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판타지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카인의 발소리가 잿빛 먼지를 흩뿌리며 폐허가 된 거리 위를 미끄러졌다. 사방이 부서진 콘크리트와 뒤틀린 철골뿐이었다. 한때 거대한 빌딩이었을 잔해는 뼈만 남은 거인의 시체처럼 하늘을 찔렀고, 그 사이로 칼날 같은 바람이 휘파람을 불었다. 해는 빛을 잃은 지 오래, 언제나 칙칙한 주황색 노을이 지평선을 물들이고 있었다. 이곳은 죽은 도시, 아니, 죽어가는 도시의 심장이었다.

“젠장….”

카인은 낡은 리볼버의 개머리판을 고쳐 쥐었다. 오늘 카인이 찾아야 할 것은 단순한 식량이 아니었다. 그보다 귀한 것, 어쩌면 일행 중 어린 ‘리나’의 생명을 살릴지도 모를 약품이었다. 며칠 전 녀석이 고열에 시달리기 시작했을 때, 카인은 자신이 가진 마지막 구호물품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기억 속에서 희미하게 남아있던, 도심 한복판에 있던 ‘옛 약국’이라는 단어가 그의 발길을 이끌었다.

바닥에 선명하게 찍힌 발자국. 녀석들의 것이다. ‘피부족’.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짐승의 가죽을 뒤집어쓴 채 살아가는 광인들. 이 폐허에서 가장 끔찍한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단순한 식량만을 노리는 게 아니었다. 살점, 온기, 그리고 다른 생존자의 비명까지도. 그들의 영역에 발을 들였다는 사실이 카인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약국으로 추정되는 건물은 다른 폐허와 다를 바 없는 몰골이었다. 간판은 떨어져 나가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었고, 출입문은 날아가버린 지 오래였다. 카인은 주변을 몇 번이고 살폈다. 쥐새끼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는 고요함이 오히려 불길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썩은 곰팡이 냄새와 먼지, 그리고 희미하게 풍기는 피비린내가 뒤섞였다. 카인은 손전등을 켜고 조심스럽게 안쪽으로 발을 옮겼다. 어두컴컴한 복도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지뢰밭이나 다름없었다. 발밑에서 ‘사그락’ 소리를 내며 부서지는 유리 조각들이 그의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몇 걸음 옮기지 않아 탁자에 뒹굴고 있는 뼈 조각들을 발견했다. 인간의 것임을 직감한 카인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들이 이미 이곳을 차지하고 있었다.

복도 끝, 겨우 형태를 알아볼 수 있는 ‘처방전’ 간판이 매달린 문이 보였다. 약국이었다. 그 안에서 희미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웅얼거리는 소리, 뼈가 부딪히는 듯한 소리, 그리고 역겨운 체취가 섞여 흘러나왔다. 카인은 심장이 쿵쿵거리는 것을 느끼며 권총을 들어 올렸다. 피할 수 없다. 리나에게 약이 필요하다.

숨을 죽이고 문틈으로 안을 엿보았다. 네댓 명의 피부족이 불을 피워놓고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바닥에 놓인, 찢어진 약품 상자 더미에 꽂혀 있었다. 약탈한 것이 분명했다. 짐승의 가죽을 뒤집어쓴 그들의 몸에서는 악취가 진동했고, 피에 젖은 칼날이 섬뜩하게 번뜩였다.

“크아아악!”

갑자기 안쪽에서 기괴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피부족 중 한 명이 상자 더미를 뒤집어엎고 있었다. 그들은 약품을 짐승처럼 씹어 삼키려 들었다. 약효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본능적으로 입에 넣는 광경은 카인의 피를 식게 만들었다.

“젠장, 다 망가뜨리고 있어!”

카인은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 정면 승부는 무모했다. 그는 가장자리에 있는 기둥 뒤로 몸을 숨긴 채, 옆방으로 통하는 통로를 찾았다. 다행히 약국 옆에는 조그마한 창고 같은 공간이 있었다. 그곳을 통해 몰래 들어갈 수만 있다면…

손에 잡힌 벽돌을 있는 힘껏 던졌다.
“콰앙!”
벽돌은 정확히 불 옆에 놓인 고철 덩어리에 명중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피부족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쪽으로 향했다. 카인은 그 틈을 타 약국 안으로 돌진했다.

“리나의 약!”

쓰러진 상자들 사이를 미친 듯이 뒤졌다. 유리병들이 깨지고 내용물이 쏟아져 나와 발밑을 끈적하게 만들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작은 병들을 주워 허리춤에 달린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제발, 제발 리나에게 필요한 약이 이 안에 있기를.

“인간이다! 죽여라!”

가장 앞서 달려오던 피부족이 손에 든 뼈칼을 휘두르며 덤벼들었다. 카인은 몸을 비틀어 간신히 피했지만, 팔뚝에 날카로운 통증이 스쳤다. 젠장, 긁혔다. 쓰라린 고통과 함께 피가 배어 나왔다. 피부족의 공격은 멈출 줄 몰랐다. 짐승 같은 그들의 움직임에 약병들이 더 부서지는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카인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마지막으로 잡힌 병 하나를 집어 들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쳐나갔다. 복도, 계단, 그리고 무너진 창문을 넘어 거리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뒤를 돌아보니, 네댓 명의 피부족이 야생 짐승처럼 그를 쫓고 있었다. 그들의 눈은 광기로 번들거렸고, 찢어진 옷 사이로 보이는 흉터는 그들이 얼마나 많은 피를 보았는지 짐작하게 했다. 카인은 거리에 즐비한 잔해들을 뛰어넘으며 필사적으로 달렸다. 팔뚝의 상처에서 피가 흥건하게 흘러내려 손바닥을 끈적하게 만들었다.

그때, 저 멀리, 폐허의 그림자 속에서 또 다른 실루엣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피부족이 아닌, 뭔가 다른, 더 거대하고 음침한 존재였다. 그 압도적인 크기와 육중한 움직임은 도시의 모든 소리를 삼키는 듯했다. 카인의 얼굴에 절망의 그림자가 스쳤다.

“설마… 그 ‘잿빛 거수’가 벌써 여기까지 왔다고?”

그는 발밑의 자갈을 걷어차며, 죽음의 숨통이 조여 오는 도시 속으로 더욱 깊숙이 도망쳤다. 손에 든, 리나의 희망일지도 모르는 약병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꽉 움켜쥔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