 미세하게 온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이 손을 놓지 않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어떤 어둠과 맞서든.
지훈은 낡은 창문 너머의 칠흑 같은 어둠을 응시하며 조용히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