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 판타지 (현대 판타지)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챕터 1: 불청객의 서막**

늦은 밤, 이진우는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주방으로 향했다. 자정 가까운 시각, 뜨거운 라면 한 그릇만큼 위로가 되는 것은 없었다. 그는 능숙하게 냄비에 물을 붓고 가스레인지에 올렸다. 지이익, 하는 점화음과 함께 파란 불꽃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냄비 안에서 면발이 풀어지는 동안, 진우는 거실 소파에 몸을 던졌다. 손은 자연스럽게 테이블 위 리모컨을 찾았지만, 텅 비어 있었다.

“어, 분명 여기 뒀는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리모컨은 늘 소파 옆 작은 협탁 위에 놓는 것이 그의 습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진우는 귀찮다는 듯 한숨을 쉬며 몸을 숙여 소파 아래를 뒤적였다. 먼지 낀 바닥에 굴러다니는 리모컨이 손에 잡혔다.

“젠장, 내가 또 흘렸나.”

건망증이 심한 편은 아니었지만, 가끔 이렇게 엉뚱한 곳에서 물건을 발견하곤 했다. 그는 별생각 없이 리모컨을 쥐고 TV를 켰다. 드라마에서 흘러나오는 익숙한 OST가 적막한 아파트에 채워졌다.

잠시 후, 끓는 라면 냄새가 거실까지 풍겨왔다. 진우는 느릿하게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향했다. 면을 그릇에 옮겨 담고, 젓가락을 들었다. 한 입 후루룩 빨아들이자 얼큰하고 뜨거운 국물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피로가 가시는 듯했다.

그때였다. 쨍그랑!

명확하고 날카로운 소리가 등 뒤, 거실에서 들려왔다. 진우는 젓가락을 든 채 그대로 굳었다. 식탁 위 라면에서 피어오르는 김조차 멈춘 것만 같았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거실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지만, TV의 희미한 불빛 덕분에 대략적인 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아까 진우가 놓아둔 리모컨이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그 옆, 늘 리모컨을 받쳐두던 작은 유리 재떨이가 바닥에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진우는 한동안 그 유리 조각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내가… 아까 떨어뜨렸나?”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리모컨을 떨어뜨린 기억은 없었다. 게다가 리모컨은 멀쩡히 테이블 위에 있었고, 유리 재떨이는 그 주변에 놓여 있었다. 설령 리모컨이 떨어졌다고 해도 유리 재떨이가 저렇게 박살 날 리는 만무했다.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다가갔다. 발밑에 바스락거리는 유리 파편을 피해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이상했다. 너무나 고요했다. TV에서 흘러나오는 드라마 속 대사만이 불필요하게 크게 들릴 뿐이었다.

진우는 휴대폰을 꺼내 플래시를 켰다. 밝은 불빛이 거실 구석구석을 비췄다. 깨진 유리 파편들, 그 위에 덩그러니 놓인 리모컨. 그리고… 아무것도 없었다. 침입자도, 고양이도, 바람도.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미쳤나 봐, 내가.”

스스로에게 중얼거렸다. 피곤해서 헛것을 봤거나, 아니면 잠결에 자신이 저지른 일일 거라고 애써 합리화했다. 그는 깨진 유리 조각들을 대충 쓸어 담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는 남은 라면을 마저 먹으려 했지만, 이미 식어버린 면발은 더 이상 식욕을 돋우지 못했다.

불안한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진우는 침실로 향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 늘 해오던 대로 침대 머리맡에 놓인 스탠드를 켜려 했다. 손을 뻗는 순간, 스탠드의 전구가 스스로 깜빡이더니 이내 탁, 하는 소리와 함께 꺼져 버렸다.

어둠.

완벽한 어둠이 진우를 감쌌다. 밖에서 스며드는 도시의 불빛조차 얇은 커튼에 가려져 있었다.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등 뒤에서 차가운 기운이 확하고 끼쳐왔다. 마치 누군가 바로 뒤에서 숨을 들이쉬는 것처럼. 진우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몸을 굳힌 채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섰다.

차가운 공기가 그의 귓가를 스쳤다. 그리고, 아주 희미하게,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쉬이이…

마치 오래된 라디오에서 잡음이 들리는 것 같기도, 아니면 누군가 아주 가까이에서 속삭이는 것 같기도 했다. 소리는 너무 작아서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소리가 분명히 ‘그의 뒤’에서 시작되어 ‘그의 귀’를 향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진우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은 침실 문이었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하지만 분명 그 틈새에서 차가운 바람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문고리가 스스로 움직였다.

달칵.

아주 작고 건조한 소리였다. 진우는 눈을 크게 떴다. 문고리가 아래로 스르륵 내려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마치 누군가 문을 열려고 시도하는 것처럼.

진우는 휴대폰 플래시를 다시 켰다. 환한 불빛이 문고리를 정확히 비췄다. 문고리는 멀쩡했다.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그때, 침대 옆 작은 탁자 위에서 놓여있던 휴대폰 충전기가 ‘덜컹!’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진우의 눈은 바닥에 굴러떨어진 충전기를 쫓았다. 그리고 다시 문고리를 향했다.

문고리는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이번에는 더 빠르고, 더 격렬하게. 달칵, 달칵, 달칵!

마치 누군가 밖에서 문을 부술 듯이 잡아 흔드는 것 같았다. 진우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벽에 등이 닿자 차가운 기운이 전신으로 퍼졌다.

“뭐… 뭐야?”

자신도 모르게 작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문고리가 격렬하게 흔들리는 와중에, 문틈으로 희미한, 검은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얇고 길쭉한 형태, 마치 거미의 다리처럼 움직이는 것 같기도 했다. 아니, 어쩌면 단순히 그의 상상이 만들어낸 환상일지도 몰랐다.

그 순간, 문이 ‘쾅!’ 하고 활짝 열렸다.

어둠 속에 가려져 있던 복도가 드러났다. 복도 끝, 현관문 너머에서 도시의 희미한 불빛이 스며들어왔다. 하지만 그 빛은 복도의 어둠을 걷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더욱 깊고 검은 심연처럼 느껴졌다.

진우는 몸을 덜덜 떨며 문턱을 넘어선 복도를 바라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확신했다. 뭔가 ‘있었다’.

닫혔던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집안의 모든 불이 ‘파바바박!’ 하는 소리를 내며 제멋대로 켜졌다. 거실의 스탠드, 주방의 형광등, 심지어 화장실의 불까지. 한밤중의 아파트는 갑자기 대낮처럼 밝아졌다.

하지만 그 빛은 진우의 공포를 걷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그 빛이 비추는 모든 공간이 기괴하게 일그러져 보였다.

진우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거실을 가로질러 현관으로 달려갔다. 이 모든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가야 했다.

하지만 현관문 앞, 그의 발을 묶는 듯한 섬뜩한 기운이 느껴졌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아니, 잠겨 있었다.

아까 침실 문이 열렸던 것처럼, 이번에는 현관문 손잡이가 ‘달칵, 달칵!’ 소리를 내며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문 너머에서 누군가 문을 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손잡이는 위아래로 격렬하게 움직였다.

아니, ‘누군가’가 아니었다. ‘무언가’였다.

진우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현관문 너머에서 웅웅거리는 듯한, 알아들을 수 없는 낮은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수많은 벌레들이 한꺼번에 날갯짓을 하는 것 같기도, 아니면 아주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중얼거림 같기도 했다.

그리고 현관문 바로 위, 디지털 도어락이 스스로 번호가 눌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삐빅, 삐빅, 삐비비빅…

도어락의 숫자들이 무작위로 깜빡였다. 마치 정해지지 않은 손가락이 무작위로 키패드를 누르는 것처럼.

진우의 눈은 공포에 질려 도어락의 숫자를 쫓았다. 그는 자신의 비번을 누르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마치 이 도어락 시스템 자체를 부수려는 듯, 무차별적으로 모든 번호를 시험하는 듯했다.

삐빅, 삐빅, 삐비비빅…

도어락은 쉴 새 없이 눌렸다. 그러다 문득, 짧게 ‘삑-삑-삑-‘ 하는 경고음이 세 번 울리더니, 도어락의 불이 완전히 꺼졌다.

그리고 다시 켜지며, 빨간색 잠금 표시등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문은 잠겼다. 외부에서 열 수 없게, 완전히 잠겨버렸다.

진우의 심장이 멎는 듯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거실을, 그리고 열린 침실 문 너머의 복도를 바라봤다. 모든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지만, 오히려 그 빛이 공간을 더욱 공허하고 위협적으로 만들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중얼거림이 다시 한번 집안 가득 울려 퍼졌다. 이번에는 더 또렷하고, 더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진우는 이제 도망칠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아파트 안에 갇혀버린 것이다.

바로 그때, 거실 중앙에 놓인 샹들리에의 유리 장식들이 ‘쨍그랑!’ 하는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셀 수 없이 많은 유리 파편들이 진우의 주변에 비 오듯 쏟아졌다.

그리고 모든 소리가 멎었다.

정적.

깊고 무거운 정적이 진우의 아파트를 집어삼켰다. 그는 쏟아진 유리 파편들 사이에서 홀로 서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마치 하나의 거대한 장난처럼 느껴졌다. 누군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그를 가지고 노는 듯한.

문득, 그의 발치에 떨어진 유리 파편 하나가 살짝 움직였다.

아니,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파편의 날카로운 단면 위로, 검은 그림자 하나가 길게 드리워졌다.

진우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거실 중앙, 샹들리에가 있던 자리. 그 위 공중에, 어둠이 덩어리진 것처럼 보이는 형체가 떠 있었다. 형체는 희미하게 일렁이며, 마치 어둠 자체가 살아 숨 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거대하고, 불분명한 그림자였다.

그리고 그 그림자 속에서, 수많은 눈동자가 진우를 응시하고 있는 듯한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깊은 심연 속에서 솟아난 존재가, 이제 막 그의 세상으로 발을 내디딘 것처럼.

진우는 온몸이 얼어붙는 것을 느끼며, 겨우 입을 열었다.

“너… 정체가 뭐야?”

그의 목소리는 희미하고 떨렸다. 하지만 그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공중에 떠 있던 그림자가 천천히, 진우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