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공상과학) 독립적인 단편 소설

밤은 언제나 그랬듯 고요했다. 창밖으로는 서울의 불빛이 얇은 실크 커튼 사이로 스며들어 민준의 원룸 아파트를 은은하게 비췄다. 24층. 도시의 소음조차 희미하게 걸러지는 고층에 자리한 그의 보금자리는, 적어도 어제까지는 완벽한 평화 그 자체였다.

“후으…”

민준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새로 산 게임을 몇 시간째 붙잡고 있었더니 어깨가 뻐근했다. 리모컨을 집어 들려 손을 뻗는 순간, 탁자 위 휴대폰 옆에 놓여 있던 리모컨이 ‘스륵’ 하는 미세한 소리와 함께 1센티미터쯤 옆으로 움직였다.

“음?”

민준은 눈을 비볐다. 피곤해서 헛것을 봤나?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리모컨을 잡고 TV를 켰다. 드라마의 익숙한 오프닝 곡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자꾸 리모컨이 움직였던 자리로 향했다. 착각이겠지. 요즘 야근이 너무 많았어.

다음 날 아침이었다. 민준은 알람 소리에 눈을 떴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어제 분명 충전기에 꽂아두었던 휴대폰이 침대 아래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케이블은 팽팽하게 당겨져 끊어지기 직전이었고, 충전기 어댑터는 콘센트에서 거의 빠져 있었다.

“이게 뭐야…?”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다가 발로 찼나? 그럴 리가. 그는 잠버릇이 없는 편이었다. 게다가 휴대폰이 이렇게까지 당겨질 정도로 움직일 리도 만무했다. 찝찝했지만 출근 시간은 촉박했다. 민준은 서둘러 휴대폰을 주워 다시 충전기에 꽂고 집을 나섰다.

밤이 되자 아파트는 다시 고요해졌다. 민준은 지친 몸을 이끌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신발장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던 그의 차 키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것도 마치 누군가 던진 것처럼, 현관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벽 쪽으로 굴러가 있었다.

“누구… 없어요?”

민준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불안하게 떨렸다. 혹시 도둑? 아니, 집안은 멀쩡했다. 현관문도 잠겨 있었다. 그는 허리를 숙여 키를 주웠다. 손끝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마치 키가 떨어진 곳의 공기만 다른 계절인 양 서늘했다.

그때였다. 거실에서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민준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거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유리컵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 있었다. 방금 전까지 멀쩡히 서 있던 컵이었다. 그는 분명히 봤다. 컵이 테이블 모서리에서 스스로 밀려나 떨어지는 것을.

“이… 이게 무슨…”

민준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차가운 공기가 그의 심장을 에워싸는 듯했다. 그는 뒷걸음질 쳤다. 벽에 등을 기댔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귀신? 말도 안 돼. 24층 아파트에 무슨 귀신이야? 그는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했다.

그날 밤 민준은 잠을 설쳤다. 미세한 소리에도 잠에서 깨기를 반복했다. 새벽 2시쯤, 그는 결국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향했다. 거실은 어둠에 잠겨 있었고, 멀리서 들어오는 도시의 불빛만이 희미하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때였다. 거실 한가운데 놓인 소파가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미끄러지듯 뒤로 움직였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소파를 밀어내는 것처럼. 민준은 숨을 멈췄다. 그의 눈동자는 공포로 확장되었다. 소파가 멈춘 곳은 정확히 그의 시선을 피하는, 어두운 벽 모퉁이였다.

“나가…!” 민준은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의 손이 덜덜 떨리며 벽 스위치를 더듬었다. ‘딸깍’. 형광등이 요란하게 깜빡이더니, 기이한 파란빛과 초록빛을 번갈아 뿜어내며 겨우 켜졌다. 밝아진 거실. 소파는 여전히 벽에 붙어 있었지만,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민준은 도저히 이 아파트에 머무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휴대폰을 집어 들고 급하게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때, 휴대폰이 ‘띠링’ 하고 알림음을 울렸다. 낯선 알림이었다. ‘알 수 없는 에너지 스파이크 감지됨’.

“뭐야, 이건?”

앱을 열자, 화면에는 그의 아파트 평면도가 나타났다. 그리고 평면도 위에는 붉은색 점이 격렬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그 붉은 점은 다름 아닌 그의 침실이었다. 그리고 거실, 주방, 현관까지, 마치 무언가가 아파트 안을 배회하는 듯 붉은 점들이 이동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 점들이 지나가는 곳마다 ‘삐이이-‘ 하는 고주파 음이 화면 하단에 표시되었다. 마치 미약한 전류가 흐르는 소리 같았다.

민준은 휴대폰을 든 손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그는 방금 자신의 아파트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 정확히는 무언가 ‘살아있는 것’이 그의 아파트를 돌아다니며 공간 자체를 뒤틀고 있었다.

그 순간, 그의 침실 문이 ‘쾅’ 하고 열렸다. 잠겨 있던 문이었다. 침실 안쪽은 완벽한 어둠 속에 잠겨 있었지만, 민준은 느낄 수 있었다. 침실 안에서 어떤 ‘존재’가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는 것을. 공기는 차갑다 못해 살을 에는 듯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마치 빛의 잔상이 왜곡된 것처럼, 희미한 윤곽이 보였다. 그것은 형체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마치 시공간이 일그러진 곳에서 튀어나온 듯한, 검은 그림자이면서 동시에 빛을 흡수하는 구멍 같았다. 그 윤곽이 서서히, 아주 서서히 움직였다. 한 발짝, 두 발짝. 침실 문을 넘어 거실로 향하는 듯했다.

민준은 비명을 삼키고 뒤로 물러섰다. 휴대폰 화면의 붉은 점이 그의 침실에서 거실로, 그리고 자신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삐이이익- 삐익-‘. 고주파음이 귀청을 찢을 듯 울려 퍼졌다.

“저리 가! 저리 가란 말이야!”

민준은 온몸을 던져 현관문을 향해 달려갔다. 손잡이를 잡고 비틀었다. 잠겨 있었다. 어제 그가 잠근 그대로였다. 등 뒤에서 차가운 기운이 그의 목덜미를 휘감는 것을 느꼈다. 휴대폰 화면 속 붉은 점은 이제 그의 바로 뒤에 와 있었다.

그때, 현관문이 ‘쾅’ 하고 안쪽으로 열렸다. 잠금장치가 부서진 것이 아니었다. 마치 문 자체가 잠금장치에서 떨어져 나간 것처럼, 벽에서 분리되어 안쪽으로 꺾여버렸다. 민준은 열린 현관문 너머의 어두운 복도를 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등 뒤에서 차가운 손이 그의 어깨를 움켜쥐는 것을 느꼈다.

그 손은 마치 액체 같았다. 차갑고, 형태가 불분명하며, 그의 살갗을 파고드는 듯한 섬뜩한 감촉이었다. 민준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열린 현관문 너머의 복도가 아니라, 아파트 복도 자체가 마치 물결처럼 일렁이는 기괴한 광경이었다. 벽의 타일들이 녹아내리는 듯했고, 천장의 전등은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하며 섬뜩한 잔상을 남겼다.

복도 끝의 다른 집 문들이 마치 거울처럼 반사되며 수십 개로 늘어나 보이는 착각 속에서, 민준은 헐떡이며 난간을 향해 달려갔다. 그의 뒤에서 ‘스으으…’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바람 소리도, 기계음도 아니었다. 마치 수십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속삭이는 듯한, 그러나 아무 의미도 없는, 그러나 모든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한 기이한 음파였다.

그 소리는 민준의 머릿속으로 파고들어 뇌를 뒤흔들었다. 그 소리가 의미하는 바는 알 수 없었다. 단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는 것만 분명했다. 뒤를 돌아볼 용기는 없었다. 그저 아파트 전체가 자신을 집어삼키려 한다는 원초적인 공포만이 그를 지배했다.

민준은 24층 난간에 매달린 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서울의 불빛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이제 그에게는 공허하고 무서운 심연처럼 느껴졌다. 그의 등 뒤, 열려버린 현관문 안에서, 그 기이한 소리는 점차 커지고 있었다. ‘스으으으…’.

그리고 민준의 휴대폰 화면은 꺼졌다. 붉은 점도, 에너지 스파이크 알림도 사라졌다. 오직 검은 화면만이 그의 얼굴을 비췄다. 마치 모든 것이 처음부터 없었던 일인 것처럼. 하지만 민준은 알고 있었다. 그의 아파트는, 이제 더 이상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끊임없이 일렁이는 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문턱에 서 있었다. 그의 등 뒤에서는, 차가운 액체 같은 손이 다시금 뻗어 나오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의 발목을 움켜쥐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