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소녀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잊혀진 별의 심장 (12화)

숨을 헐떡이며 낡은 신전의 잔해 속으로 몸을 던졌다. 붕괴된 기둥들 사이로 스며드는 달빛이 핏자국으로 얼룩진 내 흰 제복을 비췄다. 방금 전까지 이어지던 격전의 여운이 아직 온몸을 찌르고 있었다. 왼쪽 팔목에 새겨진 별문양 각인이 욱신거렸고, 찢어진 다리에서는 끊임없이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별빛 루나.”

내 마법소녀로서의 이름은 ‘별빛 루나’. 별의 수호자들 사이에서 나는 빛의 선봉이자 어둠을 물리치는 희망으로 불렸다. 하지만 지금, 이 폐허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나는 그저 한없이 나약하고 불안한 ‘시아’일 뿐이었다.

축축한 돌바닥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싸늘한 공기가 폐부를 파고들었지만, 내 심장은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이 금지된 만남의 장소는 언제나 내게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하는 유일한 안식처이자, 동시에 가장 깊은 절망을 상기시키는 지옥이었다.

저벅, 저벅.

어둠 속에서 익숙하면서도 낯선 발소리가 울렸다. 그의 발소리는 늘 그렇게, 묘한 긴장감을 동반했다. 폐허를 감싸던 싸늘한 공기가 순식간에 온기로 채워지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림자 속에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길게 늘어트린 검은 머리카락, 붉게 빛나는 눈동자. 창백한 피부 위로 새겨진 짙은 문양이 그의 종족을 드러냈다. 그의 이름은 카이론. 밤의 그림자, 어둠의 군세를 이끄는 왕자. 내 모든 것과 대척점에 서 있는 존재였다.

“시아.”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낮고 부드러웠다. 메마른 대지를 적시는 단비처럼, 거칠었던 내 심장을 달래주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다가와 내 다리의 상처를 살폈다. 그의 손길이 닿자 싸늘했던 상처 부위가 묘하게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또 무리했군.”

차가운 그의 손끝이 상처 위를 스쳤다. 빛의 마력으로 치료하는 것과는 다른, 알 수 없는 치유의 기운이 느껴졌다. 밤의 그림자 종족이 가진 고유의 마력이리라. 빛과 그림자는 상극이라 배웠지만, 그의 그림자는 내 고통을 감싸 안는 듯했다.

“너희 쪽의 공세가 더 거세졌어. 오늘만 해도 수호대원 여럿이… 다쳤어.”

내 말에 카이론의 붉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그 안에 담긴 온기는 거짓이 아니었다.

“내 백성들도 다르지 않아. 매일 밤, 빛의 심판에 쓰러지는 그림자들이 늘고 있어. 이 싸움은, 대체 언제 끝날까.”

자조 섞인 그의 목소리에 가슴이 아려왔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누는 종족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그는 밤의 왕자, 나는 별의 수호자. 이 금지된 사랑은 시작부터 파멸을 약속하고 있었다.

“모르겠어. 하지만, 적어도 이곳에서는…”

내가 말을 흐리자 그가 내 눈을 깊이 들여다봤다. 붉은 눈동자 안에 담긴 애틋함이 내 심장을 죄어왔다.

“응. 이곳에서는… 우리는 그저 시아와 카이론일 뿐이지.”

그의 말이 위로가 될 수 없는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 주었다. 나는 그의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따뜻한 그의 품이 잠시나마 모든 것을 잊게 해 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잔혹한 생각들이 다시금 고통스럽게 떠올랐다. 나는 오늘, 그와 싸우던 그림자들을 베었다. 그리고 그는, 나와 대적하던 별의 수호자들을 쓰러트렸을 것이다.

“카이론…”

“쉬이.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 지금은 그저…”

그가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의 손길은 항상 나를 아이처럼 대했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순수한 아이가 아니었다. 핏빛 전쟁의 한가운데서 피어난, 가시 돋친 꽃과 같았다.

그때였다.

찌르르륵, 찌르르륵.

어둠 속에서 기분 나쁜 소리가 울렸다. 정찰 마법의 파장. 이 폐허 근처로는 절대 올 리 없는, 빛의 수호자들의 파장이었다.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등골을 타고 차가운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젠장.”

카이론의 붉은 눈이 순식간에 번뜩였다. 그는 내 손을 거칠게 쥐고 폐허의 가장 깊은 곳, 지하로 향하는 비밀 통로로 나를 이끌었다. 바닥에 깔린 낡은 돌판을 밀어내자, 눅눅한 흙냄새가 코를 찔렀다.

“숨어. 내가 시간을 벌지.”

“안 돼! 너 혼자 남을 수는 없어!”

나는 그의 손을 붙잡았다. 그가 혼자 남는다면, 별의 수호자들에게 발각될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고, 그것은 곧 우리의 금지된 사랑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물론, 카이론 또한 멸문지화를 면치 못할 터였다.

“나는 괜찮아. 내 마력은 어둠에 동화될 수 있어. 하지만 넌 빛의 존재. 발각되는 순간 끝이야.”

그의 단호한 목소리에 반박할 수 없었다. 그는 밤의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는 존재였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내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약한 빛의 잔흔조차도 어둠 속에서는 명확한 표적이 될 터였다.

“서둘러!”

카이론은 나를 지하 통로 안으로 밀어 넣었다. 어둠 속으로 잠기기 직전, 그의 붉은 눈동자가 마지막으로 내게 절규하듯 속삭였다.

“반드시 살아남아야 해, 시아.”

그는 입구를 다시 막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돌문이 닫히고, 나는 완전한 어둠 속에 갇혔다. 바스락거리는 흙먼지 사이로 폐허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점차 선명해졌다.

“카이론의 잔당을 놓치지 마라! 분명히 이 폐허 어딘가에 숨어있을 것이다!”

별의 수호대원들의 목소리였다. 내 동료들, 내 가족들의 목소리. 그들은 지금 내가 사랑하는 존재를 쫓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눈을 피해 어둠 속에 숨어 있었다.

쾅! 콰과광!

갑작스러운 폭발음과 함께 통로 입구가 흔들렸다. 바닥에 박혀 있던 흙덩이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설마, 카이론이 싸우고 있는 건가? 그의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자신을 숨긴 채 수호대원들을 유인하고 있는 것이라면?

콰앙!

두 번째 폭발음이 폐허 전체를 뒤흔들었다. 지하 통로 안은 완전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돌무더기가 쏟아지고, 통로의 천장이 붕괴됐다. 빛 한 점 들지 않던 어둠은 순식간에 흙먼지로 뒤덮였다.

나는 무너지는 잔해 속에서 몸을 웅크렸다. 통로가 완전히 막혔다. 흙과 돌무더기가 겹겹이 쌓여 외부와 나를 완전히 단절시켰다.

“카이론…!”

나는 본능적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대신, 저 멀리 지하 통로 깊은 곳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찾았다! 여기 폐허 아래, 비밀 통로가 더 있다!”

내 동료들의 목소리였다. 그들은 내가 숨어있는 이곳까지 내려오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카이론이 숨어있을 거라 짐작하고 이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철컥, 철컥.

점점 더 가까워지는 발소리. 그리고 이내, 찢어진 통로 너머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들어왔다. 탐사용 마법 등불의 빛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체념한 채 눈을 감았다. 이제 모든 것이 끝이었다. 나는 배신자로서, 그는 어둠의 왕자로서 서로의 칼날 아래 쓰러질 것이다.

그때, 내 어깨 위로 따뜻한 손길이 닿았다. 눈을 번쩍 떴다. 흙먼지 속에서, 붉은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어떻게…?”

카이론이었다. 그는 언제 나타난 건지, 내 옆에 서 있었다. 그의 등 뒤로, 방금 전 무너져 내린 통로가 기적처럼 재건되고 있었다. 밤의 그림자 마력으로.

“말했잖아. 나는 어둠에 동화될 수 있다고.”

그의 얼굴에는 흙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었다. 그는 내 손을 잡고 지하 통로의 더 깊숙한 곳으로, 미지의 공간으로 나를 이끌었다.

“우리가 발견되기 전에, 이곳을 벗어나야 해.”

“하지만, 이곳은 막혔어. 그리고 저들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하 통로 저 멀리서 빛의 수호대원들의 목소리가 너무나 선명하게 들려왔다.

“카이론의 잔당을 놓치지 마라! 반드시 이 폐허 어딘가에 숨어있을 것이다!”

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

그리고 그 순간, 섬광과 함께 통로 입구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카이론과 나는 완전히 고립되었다. 우리를 둘러싼 것은, 끝없는 어둠과, 침묵. 그리고 서로를 향한, 너무나 위태로운 심장 소리뿐이었다.

*털썩.*

나는 무너진 잔해 위에 주저앉았다. 희미하게 새어 들어오던 빛마저 완전히 사라졌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카이론의 붉은 눈동자만이 유일한 등불처럼 빛나고 있었다.

“시아.”

그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 담긴 불안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제 우리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어둠 속에서 오직 서로에게만 의지해야 하는 상황.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가, 폐허 아래 깊숙한 곳까지 들려오기 시작했다.

“꼼짝 마라! 카이론, 네놈의 운명은 끝났다!”

이제 정말, 도망칠 곳이 없었다. 우리의 비밀은, 어둠 속에서 드러날 위기에 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