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나 넥서스 학원, 그 이름만큼이나 빛과 그림자가 극명하게 교차하는 곳. 높이 솟은 투명한 크리스탈 타워들은 도시의 네온사인과 함께 밤하늘을 수놓았고, 마법과 기술이 융합된 홀로그램 강의실에서는 늘 진부한 ‘고대 마법 윤리’ 수업이 진행 중이었다.
“…따라서, 생명 마법의 근원적 목적은 치유와 성장에 있으며, 어떠한 존재의 근간을 뒤틀거나 인위적으로 변형하는 행위는 고대 마법법 제 7조 4항에 의거, 최악의 금기로 규정됩니다.”
교수의 지루한 음성이 류진의 뉴럴 링크를 통해 들어왔지만, 이미 그의 시야는 책상 위 허공에 띄운 증강현실 인터페이스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곳에는 어제 세라가 보내온 암호화된 메시지가 깜빡이고 있었다.
`[세라]: 류진, 찾았어. 내가 말했던 그 노이즈. 지하 7층 폐쇄 구역에서 이상한 패턴을 감지했어. 단순한 전자기 간섭이 아냐.`
류진은 검지 손가락으로 가볍게 허공을 쓸어 메시지를 닫았다. 폐쇄 구역이라니. 아르카나 넥서스는 지하로 깊게 파고들어간 학원이었고, 층수가 내려갈수록 고대 유적지나 위험한 실험실 구역 같은 비밀스러운 장소들이 즐비하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특히 지하 7층은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려진 곳이었다.
“류진 군, 제 강의에 집중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당신의 미약한 마력 제어 능력으로는 졸업이 요원할 텐데요.”
교수의 레이저 시선이 류진의 신경망을 꿰뚫는 듯했다. 류진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잠시 다른 생각에 빠졌습니다.”
교수는 콧방귀를 뀌며 다시 강의로 돌아갔다. 류진은 조용히 왼쪽 눈의 광학 임플란트를 이용해 세라에게 답장을 보냈다.
`[류진]: 지금? 미쳤어? 교수님한테 걸리면 기계 미화 부서 청소 한 달이야.`
`[세라]: 그게 중요한 게 아냐. 이 에너지 패턴, 뭔가 이상해. 내가 예전에 학원에서 쓰는 마나 코어 에너지를 역추적하다가 발견했던 노이즈랑 비슷해. 이건, 절대 자연적인 게 아냐.`
세라는 이 학원 최고의 해커이자 마법 공학 천재였다. 그녀의 말은 언제나 과장이 없었다. 류진은 한숨을 쉬었다. 빌어먹을 호기심. 이게 늘 문제였다.
`[류진]: 알겠어. 30분 뒤에 지하 5층 기계실에서 봐. 내가 경비 로봇 동선 좀 바꿔놓을게.`
수업이 끝나자마자 류진은 빛의 속도로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복도를 가득 채운 홀로그램 학생들과 재잘거리는 인공지능 보조 교사들 사이를 헤치고 지하 통로로 향했다. 이 거대한 학원의 모든 시스템은 결국 마나 코어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그 코어의 에너지가 ‘이상하다’는 건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지하 5층 기계실은 언제나처럼 쿵쿵거리는 소음과 차가운 금속 냄새로 가득했다. 거대한 송풍구와 에너지 파이프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곳은 왠지 모르게 음침한 분위기를 풍겼다. 세라는 이미 입구에서 류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언제나처럼 푸른빛 데이터가 흐르고 있었다.
“늦었네, 마법사님. 교수님한테 잡혀서 설교라도 들었어?” 세라가 비릿하게 웃었다.
“아니, 네 덕분에 졸업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류진이 투덜거렸다. “그래서, 뭘 찾았다는 건데?”
세라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손목에 착용한 데이터 패드를 조작했다. 패드 위로 학원의 지하층 구조도가 나타났다. “여기, 지하 6층에서 7층으로 내려가는 통로가 있어. 원래는 학원 초기 건설 때 쓰던 자재 운반용 리프트 통로인데, 지금은 공식적으로 폐쇄되고 지도에서도 삭제됐어.”
“삭제됐다고? 왜?”
“몰라. 하지만 내가 감지한 노이즈는 정확히 이 통로 끝에서 오고 있어. 단순히 낡아서 폐쇄된 통로라고 하기엔 너무 깊어.” 세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 “여기 지도에 보면, 이 통로가 지하 7층의 ‘핵심’ 구역과 연결돼 있어. 학원 마나 코어의 바로 아래야.”
류진은 침을 꿀꺽 삼켰다. 마나 코어 아래? 그곳은 학원의 모든 마법 에너지와 시스템이 공급되는 심장이었다. 거기에 ‘금기’ 같은 게 숨겨져 있다면…?
“어떻게 내려갈 건데? 폐쇄됐으면 문도 잠겨 있을 거 아니야?” 류진이 물었다.
“아, 그건 걱정 마. 내가 우회 경로로 이쪽 문을 열어뒀어.” 세라가 씨익 웃으며 손짓했다. 그녀의 데이터 패드에 녹색 불빛이 깜빡였다. 거대한 금속 문이 굉음과 함께 천천히 옆으로 미끄러졌다. 안에서는 먼지 냄새와 함께 차가운 공기가 흘러나왔다. 비상등 하나 없는 어둠이 그들을 맞이했다.
류진은 자신의 뉴럴 링크에 연결된 소형 드론을 날렸다. 드론의 라이트가 어둠을 찢고 내려가자, 낡고 녹슨 철제 계단과 거미줄 가득한 벽이 드러났다.
“진짜 고대 유적 같다.” 류진이 중얼거렸다.
“고대 유적이 아니라, 그냥 아무도 안 쓰는 오래된 통로겠지. 이 드론, 얼마나 내려갈 수 있어?”
“수십 미터는 거뜬할걸? 문제는 아래에 뭐가 있을지 모른다는 거지.”
그들은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갔다. 발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렸다. 낡은 콘크리트 벽에는 습기가 배어 있었고, 군데군데 알 수 없는 문양들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류진은 손끝에 마력을 모아 작은 빛 구슬을 만들어냈다. 빛 구슬은 어둠 속을 부유하며 길을 밝혔다.
“이봐, 벽에 이거 보여?” 세라가 손전등으로 벽을 비췄다. “고대 언어야. ‘감금’, ‘희생’, ‘정화’… 이런 단어들이 반복돼.”
류진의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정화? 무슨 정화?”
“모르겠어. 근데 이 문양들… 왠지 학원의 창립자들 초상화에 그려진 문양들이랑 비슷해.”
그들의 발걸음이 지하 7층에 닿았다. 더 이상 낡은 통로가 아니었다. 공기는 차갑고 습했지만, 동시에 알 수 없는 마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지하 깊숙한 곳에서 거대한 존재가 숨 쉬는 듯한 압박감이었다.
“노이즈가 더 강해지고 있어.” 세라가 데이터 패드를 들어 올렸다. 패드의 화면은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측정 불가능할 정도의 마력 파장이야. 이런 건… 적어도 내가 아는 한, 학원 전체의 마나 코어보다 강해.”
그때였다. 류진의 뉴럴 링크에 이상한 감각이 스쳤다. 마치 수천 개의 비명 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지는 듯한 잔향이었다. 그는 머리를 움켜쥐었다. “젠장, 이 기분 나쁜 건 뭐야?”
“공명하는 거야.” 세라의 목소리가 떨렸다. “여기서 발생하는 마력이 네 마력 회로에 직접 간섭하고 있어. 이건 단순히 강한 마력이 아니야. 뭔가… 살아있는 것에서 오는 마력이야.”
그들은 복도 끝, 거대한 금속 문 앞에 섰다. 문은 낡았지만, 그 위에는 복잡한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안의 것을 가두기 위해, 혹은 밖의 것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 흔적 같았다. 문 너머에서 쿵,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마치 거대한 심장이 뛰는 소리 같았다.
“내가 해킹해볼게.” 세라가 데이터 패드를 문에 갖다 댔다. 그녀의 손가락이 미친 듯이 허공을 휘저으며 복잡한 코드를 입력했다. 그러나 문은 요지부동이었다.
“안 돼. 물리적인 봉인이야. 마법적인 봉인이랑 섞여 있어. 게다가… 내부에서 뭔가 엄청난 힘으로 이 봉인을 강화하고 있어. 해킹으로는 무리야.” 세라가 이마의 땀을 훔쳤다.
류진은 문에 손을 얹었다. 차가운 금속 너머에서, 기분 나쁜 파동이 느껴졌다. 그가 가지고 있던 마력으로 봉인을 해제하려 하자, 문에 새겨진 마법진이 섬광을 터뜨렸다.
“으악!” 류진이 뒤로 물러섰다. 그의 손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안 돼, 류진! 저건… 단순한 봉인이 아냐.” 세라가 경고했다. “저건, 생명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봉인이야. 봉인을 풀려는 시도조차도 너의 마력을 흡수하고 있어.”
그때, 쿵, 하는 소리가 더욱 커졌다. 문틈 사이로 희미한 푸른빛이 새어 나왔다. 마치 살아있는 존재의 피부 밑에서 빛나는 혈관 같았다. 그 빛은 불규칙하게 깜빡였다. 그리고 그 빛과 함께, 기분 나쁜 속삭임이 류진의 뉴럴 링크를 파고들었다.
`살려줘…`
`…고통…`
`…자유…`
수십, 아니 수백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하나하나가 고통으로 일그러진 비명이었다. 류진은 무릎을 꿇었다. 그의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류진! 괜찮아?” 세라가 그를 흔들었다.
“이… 이건…!” 류진은 겨우 숨을 몰아쉬었다. “누군가 저 안에 있어. 셀 수 없이 많은 존재들이… 고통받고 있어.”
문틈에서 새어 나오던 푸른빛이 잠시 걷히는가 싶더니, 이내 검붉은 빛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빛 사이로, 비늘이 돋아난 거대한 무언가의 그림자가 비쳤다. 류진은 그 그림자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수많은 생명체가 뒤섞여 하나의 거대한 존재를 이루는 듯한, 끔찍한 형태였다.
문 너머에서 다시 한번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강렬한 마력 파동이 터져 나왔다. 마법진이 흔들리며 주변의 낡은 벽이 무너져 내렸다.
“튀자, 류진! 지금 당장!” 세라가 류진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이건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학원이 통째로 뒤집힐 거야!”
그들은 필사적으로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뒤에서는 거대한 존재의 숨소리 같은 마력 파동이 그들을 쫓는 듯했다. 류진은 등골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깨달았다. 학원의 빛나는 표면 아래, 이곳에는 그 어떤 고대 마법 윤리도 설명할 수 없는, 너무나도 끔찍한 금기가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금기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봉인된 유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많은 생명을 담보로 학원 전체를 지탱하는, 거대한 고통의 심장이었다.
그리고 그 심장이, 지금 막 깨어나려는 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