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연의 입맞춤
축축한 공기가 폐부를 짓눌렀다. 수백 년간 아무도 발을 들이지 않은 무덤의 숨결처럼 차고 비릿했다. 카엘은 거친 숨을 내쉬며 횃불을 높이 들었다. 좁고 기울어진 통로의 끝, 발아래가 아득한 낭떠러지처럼 느껴지는 거대한 공간이 시작되고 있었다. 횃불 불빛은 지척도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어둠 속으로 먹혀들었다.
“젠장, 이걸 ‘통로’라고 부를 수 있나?”
카엘의 뒤를 따르던 세라피나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그녀의 어깨에 걸친 활이 등 뒤의 벽에 부딪히며 돌가루를 흩뿌렸다. 사냥꾼 특유의 예민한 후각으로 비릿한 냄새의 근원을 찾으려는 듯, 콧잔등을 찡그렸다.
“차라리 심연으로 통하는 통로라고 부르는 게 맞을 거야, 세라. 어때, 라이라? 자네의 도식으로는 이런 구조가 예상됐었나?”
카엘이 조심스럽게 한 발을 내딛으며 말했다. 발밑의 돌 부스러기가 미끄러지듯 아래로 굴러떨어져 아득한 침묵 속으로 사라졌다. 라이라가 대답 대신 희미한 푸른빛을 내뿜는 마력석을 들어 올렸다. 얇은 금속테 안경 너머로 그의 눈빛이 호기심과 긴장으로 번뜩였다.
“제라드 학장의 고문서에도 이런 심도와 규모의 기록은 없습니다. 고대 바드라 왕국이 지하 요새를 건설했다는 구전은 있지만, 이런 식으로 미지의 통로와 연결될 줄은… 이건 다른 문명의 흔적일 가능성이 큽니다.”
라이라의 목소리가 떨렸다. 학자의 흥분이 담긴 떨림이었다. 그의 마력석이 뿜어내는 푸른빛은 횃불보다 섬세하게 주변을 비췄다. 어둠에 가려져 있던 거대한 공간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났다. 깎아내려진 듯한 매끄러운 암반과, 그 사이사이에 박혀 있는 불길한 색채의 광물들이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다른 문명이라니? 바드라 왕국보다 더 오래되었다는 말인가?”
세라피나가 활시위를 점검하며 물었다. 그녀는 이 거대한 지하 공간의 스케일에 압도된 듯, 주변을 경계하는 대신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마력석 빛이 닿는 곳은 아득히 높았고, 그 위로 거대한 아치형 천장이 짐승의 뼈대처럼 뻗어 있었다.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벽면의 문양을 보십시오.”
라이라가 빛을 한쪽 벽으로 향했다. 얼핏 단순한 암석처럼 보이던 벽에는 인간의 눈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기하학적인 문양들이 깊게 새겨져 있었다. 일정한 규칙 없이 얽히고설킨 듯 보였지만, 그 안에 숨겨진 무언가가 불길하게 느껴졌다.
카엘은 손을 뻗어 문양을 쓸어봤다. 차가운 돌의 감촉 아래, 미세한 진동이 느껴지는 듯했다. 착각인가?
“이건… 바드라 왕국의 문자와는 전혀 다릅니다. 아니, 제가 아는 어떤 문명에서도 이런 양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마치… 살아있는 무언가를 본뜬 듯한 느낌입니다.”
라이라가 흥분한 듯 중얼거렸다. 그의 손가락이 문양 위를 조심스럽게 훑었다. 마치 오래된 유물을 애무하듯이.
바로 그때, 카엘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차가운 기운이 아래에서부터 치고 올라왔다. 발밑에서 희미하게 울리는 진동이 더욱 선명해졌다.
“기다려, 라이라. 뭔가… 온다.”
카엘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손에 든 횃불을 더욱 굳게 잡았다. 세라피나가 즉시 활을 겨눴다. 그녀의 화살촉이 빛나는 마력석의 푸른빛을 받아 날카롭게 빛났다.
“느꼈습니까? 이 진동… 그리고 이 냄새.”
세라피나가 속삭였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냄새의 근원을 쫓았다. 썩은 물고기 내음 같기도 하고, 녹슨 피 냄새 같기도 한 기묘하고 역겨운 악취가 서서히 짙어졌다.
거대한 공간의 중앙으로 이어지는 길은 완만한 내리막이었다. 그 끝에는 거대한 원형 제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제단은 검은색 암석으로 만들어졌는데, 표면에는 방금 벽에서 본 것과 유사한, 기괴한 문양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문양들 사이에서, 아주 희미하게, 검붉은 빛이 맥박처럼 깜빡거리고 있었다.
“저것은… 제단입니까?”
라이라의 목소리에 경외감이 서려 있었다. 그는 제단에 홀린 듯 한 발 한 발 다가갔다. 카엘은 그의 팔을 잡으려 했지만, 라이라의 발걸음은 이미 제단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라이라, 함부로 다가가지 마!”
세라피나가 경고했지만 때는 늦었다. 라이라의 손이, 마치 이끌린 듯, 제단 표면의 한 문양에 닿았다.
*쉬이이이잉…*
순간, 정적이 깨지고 낮은 울림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제단 표면의 검붉은 문양들이 일제히 빛나기 시작했다. 맥박치던 빛은 격렬한 파동으로 변했고, 그것은 점차 강렬해져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의 섬광을 내뿜었다.
*콰아아아앙!*
귀청을 찢는 굉음과 함께 제단에서 거대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난 짐승이 포효하는 듯했다. 카엘과 세라피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숙였고, 라이라는 충격파에 밀려 뒤로 나동그라졌다.
정신을 차린 카엘이 고개를 들었을 때, 제단은 여전히 붉은빛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 속에서, 그의 눈앞에 환영이 펼쳐졌다.
**고통… 끝없는 고통…**
수많은 영혼들의 비명 소리가 그의 귓가에 울려 퍼지는 듯했다. 검은 그림자들이 거대한 제단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림자들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이목구비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제단 위에 무언가를 바치고 있었고, 그 무언가에서 검붉은 기운이 솟아올라 공간을 뒤덮었다.
**잊혀진 것을 깨워라… 어둠 속에서…**
마치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이 카엘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림자들은 춤을 추듯 뒤엉켰고, 그들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기운은 제단 중앙으로 수렴했다. 그곳에… 형태가 없는 거대한 어둠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눈도 코도 없었지만, 카엘은 그 어둠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너희는 여기에 오지 말았어야 했다…**
환영은 찰나에 불과했다. 섬광이 사라지고, 굉음은 잦아들었다. 공간은 다시 정적에 잠겼다. 제단은 희미하게 맥박치는 붉은빛만을 남기고 침묵했다.
카엘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비틀거렸다. 머릿속이 깨질 듯 아팠고, 온몸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옆을 돌아보자, 세라피나도 잔뜩 굳은 표정으로 활을 든 채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라이라는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바닥에 엎드린 채 몸을 떨고 있었다.
“방금… 대체 무슨 일이…”
세라피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의 손에 든 활은 여전히 제단을 겨누고 있었지만, 그 눈빛은 공포에 젖어 있었다.
카엘은 제단을 바라봤다. 이제는 희미하게 빛나는 문양들이, 마치 자신을 조롱하는 듯 느껴졌다. 환영 속에서 본 그 거대한 어둠의 존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곳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오래된 곳이야.” 카엘이 간신히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이곳의 ‘비밀’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는 다시 한번 제단의 검붉은 문양을 응시했다. 심연의 입맞춤처럼 달콤하면서도 치명적인 유혹이, 그 깊은 곳에서부터 피어오르는 듯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