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 판타지 (현대 판타지)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제 N화] 그림자 속의 손님**

어둠이 짙게 깔린 도시의 밤은 늘 그랬듯 침묵과 불빛으로 가득했다. 민아는 길고 고된 하루를 마치고 익숙한 아파트 현관문을 열었다. 현관 센서등이 ‘틱’ 소리와 함께 오렌지빛을 뿜어냈지만, 어쩐지 그 빛마저도 평소보다 희미하게 느껴졌다.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놓으려는데, 발끝에 무언가 스치는 감각에 움찔했다.

“응?”

고개를 숙여 보니 엊그제 택배로 받은 잡지 한 권이 바닥에 펼쳐져 있었다. 분명 어제 저녁 침대 머리맡에 뒀던 건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피곤해서 그랬겠지, 뭐. 잡지를 주워 탁자에 올려놓고는 거실로 향했다.

환기를 시키려고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밤공기가 스며들며 눅진했던 실내의 공기를 걷어냈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한기에 어깨를 으쓱하며 창문을 마저 닫았다. 보일러를 틀고 샤워를 마친 후, 민아는 간만에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며 노곤한 피로를 풀었다. 욕실 거울에 김이 서렸다. 손가락으로 거울을 닦아내자 희뿌연 시야 너머로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그때였다.

“똑… 똑… 똑…”

욕실 문 너머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민아의 심장이 순간 쿵, 하고 내려앉았다. 처음엔 물방울 소리인가 했다. 하지만 규칙적인 간격, 그리고 묘하게 단단한 울림은 분명 물소리가 아니었다.

“누구… 없어요?”

작게 중얼거렸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소리는 멈췄다. 너무 예민한가. 피곤해서 헛것이 들리나 보다. 민아는 애써 침착하려 했다. 하지만 막연한 불안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평소라면 그냥 넘어갈 사소한 일들이 오늘따라 이상하게 느껴졌다.

욕실에서 나와 물기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어내며 거실로 걸어 나왔다. 탁자 위에 아까 놓았던 잡지가 보였다. 펼쳐져 있던 페이지가 바뀌어 있었다.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분명 아까는 표지가 위로 가게 덮어두었었는데. 혹시, 내가 기억을 잘못하고 있나?

“별일 아니야, 민아. 그냥 피곤해서 그런 거야.”

자신에게 되뇌듯 말하며 침대에 몸을 던졌다.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보며 애써 불안감을 떨쳐내려 했다. 하지만 몇 페이지 넘기지 못하고 고개를 들었다.

“삐그덕…”

싱크대 쪽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마찰음. 주방에서 나는 소리였다.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내려와 주방으로 향했다. 불을 켜자 평소와 다름없는 주방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것도 움직인 흔적은 없었다. 후, 한숨을 쉬었다.

그때, 싱크대 선반 위, 그녀가 가장 아끼는 머그컵이 스르륵, 하고 미끄러지더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쨍그랑!”

귀청을 찢는 파열음. 컵은 산산조각이 나 바닥에 흩뿌려졌다. 민아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분명, 선반 가장 안쪽에 두었던 컵이었다. 누가 밀지 않고서야 저절로 떨어질 리가 없었다.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뭐야… 뭐야, 이게…”

경련하듯 떨리는 목소리가 겨우 흘러나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댔다. 분명 혼자 사는 아파트인데, 대체 이 모든 기이한 현상들은 뭐란 말인가.

그때였다. 거실의 스탠드 등이 ‘팟!’ 하는 소리와 함께 꺼졌다. 이어서 주방의 형광등이 불안하게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 스위치를 장난치듯 켰다 끄는 것처럼.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아니, 착각이 아니었다. 거실 창밖에서 들어오는 희미한 도시 불빛 아래, 소파 옆에 놓여 있던 큰 화분이 천천히 기울기 시작했다. 뿌연 그림자가 그 화분 뒤로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흐읍!”

민아는 입을 틀어막았다.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지금 당장이라도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혹시, 혹시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두려움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 순간, 주방의 깜빡이던 형광등이 마지막 ‘팟!’ 소리와 함께 완전히 나가버렸다. 이제 아파트는 거실 창밖의 희미한 빛과 민아의 심장 소리만이 가득한 공간이 되었다.

“탁…”

어둠 속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아주 작고 느린 발소리였다. 민아는 벽에 바싹 붙어 숨을 죽였다. 발소리는 거실을 가로질러 그녀가 있는 주방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누구… 야…”

정신이 혼미해지는 와중에도 겨우 질문을 토해냈다.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섬뜩하리만치 차가운 공기가 그녀의 뺨을 스쳤다.

그리고, 느껴졌다.

뒤에서, 아주 가까이에서, 차가운 손가락이 그녀의 목덜미를 스윽, 하고 쓸어내리는 감각이.

“흐아아악!”

민아의 비명소리가 텅 빈 아파트에 메아리쳤다. 비명과 동시에 그녀의 몸이 앞으로 튕겨나가듯 쓰러졌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그녀를 덮치는 듯한 섬뜩한 감각.

**”거기… 가지 마…”**

귓가에 들려온 건 차갑고 낯선 목소리였다. 속삭이듯 낮았지만, 그 어떤 비명보다도 더 끔찍하게 심장을 파고들었다.

어둠 속에서 민아는 흐릿해지는 시야로 보았다. 자신을 덮친 그림자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두 개의 붉은 눈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정신은 아득한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