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툴루 신화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비는 밤새도록 내렸다. 아니, 어쩌면 나만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증오와 함께 세상의 모든 물방울이 응축되어 하늘에서 쏟아지는 것 같았다. 눅진한 아스팔트 위를 걷는 나의 발걸음은 빗소리에 묻혀 고독했다. 도시의 불빛은 흐린 장막 너머에서 그저 흐릿한 잔상으로만 존재할 뿐, 나를 비춰주지 않았다. 비틀거리는 건물들의 그림자가 춤을 추는 뒷골목, 역한 하수구 냄새와 썩은 음식물 냄새가 뒤섞인 곳. 그곳이 바로 이태준, 네가 숨어든 미궁의 입구였다.

내 손에 들린 낡은 권총의 차가운 금속이 심장박동처럼 울렸다. 방아쇠는 너무나 가벼웠다.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모든 것을 끝낼 수 있을 만큼. 하지만 너를 죽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너는 나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갔으니까. 나의 믿음, 나의 미래,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나의 영혼까지도.

좁고 어두운 통로를 지났다. 벽에는 기묘한 형상들이 낙서처럼 그려져 있었다. 분명 단순한 스프레이 아트는 아니었다. 인간의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각도와 형태로 이루어진, 오래된 고문서에서나 볼 법한 상형문자들이었다. 네가 그토록 탐하던 ‘그것’과 관련된 것임이 분명했다. 역겨움과 동시에 강렬한 호기심이 치솟았다. 너는 결국 그 지식을 얻었고, 나는 그 대가를 치렀다.

통로의 끝, 녹슨 철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안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고, 낮게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침내.

철문을 밀자 끔찍한 악취와 함께 차가운 공기가 폐부를 찔렀다. 낡은 공장 내부. 한때 기계들이 요란하게 돌아가던 곳이었을 테지만, 지금은 죽음의 침묵만이 감돌았다. 한가운데에는 찢어진 천과 알 수 없는 액체로 얼룩진 제단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너 이태준이 서 있었다.

“왔군, 강민준.”

네 목소리는 예전과 달랐다. 인간의 성대에서 나오는 소리라고 믿기 힘든, 여러 겹의 음성이 겹쳐진 듯한 기괴한 울림. 등골이 오싹했지만, 분노가 그 공포를 압도했다.

“네놈에게 인사하러 온 게 아니야. 너를 죽이러 왔다.”

나는 권총을 치켜들었다. 총구는 정확히 네 심장을 겨누었다. 하지만 너는 웃었다. 그 비릿하고 오만한 웃음.

“죽이겠다고? 나를? 감히?”

너는 한 손을 들어 보였다. 손가락 끝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일렁였다. 빛은 이내 끈적한 촉수로 변하더니, 거대한 기계 부품들을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엄청난 힘이었다. 나는 간신히 몸을 피해 벽 뒤로 숨었다. 낡은 벽돌이 부서지고, 콘크리트 파편이 튀었다.

“이게 네가 그토록 원하던 힘이냐? 친구를 팔아넘겨 얻은 힘이?”

나는 소리쳤다. 네가 나를 ‘그 존재’에게 제물로 바쳤던 그 밤이 떠올랐다. 어둠 속에서 번뜩이던 수많은 눈동자, 살을 찢는 비명, 그리고 네 얼굴에 떠오르던 차가운 미소. 네가 나를 두고 돌아서던 그 순간, 나는 죽음을 보았다. 하지만 죽지 않았다. 단지, 이전의 내가 죽었을 뿐이었다.

“친구? 그깟 감정놀음이 무슨 소용이지? 우리는 더 위대한 존재를 위해 봉사할 수 있었어. 더 높은 진리를 볼 수 있었단 말이다! 너도 나와 함께했다면…”

“개소리 마! 네놈은 그저 겁쟁이였을 뿐이야! 너 자신의 광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나를 밀어 넣어 탈출하려 했던 비겁한 새끼!”

네 표정이 굳어졌다. 그 일그러진 얼굴 위로 인간의 감정, 분노가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네 안에 남아있는 마지막 인간적인 부분이리라.

“나는 너와 달라! 나는 진실을 받아들였고, 너는 눈을 감았지. 네가 본 게 고통뿐이라고 생각하나? 그건 시작에 불과해. 나는 이제 그분의 가장 충실한 종이며, 네가 감히 나를 거스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네 팔이, 아니, 팔이라고 부르기 힘든 그것이 더욱 길게 뻗어나왔다. 벽을 부수고, 낡은 설비들을 휘감았다. 그 촉수들은 점점 더 푸른 빛을 띠더니, 불규칙적인 무늬를 따라 꿈틀거렸다. 비정상적인 형태 변화에 나의 오감이 비명을 질렀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하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내가 이 순간을 위해 버텨왔으니까.

나는 품속에서 낡은 가죽 주머니를 꺼냈다. 그 안에는 ‘그것’이 찢어발겼던 고문서의 한 조각이 들어 있었다. 피와 살점으로 범벅된,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쓰인 단 하나의 문장. 네가 나를 버리고 도망쳤을 때, 내가 필사적으로 움켜쥐었던 유일한 증거. 그 파편은 미약하지만 강력한 힘을 품고 있었다. ‘그것’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네 눈이 주머니를 향했다. 그 눈동자 속의 푸른 빛이 흔들렸다.

“그게… 아직 남아있었나? 감히 그것을 지니고 다닐 줄이야!”

네 목소리에 균열이 생겼다. 공포. 그래, 네가 감히 무시했던 그 존재에 대한 미약한 공포가 다시 네 안에서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나는 주머니를 꽉 쥐었다. 그 파편에서 나오는 알 수 없는 에너지가 내 손바닥을 태우는 듯했다.

“네가 얻은 힘은 그저 조약한 조각에 불과해! 네가 감히 이용하려 했던 ‘그것’의 진정한 힘을 맛보여주지.”

나는 단 한 번도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던 그 문장을, 비록 조각뿐이지만, 피가 터져라 외쳤다. 입 안에서 알 수 없는 음절들이 엉망으로 튀어나왔다. 혀는 고통스러웠고, 머릿속은 찢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내 주변의 공기가 비정상적으로 일렁였다. 낡은 공장 바닥의 먼지가 소용돌이치며 솟아올랐고, 천장의 금속 구조물들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뒤틀렸다. 벽에 그려진 상형문자들이 번개처럼 빛났다.

“크아악! 멈춰! 당장 멈춰, 강민준!”

네 몸이 격렬하게 떨렸다. 너를 감싸던 푸른 촉수들이 흐물흐물 풀어지더니, 네 피부 위로 역겨운 발진처럼 돋아났다. 네가 애써 유지하던 ‘인간’의 형상이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살갗이 찢어지고, 그 아래에서 보랏빛 액체가 스며 나왔다.

“네놈이 감히… 감히 나의 의식을 방해해? 너는 그저 먹잇감에 불과했어!”

너는 비명을 질렀다. 그 비명은 인간의 그것이 아니었다. 짐승의 울부짖음과 기계음이 뒤섞인 듯한 끔찍한 소음. 나는 네 안에서 피어나는 광기를 똑똑히 보았다. 네가 나에게 강요했던 그 고통을 이제 네가 맛보는 순간이었다.

나는 멈추지 않고 주문을 외쳤다. 아니, 주문이라기보다는 그저 단어들을 뱉어내는 것에 가까웠다. 그 단어들은 내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끌려 올라오는 듯했다. 내 눈앞에 아른거리는 환상이 나타났다. 어둠 속에서 태동하는 거대한 그림자, 형언할 수 없는 존재의 자취가 느껴졌다.

그것은 공포였다. 네가 나에게 주었던 공포. 그리고 내가 너에게 되갚아줄 복수였다.

네 몸이 통제 불능으로 뒤틀리자, 네가 애써 숨겨왔던 진정한 ‘형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인간의 형태를 잃어버린, 푸른빛의 비늘로 뒤덮인 끔찍한 괴물. 하지만 그 속에서도 나는 너의 눈을 찾았다. 공포와 광기로 번뜩이는, 하지만 여전히 내가 알던 이태준의 눈.

나는 이를 갈았다. 아직 멀었다. 네놈에게 내가 겪은 고통의 만분의 일도 맛보여주지 못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태준아.”

나는 피가 섞인 침을 뱉으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은 네 눈을 향해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