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제1장: 흔들리는 일상, 깨어나는 감각

밤은 언제나 고요했다. 적어도 김현우의 1301호에서는 그랬다. 낡았지만 관리가 잘 된 아파트, 바깥세상의 소란이 침범하지 못하는 아늑한 공간. 현우는 익숙하게 컵라면 용기를 뜯어 뜨거운 물을 부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면발을 바라보며 그는 지루한 하루의 끝을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TV에서는 심야 뉴스가 나지막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거실 한쪽 벽을 차지한 책장에는 그의 조부가 물려준 빛바랜 무협지들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그는 가끔씩 그 책들 사이에서 먼지 쌓인 비급 같은 것을 발견하곤 했지만, 늘 실없는 농담쯤으로 치부하곤 했다. 그의 조부는 늘 기(氣)니, 내공(內功)이니 하는 고리타분한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으니까.

“이젠 하다 하다 컵라면에도 귀신이 들렸나.”

현우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방금 전, 분명히 식탁 위에 올려둔 젓가락이 ‘딸깍’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주워 올려놓은 지 1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현우는 피곤함 탓이겠거니, 애써 무시하며 젓가락을 다시 집어 들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콰앙!’

주방 싱크대 위, 컵을 보관하는 찬장 문이 난데없이 활짝 열리더니 둔탁한 소리를 내며 벽에 부딪혔다. 현우는 깜짝 놀라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심장이 발밑까지 쿵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뭐야? 바람이 이렇게 셀 리가 없잖아.”

그가 살짝 몸을 웅크린 채 주방을 노려봤다. 베란다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에어컨도 꺼져 있었다. 그럼 저 문은 도대체 어떻게…? 의아함이 공포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현우는 본능적으로 몸에 한기가 쫙 도는 것을 느꼈다. 피부 위로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젠장… 요즘 너무 야근해서 헛것이 보이나.”

그는 애써 침착한 척 찬장 문을 닫았다. 낡은 문짝이라 제대로 닫히지 않고 살짝 벌어져 있었지만, 일단은 괜찮았다. 그는 다시 컵라면을 먹으려 했다. 굳게 닫힌 거실 창문 틈새로 어디선가 찬 바람이 스며드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동시에, 현우의 귓가에 윙윙거리는 낮은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비명 같은, 혹은 흐느끼는 듯한 소리였다.

“환청이군, 환청이야.”

그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조부가 생전에 말했던 ‘정신 수양’이니 ‘기혈 순환’이니 하는 것들을 더 열심히 해볼까 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현우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의 몸 안에서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어떤 감각이 깨어나는 듯한 섬뜩한 기분이었다.

어둠 속에 가려져 있던 희미한,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무언가’가 그의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형체가 아니었다. 마치 일렁이는 아지랑이 같으면서도, 동시에 차갑고 불쾌한 기운을 뿜어내는 검붉은 연기 같았다. 그 연기는 찬장 문 주위를 맴돌다가, 이내 천천히 현우 쪽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젠장, 설마 진짜 귀신…?”

그는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조부의 유품인 오래된 목각 인형이 그의 서재 책상 위에서 ‘툭’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인형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책상 위에서 미끄러지듯 굴러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현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라면 냄비가 식탁 위에서 ‘덜컹’ 흔들렸다. 그 검붉은 기운이 더욱 짙어지고 강렬해지는 것을 느꼈다. 더 이상 환청이나 착각이 아니었다. 분명히,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실이었다.

“거기, 누구냐!”

자신도 모르게 외침이 터져 나왔다. 목소리는 떨렸지만, 왠지 모르게 몸 안에서 뜨거운 기운이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조부의 말처럼, 수년간 무의식중에 행했던 ‘내공 수련’이 위기 속에서 반응하는 것일까?

갑자기, 거실 한가운데에 놓여 있던 플라스틱 의자가 ‘끼이익’ 소리를 내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천천히, 그리고 흔들림 없이, 의자는 현우의 눈앞까지 다가왔다. 검붉은 기운이 의자 주위를 휘감는 것이 보였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의자를 조종하는 것 같았다.

“물러서라!”

현우는 무의식적으로 조부가 가르쳐 주었던 자세를 취했다. 왼손은 앞으로 내밀고, 오른손은 허리에 댔다. 복부에 힘이 들어가자 온몸의 기운이 한 점으로 모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의 손끝에서, 아주 미약하지만 따뜻한 기운이 맴도는 것을 느꼈다.

의자가 현우의 얼굴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했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충격은 오지 않았다. 대신, ‘탁!’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의자가 바닥으로 추락하는 소리가 들렸다.

현우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왼손이 허공에 뻗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바닥에 나뒹구는 플라스틱 의자가 보였다. 의자의 다리 한쪽이 부러져 있었다. 방금 전, 의자가 돌진해왔을 때, 그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마치 벽처럼 막아낸 것이다. 그의 손바닥에서는 찌릿한 통증과 함께, 설명할 수 없는 뜨거운 기운이 아직도 맴돌고 있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그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분명히 그는 의자를 잡지 않았다. 그저 손을 뻗었을 뿐인데, 마치 투명한 장벽이라도 친 것처럼 의자를 막아낸 것이다. 조부가 늘 말했던 ‘기의 운용’이 이런 것일까?

그 순간, 아파트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진동이 느껴졌다. 거실의 모든 조명이 깜빡이더니 이내 완전히 꺼져버렸다. 암흑 속에서, 검붉은 기운은 더욱 선명하게 빛났다. 이제 그 기운은 하나의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희미하게 인간의 형상을 띠는, 분노와 슬픔이 뒤섞인 듯한 기괴한 형상이었다.

현우는 숨을 들이켰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었다. 이 기괴한 현상과, 이 알 수 없는 존재가 자신을 분명히 노리고 있었다. 그의 조부가 남긴 무협지 속 이야기들이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네 정체가 뭐냐.”

암흑 속의 형상은 대답 대신, 거실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그의 오래된 가보, 백자 도자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도자기는 마치 거대한 망치에라도 얻어맞은 듯, 산산조각 나며 굉음과 함께 박살이 났다.

현우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 도자기는 조부에게서 물려받은 유일한 가보이자, 그의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오던 물건이었다. 그 안에 담긴 ‘기운’ 때문에 조부가 아꼈던 물건.

이 모든 것이, 이 모든 분노와 기괴함이, 단순히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폴터가이스트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현우는 직감했다. 무언가 더 깊은, 어쩌면 그의 가문과 관련된 과거의 그림자가 이 현대 도시에 나타난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몸 안에서, 잠들어 있던 ‘기’가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평범한 직장인이 아니었다. 그의 심장 속에서, 오랫동안 잊혔던 무림의 피가 뜨겁게 끓어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