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챕터 1: 망각의 틈새

은하수 호의 함교는 침묵에 잠겨 있었다. 짙푸른 모니터만이 희미한 빛을 토해내며 이현우 함장의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수십 년 전, 인류가 ‘잊혀진 경계’ 너머의 심우주 탐사를 시작했을 때, 그들은 찬란한 미지의 세계를 꿈꿨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한 진공과 끝없는 어둠, 그리고 가끔씩 스쳐 지나가는 이름 없는 암석 조각들뿐이었다.

이현우는 눈을 감았다. 몸 깊숙이 배어든 우주선의 미세한 진동이 익숙한 자장가처럼 느껴졌다. 벌써 3년. 지구 시간으로 3년 동안 그는 이 강철 덩어리 안에서 유영하고 있었다. 그의 임무는 새로운 생명체를 찾거나, 인류의 확장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런 ‘운명적인 발견’ 같은 건 한 번도 없었다. 그저 망망대해를 떠도는 작은 배 위에서, 숫자가 매겨진 보고서와 커피 향에 갇혀 지내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함장님, 뭔가 포착됐습니다.”

나른하게 이어지던 침묵을 깨뜨린 건 부함장 최지혜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선임 과학자로, 이현우와 함께 이 지루한 임무를 수행하는 몇 안 되는 동료 중 하나였다. 보통 그녀의 목소리에는 권태로움이 섞여 있었지만, 지금은 미세한 긴장감이 실려 있었다.

이현우는 천천히 눈을 떴다. 피로가 밴 시선이 최지혜에게로 향했다.

“뭐가 포착됐다고?”

“정확히는… 에너지 신호입니다. 아주 약하지만, 명확하게 감지됐어요. 자연 발생적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최지혜는 홀로그램 패널을 터치했다. 함교 중앙에 푸른빛으로 빛나는 입체 지도가 펼쳐졌다. 은하수 호의 현재 위치에서 수십만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작은 붉은 점이 깜빡이고 있었다.

“우리 항로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데.”

“네, 제가 이전에 분석했던 데이터와는 전혀 다른 패턴입니다. 심우주를 떠도는 일반적인 고에너지 입자나 성간 물질과는 다릅니다. 특정 주기를 가지고 방출되고 있어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이미 과학자 특유의 호기심이 가득 배어 있었다. 이현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안전과 규율을 중시하는 군인이었고, 최지혜는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고 싶어 하는 학자였다. 그들의 가치관은 자주 충돌하곤 했다.

“혹시… 미확인 적성 함선일 가능성은 없습니까?”

“물론 배제할 순 없지만, 신호 패턴은 전혀 무기적이지 않습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아니, 정확히는 어떤 생명체가 특정 목적으로 에너지를 방출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생명체라고?”

이현우의 목소리에 날카로움이 더해졌다. 인류가 이 경계를 넘어와 발견한 생명체는 아직 없었다.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이 될 수도 있었다. 동시에, 가장 위험한 발견이 될 수도 있었다.

“최대한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접근해. 탐사 프로브를 준비시키고, 모든 보안 절차를 최고 단계로 올려.”

“알겠습니다, 함장님.”

최지혜는 곧바로 지시를 따랐다. 은하수 호의 거대한 엔진이 낮게 울리며 방향을 틀었다. 무한한 어둠 속에서, 작은 붉은 점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수 시간이 흘렀다. 붉은 점은 조금씩 커졌다. 은하수 호는 탐사 규정상 안전거리를 유지한 채 멈춰 섰다. 이제 육안으로도 그 존재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비주얼 데이터를 전송합니다.”

최지혜의 말과 함께, 함교의 메인 스크린에 희미한 형체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그저 거대한 암석 덩어리인 줄 알았다. 하지만 점점 해상도가 높아지자, 모두의 숨통이 조여드는 듯했다.

그것은 암석이 아니었다.

길이가 수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구조물이었다. 불규칙하면서도 기묘하게 대칭적인 형태. 매끄러운 검은 표면은 빛을 전혀 반사하지 않았다. 마치 우주의 모든 빛을 흡수하고 있는 듯했다. 표면 곳곳에는 자줏빛으로 빛나는 선들이 맥박처럼 깜빡였다. 마치 거대한 생명체의 혈관처럼.

“이게… 대체 뭡니까?”

기술장교 김민준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눈에는 경외감과 함께 공포가 서려 있었다.

“미확인 외계 유물… 혹은 유기체.” 최지혜는 흥분한 듯 중얼거렸다. 그녀의 눈은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런 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떤 문명도 이런 형태의 구조물을 만들진 못했을 겁니다. 자연적으로 생성된 것이라고 보기에도 너무나…”

“인공적이야.” 이현우가 그녀의 말을 받았다. “아니, 인공과 자연의 경계에 있는 것 같군. 마치 살아있는 금속처럼.”

그의 머릿속에는 온갖 위험 신호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인류가 한 번도 조우한 적 없는 존재. 어떤 목적과 의도를 가졌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미지의 실체. 함선에 탑승한 모든 대원들의 생명이 그의 손에 달려 있었다.

“접근 허가 요청합니다. 함장님. 원거리 스캔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프로브를 보내 표본 채취를 해야 합니다.”

최지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의 눈은 욕망으로 이글거렸다. 이현우는 한숨을 쉬었다. 보고서를 작성하고 회수하라는 지시를 기다리는 것이 정답이었다. 하지만… 이런 발견을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순간이 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과학자로서의 최지혜의 열망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무인 탐사 드론, ‘스파이더’를 준비해. 모든 무장 시스템을 활성화하고, 함포는 언제든 발사할 수 있도록 대기시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

“알겠습니다!”

스파이더는 거미 다리를 가진 소형 무인 드론이었다. 은하수 호의 격납고에서 분리된 스파이더가 정숙하게 어둠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메인 스크린은 스파이더의 시야를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 외계 유물의 표면은 더욱 기괴했다. 검은색의 매끄러운 부분은 마치 짐승의 피부처럼 미세하게 움직이는 듯했고, 자줏빛 선들은 더 선명하게 맥동했다.

“자력장이 감지됩니다. 아주 미약하지만, 특정 주파수에 맞춰 변화하고 있어요.” 최지혜가 말했다. “마치… 호흡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프로브, 샘플 채취 준비.” 이현우가 명령했다.

스파이더의 한쪽 팔에서 드릴이 튀어나왔다. 날카로운 드릴이 천천히 유물의 표면을 향해 뻗어 나갔다. 삑, 삑, 삑. 드릴이 표면에 닿기 직전, 경고음이 울렸다.

“자력장 밀도가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드릴 접근 중지!” 김민준이 다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드릴 끝이 유물의 검은 표면에 닿는 순간, 거대한 충격파가 함교를 강타했다.

콰앙!

은하수 호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대원들이 휘청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메인 스크린이 지지직거리는 노이즈로 뒤덮였다.

“무슨 일이야!” 이현우가 소리쳤다.

“자력장… 폭주했습니다! 스파이더와의 통신 두절!” 최지혜가 패널을 두드리며 외쳤다. “유물에서… 알 수 없는 에너지 파동이… 전방위로 방출되고 있습니다!”

그 순간, 메인 스크린의 노이즈가 걷히는가 싶더니, 섬뜩한 광경이 펼쳐졌다.

외계 유물의 자줏빛 선들이 미친 듯이 발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심부에서, 검은 표면이 갈라지며 붉은 액체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피… 아니, 피처럼 보였지만, 끈적하고 탁한, 생명체라고는 믿기지 않는 액체였다.

그 액체는 사방으로 흩뿌려지며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우주 공간을 유영했다. 스파이더 드론이 그 액체에 닿자, 금속 몸체가 순식간에 녹아내리는 듯한 효과가 나타났다.

“함장님! 긴급 보고! 우리 함선에도 미지의 액체가 묻었습니다! 외벽 센서가 파괴되고 있습니다!”

김민준이 경악하며 외쳤다. 이현우는 스크린을 노려봤다. 액체는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은하수 호의 선체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그것이 닿는 곳마다 선체가 부식되는 듯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모든 승조원, 방호복 착용! 내부 격벽 폐쇄! 비상 매뉴얼 1단계, 지금 당장 실시한다!”

이현우의 목소리가 함교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이미 늦은 듯했다.

“함장님… 제 피부가…”

최지혜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떨렸다. 이현우가 고개를 돌리자, 그녀의 팔에 붉은 반점이 돋아나고 있었다. 단순한 반점이 아니었다. 마치 피부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듯한, 기이한 움직임이었다. 그녀는 팔을 부여잡고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최 부함장! 괜찮은가!”

그때였다. 뒤에서 누군가 컥, 하고 숨 막히는 소리를 냈다. 이현우가 황급히 뒤돌아보니, 통신장교 이수진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녀의 눈은 초점을 잃었고, 입가에선 거품이 맺혔다. 그리고 그녀는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마치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처럼.

“수진 씨! 정신 차려요!” 김민준이 그녀에게 다가가려 했다.

하지만 이수진의 몸은 마치 짐승처럼 격렬하게 경련했다. 그녀의 눈이 기괴하게 뒤집히고, 입술이 찢어지며 핏빛 이빨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녀는 김민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성이 사라진, 굶주린 짐승의 표정으로.

“악!”

김민준의 비명이 함교를 갈랐다.

그와 동시에, 은하수 호 곳곳에서 절규와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현우의 눈에, 외계 유물의 자줏빛 맥동이 더욱 선명하게 박혔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자신의 계획이 성공했다는 듯, 조용히 우주 공간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끝없는 어둠 속에서, 인류의 첫 번째 외계 조우는, 최악의 악몽으로 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