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협 (신선)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삭막한 대지는 붉은 흙먼지를 피어 올리며 숨 쉬었다. 한때는 무수히 솟아 있던 영봉(靈峰)들도 이제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검은 암괴(巖塊)가 되어 하늘을 찔렀고, 그 아래로 펼쳐진 무한한 폐허는 생명의 온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 죽음의 한복판을 헤치며, 류진은 땀에 절은 몸을 이끌고 나아갔다. 찢어진 회색 도포는 숱한 고난의 흔적을 담고 있었고, 흙먼지가 뒤덮인 얼굴은 며칠 밤낮을 쉬지 못한 자의 피로가 역력했다. 허리춤의 낡은 검은 달그락거릴 때마다 날카로운 금속음을 냈다.

“젠장, 정말 아무것도 없군.”

류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중얼거렸다. 그의 발아래는 한때 웅장한 문파의 본거지였으리라 짐작되는 고성(古城)의 잔해가 널려 있었다. 거대한 돌기둥들은 형편없이 부서져 있었고, 이끼와 정체 모를 덩굴들이 벽을 타고 기어 올라 마치 살아있는 시체처럼 보였다. 영맥(靈脈)은 끊어진 지 오래, 남아있는 미약한 영기(靈氣)마저도 독기가 섞여 인간에게 해로울 지경이었다.

이 황폐한 세상에서 류진이 찾는 것은 단 하나, 지독한 가뭄에도 죽지 않고 바위 틈에서 피어나는 ‘석영화(石英花)’였다. 그나마 남아있는 순수한 영기를 품고 있어 그의 끊어진 영맥을 미약하게나마 이어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문득, 류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붕괴된 석탑의 그림자 아래, 희미하게 빛나는 보랏빛 한 송이.

“찾았다…!”

메마른 입술이 갈라지는 것도 잊은 채, 류진은 황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 가슴속에서 일말의 희망이 솟구쳤다. 이 한 송이가 그에게는 생명줄과도 같았다.

거의 다 다랐을 때였다.

*크르르르…*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류진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본능적으로 검자루를 움켜쥐었다. 폐허의 공기를 가르며,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망할…! 흑철 이빨 늑대인가!”

류진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늑대라고 하기엔 너무나 거대하고 흉측한 괴물이었다. 온몸을 뒤덮은 검은 털은 쇠비늘처럼 단단했고, 핏빛으로 번뜩이는 두 눈은 굶주림에 미쳐 있었다. 무엇보다 섬뜩한 것은 입 밖으로 튀어나온 송곳니였다. 철을 갈아 만든 듯 날카롭고 시커먼 이빨에는 말라붙은 핏자국이 선명했다. 이 폐허의 맹수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존재 중 하나였다.

괴수는 류진을 향해 돌진했다. 콰아앙! 발톱이 닳은 바닥을 후려치자 흙먼지가 폭발하듯 솟구쳤다.

류진은 재빨리 몸을 옆으로 틀며 공격을 피했다. 휘익! 그의 뺨을 스쳐 지나간 발톱에서 매캐한 냄새가 났다. 독이었다. 저 날카로운 발톱에 스치기만 해도 피부가 썩어 들어갈 터였다.

‘정면 승부는 무리다. 저놈은 최소한 개단(開丹) 3단계 이상…!’

류진은 아직 개단 초입에도 이르지 못한 몸이었다. 그의 영기 수준으로는 저 괴물을 상대하기 벅찼다. 하지만 물러설 수는 없었다. 저 석영화는 그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하압!”

류진은 검을 뽑아 들고 허공을 가르며 괴수의 옆구리를 노렸다. 스으윽! 검날이 검은 털을 스쳤지만, 마치 바위를 긁는 듯한 소리만 낼 뿐 아무런 상처도 입히지 못했다. 괴수의 털은 너무나 단단했다.

*크아아앙!*

괴수는 분노한 듯 울부짖으며 류진을 향해 다시 몸을 돌렸다. 이번에는 거대한 꼬리가 류진의 다리를 노리고 휘몰아쳤다. 슉!

류진은 겨우 몸을 띄워 꼬리를 피했다. 간신히 균형을 잡는 순간, 괴수의 머리가 류진의 복부를 향해 돌진해왔다. 류진은 황급히 왼팔을 들어 막았지만, 엄청난 충격에 뼈가 부러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으득!

“크윽…!”

류진은 비틀거리며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왼팔은 이미 축 늘어져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심장이 발버둥 치듯 격렬하게 뛰었다.

‘이대로는 죽는다. 뭔가… 뭔가 방법이…!’

그의 시선이 괴수에게서 벗어나 석영화가 피어있는 석탑 잔해로 향했다. 그 주변에는 얇은 틈새들이 무수히 널려 있었다. 이곳은 과거 문파의 연공장(練功場)이었던 곳. 영기를 모아두던 진법(陣法)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류진의 머릿속에 번개 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좋아, 걸어보는 수밖에!”

그는 다시 괴수를 향해 돌진하는 척하며 자세를 잡았다. 괴수가 방심한 틈을 타, 류진은 온몸의 영기를 발끝으로 모았다. 아직 미숙한 영기였지만, 일전에 익혔던 ‘벽공신법’의 첫 번째 초식을 떠올렸다.

*쉬이이익!*

류진의 몸이 마치 그림자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괴수가 류진을 쫓아 달려들었지만, 류진은 정확히 석탑 잔해의 틈새 사이로 몸을 던져 넣었다. 괴수는 류진이 사라진 곳을 향해 미친 듯이 돌진했다.

*콰아앙!*

거대한 몸집을 주체하지 못한 괴수는 석탑 잔해의 약한 부분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석탑 잔해는 엄청난 충격과 함께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류진은 좁은 틈새 사이로 몸을 숨긴 채,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왼팔을 움켜쥐었다.

“한 번 더…!”

괴수는 고개를 흔들며 다시 류진을 찾았다. 류진은 다시 한번 벽공신법을 사용, 석탑 잔해의 반대편 틈새로 튀어나왔다. 놈의 시선을 붙잡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괴수는 류진을 발견하자마자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크르르르릉!* 이번에는 석탑 잔해의 기둥 뿌리를 향해 돌진했다.

*우르르르릉!*

오랜 세월을 버텨온 석탑 잔해는 괴수의 무모한 공격에 결국 한계에 달했다. 굉음과 함께 거대한 돌덩이들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먼지가 폭풍처럼 솟구쳤고, 거대한 돌기둥이 괴수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크아아악!*

괴수는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쳤지만, 이미 무너져 내리는 석탑 잔해에 깔려버렸다. 거대한 돌덩이들이 놈의 몸을 덮쳤고, 이내 침묵이 찾아왔다.

류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무너진 석탑을 응시했다. 괴수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간신히 죽음을 면한 것이다. 온몸의 힘이 풀리는 듯 휘청거렸지만, 그의 시선은 다시 그 보랏빛 꽃을 향했다.

석영화.

그는 절뚝거리며 석영화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흙먼지 속에서도 끈질기게 피어있는 그 꽃을 조심스럽게 뽑아 들었다. 손안에 느껴지는 미약하지만 순수한 영기. 이것이 바로 그를 살게 할 생명줄이었다.

하지만 안도감도 잠시, 류진은 다시 한번 정신을 차렸다. 황폐한 세상은 그에게 단 한순간도 방심할 틈을 주지 않았다.

멀리서, 어둠이 짙게 깔린 하늘 아래, 또 다른 괴수의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듯했다.

류진은 주먹을 꽉 쥐었다.

‘살아남아야 한다… 반드시.’

그의 눈빛은 비록 지쳐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생존을 향한 의지만큼은 결코 꺾이지 않았다. 이제 그는 또 다른 밤을 견뎌야 했다. 이 끝없는 황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