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 무신전: 칠장 – 강철 용비어천가】
천하제일 무신전. 그 거대한 이름만큼이나 육중한 강철 경기장은 수십만 관중의 열기로 들끓었다. 마치 살아 숨 쉬는 거신처럼, 금속 외벽에 새겨진 고대 무림 문양 사이로 섬광 같은 에너지가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다. 이곳은 단순한 투기장이 아니었다. 천하의 운명을 건, 새로운 시대의 무림 고수들이 자신의 ‘강철기인’을 타고 격돌하는 성지였다.
“다음 대결! 청룡 문파의 신예, 강태인 선수! 그의 애기(愛機), 청룡기입니다!”
경기장 중앙 홀로그램 스크린에 청년의 얼굴이 떠올랐다. 거칠게 치솟은 머리카락, 날카로운 눈빛 속에는 억누를 수 없는 야성이 꿈틀거렸다. 그의 옆에는 거대한 강철기인이 우뚝 서 있었다. 비늘처럼 겹겹이 이어진 청록색 장갑은 은은한 빛을 발했고, 어깨 위에는 용의 머리를 형상화한 듯한 장식이 솟아 있었다. 날렵하면서도 압도적인 존재감. 이름 그대로, 하늘을 나는 푸른 용의 형상이었다.
“이에 맞서는 노장! 흑철 문파의 묵호 대사부! 그리고 그의 흑철검귀입니다!”
홀로그램이 바뀌고,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노인의 초상이 나타났다. 얼핏 보면 인자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눈빛은 심연처럼 깊고 강인했다. 그의 기인, 흑철검귀는 청룡기와는 대조적으로 육중하고 묵직한 형태였다. 검은 철갑은 흡수하듯 빛을 삼켰고, 양팔에는 거대한 검날이 일체형으로 장착되어 있었다. 마치 땅에서 솟아난 악귀처럼, 그 자체로 재앙을 예고하는 듯했다.
경기장 바닥이 열리고, 양쪽에서 거대한 리프트가 강철기인을 끌어올렸다. 굉음과 함께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청룡기는 가볍게 착지하며 푸른 에너지를 발산했고, 흑철검귀는 땅을 짓누르듯 위압적인 자세로 전장에 섰다.
강태인의 조종석, 그의 손은 조용히 컨트롤러를 쥐고 있었다. 온몸의 신경이 강철기인의 움직임 하나하나와 연결된 듯했다. 그의 시야에 묵호의 흑철검귀가 가득 찼다. ‘묵호 대사부… 흑철검귀의 검결은 천하제일이라 불리지.’ 그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하지만 두려움은 잠시, 승부에 대한 갈망이 더 크게 타올랐다.
“결전, 시작합니다!”
심판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묵호의 흑철검귀가 움직였다. 그 육중한 덩치와 어울리지 않는 맹렬한 속도였다. 거대한 검날이 땅을 가르며 돌진하는 모습은 흡사 날뛰는 흑룡 같았다.
“젠장, 빠르잖아!”
강태인은 본능적으로 외쳤다. 그의 청룡기는 옆으로 미끄러지듯 회피하며 흑철검귀의 첫 공격을 피했다. 쿵! 흑철검귀의 검날이 경기장 바닥에 꽂히자, 단단한 강철 지반에 거대한 균열이 생겨났다. 진동이 조종석까지 전해져 강태인의 몸이 흔들렸다.
‘무영섬(無影閃)! 그림자도 없이 베는 검이라니… 말도 안 돼!’
묵호는 그의 고유 무공인 무영섬을 강철기인에 접목시켜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었다. 보통 강철기인에게 필요한 예열 시간이나 조작의 섬세함을 무시한 채, 오직 순수한 내공과 무의 경지로 기체를 지배하는 것이었다.
“피하는 것밖에 못 하느냐, 애송이!”
묵호의 음성이 조종석 내부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단순한 음성 송출이 아니었다. 내공이 실린 듯, 강태인의 고막을 찢을 듯한 울림이었다.
강태인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떴다. 그의 눈빛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도망칠 순 없어. 청룡 문파의 강태인은 쫄보가 아니야!’
“웃기시네! 이제부터 진짜 시작입니다, 대사부님!”
청룡기에서 푸른 섬광이 터져 나왔다. 강태인은 자신의 내공을 기체의 추진기와 동력원에 쏟아부었다. 그 순간, 청룡기는 마치 경공술을 익힌 무인처럼 허공으로 솟구쳤다. 발밑에는 푸른 기운의 잔상이 길게 꼬리를 물었다.
“비천각(飛天脚)!”
강태인은 공중에서 몸을 비틀어 청룡기의 한쪽 다리를 흑철검귀의 머리 위로 강하게 내리찍었다. 단순한 킥이 아니었다. 발끝에 청룡의 기운이 깃들어 있었다. 묵직한 발차기가 흑철검귀의 머리 부분을 강타하자, 묵직한 굉음과 함께 철갑이 움푹 파였다.
“이 정도 가지고는 흠집도 안 난다!”
묵호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흑철검귀의 검날을 휘둘러 공중에 떠 있는 청룡기를 베어 넘기려 했다. 강태인은 간발의 차이로 옆으로 굴러 떨어지며 착지했지만, 그 움직임은 마치 무림의 ‘나선각(螺旋脚)’처럼 유려하고 빨랐다.
양 기체가 바닥에 착지한 순간, 강태인은 쉴 틈 없이 거리를 좁혔다. 청룡기의 양팔에 달린 손목 부분에서 날카로운 칼날이 솟아나왔다. 청룡문파의 비전 무기, ‘용아검(龍牙劍)’이었다.
“간다! 청룡칠검(靑龍七劍), 제1식!”
강태인은 자신의 내공을 용아검에 불어넣었다. 푸른 기운이 칼날을 휘감았고, 청룡기는 그림자처럼 흑철검귀의 측면을 파고들었다. 눈에도 보이지 않는 속도로 일곱 번의 참격이 이어졌다. 챙! 챙! 챙! 챙! 챙! 챙! 챙! 금속이 부딪히는 끔찍한 소리가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흑철검귀의 단단한 검은 철갑이 용아검에 의해 깊게 긁히고 찢겨 나갔다. 틈만 보이면 파고들어 핵심 동력원이나 관절부를 노리는 강태인의 공격은 흡사 치명적인 비수와 같았다.
“제법이군, 애송이!”
묵호는 피식 웃었다. 노인의 웃음소리에는 비웃음이 아닌, 오랜만에 진정한 적수를 만난 듯한 쾌감이 섞여 있었다. 흑철검귀는 묵직한 몸을 돌려 강태인의 맹공을 막아냈다. 그의 거대한 검날은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수행하며 청룡기의 움직임을 봉쇄하려 했다.
“하지만 나의 검은… 너의 용보다 빠르다!”
묵호는 흑철검귀의 팔을 휘둘러 강태인의 용아검을 쳐냈다. 엄청난 힘에 강태인의 청룡기가 뒤로 밀려났다. 그 순간, 묵호의 흑철검귀는 검날을 일직선으로 뻗으며 전방으로 내질렀다.
“흑철만검(黑鐵萬劍), 제3식, 절명참!”
단 한 번의 휘두름이었지만, 그 안에는 만 번의 검격이 응축되어 있는 듯했다. 검은 기운이 흑철검귀의 검날을 감쌌고, 마치 거대한 먹빛 파도처럼 강태인의 청룡기를 집어삼키려 했다.
“크윽!”
강태인은 눈을 질끈 감았다. ‘피할 수 없어… 저건 단순한 공격이 아니야. 내공을 실어 공간을 베어내는 초식…!’
그의 조종석에서는 경고음이 미친 듯이 울렸다. 청룡기의 장갑이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공격이라는 신호였다. 하지만 강태인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숙이 자신의 내공을 기체에 불어넣었다.
‘그래, 이게 나의 방식이다!’
푸른 용의 기운이 청룡기 전신을 휘감았다. 강태인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흑철검귀의 절명참에 맞섰다. 청룡기의 두 팔이 앞으로 뻗어 나갔고, 용아검은 찬란한 푸른빛을 내뿜으며 묵호의 검기를 가로막았다.
“청룡 비승참(靑龍飛昇斬)!”
강태인의 기체가 마치 승천하는 용처럼 솟구쳐 오르며, 두 용아검을 교차시켜 거대한 엑스(X)자 형태의 참격을 날렸다. 푸른빛과 검은빛이 격렬하게 충돌하며 경기장 중앙에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앙!
충격파가 관중석까지 전해져 왔다. 경기장 전체가 흔들렸고, 거대한 홀로그램 스크린이 일순간 지지직거리며 암전되었다. 폭발의 섬광이 가라앉자, 연기 속에서 두 강철기인의 형상이 서서히 드러났다.
청룡기는 한쪽 팔의 용아검이 부러지고, 어깨 부분의 장갑이 녹아내려 있었다. 푸른 에너지가 불안정하게 깜빡였다. 하지만 강태인의 조종석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묵호의 흑철검귀 역시 상황은 좋지 않았다. 거대한 검날에는 깊은 균열이 생겼고, 왼쪽 다리 부분이 심하게 파손되어 기체가 약간 기울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 위압적인 기세는 여전했다.
두 강철기인은 폭발의 여파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강태인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온몸의 내공을 쥐어짜 낸 터라 기진맥진했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묵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후후… 이 정도일 줄이야. 천하제일 무신전이 괜히 명성을 얻는 것이 아니었군.”
묵호의 음성은 이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져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더욱 무게감을 더했다.
“나의 절명참을 정면으로 받아내다니… 네가 청룡 문파의 신예라는 것을 인정해야겠구나, 강태인.”
묵호의 칭찬에 강태인은 묵묵히 기체를 재정비했다. 그의 내공은 바닥났지만, 아직 그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천하의 운명이 걸린 이 대회에서, 그는 결코 물러설 수 없었다.
묵호의 흑철검귀가 천천히 움직였다. 파손된 다리를 끌며, 그는 다시 검날을 강태인에게 겨눴다. 그의 눈빛에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투지가 타올랐다.
“하지만 겨우 한 번 버텨낸 것으로 만족하지 마라. 나의 검은… 아직 더 깊은 곳까지 닿을 수 있으니!”
흑철검귀의 검날에서 검은 기운이 다시 피어올랐다. 이번에는 훨씬 더 농밀하고 압도적인 기운이었다. 묵호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다음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강태인은 자신의 조종석에 꽉 앉았다. ‘젠장… 저게 진짜였나…!’ 그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패배는 있을 수 없었다. 여기서 무릎 꿇는다면, 이 무신전의 승자가 될 수 없었다.
“해보시죠, 대사부님! 저도… 아직 보여드릴 게 많으니까!”
청룡기의 불안정한 푸른빛이 다시 격렬하게 타올랐다. 부러진 용아검의 파편이 바닥에 떨어져도, 강태인의 기개는 꺾이지 않았다. 이젠 순수한 의지와 투지로 싸워야 할 시간이었다.
천하제일 무신전. 그들의 싸움은 이제 막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