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을 가르는 한 줄기 빛, 그것이 바로 ‘새벽별호’였다. 망망한 심우주, 수십 억 년의 고독 속에서 별들의 춤을 관망하는 미답의 성간 공역을 가로지르며, 우리 인류의 작은 호기심을 싣고 나아가는 탐사선. 선장 이진호는 함교의 투명한 대형 창 너머로 펼쳐진 은하의 장엄한 비경을 묵묵히 응시하고 있었다. 망원경으로도 잡히지 않는 아득한 곳, 차원 도약 엔진의 규칙적인 진동만이 이따금 고요를 깨트렸다.
“선장님, 에너지 반응이 감지되었습니다.”
나긋하지만 긴장감 어린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과학 담당 박세아 소령이었다. 단정한 묶음 머리 사이로 스민 날카로운 눈빛은 이미 홀로그램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었다.
“에너지 반응? 무슨 종류지?” 진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 구역은 그 어떤 인공 구조물이나 행성계도 발견되지 않은, 이론적으로 ‘텅 빈’ 공간이었다.
“정의 불가능합니다. 기존에 알려진 어떤 물리적, 혹은 비물리적 에너지 스펙트럼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특이합니다, 선장님. 마치… 존재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세아의 말에 평소 냉철했던 진호의 얼굴에도 의아함이 스쳤다. 존재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라니. 그녀가 그런 표현을 쓸 정도면 보통 일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항해사 김민준, 현 위치에서 궤도 이탈. 즉시 해당 좌표로 접근 경로 설정해.”
“네, 선장님! 목표 지점까지 12시간 소요됩니다. 추가 정보가 필요할까요?” 민준 대위의 목소리엔 호기심과 함께 미세한 경계심이 배어 있었다. 그는 항상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는 인물이었다.
“현재로서는 불필요하다. 세아 소령, 해당 에너지 반응에 대한 심층 분석을 계속 진행하고, 발견되는 모든 이상 징후를 보고해.”
“알겠습니다!”
새벽별호는 거대한 항성들의 무덤을 벗어나, 미지의 존재를 향해 서서히 방향을 틀었다. 우주선 전체를 감싸던 고요함이 깨지고, 조종석에는 낮게 깔린 전자음과 승무원들의 옅은 숨소리가 오갔다.
열두 시간 후, 새벽별호는 정체불명의 존재와 불과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 도달했다. 함선 내부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홀로그램 스크린에는 거대한 검은 형체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말도 안 돼….” 세아는 스크린에 코를 박을 듯 다가서며 중얼거렸다.
그것은 이지적인, 그러나 동시에 광기 어린 존재감이었다. 가공할 만큼 매끄러운 검은 다면체. 가장자리는 날카롭게 깎여 있었으나, 표면은 흡수성 물질로 이루어진 듯 주변의 모든 빛을 삼키고 있었다. 별빛마저도 그 존재 앞에서는 힘을 잃고 사라지는 것 같았다. 크기는 대략 지구의 도시 하나를 통째로 삼킬 만한 규모. 마치 거대한 블랙홀의 조각을 떼어내어 조각해 놓은 것만 같았다.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됩니까? 육안으로 이렇게 선명하게 보이는데?” 민준이 경악한 목소리로 물었다.
“에너지 반응도 여전히 ‘정의 불가능’입니다. 표면은 그 어떤 전자기파도 반사하거나 방출하지 않아요. 오히려… 흡수하고 있습니다.” 세아의 목소리엔 흥분과 함께 미지의 공포가 엿보였다.
“수천 년간 이 광활한 우주를 헤매며 수많은 외계 문명의 흔적을 찾아 헤맸지만… 이런 것은 처음입니다.” 진호는 침착하게 상황을 주시하며 명령을 내렸다. “선회하여 모든 각도에서 스캔을 시도한다. 최강현 상사, 함선의 모든 방어 시스템을 최고 단계로 설정하고 대기해. 무슨 일이 있어도 함선 외부로 불필요한 에너지를 방출하지 마.”
“알겠습니다, 선장님. 전원 시스템 이상 없습니다.” 엔지니어 최강현 상사의 투박한 목소리가 답했다. 그는 언제나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새벽별호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새벽별호가 거대한 다면체 주위를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웅-’
갑자기 새벽별호 전체가 미세한 진동에 휩싸였다. 그것은 기계적인 진동이 아니었다. 마치 거대한 종이 울리는 듯한, 혹은 심장이 뛰는 듯한, 저음의 공명이었다. 그 진동은 뼛속까지 스며들어 승무원들의 정신을 흔들었다.
“이게 무슨…!” 민준이 휘청이며 함교 벽을 짚었다.
“함선 이상 없습니다! 외부 충격도 감지되지 않습니다!” 최강현이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에너지 반응… 변동이 있습니다! 아뇨, 변동이라고 할 수 없어요! 진동에 따라… 내부에서 무언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세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의 눈은 홀로그램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초점이 흐트러진 듯했다.
진호 역시 온몸으로 느껴지는 진동에 숨을 들이켰다. 그것은 단순히 음파가 아니었다. 뇌를 직접 울리는 듯한, 알 수 없는 언어가 내면을 휘젓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진동의 파고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거대한 검은 다면체에서 옅은 오색 빛깔의 안개가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안개는 빠르게 퍼져나갔고, 그 안에서 마치 영상처럼 명멸하는 이미지들이 나타났다. 고대 문명의 유적, 알 수 없는 기호, 그리고… 아주 잠깐, 누군가의 ‘눈’과 마주친 듯한 섬뜩한 감각이 진호의 뇌리를 스쳤다.
“선장님!” 세아가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눈은 공포와 경이로움으로 가득했다. “저 안개… 함선 안으로 침투하고 있어요! 비활성화 장벽을 뚫고 들어오고 있습니다!”
동시에, 진호의 머릿속에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언어가 아니었다. 파형도, 주파수도 아니었다. 단지… ‘감각’이었다.
*환영한다… 오래 기다렸다…*
그 순간, 진호의 시야가 오색의 안개로 뒤덮였다. 그는 자신의 몸이 허공에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것은… 우주가 아니었다. 별들도, 은하도 아니었다. 그것은…
“선장님! 정신 차리십시오!” 민준의 다급한 외침이 아득하게 들려왔지만, 진호는 이미 다른 차원에 갇힌 듯했다.
그의 눈앞에는 끝없이 펼쳐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의 ‘기록’이 있었다.
태초의 우주, 별들의 탄생과 소멸, 수십억 년간 이어진 문명의 흥망성쇠,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초월한, 거대한 어둠의 그림자.
진호는 그 모든 것을 한순간에 ‘보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너무나 선명하게 느껴지는 정보의 폭주 속에서, 그는 절규하고 싶었다.
이것은… 이 유물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려는 것인가?
그의 의식이 저편으로 아득하게 멀어지려 할 때, 진호는 마지막으로 하나의 감각을 포착했다.
그것은…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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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챕터에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