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혁은 잿더미가 된 자기 인생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박선우가 남긴 잿더미였다. 한때 그의 눈에 우주 전체였던 그 모든 것이, 지금은 한 줌 재가 되어 손가락 사이로 허무하게 부스러져 내렸다. 빌어먹을, 박선우. 내 친구, 내 형제, 내 모든 것이었던 그 이름이 이제는 시궁창보다 역겨운 저주의 대명사가 되어 그의 심장을 갉아먹었다.
사건은 2년 전, 그들의 꿈이 산산조각 나던 날 시작되었다. 강준혁과 박선우는 대학 시절부터 모든 것을 함께한 친구였다. 둘은 ‘신세계’라는 이름으로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준혁의 천재적인 기술력과 선우의 탁월한 사업 수완이 만나, 그들의 앱은 출시와 동시에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미래는 탄탄대로인 듯했다. 그때까지는.
어느 날, 회사의 핵심 기술 유출과 거액의 공금 횡령이라는 날벼락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경찰과 검찰이 들이닥쳤고, 모든 증거는 강준혁을 지목했다. 장부를 조작하고, 데이터 기록을 변조하고, 심지어는 준혁의 서명이 위조된 계약서까지. 완벽하게 짜인 함정이었다. 준혁은 아무것도 모른 채 회사에서 쫓겨났고, 모든 비난과 책임은 그의 몫이 되었다. 선우는 기자회견장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준혁의 배신을 규탄했다. “믿었던 친구에게 발등 찍혔지만, 신세계는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 위선적인 목소리가 준혁의 귀청을 찢는 비수가 되어 박혔다.
“준혁아, 이건 오해야. 내가 꼭 밝혀낼게.”
속삭이던 선우의 목소리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준혁이 감옥에서 출소했을 때, 선우는 ‘신세계’를 ‘미래랩’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코스닥 상장을 눈앞에 둔 촉망받는 젊은 CEO가 되어 있었다. 그의 얼굴은 TV 화면 속에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준혁의 이름은 사기꾼, 배신자, 비리 경영자라는 딱지와 함께 더러운 오물처럼 버려졌다.
길고 긴 밤이었다. 준혁은 그 잿더미 속에서 차갑게 식어버린 복수의 불씨를 발견했다. 그것은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의 속삭임처럼 달콤하고 강렬했다. 살인? 너무 쉬웠다. 박선우는 준혁이 겪었던 것보다 더 처참한 나락으로 떨어져야 했다. 살아있는 채로, 모든 것을 빼앗기고, 세상의 조롱거리로 전락해야 했다.
그날부터 준혁은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었다. 그는 자신의 흔적을 지웠고, 얼굴을 바꾸었으며, 목소리까지 변조하는 연습을 했다. 감옥에서 익힌 해킹 기술은 더욱 정교해졌고, 사람의 심리를 파고드는 법을 배웠다. 그의 몸은 복수를 위한 정교한 기계로 변해갔다.
***
2년 후, 박선우의 ‘미래랩’은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의 사무실은 도심의 최고층 빌딩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았다. 통유리창 너머로 서울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아래에는, 그림자처럼 숨어든 준혁이 있었다. 그는 선우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그의 모든 관계를 파고들었다.
첫 번째 복수는 선우의 명예였다. 선우는 자선사업가이자 혁신적인 기업가로 포장되어 있었다. 준혁은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미래랩 내부 고발’이라는 제목으로 익명의 글을 올렸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미래랩’이 개발 중이라는 차세대 인공지능 기술의 핵심 알고리즘이 사실은 5년 전 이미 폐기된 타사의 표절이며, 심지어 그 기술이 개인 정보 유출의 심각한 위험을 안고 있다는 것이었다. 준혁은 증거로 그가 오랫동안 모아둔 데이터 조작 파일들과 위조된 기술 보고서를 첨부했다.
“이게 다 무슨 소리야?”
선우는 분노에 차서 테이블을 내리쳤다. “말도 안 돼! 누가 이런 헛소리를 퍼뜨린 거야?”
미래랩의 주가는 폭락하기 시작했고, 언론은 의혹을 제기하기 바빴다. 선우는 기자회견을 열고 “악의적인 음해”라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지만, 이미 의심의 씨앗은 뿌려졌다. 사람들은 과거 준혁에게 씌워졌던 ‘비리 경영자’의 그림자를 선우에게서 보기 시작했다.
두 번째 복수는 선우의 돈이었다. 선우는 수많은 투자자를 끌어들여 몸집을 불렸다. 준혁은 그 투자자들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익명의 제보자로 위장하여, 특정 투자자들의 내부 정보를 경쟁사에 흘리고, 이들의 약점을 캐내 금융 감독원에 고발했다. 이 모든 것은 선우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였다. 마치 선우가 자기 이득을 위해 투자자들을 이용하는 것처럼.
“박 대표님,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저희 회사 기밀이 유출됐다는데, 왜 박 대표님 이름이 거론되는 거죠?”
“이건 또 무슨 음모야? 내가 왜 당신 회사 기밀을 빼돌려?”
선우는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주변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가 한때 강준혁에게 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이제 박선우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는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다. 잠들면 준혁의 텅 빈 눈동자가 그를 노려봤다.
준혁은 선우의 심리를 서서히 조여왔다. 그는 선우가 가장 아끼는 비서에게 접근하여 그녀의 과거사를 파헤치고, 그녀의 약점을 이용해 선우의 가장 은밀한 사생활까지 꿰뚫어 보았다. 준혁은 그녀의 휴대전화를 해킹하여 선우와의 대화를 조작하고, 그녀가 선우를 배신하는 것처럼 꾸몄다. 결국 비서는 선우의 중요한 사업 계약 정보를 경쟁사에 넘겨주었고, 선우는 수십억 대의 손해를 보게 되었다.
“감히 네까짓 게 나를 배신해?!”
선우는 비서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비서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지만, 선우의 눈에는 이미 모든 것이 배신으로 보였다. “내가 뭘 어떻게 했다는 거예요, 대표님? 전… 아무것도…”
“닥쳐! 네가 아니면 누가 내 정보를 빼돌려? 강준혁 그 자식의 잔당이라도 되는 거냐?!”
선우의 분노는 비합리적으로 변해갔다. 그는 모든 사람이 자신을 배신하려 한다고 믿기 시작했다.
복수의 마지막 단계는 선우의 고립이었다. 준혁은 선우의 가장 친한 친구, 그의 약혼녀에게까지 접근했다. 선우의 약혼녀에게는 선우가 과거에 저질렀던 추악한 일들과 그녀의 가족을 이용하려는 계획에 대한 가짜 증거를 보냈다. 그 증거들은 너무나도 완벽했고, 선우의 성격과 맞아떨어졌다.
“오빠, 이게 정말이야? 오빠가 우리 아빠 회사를 이용하려고 했다고?”
약혼녀의 눈동자는 공포와 배신감으로 흔들렸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누가 또 이따위 헛소문을…”
선우는 이제 자신의 말을 아무도 믿지 않는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그는 고립되었다. 투자자들은 등을 돌렸고, 직원들은 동요했으며, 심지어 그의 가족마저도 그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미래랩은 침몰하는 배와 같았다.
마침내, 선우는 나락의 끝에 다다랐다. 그의 회사 가치는 바닥을 쳤고, 투자자들은 그를 고소했다. 그는 횡령과 배임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되었다. 그를 지지하던 모든 언론은 이제 그를 비난하고 조롱했다. 2년 전, 준혁이 겪었던 것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선우는 자신의 텅 빈 사무실에 앉아 비틀거렸다. 모든 것이 무너졌다. 그때, 그의 휴대전화에 알 수 없는 번호로 영상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메시지를 열었다. 화면에는 오래된 사무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어딘가 익숙한, 그러나 잊고 싶었던 풍경이었다. 그리고 화면 한쪽에는, 2년 전 자신을 떠났던 강준혁의 젊은 모습이 찍힌 사진이 놓여 있었다.
잠시 후, 화면 속에서 준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변조된 목소리였지만, 선우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어때, 선우야? 이 풍경, 낯설지 않지?”
화면 속에서 준혁의 손이 사진을 어루만졌다.
“내가 너한테 남긴 잿더미가 어땠는지, 이제 좀 알겠어?”
선우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강… 강준혁? 설마, 네가?”
“네가 나에게 모든 걸 빼앗았을 때, 난 생각했지. 복수는 차갑고 느리게, 그리고 완벽해야 한다고. 네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난 네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하나씩 빼앗아갔어. 네 명예, 네 재산, 네 주변 사람들… 그리고 네 자신.”
화면 속 준혁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그 한마디 한마디는 칼날처럼 선우의 심장을 꿰뚫었다.
“이제, 네가 그 잿더미 위에서 혼자 남겨지는 기분을 느껴볼 시간이야.”
영상은 거기서 끝났다. 화면은 다시 검게 변했고, 선우는 휴대폰을 떨어뜨렸다. 쨍그랑, 하고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고요한 사무실에 울렸다. 그는 마치 영혼을 잃은 사람처럼 몸을 떨었다. 준혁이 그랬던 것처럼, 그는 이제 모든 것을 잃었다.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났다.
그때, 경찰차가 그의 빌딩 아래로 들이닥치는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선우는 창밖을 내다봤다. 그 아래,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한 그림자가 희미하게 사라지는 것을 본 듯했다. 그것은 준혁이었다. 그의 복수는 완성되었다. 하지만 준혁의 얼굴에는 승리감 대신 텅 빈 허무함이 서려 있었다. 그는 더 이상 과거의 강준혁이 아니었다. 복수의 칼날은 결국 자신마저 베어버리는 법이었다. 그는 그림자 속으로 다시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리고 그날 밤, 박선우는 체포되었다. 그는 자신이 겪은 모든 비극이, 바로 그가 뿌린 씨앗에서 비롯된 것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린 깨달음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