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폐허가 된 거리 위로 핏빛 노을이 스몄다. 매일 똑같은 지옥의 풍경이었다. 콘크리트 잔해와 뒤틀린 철골들이 앙상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썩어가는 공기가 지독한 악취를 풍겼다.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축축한 신음소리는 이 모든 것을 매일 밤마다 되새김질하게 만들었다.

이지우는 찢어진 배낭을 고쳐 메고 주저앉았다. 지친 한숨이 목구멍을 비집고 나왔다. 며칠째 제대로 된 잠도, 음식도 허락되지 않은 몸이었다. 겨우 찾아낸 통조림 하나에 목숨을 건 하루를 보냈지만, 이 허기진 배는 언제쯤이나 만족할 수 있을까. 바닥에 놓인 지도를 펼쳤다. 빗물과 피가 엉겨 붙어 얼룩덜룩해진 종이 위로 희미하게 ‘구 시립 박물관’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폐쇄된 지 오래된 곳. 사람들이 흔히 드나들던 장소는 아니었기에, 혹시라도 쓸만한 물건들이 남아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이 그를 이곳까지 이끌었다.

“젠장, 여기도 아니잖아.”

희망은 늘 허상에 가까웠다. 박물관은 이미 누군가에게 휩쓸려간 지 오래였다. 유리 파편들과 부서진 진열장만이 텅 빈 공간을 지키고 있었다. 눅눅한 공기가 습하게 폐부를 파고들었다. 지우는 조심스럽게 발소리를 죽여 가며 텅 빈 홀을 가로질렀다. 혹시라도 ‘그것들’이 굴러다니는 물건 소리에 반응할까 봐 신경이 곤두섰다.

그때였다. 쿵, 하고 저 멀리서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이어서 들려오는 특유의 질질 끄는 발소리. 그리고… 쉰 목소리로 내뱉는 섬뜩한 신음.

젠장. 하나가 아니다.

지우는 본능적으로 몸을 숙여 기둥 뒤로 숨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그는 폐허가 된 도시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생존자 중 하나였다. 군인이었던 것도 아니고, 특별한 능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달리고, 조금 더 민첩하게 몸을 숨기는 재주 덕분이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비틀거리는 그림자들이 보였다. 셋. 아니, 넷이다. 썩어 문드러진 살점과 뼈가 뒤섞인 추악한 형상. 비위가 상하는 악취가 코를 찔렀다. 움직임은 느렸지만, 집요했다. 한 번 목표물을 정하면 끝까지 쫓아오는 그림자들.

지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숨소리마저 낼 수 없었다. 이대로는 도망칠 수 없다. 좁은 문을 통과해 저들을 유인해야 했다. 그의 손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녹슨 쇠 파이프를 움켜쥐었다. 이것 하나로 넷을 상대하는 건 자살행위였다.

그의 시선이 홀 한쪽 구석에 덩그러니 놓인 거대한 조각상으로 향했다. 고대 문명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설명이 붙어 있었던 것 같았지만, 이제는 아무 의미 없는 돌덩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뒤편, 조각상과 벽 사이의 좁은 틈새에 검은 천 조각 같은 것이 삐져나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둠 속에서도 묘하게 다른 색감이었다.

순간, 기이한 충동이 일었다. 저곳이라면 잠시 숨을 곳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확신. 그는 조용히 기어서 조각상 뒤편으로 접근했다. ‘그것들’의 신음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쿵, 쿵. 발소리가 홀 전체를 울렸다.

숨어있던 검은 천 조각을 조심스럽게 당겼다. 낡은 천은 예상외로 견고하게 붙어 있었다. 그리고 천 뒤에 숨겨져 있던 것은… 평범한 벽이 아니었다. 거대한 나무 문이었다. 먼지와 거미줄로 뒤덮여 있었지만, 그 견고함과 위압감은 여전했다. 문고리 대신 튀어나온 것은 낡은 동그란 손잡이였다. 마치 수백 년 전의 유물처럼 보였다.

시간이 없었다. 지우는 이를 악물고 손잡이를 돌렸다. 끼이이익- 끔찍한 소리가 홀에 울려 퍼졌다.

“크르륵…?”

‘그것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썩어가는 시체 눈동자가 일제히 문쪽을 향했다.

문은 의외로 쉽게 열렸다. 안쪽은 완전히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지우는 더 이상 생각할 틈도 없이 문 안으로 몸을 던졌다. 쿵, 하고 뒤따라 문을 닫았다. 쾅! 소리가 울리자마자 밖에서는 ‘그것들’의 분노에 찬 비명과 함께 벽을 긁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숨을 헐떡이며 벽에 등을 기댔다. 쿵, 쿵, 쿵! 나무 문을 향해 거친 몸뚱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언제까지 버텨줄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손이 문고리를 붙잡고 있었다. 땀으로 축축했다.

어둠 속에서 간신히 숨을 고르던 지우는, 문득 이상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여기는 공기가 달랐다. 퀴퀴한 먼지 냄새는 여전했지만, 그 밑에 깔린 알 수 없는… 흙내음 같기도 하고, 오래된 나무 냄새 같기도 한, 묘한 향기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변이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미지근한 온기가 감돌았다. 마치 살아있는 존재가 숨 쉬는 듯한 기분.

그는 배낭에서 손전등을 꺼내 들었다. 낡았지만 여전히 제 역할을 해주는 노란빛이 어둠을 가르고 나아갔다. 손전등이 비춘 곳은 긴 통로였다. 벽은 돌로 되어 있었고, 양쪽에는 횃불을 꽂았던 것으로 보이는 쇠고리들이 띄엄띄엄 박혀 있었다.

“여긴… 대체 언제 만들어진 곳이지?”

지우는 알 수 없는 위화감에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박물관 아래에 이런 공간이 숨겨져 있었다니. 아무런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은 곳이었다.

통로를 따라 몇 걸음 걷자, 거대한 원형 공간이 나타났다. 손전등 빛이 닿는 곳마다 벽에는 정교하고 이해할 수 없는 문자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림 같기도 하고, 상형문자 같기도 한 형상들이 벽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중앙에는 거대한 돌 제단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낡은 양피지 두루마리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지우는 이 모든 것이 기이하고 섬뜩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동시에, 형언할 수 없는 이끌림에 홀린 듯 제단으로 다가갔다. 그의 손이 떨렸다. 양피지 두루마리는 한눈에 보기에도 엄청나게 오래되어 보였다. 가장자리는 너덜너덜했고, 누렇게 변색된 종이 위에는 알 수 없는 언어로 쓰인 글자들이 가득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두루마리를 펼쳤다. 그 순간이었다.

싸아아아-

어둠 속에 잠겨 있던 문자들이 일제히 희미한 푸른빛을 내며 빛나기 시작했다. 마치 심장이 뛰는 것처럼, 글자 하나하나가 맥동하며 방 전체를 몽환적인 푸른색으로 물들였다. 지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런 현상은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살아있는 빛이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경이로움과 두려움이 뒤섞인 감각. 그는 떨리는 손으로 빛나는 문자를 가만히 쓸어보았다. 손끝에서부터 전해지는 찌릿한 전류 같은 느낌. 마치 오래된 잠자고 있던 무언가가 깨어나는 듯한 진동이 심장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밖에서 들려오던 ‘그것들’의 울부짖음이 갑자기 멎었다.

대신, 알 수 없는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듯한 웅장하고 신비로운 소리가 지우의 귓가에 맴돌기 시작했다. 마치 수천 년 동안 잠들어 있던 존재가 긴 잠에서 깨어나 세상에 첫 포효를 터뜨리는 듯한, 잊혀진 언어의 속삭임 같기도 했다. 그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듯한 강렬한 감각 속에서, 지우는 눈앞의 푸른빛 글자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그의 정신 속으로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쿵, 쿵. 심장이 아니라, 그의 영혼이 뛰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 그의 시야가 한없이 넓어졌다. 문 밖의 ‘그것들’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멀리 떨어진 도시의 복잡한 에너지 흐름, 땅속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의 기운,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이 고대 공간의 살아 숨 쉬는 듯한 기운이 선명하게 그의 감각으로 흘러들어왔다.

마치 세상을 처음 보는 아기처럼, 그는 눈앞의 경이로운 현상과 동시에 밀려오는 정보의 홍수에 압도당했다.

이것은… 대체… 뭐지?

지우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빛나는 문양 중 하나를 움켜쥐었다. 손끝에서 푸른빛이 터져 나오며 공간 전체를 집어삼킬 듯한 기세로 번져나갔다. 그의 눈동자마저 푸른빛으로 물드는 가운데, 잊고 있던 문 너머의 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아니, 이번에는 달랐다.

문이 열리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