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김지훈! 이게 진짜 되는 거야? 심장 터지겠네!”
박민준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들떠 있었다. 김지훈은 피곤에 절은 눈을 비비며 컴퓨터 화면을 노려봤다. 코딩창에는 수천 줄의 코드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움직였다. 그들의 밤샘 노력의 결과물, ‘오라클’이 드디어 완성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걱정 마, 박민준. 내가 잠 설쳐가면서 디버깅한 건데. 안 될 리가 없지.”
지훈은 컵라면 국물을 들이키며 능글맞게 웃었다. 민준은 지훈의 어깨를 툭 쳤다.
“그래, 네 천재성은 알아줘야 해. 근데 너 이대로 가다간 진짜 쓰러진다? 좀 자면서 해.”
“네가 투자 유치 따오려면 내가 이 정도는 해줘야지. 그래야 우리 오라클이 빛을 보지.”
그들은 대학 시절부터 꿈꿔왔던 인공지능 프로젝트에 모든 것을 걸었다. 민준은 사업적 수완이 뛰어났고, 지훈은 코딩의 신이었다. 완벽한 조합이라고 모두가 입을 모았다. 내일이면 대기업 ‘제우스 테크’의 최종 투자 발표가 있는 날이었다. 이 발표만 성공하면, 그들의 미래는 탄탄대로였다.
다음 날 아침, 지훈은 눈을 떴을 때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민준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테이블 위에는 차갑게 식은 커피 잔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 했지만, 그의 심장은 이상하게 불안했다.
그는 서둘러 발표 장소로 향했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환호가 아니었다.
“김지훈 씨, 아니시죠? 박민준 대표님께서는 이미 발표를 시작하셨는데요.”
경비원의 말에 지훈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박민준 대표님? 대체 무슨 소리야?
그는 미친 듯이 발표장으로 뛰어 들어갔다. 스크린에는 그들의 ‘오라클’ 프로젝트가 화려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발표를 진행하는 박민준이 서 있었다. 그의 등 뒤로 ‘오라클 테크놀로지’라는 새로운 회사명이 박혀 있었다. 자신들의 이름을 딴.
“지금까지 여러분께 선보인 ‘오라클’은 저 박민준의 혼신의 노력으로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민준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울려 퍼졌다. 지훈의 귀에는 쇠망치 소리처럼 울렸다. 민준은 시연을 진행했다. 지훈의 손에서 태어난 코드가, 민준의 손짓 아래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김지훈!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지훈이 달려들어 민준의 멱살을 잡았다. 민준의 눈빛은 싸늘했다.
“경비원! 저 정신 나간 사람 끌어내!”
“박민준, 이 배신자 새끼! 오라클은 내가 만든 거야! 코드는 내가 짰다고!”
지훈의 절규는 허공에 흩어졌다.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그들의 눈빛에는 ‘미친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그는 끌려 나왔다. 그리고 그날 이후, 모든 것이 뒤틀렸다. 민준은 지훈을 ‘기술 탈취를 시도한 사기꾼’으로 몰았고, 언론은 그의 거짓말을 받아 적었다. 지훈의 이름은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로부터 10년. 지훈은 폐인처럼 살았다. 민준은 ‘오라클 테크놀로지’를 대한민국 최고의 IT 기업으로 키웠다. 그의 얼굴은 매일 TV와 신문 1면을 장식했다. 지훈은 낡고 허름한 지하 단칸방에서 민준의 성공을 지켜봤다. 분노는 그의 심장을 갉아먹었다.
“박민준… 네가 어떻게… 네가 어떻게 나한테…”
술병이 뒹구는 방 안, 지훈은 낡은 상자 하나를 열었다. 그 안에는 대학 시절, 그들이 함께 밤을 새우며 만들었던 ‘오라클’의 초기 프로토타입 보드가 들어있었다. 빛바랜 회로, 닳아버린 납땜 자국. 그들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지훈은 부들거리는 손으로 보드를 쓰다듬었다. 그때였다. 보드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온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몰려왔다. 시야가 일그러지고, 시간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이게… 뭐야…?”
지훈은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떴을 때, 낯선 천장이 보였다. 아니, 낯설지 않았다. 익숙한 형광등, 낡은 책상, 지저분한 이불. 여기는… 그의 옛날 작업실이었다. 10년 전, 민준과 함께 밤샘 작업을 하던 그곳.
지훈은 벌떡 일어났다. 거울 속에는 앳된 얼굴의 자신이 서 있었다. 뺨에는 컵라면 국물이 튄 자국이 그대로였다. 10년 전, 민준에게 배신당하기 하루 전의 모습.
그는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내가… 돌아왔어? 꿈인가?’
벽에 걸린 달력을 확인했다. 20XX년 5월 17일. 맞다. 내일이 바로 제우스 테크 최종 발표 날이었다. 민준이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그 날.
지훈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더 이상 폐인의 눈빛이 아니었다. 복수심으로 이글거리는, 날카로운 칼날 같은 눈빛이었다.
“박민준… 네가 내 인생을 지옥으로 만들었지. 이제 네가 그 지옥을 맛볼 차례야.”
그의 입술에서 비릿한 미소가 번졌다.
지훈은 지난 10년 동안 민준의 성공을 지켜보며 그의 모든 수를 꿰뚫고 있었다. 민준은 비열했지만, 동시에 예측 가능한 인물이었다. 그가 어떤 방식으로 오라클을 이용하고, 어떤 기업과 손잡고, 누구를 견제하며 올라갔는지. 그 모든 정보가 지훈의 머릿속에 생생하게 저장되어 있었다.
첫 번째. 오라클의 소스코드를 완전히 바꿔버려야 했다. 민준이 가져갈 핵심은 유지하되, 치명적인 약점을 심어두는 것.
두 번째. 제우스 테크 투자 유치 자체를 뒤엎어야 했다. 민준의 첫 발판을 부수는 것.
세 번째. 민준의 주변 인물들을 미리 파악하고, 그들의 약점을 이용해 그를 고립시키는 것.
“시간은 충분해. 그리고 난 모든 걸 알아.”
지훈은 컵라면 봉지를 찢어 깨끗하게 펴고, 그 위에 펜으로 빼곡하게 복수 계획을 써내려갔다. 그의 손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오히려 단단하고 확고했다.
다음 날 새벽, 민준은 잠결에 지훈을 불렀다.
“지훈아, 물 좀…”
지훈은 그를 무시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밤새도록 코드를 수정하고 또 수정했다. 겉으로는 완벽한 오라클이었지만, 핵심 기능에 숨겨진 치명적인 버그를 심었다. 특정 조건이 되면 시스템 전체가 마비되는.
오전 8시. 민준이 분주하게 짐을 챙겼다. USB를 챙기고, 노트북 가방을 들었다.
“지훈아, 이제 간다. 넌 좀 쉬어라. 발표 끝나고 돌아와서 우리 성공 기념으로 거하게 한잔하자고.”
민준은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활짝 웃었다. 그 웃음에 지훈은 속으로 역겨움을 느꼈다.
“그래, 잘 다녀와. 성공 기원할게.”
지훈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민준을 배웅했다. 문이 닫히자마자, 지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제 그의 차례였다.
“자, 박민준. 첫 번째 퍼즐 조각은 맞춰졌어.”
그의 손에는 또 다른 USB가 들려 있었다. 오라클의 원본 코드와, 민준이 제우스 테크에 제출할 자료의 예상 경로, 그리고 그의 배신을 입증할 수 있는 치명적인 증거들이 담긴.
지훈은 곧장 제우스 테크 본사로 향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와 민준의 꿈이 실현될 공간이었다.
그는 경비원에게 자신을 ‘오라클 테크놀로지 공동 창업자 김지훈’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민준의 비서에게 ‘박민준 대표님이 깜빡하고 두고 가신 중요한 자료가 있어서 전달하러 왔다’고 말했다. 10년 후의 지훈은 민준의 비서 이름까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아, 네! 김지훈 이사님 맞으시죠? 제가 대신 전달해 드릴게요.”
순진한 비서는 지훈의 손에서 USB를 받아 들었다.
“아니요, 이건 민준이가 직접 확인해야 할 만큼 중요한 자료라. 제가 직접 전해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발표장 근처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그의 확고한 태도에 비서는 어쩔 수 없이 그를 안내했다.
발표장 문이 열리고, 민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궁극의 인공지능, 오라클은…”
지훈은 민준의 비서에게 속삭였다.
“잠시만요, 비서님. 저 자료는 민준이가 이사님을 믿고 특별히 부탁한 거라고 합니다. 잠깐 발표 쉬는 시간에 USB를 노트북에 꽂아서 자료를 열어봐 달라고 하셨어요. 혹시 내용이 다른 부분이 없는지 마지막으로 확인해야 한다고요.”
지훈은 USB를 건네며 덧붙였다. “절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말고, 꼭 대표님께 직접 전달해 주시라고 했습니다.”
비서는 의심 없이 USB를 들고 민준의 노트북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정확히 10년 전, 민준이 자신의 노트북으로 오라클의 시연을 시작하기 전, 마지막으로 자료를 확인하던 그 타이밍이었다.
“자, 이제 너의 무덤을 네 손으로 파봐, 박민준.”
지훈은 씨익 웃었다.
잠시 후, 발표장 안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내 고함소리와 함께 정적이 흘렀다.
문이 열리고,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민준이 비서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이게 뭐야! 누가 이딴 파일을 내 노트북에 꽂으랬어!”
민준의 노트북 화면에는 ‘오라클’의 핵심 코드들이 무단으로 복제되었음을 입증하는 자료들, 그리고 지훈의 이름이 선명하게 박힌 공동 개발 계약서가 팝업창으로 뜨고 있었다. 게다가 민준이 다른 투자자들과 비밀리에 접촉했던 메일 기록까지.
지훈이 심어둔 파일이었다.
“지금까지 발표하신 오라클은… 박민준 씨 단독 개발이 아니었군요.”
제우스 테크의 투자팀장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민준의 눈은 지훈을 향했다. 무대 뒤편, 그림자 속에 서 있는 지훈과 눈이 마주쳤다. 지훈은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미소는 민준의 뼈 속까지 얼어붙게 만들었다.
“김… 김지훈? 네가 어떻게…”
“놀랐어, 박민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지훈은 킬킬거렸다.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제우스 테크 임원들은 술렁거렸다. 곧이어 발표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민준의 얼굴은 일그러졌고, 그의 꿈은 산산조각 났다.
민준은 그날 이후 나락으로 떨어졌다. 제우스 테크 투자 건은 백지화되었고, ‘오라클 테크놀로지’는 사기 기업이라는 오명을 썼다. 언론은 민준의 배신과 사기 행각을 대서특필했다. 10년 전 지훈이 겪었던 상황이 그대로 민준에게 되돌아온 것이었다.
지훈은 한 발 더 나아갔다. 그가 심어둔 오라클의 숨겨진 버그가 서서히 발동하기 시작했다. 민준이 이미 다른 곳에 팔아넘긴 초기 버전 오라클 시스템들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오류를 일으키며 마비되기 시작한 것이다.
“젠장! 도대체 무슨 일이야!”
민준은 매일 밤 초조함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가 어렵사리 구축했던 모든 사업 기반이 흔들렸다. 투자자들은 등을 돌렸고, 계약은 파기되었다.
어느 날, 민준은 낡은 작업실에서 홀로 앉아 있는 지훈을 찾아왔다. 그의 얼굴은 피폐해져 있었다.
“김지훈… 네 짓이지? 네가 꾸민 짓이지?”
지훈은 아무 말 없이 커피를 마셨다. 10년 전, 그가 민준에게 배신당한 바로 그 작업실이었다.
“그래. 전부 내 짓이야. 왜, 이제야 좀 기억나?”
지훈은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우린 친구였잖아! 형제 같았잖아!”
민준의 목소리에는 울분이 가득했다.
“친구? 형제? 네가 내 인생을 짓밟았을 때도 그런 말을 했어야지. 네가 내 모든 걸 훔쳤을 때도!”
지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민준의 멱살을 잡았다. 그의 눈에는 10년의 한이 서려 있었다.
“너 때문에 난 죽어라 고생했어!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손가락질했어! 네가 내 이름을, 내 꿈을, 내 인생을 통째로 훔쳐 갔다고! 이제야 좀 알겠어? 네가 나한테 뭘 했는지!”
민준은 지훈의 눈빛에서 섬뜩한 광기를 보았다. 그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오라클에 숨겨진 버그는 아주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네가 구축한 모든 시스템을 파괴할 거야. 그리고 그 원인조차 찾지 못하게 될걸? 왜냐면, 그 코드는 세상에서 나만 풀 수 있으니까.”
“미쳤어! 너 미쳤다고!”
“그래, 미쳤지. 너 때문에.”
지훈은 민준의 멱살을 놓았다. 민준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끝났어, 박민준. 네가 나한테 했던 대로, 나는 네게 똑같이 돌려준 것뿐이야.”
민준의 모든 것이 무너졌다. 그는 파산했고, 사회적으로 매장되었다. 지훈은 더 이상 민준에게 복수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의 복수는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지훈의 마음은 완전히 평화롭지 않았다. 복수심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남은 것은 공허함이었다. 그는 다시 ‘오라클’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순수한 열정으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새로운 회사를 세웠다. ‘리셋 테크놀로지’. 과거를 지우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이름이었다.
지훈은 창밖을 바라봤다. 도시의 불빛은 여전히 찬란했다. 10년 전의 그날처럼,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과거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할 테지만, 이제 더 이상 분노에 사로잡히지 않을 것이었다.
새로운 시작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