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짙푸른 심연 속, 아르카나 호**
거대한 황동과 강철로 이루어진 선체, ‘아르카나 호’는 짙푸른 심연을 가로지르며 나아가고 있었다. 함교는 태고의 기계가 깨어나 움직이는 듯한 소리로 가득했다. 에테르 증기 기관의 묵직한 고동이 바닥을 타고 올라와 심장을 울렸고, 복잡하게 얽힌 증기 파이프에서는 쉬익, 쉬익 하는 규칙적인 증기 배출음이 울렸다. 수많은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 진공관 램프의 희미한 불빛이 깜빡이는 소리, 육중한 압력계의 바늘이 미세하게 떨리는 소리들이 어우러져 아르카나 호만의 독특한 자장가를 연주했다.
선장 강철은 육중한 철제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전면 대형 황동창 너머의 풍경을 응시했다. 무수한 별들이 은하수처럼 펼쳐져 있었지만, 그 광경은 경이로움보다는 압도적인 고독을 선사했다. 이곳은 그 어떤 문명의 빛도 닿지 않는 심우주,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수십 년간 우주를 떠돌며 닳고 닳은 그의 낡은 가죽 코트는 이제 몸의 일부처럼 익숙했다. 그의 턱수염은 희끗했고, 눈빛은 별빛처럼 차갑고도 깊었다.
“선장님, 미세한 변동입니다.”
함교 한켠, 온갖 황동 기어와 렌즈, 그리고 깜빡이는 진공관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과학 분석 장치 앞에 앉아있던 서유리 박사가 돋보기안경을 고쳐 쓰며 보고했다. 그녀의 손은 재빠르게 복잡한 다이얼을 돌리고 있었고, 눈은 정밀한 시선으로 아날로그 계기판의 바늘 움직임을 쫓고 있었다.
“변동? 또 잡동사니 별똥별이라도 감지했나?” 강철 선장이 무심하게 물었다. 심우주에서는 예상치 못한 기현상이 자주 감지되었고, 대부분은 우주 먼지나 미세한 운석 무리에 불과했다.
“아니요, 선장님. 이번엔 다릅니다.” 서유리 박사의 목소리에 희미한 흥분이 섞여 있었다. “에테르 파동 스캐너가 감지한 신호입니다. 아주 약하지만, 일반적인 우주 물질에서는 발생하지 않는, 매우 규칙적인 형태의 파동입니다. 마치… 심장이 뛰는 것처럼요.”
강철 선장은 비로소 의자를 바로 잡았다. 서유리 박사는 아르카나 호의 브레인이었다. 그녀의 섬세한 감각과 천재적인 분석력은 이 낡은 배를 심우주까지 이끈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그녀가 이토록 흥분하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화면에 띄워 보게.”
서유리 박사가 능숙하게 몇 개의 레버를 당기자, 함교 중앙의 커다란 수동식 모니터에 녹색과 황색의 파동 그래프가 춤추듯 나타났다. 확실히 단순한 노이즈가 아니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솟아오르는 봉우리와 골짜기.
바로 그때, 거친 쇳소리와 함께 함교 뒷문이 열리고 기관장 박기관이 나타났다. 그의 작업복은 기름때로 얼룩져 있었고, 손에는 거대한 스패너가 들려 있었다.
“빌어먹을, 3번 에테르 압력 밸브가 또 고장입니다. 언제쯤 이 늙은 고철 덩어리가 말썽을 부리지 않을까요?” 그가 투덜거렸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이내 모니터의 파동 그래프에 꽂혔다. “이건 또 뭐요? 우주 고래라도 잡으러 갑니까, 박사?”
“우주 고래치고는 너무 정교합니다, 기관장님.” 서유리 박사가 대답했다. “계측 결과, 이 파동은 대략 아르카나 호에서 500 아스타리움(astarium) 떨어진 곳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물질의 밀도는 상상 이상입니다.”
“500 아스타리움…?” 강철 선장의 미간이 좁아졌다. 이 거대한 공간에서 500 아스타리움은 코앞이나 다름없는 거리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어떤 육안 관측 장치로도 감지되지 않았다는 것은…
“접근 각도를 계산하게, 박사. 최대 속도 50%로 접근한다. 비상 대기 상태로 전환하고, 모든 기관 계통을 점검해라, 기관장.” 강철 선장의 목소리에 단호함이 실렸다. 그의 눈빛은 깊은 심연 너머의 미지를 꿰뚫으려는 듯 날카로웠다.
아르카나 호의 거대한 에테르 엔진은 더욱 깊은 고동을 울리기 시작했다. 증기 파이프는 뜨겁게 달아올랐고, 배 전체가 미세하게 진동했다. 거대한 황동 조타륜이 천천히 돌려지자, 아르카나 호는 둔중하지만 멈출 수 없는 기세로 그 미지의 신호가 오는 방향으로 머리를 돌렸다.
수십 분의 침묵이 흐른 뒤, 서유리 박사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선장님… 육안 관측 거리에 진입했습니다.”
강철 선장은 자신의 낡은 황동 망원경을 집어 들었다. 렌즈의 초점을 맞추자, 짙푸른 어둠 속에 희미한 왜곡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별빛을 흡수하는 듯, 주변의 공간 자체를 일그러뜨리는 거대한 검은 그림자였다.
점점 더 가까워지자, 그 실체가 드러났다. 그것은 거대한 우주선도, 자연적인 운석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불가능한’ 형상이었다.
우주 공간에 홀로 떠 있는 그것은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는 거대한 다면체였다. 매끄러운 면들은 어떤 금속보다도 단단해 보였고, 그 표면에는 기하학적인 문양들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표면은 빛을 반사하지 않고, 오히려 흡수하는 듯했다. 마치 우주의 가장 깊은 곳에서 뽑아낸 어둠으로 빚어진 조각품 같았다. 그 거대한 존재는 아무런 동력 장치도, 움직임도, 빛도 내지 않았지만, 존재 자체로 주변 공간을 압도했다.
“세상에… 이런 것은 본 적이 없습니다.” 서유리 박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손가락은 온갖 계기판 위를 헤매고 있었지만, 모든 수치는 비정상적인 값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물질은… 저희가 아는 어떤 원소 구성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 문양들… 마치 정교한 시계의 내부처럼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박기관 기관장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저게 대체… 뭡니까? 설마 외계 함선이라도 되는 겁니까?” 그의 얼굴에는 경계심과 함께 미지의 것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이 스쳤다.
강철 선장은 황동 망원경을 내려놓았다. 그의 얼굴에는 경외감과 함께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 존재는 인간의 모든 상식을 초월한 것이었다. 저것은 단순한 기계도, 단순한 자연물도 아니었다.
“모든 기관을 정지시킨다.” 강철 선장이 낮은 목소리로 명령했다. “접근은 더 이상 없다. 저것은… 우리가 알던 우주의 일부가 아니다.”
아르카나 호는 거대한 다면체 앞에서 멈춰 섰다. 에테르 엔진의 고동 소리가 멎자, 함교는 숨 막히는 침묵에 잠겼다. 짙푸른 심연 속, 거대한 증기 우주선과 미지의 외계 유물만이 마주보고 서 있었다.
오직, 서로의 존재만이 느껴지는 섬뜩한 정적.
아르카나 호의 승무원들은 숨을 죽인 채, 침묵하는 외계 유물의 압도적인 존재감을 응시했다.
그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리고 왜 이 심우주에 홀로 떠 있는 것일까?
미지의 문이 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