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푸른 달의 그림자
청운문(靑雲門)의 가장 높은 봉우리, 운청봉(雲靑峰)의 정상은 언제나 맑고 푸른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거대한 영목(靈木)들이 뿜어내는 기운은 천년을 넘게 이어진 문파의 역사를 대변하듯 고고하고 웅장했다. 해 질 녘, 붉게 물든 노을이 구름바다 위로 번지면, 운청봉은 마치 하늘과 땅의 경계를 지키는 거대한 수호신처럼 보였다.
이화는 그 절경 속에 홀로 서 있었다. 옅은 비단옷자락이 바람에 나부꼈지만, 그녀의 검은 눈동자는 흔들림 없이 멀리, 아득한 산맥 너머를 향하고 있었다. 그녀의 긴 머리칼은 마치 밤하늘을 머금은 듯 윤기 흘렀고, 가느다란 손목에는 고요히 흐르는 영력이 느껴졌다. 스무 해 남짓한 세월을 살아왔지만, 그녀의 내면은 이미 수천 년 묵은 고목처럼 깊고 단단했다.
문파의 뛰어난 제자이자 장로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그녀였으나, 이화는 종종 알 수 없는 공허함을 느꼈다. 모두가 닿고자 하는 ‘무상선도(無上仙道)’는 그녀에게 때론 차갑고 외로운 길처럼 다가왔다. *이 광활한 세상에, 오직 도(道)만을 좇아야 하는가? 내 안에 스며든 이 잔잔한 파동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할 무렵, 등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화야.”
돌아보니 사숙(師叔)인 남궁진이 서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평소와 다른 근심이 드리워져 있었다.
“사숙, 무슨 일이십니까?” 이화는 예의 바르게 물었다.
“밤늦게 미안하다. 급히 너를 찾아온 이유가 있다. 서쪽 숲, ‘흑요림(黑曜林)’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지되었다.”
흑요림! 그곳은 청운문과 요족(妖族)의 경계에 있는 숲이었다. 오래전부터 인간과 요족 간의 불화가 끊이지 않던 위험한 지역.
“또 요괴들이 소란을 피웁니까?” 이화의 목소리에 미묘한 긴장이 스쳤다.
남궁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것과는 다르다. 단순히 영역을 침범하는 수준이 아니다. 최근 며칠 새, 흑요림 근처에서 수련하던 우리 문파의 몇몇 제자들이 실종되었다.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말이다.”
이화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실종이라니요? 영력이 높은 제자들이 아니었습니까?”
“그렇다. 영력뿐만 아니라, 육신조차 찾을 수 없었다. 마치 그림자처럼 사라진 듯하다. 그리고… 어제 밤에는 흑요림 깊은 곳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강렬한 영력 파동이 감지되었다. 인간의 기운도, 일반적인 요괴의 기운도 아닌, 이질적인… 압도적인 힘이었다.”
이화의 심장이 한순간 강하게 울렸다. 이질적인 기운. 그녀가 알 수 없는 파동에 이끌리는 이유일까.
“그것 때문에 장로님들이 너를 보내기로 결정하셨다.” 남궁진은 이화를 똑바로 응시했다. “네 영력은 다른 제자들보다 미묘한 기운의 변화를 감지하는 데 탁월하다. 게다가, 너는….”
남궁진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이화는 그 침묵의 의미를 알았다. 그녀의 비범한 재능, 그리고 그녀에게 흐르는 어딘가 이질적인, 그러나 강력한 영력. 그것은 때로 그녀 자신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제가 가겠습니다.” 이화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불안감보다는 솟아나는 호기심이 그녀의 마음을 지배했다. *이질적인 기운이라… 대체 무엇일까.*
“조심하거라, 이화. 흑요림은 단순히 요괴들의 소굴이 아니다. 그곳에는 오래된 전설과 금지된 비밀들이 잠들어 있다. 특히, ‘푸른 눈의 요괴’에 대한 이야기는 허투루 흘려들을 것이 못 된다.” 남궁진의 목소리에는 경고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푸른 눈의 요괴. 청운문의 고서에도 희미하게 기록된 존재.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밤하늘의 별을 담은 듯한 푸른 눈동자를 가진, 고고하고 잔혹한 존재라는 전설. 이화는 그 전설을 들을 때마다 묘한 끌림을 느꼈다. 다른 요괴들과는 다른, 뭔가 심오한 아름다움이 있을 것만 같았다.
“예, 사숙.” 이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둠이 짙게 깔린 밤, 푸른 달이 구름 사이로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이화는 자신의 거처로 돌아와 짐을 꾸렸다. 검은 비단옷과 호신용 법기, 그리고 비상 식량 몇 가지. 그녀의 검은 눈동자에는 결의와 함께,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희미한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흑요림, 그리고 그곳에 잠들어 있을지도 모르는 금지된 진실. 그녀는 알 수 없는 운명의 그림자 속으로 한 발짝 내디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