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등짝이 내동댕이쳐졌다. 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폐 속의 공기가 억지로 밖으로 토해졌다. 머릿속이 핑글핑글 돌았다. 눈을 깜빡이자 뿌옇던 시야가 조금씩 선명해졌다. 핏물과 먼지로 범벅이 된 천장이 보였다. 그리고 그 천장을 가득 채운, 악마처럼 웃고 있는 얼굴.
“강민준. 네 꼴이 말이 아니구나.”
이선우. 내 친구 이선우. 아니, 나의 지옥. 그의 낯선 목소리가 귓전을 후벼 팠다. 내가 평생을 믿고 모든 걸 바쳐왔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우리의 꿈, 우리의 기술, 우리의 미래. 그 모든 것을 손에 쥐여주고도 부족했는지, 그는 내 목숨까지 탐했다.
“선우야… 왜…”
갈라진 목소리가 겨우 터져 나왔다. 이미 늦은 질문이었다. 나는 이곳에 왜 와 있는지, 왜 내 손발이 묶여있는지, 왜 이선우가 나를 비웃고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내가 개발한 인공지능 코어 기술 ‘프로메테우스’를 가로채기 위해 나를 모든 죄의 중심으로 몰아넣었다. 횡령, 기술 유출, 심지어 살인 교사까지. 언론은 나를 ‘희대의 악인’으로 만들었고, 법정은 내게 ‘무기징역’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이제, 이곳은 폐기된 산업시설 지하, 내 생의 마지막 순간이 될 장소였다.
“왜라니? 민준아, 그게 질문이냐? 가진 자가 더 가지고 싶은 건 본능이야. 넌 너무 순진했어. 그 천재적인 머리로 사업가의 심장을 읽지 못했지.”
이선우는 넥타이를 매만지며 여유롭게 웃었다. 그 웃음이 너무나 역겨워서,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것 같았다.
“프로메테우스는 내 거야.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만들었어… 네가 아니었으면 나는…”
“그래, 네가 다 만들었지. 하지만 그걸 세상에 내놓고, 사업을 확장하고, 거대한 제국을 만들 수 있었던 건 나 덕분이야. 넌 그저 연구실에 틀어박혀 코드나 짜는 병신이었고. 이제 그 코어는 내 이름으로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될 거다. 네 이름은? 아무도 기억 못 하겠지.”
이선우는 내 뺨을 발로 툭 찼다. 살이 찢어지는 고통보다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배신감이 더 쓰라렸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저주를 외쳤다. 죽어서도 너를 용서하지 않으리라. 지옥 끝까지 쫓아가 너를 찢어 죽이리라.
“이제 편안히 잠들어, 내 오랜 친구. 네가 없는 에덴은 훨씬 더 아름다울 거야.”
그의 손짓에 건장한 사내 둘이 내게 다가왔다. 차가운 흉기가 목에 닿는 감각. 날카로운 칼날이 피부를 가르고, 뜨거운 피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내 시야는 이선우의 만족스러운 미소에 고정된 채 점점 어두워졌다. 마지막 순간, 머릿속에서 섬광처럼 스쳐 지나간 생각은 단 하나였다.
‘이선우… 너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
눈을 떴을 때, 천장은 낯설지 않았다. 낡았지만 익숙한 자취방의 천장. 형광등이 깜빡이며 어슴푸레한 빛을 뿌렸다. 손을 들어 눈을 비볐다. 손에 느껴지는 감촉이 이상했다. 차가운 쇳덩이의 감각. 손바닥을 펼치자, 손금 한가운데 박혀있던 작은 펜던트가 보였다. 어릴 적 어머니가 주셨던, 투박한 은색 펜던트. 나는 이걸 오래 전에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손바닥에 선명하게 박혀있었다. 마치 피부의 일부처럼.
벌떡 일어났다. 온몸의 근육이 삐걱거렸다. 뻐근한 두통이 몰려왔다. 죽음의 순간에 느껴졌던 극심한 고통은 사라지고 없었다.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꿈인가? 아니, 생생했다. 이선우의 비웃음, 칼날의 차가움, 피의 비린내. 모든 것이 너무나 현실적이었다.
비틀거리며 방을 둘러봤다. 낡은 책상, 꽂혀있는 전공 서적들, 어지럽게 널려있는 회로도. 몇 년 전의 내 모습 그대로였다. 휴대폰을 찾아 액정을 켰다.
[20XX년 5월 12일]
나는 숨을 들이켰다. 5월 12일. 7년 전. 내가 이선우와 처음으로 ‘에덴 테크’라는 회사를 세우기로 결의했던 날. 그날 밤, 우리는 술잔을 기울이며 미래를 이야기했고, 나는 순진하게도 그에게 ‘프로메테우스’의 초기 구상도를 보여주었다. 그게 모든 비극의 시작이었다.
나는 돌아온 것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7년 전으로.
피식,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광기 어린 웃음이었다. 온몸의 세포가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기회다. 신이 내게 준 마지막 기회. 지옥에서 돌아온 강민준은 더 이상 과거의 순진한 천재가 아니었다.
‘이선우. 네가 내게 지옥을 선사했으니, 나는 너에게 악마가 되어주마.’
손바닥의 펜던트를 꽉 쥐었다. 차가운 은색 금속이 뜨겁게 느껴졌다.
***
그날 밤, 나는 잠들지 않았다. 7년의 기억을 되짚었다. 이선우의 모든 거짓말, 배신, 비열한 술책, 그리고 그의 탐욕스러운 야망까지. 미래의 모든 정보는 이제 나의 무기였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이선우를 내 인생에서 완벽하게 제거하는 것이었다.
“민준아! 이봐, 강민준! 너 어딨어? 약속 시간 다 됐잖아!”
다음 날 아침,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이선우. 7년 전의 그는 아직 때 묻지 않은, 열정 넘치는 청년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구역질이 났다.
“무슨 일이야, 선우야.”
나는 최대한 평온한 목소리로 그를 맞았다. 하지만 내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무슨 일은! 오늘 중요한 투자자 미팅 있는 날이잖아! 에덴 테크의 시작이라고! 벌써 다 잊었어? 프로메테우스 설명 준비는 다 됐어?”
그는 흥분해서 떠들어댔다. 과거의 나는 이 모습에 감동하고 설렜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알았다. 그의 눈빛에는 순수한 열정 뒤에 숨겨진 욕망이 번뜩인다는 것을.
“선우야. 할 말이 있어.”
나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이선우의 얼굴에 의아함이 스쳤다.
“무슨 소리야? 지금 농담할 시간 없어. 빨리 준비하고 나가자!”
“에덴 테크, 나는 참여 안 해.”
침묵이 흘렀다. 이선우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민준아, 너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장난해? 우리가 밤새워 구상한 우리의 꿈, 프로메테우스! 이제 막 시작인데!”
“프로메테우스는 내 꿈이었어. 너와는 상관없어.”
내 목소리에는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다. 이선우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이내 분노로 타올랐다.
“이봐, 강민준! 갑자기 왜 이래? 어제까지 좋았잖아! 이 중요한 시점에 지금 나보고 발을 빼라고? 제정신이야?”
“나는 너와 함께할 수 없어. 너의 방식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했으니까.”
나는 거짓말을 했다. 너의 방식이 아니라, 너라는 존재가 나를 파멸로 이끌 것이라는 진실을 삼킨 채.
“내 방식? 야, 네 기술만으로는 아무것도 못 해! 그걸 세상에 내놓고 돈으로 만들 수 있는 건 나뿐이라고!”
과거의 이선우는 아직 자신이 완벽하게 가면을 쓰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는 그 모든 것이 투명하게 보였다.
“그럼 너 혼자 해 봐. 난 내 길을 갈게.”
나는 냉정하게 돌아섰다. 이선우는 한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분에 못 이겨 소리를 질렀다.
“후회할 거다, 강민준! 이대로 사라져 버려! 네 기술, 세상에 나오지도 못할 거라고!”
나는 그의 저주를 뒤로하고 방을 나섰다. 어깨에 짊어졌던 무거운 짐 하나가 벗겨진 듯 홀가분했다. 하지만 동시에, 피할 수 없는 싸움의 서막이 올랐음을 알았다.
***
나는 이선우 없이, 오로지 나 혼자서 ‘프로메테우스’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물론, 미래의 지식을 활용해 더욱 완벽하고 안전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기존보다 몇 배는 더 빠르고, 효율적이며, 보안에 강력한 AI 코어를 만들었다. 이전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투자자 미팅 대신, 나는 조용히 기술 개발에만 몰두했다. 섣불리 회사를 설립하지 않고, 특허를 완벽하게 보호하고, 핵심 인력들을 내가 직접 선별했다.
이선우는 내가 없는 ‘에덴 테크’로 홀로 투자자들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그는 ‘프로메테우스’의 핵심 기술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었다. 그저 껍데기만 가지고 떠벌릴 뿐이었다. 내가 7년 전 그에게 보여줬던 어설픈 초기 구상도를 가지고는 그 누구도 설득할 수 없었다. 이선우의 ‘에덴 테크’는 겉만 번지르르한 빈 껍데기 회사로 전락했다.
나는 과거에 그가 저지른 사소한 비리들과 탐욕스러운 행동들을 기억해냈다. 그때는 친구라고 넘어갔던 일들이, 이제는 그의 발목을 잡을 약점이 되었다. 나는 익명으로 그의 과거를 파헤쳐 언론에 흘렸다. 작은 기업들의 기술을 가로채려 했던 시도, 투자자들을 기만하려 했던 행위 등. 그에게는 치명적이지 않았지만, 그의 평판에는 흠집을 냈다.
이선우는 점차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과거의 내가 차지했던 자리에 자신이 올라서려 했지만, 그의 야망은 번번이 좌절되었다. 그는 자신이 왜 성공하지 못하는지 몰랐다. 내가 없어서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는 듯했다. 그는 자신의 능력 부족을 깨닫지 못한 채, 세상 탓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선우에게서 연락이 왔다.
“민준아… 오랜만이다.”
그의 목소리에는 예전의 오만함 대신 낯선 절박함이 묻어 있었다.
“무슨 일이야, 선우야.”
“할 말이 있어. 너 혹시… 새로운 프로젝트 하는 거 있냐? 요즘 네 이름이 조금씩 들리던데…”
그는 애써 담담한 척했지만, 내 귀에는 그의 떨리는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개인적인 일이야. 너와 공유할 만한 건 없어.”
“야! 우리가 어떤 사이인데! 예전처럼 같이 하면 안 될까? 내가 예전에 실수한 건 미안해. 다시 한번 우리… 같이 꿈을 이뤄보자.”
뻔뻔한 사과. 그는 내가 무엇을 아는지, 무엇을 모르는지 알 수 없으니, 일단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고 다시 나를 이용하려 들었다. 과거의 나는 그 뻔뻔함에 또다시 속아 넘어갔을 것이다.
“늦었어, 선우야. 너에게 두 번 다시 기회를 줄 생각은 없어.”
“강민준! 너 지금 나를 무시하는 거야? 이대로는 못 참아! 내가 너 없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네가 만든 기술, 내가 더 잘 활용할 수 있어!”
그는 결국 본색을 드러냈다. 욕망으로 가득 찬 그의 목소리에 섬뜩함 대신 역겨움이 치밀었다.
“네가 감히 내 이름을 입에 올릴 자격조차 없어. 너는… 내게 아무것도 아니니까.”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몇 주 후, 드디어 내가 만든 ‘새로운 AI 코어’가 세상에 공개되었다. 이름은 ‘아크(ARC)’. 나는 ‘강민준 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작은 규모지만 탄탄한 기술력을 가진 회사를 세웠다. 아크는 기존의 모든 AI 기술을 압도하는 혁신적인 성능을 보여주었다. 전 세계는 아크의 등장에 열광했다.
이선우는 내 성공을 보고 미쳐버렸다. 그는 내게 끊임없이 연락하고 찾아왔다. 애원하다가도 분노하고, 다시 애원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민준아! 네가 만든 그 아크… 원래는 내가 투자받으려던 거 아니었냐? 그거 우리 거잖아! 네가 나에게 보여줬던 그 기술! 같이 하자고!”
그의 목소리는 절규에 가까웠다. 나는 그를 만났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한 카페에서.
“선우야. 잘 들어. 아크는 너와 아무 상관없어. 그리고 나는 너에게 그 어떤 기술도 보여준 적 없어. 너는 내게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거짓말 마! 네가 예전에 나한테 프로메테우스 보여줬잖아! 그거랑 아크랑 뭐가 달라? 이름만 바꾼 거 아니야?”
그의 눈은 광기로 번들거렸다. 나는 비릿하게 웃었다.
“프로메테우스? 그건 네가 만들어낸 환상이지. 난 그런 거 만든 적 없어.”
나는 철저하게 부정했다. 과거의 내가 보여줬던 구상도는 이미 증거가 될 수 없었다. 나는 그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았고, 모든 것을 내 머릿속에서 다시 시작했으니까. 게다가 아크는 프로메테우스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화한 기술이었다.
“거짓말! 넌 날 속이고 있어! 네 기술을 빼앗아간 건 바로 너야!”
그는 테이블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되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선우야. 네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네가 무엇을 잃었는지 똑똑히 기억해. 넌 평생 나를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며 후회하게 될 거야.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채,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부러워하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선우는 멍하니 나를 올려다봤다. 그의 눈에 절망이 서렸다.
“강민준! 감히… 감히 나를 이렇게 만들다니! 너도 똑같이 당할 거야! 반드시!”
그의 마지막 외침은 비명에 가까웠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카페를 나섰다.
이선우는 그 후로도 여러 번 내 기술을 모방하려 하거나, 나를 모함하려 했다. 하지만 나의 철저한 준비와 그의 형편없는 능력, 그리고 이미 바닥으로 떨어진 그의 평판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미래의 모든 시장 변화와 기술 흐름을 꿰뚫고 있었고, 그는 그저 나를 쫓아다니는 낡은 그림자에 불과했다.
결국, 이선우는 사기 혐의로 고소당했다. 그가 다른 투자자들을 속여 돈을 가로채려 했던 과거의 행적들이 내가 흘린 정보와 결합되어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익명으로 모든 증거를 제출했고, 그가 과거에 저질렀던 작은 범죄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그를 집어삼켰다. 그는 결국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되었다.
뉴스 속보로 그의 체포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느끼지 못했다. 복수는 달콤했지만, 동시에 공허했다. 내가 원했던 것은 그의 파멸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완벽하게 파멸했다.
내 손바닥의 펜던트를 만졌다. 여전히 차가웠다.
‘이선우. 너는 내게 지옥을 주었고, 나는 너에게 지옥을 돌려주었다.’
이제 강민준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내 가슴속 깊은 곳에는, 배신당한 자의 상처와 함께 차가운 칼날 같은 복수의 기억이 영원히 새겨져 있을 것이다. 나는 과거의 나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제 나는 그저, 완벽하게 성공한, 그리고 영원히 상처받은 한 인간일 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