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가 된 도시, 그 중심부.
먼지 섞인 햇빛이 창문 없는 상가 건물의 뻥 뚫린 구멍들을 통해 쏟아져 들어왔다. 한때는 화려했을 진열대 위로 쌓인 잿빛 먼지가 과거의 영광을 조롱하듯 빛났다. 텅 빈 공간을 맴도는 공기는 금속 비린내와 알 수 없는 썩은 내가 뒤섞인 채였다.
강민준은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삐걱거리는 발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의 손에는 녹슨 철근이 묵직하게 들려 있었다. 한때 간판으로 쓰였던 재활용된 무기였지만, 수많은 ‘걷는 시체들’의 머리통을 으깨는 데는 더없이 효율적이었다. 낡은 작업복은 찢어지고 해져 있었지만, 곳곳에 얼룩진 검붉은 자국들은 그가 겪어온 지옥의 흔적이었다.
“젠장, 아무것도 없잖아.”
그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지난 며칠간 제대로 된 음식을 입에 넣지 못했다. 버려진 편의점을 뒤지고, 주택가를 샅샅이 뒤져도 이제는 폐기물만 남을 뿐이었다. 굶주림은 인간의 모든 감각을 날카롭게 만들지만, 동시에 모든 판단력을 흐리게 하기도 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다음 통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찢어진 포장지, 부서진 유리 조각들이 발밑에서 *바스락*거렸다. 마치 이 폐허가 된 공간 자체가 살아있는 것처럼 속삭이는 소리였다. 오래된 마트의 냉장 코너는 텅 비어 있었고, 퀴퀴한 곰팡이 냄새만 가득했다. 그의 시선이 구석의 쓰러진 선반 아래에 꽂혔다.
캔. 여러 개의 캔이 먼지에 덮인 채 있었다.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그것은 마치 사막 한가운데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과 같은 충격이었다. 그는 거의 기어가다시피 선반으로 다가갔다. 조심스럽게 캔들을 집어 들었다. 라벨은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묵직한 무게감과 차가운 감촉은 분명 내용물이 가득하다는 증거였다.
복숭아 통조림.
이런 사치스러운 음식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였던가. 기억조차 가물가물했다. 이 하나만으로도 오늘 밤은 배를 채울 수 있을 터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캔을 가방에 넣었다. 허리춤에 찬 작은 주머니에 예비용 칼날을 꺼내 캔따개로 사용할 준비를 했다.
그 순간이었다.
*끄으윽… 끄으윽…*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듯했지만, 폐허가 된 건물 내부에서 울려 퍼지며 뼈 속까지 스며드는 듯했다. 민준의 몸이 순식간에 굳었다. 그는 캔따개를 다시 주머니에 넣고 철근을 고쳐 쥐었다.
“하나… 둘… 셋…”
그는 소리의 방향을 가늠하며 조용히 세었다. 발소리의 질질 끄는 듯한 소리, 낮게 깔리는 신음. 최소한 세 마리 이상이었다. 그것들은 아마도 그의 발소리를 들었거나, 아니면 이 폐허에 남아있는 미약한 생명의 냄새를 맡고 이끌려왔을 것이다.
민준은 몸을 숙여 가장 가까운 진열대 뒤로 숨었다.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구멍이 뚫린 진열대 틈새로 눈을 가져갔다. 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세 명의 ‘걷는 시체’들이 느릿느릿 걸어오고 있었다. 한때는 사람이었을 그들의 몸은 찢어지고 부패하여 역겨운 몰골이었다. 턱은 축 늘어져 있었고, 눈동자는 흰자위가 반 이상을 차지한 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한쪽 팔이 거의 떨어져 나가 너덜거리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머리 한쪽이 함몰되어 있었고, 마지막 하나는 찢어진 경찰 제복을 입고 있었다. 예전의 그는 경찰을 보면 본능적으로 안도감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오직 살과 피만을 쫓는 괴물일 뿐이었다.
“하아… 짜증 나네.”
낮게 읊조린 그의 목소리가 자신의 귓가에 맴돌았다. 그는 이미 지쳐 있었다. 그러나 도망치는 것은 현명하지 못했다. 이 마트는 그나마 구조가 단순해 도주로를 파악하기 쉬웠지만, 밖은 더욱 위험했다.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무리들, 그리고 ‘다른 생존자’들.
민준은 숨을 고르며 주변을 살폈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캔들이 가득 쌓여 있던 무너진 선반이었다. 선반을 받치고 있던 철제 기둥은 이미 휘어 있었고, 간신히 무게를 지탱하고 있었다.
계획이 떠올랐다.
그는 천천히 자세를 낮춰 진열대 뒤로 몸을 숨긴 채 시체들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발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질척, 질척* 거리며 부패한 살덩이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소름 끼쳤다. 그들의 썩은 숨결이 코끝을 스치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가장 앞에 있던 경찰 제복 시체가 민준이 숨어있는 진열대를 향해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텅 빈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멈칫하는 듯했다. 마치 어딘가에 먹잇감이 있다는 본능적인 감각이 그들을 이끄는 것 같았다.
*지금이다.*
민준은 진열대 뒤에서 튀어나오며 철근을 휘둘렀다. 목표는 경찰 시체의 무릎이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무릎이 꺾이며 시체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나머지 두 시체는 갑작스러운 습격에 반응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신음만 내뱉었다.
시간은 없었다.
그는 쓰러진 경찰 시체를 발로 밀어 넘어뜨리고, 그 반동으로 몸을 돌려 무너진 선반 기둥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했다. *콰앙!* 철근으로 기둥을 강하게 후려쳤다. 이미 약해져 있던 기둥은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와르르르!*
수백 개의 캔들이 산사태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 소리는 천둥처럼 건물을 울렸고, 먼지가 폭풍처럼 피어올랐다. 뒤따라오던 두 시체는 갑작스러운 소리와 충격에 휘청거리다 쏟아져 내리는 캔 더미에 그대로 깔려 버렸다.
*끄윽… 으드득…*
일그러진 신음과 뼈 부서지는 소리가 먼지 속에서 희미하게 들려왔다. 민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출구가 보이는 곳까지,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달렸다.
결국, 그는 건물 밖으로 뛰쳐나왔다.
바깥 공기는 폐허의 안쪽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회색빛 하늘 아래, 무너진 고층 건물들이 거대한 무덤처럼 솟아 있었다. 바람이 불어와 뺨을 스쳤다. 시원하다기보다는 차갑고 메마른 느낌이었다.
민준은 낡은 벽돌 잔해 위에 주저앉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가방 속 복숭아 통조림의 묵직한 무게가 그의 허기진 배를 더욱 자극했다.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문득, 오래전 기억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따뜻한 햇살 아래, 그는 작은 강가에 앉아 있었다. 어머니가 직접 담가 주신 복숭아 병조림을 숟가락으로 떠먹여 주셨던 기억. 달콤하고 물렀던 복숭아 조각이 입안 가득 퍼지던 행복한 순간.
“엄마…”
목울대에서 간신히 새어 나온 단어였다. 지금의 그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존재일 뿐이었다. 달콤함 따위는 사치였다. 그저 허기를 채우고, 다음 날의 해를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민준은 다시 눈을 떴다. 그의 시선은 잿빛 하늘을 가로지르는 한 줄기 희미한 비행운을 쫓았다. 저 멀리,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가는 희망처럼 보였다. 하지만 동시에, 저 비행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이 스쳤다.
어쩌면, 또 다른 위험의 전조일지도 모른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고쳐 맸다. 아직 해가 완전히 지려면 시간이 좀 남아 있었다. 안전하게 밤을 보낼 만한 곳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오늘 밤, 이 피로를 잊게 해줄 달콤한 복숭아를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
그 희망을 연료 삼아, 강민준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폐허가 된 거리 위로 그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그리고 그 그림자 너머, 멀지 않은 곳에서 또 다른 신음 소리가 바람에 실려 희미하게 들려오는 듯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