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명 없는 아파트
**[프롤로그: 완벽한 고요]**
**[장면 1]**
**[아파트 내부 – 거실/주방 – 낮]**
화면 가득, 따스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세련된 아파트 거실. 통유리창 너머로 회색빛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모던하고 미니멀한 인테리어. 흰색 벽, 짙은 회색 소파, 그리고 중앙에 놓인 심플한 원목 테이블 위에는 노트북과 텀블러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테이블 위에는 방금 식기세척기에서 꺼낸 듯한 투명한 유리컵이 물기를 송골송골 머금고 서 있다.
**서연 (20대 후반)**, 단정한 잠옷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노트북 화면에 집중하고 있다. 그녀는 헤드셋을 끼고 회의에 참여하는 중인 듯, 가끔 고개를 끄덕이거나 작게 미소 짓는다. 그녀의 표정은 차분하고 안정적이다. 도시의 소음은 저 멀리 빌딩 숲에 갇혀 있고, 아파트 안은 완벽한 고요만이 지배한다.
회의가 끝났는지, 서연은 헤드셋을 벗어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길게 한숨을 쉬며 기지개를 켠다. 문득, 옅은 햇살이 유리컵에 반사되어 그녀의 눈을 잠시 찌푸리게 한다. 서연은 무심코 컵을 잡아 물을 마시려다가, 뭔가 이상한 기척에 동작을 멈춘다.
컵이… 아주 미세하게, ‘톡,’ 하고 테이블 위에서 한 치 정도 움직인 것 같다. 마치 누군가 컵 밑바닥을 손가락으로 살짝 밀어낸 것처럼.
서연은 눈을 가늘게 뜨고 컵을 응시한다.
착각인가? 피곤해서 헛것을 봤나?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픽 웃는다.
**서연**
(나지막이)
뭐야, 나 벌써 노안인가.
스스로에게 중얼거린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컵을 들어 시원하게 물을 마신다.
—
**[장면 2]**
**[아파트 내부 – 거실/주방 – 밤]**
어둠이 내린 도시, 창밖의 수많은 불빛들이 반짝이는 밤이다. 서연은 잠옷 차림으로 주방에서 간단한 야식을 준비하고 있다. 냉장고 문을 닫으려던 서연의 귀에, 주방 한쪽 벽에 걸린 시계의 째깍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그때, 거실 쪽에서 ‘툭!’ 하는 소리가 들린다.
서연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린다.
거실 테이블 위, 아까 낮에 벗어두었던 헤드셋이 바닥으로 떨어져 있다.
그녀는 잠시 멍하니 헤드셋을 바라본다.
**서연**
(독백)
뭐지? 제대로 안 놨었나?
몸을 숙여 헤드셋을 주워든다. 딱히 망가진 곳은 없어 보인다.
그냥, 평소처럼 물건을 무심하게 툭 놓다가 떨어진 것일 테다.
서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헤드셋을 테이블 위에 올린다.
그 순간, 주방 식탁 위에 놓여있던 과일 바구니에서 사과 하나가 스르륵 굴러떨어진다.
아니, 굴러떨어진다기보다는… 누군가 손으로 밀어 바닥으로 떨어뜨린 것처럼, 빠르게!
‘쾅!’
사과가 바닥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낸다.
서연은 숨을 들이켰다.
**서연**
(나지막이, 불안하게)
…설마.
그녀는 천천히 사과 쪽으로 다가간다.
사과는 흠집 하나 없이 멀쩡하다.
주변을 둘러본다.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기척은 전혀 없다.
서연은 혹시 누가 들어온 건가 싶어 현관문을 확인한다.
잠금장치, 이중 잠금장치까지 단단히 잠겨있다.
**서연**
(독백)
아파트가 오래돼서 그런가? 진동 때문에 그러나?
아니, 이 아파트 신축인데…
서연은 불안한 시선을 창밖으로 돌린다.
어둠 속, 반짝이는 도시의 불빛들이 섬뜩하게 느껴진다.
그녀는 서둘러 떨어진 사과를 주워 바구니에 도로 넣는다.
왠지 모르게 등골이 서늘하다.
—
**[장면 3]**
**[아파트 내부 – 서연의 침실 – 밤]**
서연은 침대에 누워있지만,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인다.
방 안은 어둠에 잠겨 있고, 작은 스탠드 불빛만이 희미하게 책장을 비추고 있다.
그녀의 눈은 천장을 향해 고정되어 있다.
방금 전의 사과 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그때, 침대 발치에 놓인 협탁 위에서 ‘스윽’ 하는 소리가 들린다.
서연은 화들짝 놀라 그쪽을 본다.
협탁 위, 그녀가 읽다 만 책이… 페이지가 저절로 넘어간다.
아주 느리게, 그러나 확실하게. 마치 보이지 않는 손가락이 종이를 쓸어 넘기는 것처럼.
서연은 숨을 멈춘다.
심장이 쿵쾅거린다.
그녀는 재빨리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리고 눈을 감아버린다.
**서연**
(떨리는 목소리)
착각이야, 착각일 거야…
두 눈을 질끈 감았지만, 어둠 속에서 책장이 넘겨지는 소리가 몇 번 더 들리는 듯했다.
‘스윽… 스윽…’
그리고 이내,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침묵만이 방을 지배한다.
서연은 공포에 질려 눈을 뜨지 못한다.
그녀의 온몸에 식은땀이 흐른다.
—
**[장면 4]**
**[아파트 내부 – 거실 – 아침]**
다음 날 아침. 서연은 눈 밑에 짙은 다크서클을 달고 거실에 앉아있다.
손에는 따뜻한 커피잔이 들려있지만, 마시지는 않고 그저 멍하니 허공을 응시한다.
어젯밤은 한숨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녀의 시선이 문득 벽에 걸린 가족사진 액자에 닿는다.
환하게 웃고 있는 가족의 모습.
어쩐지… 액자가 평소보다 비뚤어져 걸려있는 것 같다.
서연은 천천히 일어난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액자에 다가가 손을 뻗어 바로잡는다.
그 순간, 거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노트북의 화면이 ‘팟!’ 하고 저절로 켜진다.
그리고는 빠르게 글자들이 타닥타닥 타이핑되는 소리가 들린다.
서연은 비명을 지를 뻔한 것을 겨우 참아낸다.
화면에 나타난 것은… 아무런 내용도 없는 메모장 파일.
하지만 글자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타이핑된다.
‘…..ㄷ..ㄷ..ㄷㄷ…ㄷㄷㄷㄷ…..’
무의미한 자음 ‘ㄷ’이 끝없이 반복된다.
마치 보이지 않는 존재가 키보드를 마구 누르는 것처럼.
서연의 얼굴은 하얗게 질린다.
이건 더 이상 착각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일이다.
그녀는 빠르게 노트북으로 달려가 전원 버튼을 끈다.
‘틱!’ 하는 소리와 함께 화면이 암전된다.
정적이 흐른다.
서연의 심장은 미친 듯이 날뛰고 있다.
**서연**
(떨리는 목소리)
…대체…누구야?
누구세요…?
그녀의 목소리가 거실에 텅 빈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그러나 서연은 느낀다.
이 아파트 안에, 자신 말고 다른 존재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존재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온몸의 털이 쭈뼛 선다.
—
**[장면 5]**
**[아파트 내부 – 복도/현관 – 낮]**
서연은 며칠째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식사도 거른 채 파리해진 얼굴로 아파트 복도를 서성인다.
온 집안의 문이란 문은 다 열어두었다. 혹시 모를 ‘틈’을 찾아보려는 듯.
그녀는 휴대폰으로 친구에게 전화해보려다 이내 포기한다.
“유리컵이 움직이고, 사과가 떨어지고, 책이 넘어갔어. 노트북이 혼자 켜져서 글자를 쳤어.”
아무리 생각해도 제정신이 아닌 사람의 이야기처럼 들릴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정말로 제정신이 아닌 걸까?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아무도 없는 집, 고요한 공기, 그러나 그녀는 확신한다.
자신은 혼자가 아니다.
문득, 현관문 앞에 놓여있던 택배 상자에 시선이 닿는다.
며칠 전 주문했던 방향제인데, 어째서인지 아직 뜯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서연은 무의식적으로 택배 상자를 발로 톡 건드린다.
그때, 상자 안에서 ‘쨍그랑!’ 하는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서연은 소스라치게 놀라 뒤로 물러선다.
택배 상자 안에서 깨진 것은 분명 유리병에 든 방향제일 터.
하지만… 상자는 분명 멀쩡했다. 아무런 충격도 가하지 않았다.
그저 발로 ‘톡’ 건드렸을 뿐인데.
그 순간, 서연의 등 뒤에서 ‘쉬이익-‘ 하는 낮은 바람 소리가 들린다.
뒤를 돌아본다.
거실 통유리창이 활짝 열려있다.
서연은 분명 문단속을 철저히 했다. 베란다 문까지 꼼꼼히 닫았다.
게다가, 창문은 고정된 창이라 쉽게 열리지 않는다.
창문 밖으로 회색빛 도시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바람이 휘몰아치며 거실에 놓인 커튼을 미친 듯이 흔든다.
서연은 공포에 질려 몸을 굳힌다.
창문 너머, 저 멀리 보이는 도시의 불빛들이 마치 자신을 조롱하는 듯 일렁이는 착각마저 든다.
그녀는 창문 쪽으로 천천히 다가간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거실.
하지만 분명, 그 바람은…
차가운 무언가가 서연의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기분이었다.
온몸의 털이 쭈뼛 선다.
마치 투명한 손이 자신의 얼굴을 만진 것처럼.
**서연**
(흐느끼듯)
나가…
나가!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나 작아서, 거센 바람 소리에 묻혀버렸다.
창밖에서는 빌딩을 휘감는 바람 소리가 더욱 거세게 울려 퍼진다.
마치 누군가의 울음소리처럼.
—
**[장면 6]**
**[아파트 내부 – 서연의 침실 – 밤]**
며칠 후. 서연은 몰골이 말이 아니다.
눈은 깊이 들어가 있고, 입술은 바싹 말라있다.
그녀는 휴대폰을 들고 거울을 향해 흔들리는 손으로 동영상을 촬영하고 있다.
어둠이 내린 침실, 작은 스탠드 불빛만이 간신히 방의 일부를 비춘다.
**서연**
(목소리가 쉬어있다. 거의 속삭이듯)
이것 봐… 이것 좀 봐…
분명 어젯밤에… 창문을 잠갔어…
이중 잠금까지… 확실히…
그녀의 휴대폰 카메라가 창문을 비춘다.
창문은 아주 미세하게 열려있다.
단단히 걸어 잠근 창문이 어떻게 열릴 수 있었을까?
**서연**
(점점 더 불안하게)
이게… 이게 보이니…?
아무도 안 믿어… 나 미쳤다고 할 거야…
근데… 근데 이건 진짜야…
그때, 침대 위 이불이 스르륵 움직인다.
마치 누군가 이불 밑에서 기어 나오는 것처럼.
서연은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하다가 겨우 붙잡는다.
**서연**
(비명을 삼키듯)
흐읍…!!
이불은 계속해서 움직인다.
마치 안쪽에 거대한 뱀이라도 숨어있는 것처럼, 미끄러지듯 꿈틀거린다.
그러더니 이불 한가운데가 스멀스멀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서연은 뒷걸음질 친다.
부풀어 오른 이불은 점점 더 커지고, 이내 희미한 사람의 형상처럼 변한다.
그 형상은 천천히 위로 솟아오른다.
아직 어둠에 가려져 있어 자세한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 ‘무언가’가 이불 속에서 깨어나려는 듯한 기분이다.
서연은 공포에 질려 온몸을 떨었다.
더 이상은 못 참겠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휴대폰을 향해 소리친다.
**서연**
(갈라지는 목소리)
내 집에서… 나가!
나가라고…!!
그녀의 비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불 속의 형상이 ‘팟!’ 하고 사라진다.
동시에 방 안의 모든 스탠드 불빛이 깜빡이다가 꺼진다.
완벽한 어둠.
**서연**
(숨을 헐떡이며)
…하아…하아…
어둠 속에서, 그녀의 등 뒤로 차가운 숨결이 느껴진다.
귓가에 섬뜩한 속삭임이 들린다.
아주 낮은 목소리.
남자 같기도 하고, 여자 같기도 한, 정체불명의 목소리.
**정체불명의 목소리 (ECHO, 나지막이, 서연의 귓가에 속삭이듯)**
*…여기가…네 집이라고…생각하니…?*
서연은 몸이 굳어버린다.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느낌이다.
그녀는 감히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바로 뒤에… 그것이 서 있다.
너무나 가깝게.
**서연**
(눈물과 함께 터져 나오는 울음)
으아아아아악!!!!
그녀의 비명과 함께, 화면은 암전된다.
—
**[에필로그: 흔적]**
**[장면 7]**
**[아파트 내부 – 거실 – 낮]**
시간이 흐른 뒤.
다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아파트 거실.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온 듯 고요하다.
테이블 위에는 노트북이 닫힌 채 놓여 있고, 소파는 단정하다.
액자도 바르게 걸려있다.
하지만 뭔가 조금 다르다.
창문은 굳게 닫혀있고, 커튼은 움직임 하나 없다.
그리고… 거실 한쪽 벽에 걸린 시계는 멈춰있다.
바늘은 영원히 3시 33분을 가리키고 있다.
화면은 서서히 시계에 클로즈업된다.
멈춰버린 시계 바늘.
그리고 그 시계 유리 안쪽으로…
아주 희미하게, 손가락 자국 하나가 찍혀있다.
마치 안에서 밖으로 밀어낸 것처럼.
어떤 존재의 흔적.
그리고 그 흔적은…
영원히 이 공간에 남아있을 것만 같다.
**[장면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