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은 저택의 비명
## 챕터 1. 밀폐된 어둠
밤은 이미 짙은 먹물처럼 번져 있었다. 억수 같은 비가 검은 저택의 낡은 지붕을 사정없이 두드렸다. 번개는 시뻘건 송곳니를 드러내며 창밖을 갈랐고, 그 섬광 아래 잠시 드러난 저택의 형상은 마치 뼈만 남은 거대한 괴물 같았다. 고립된 언덕 위에 홀로 선 이 집은 오래전부터 이웃 주민들 사이에서 불길한 소문과 함께 회자되곤 했다.
“회장님, 아직 주무시지 않으셨습니까?”
노령의 김여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시계는 이미 자정을 넘겨 새벽으로 치닫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진작에 잠자리에 들었을 백승준 회장은 여전히 서재에 불을 밝히고 있었다. 김여사는 며칠째 이어지는 회장의 기이한 행동에 은근히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지난주부터 그는 식사를 거부하고 오직 서재에만 틀어박혀 알 수 없는 고문서들을 들여다보거나, 어딘가에 홀린 듯 중얼거리곤 했다. 그의 눈빛은 깊은 밤하늘처럼 검고 공허했다.
김여사는 마지막으로 회장의 침실 문을 두드려보려 했지만, 이내 발길을 돌렸다. 대신 서재 문 앞에 섰다. 굳게 닫힌 붉은색 마호가니 문 틈새로 빛이 새어 나왔지만,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침묵은 오히려 더 큰 불안을 불러왔다.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세 번을 불러도 답이 없었다. 김여사는 덜컥 겁이 났다. 문손잡이를 돌렸다. 잠겨 있었다. 안에서 닫는 쇠로 된 잠금쇠가 내려져 있을 터였다. 안에서 잠갔다면 열릴 리가 없었다. 김여사의 등골을 타고 차가운 한기가 흘러내렸다. 며칠 전부터 회장이 자신에게 줬던 열쇠가 떠올랐다.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하라’는 이상한 당부와 함께 건넨 것이었다. 김여사는 떨리는 손으로 치마 주머니를 뒤져 낡은 황동 열쇠를 찾아냈다. 이 열쇠는 이 저택의 모든 문을 열 수 있었다.
딸깍.
묵직한 잠금쇠가 풀리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유난히 크게 울렸다. 김여사는 심장이 발밑까지 내려앉는 기분으로 문을 천천히 밀었다. 삐걱이는 경첩 소리가 마치 저택의 신음처럼 들렸다.
서재 안은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테이블 위 스탠드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빛 때문이었다. 그 빛은 방 안 가득 쌓인 낡은 책들과 고풍스러운 가구들 사이로 스며들어 기묘한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붉은빛의 중심에, 백승준 회장이 의자에 앉은 채 축 늘어져 있었다.
“회장님…!”
김여사의 비명은 턱에서 걸려 터져 나오지 못했다. 등 뒤로 닫힌 문이 주는 안도감마저 사라지고, 폐쇄된 공간의 공포가 그녀를 덮쳤다.
백승준 회장은 책상에 엎드린 채 미동도 없었다. 그의 얼굴은 푸른색과 보라색이 뒤섞여 마치 죽은 지 며칠이 지난 시체 같았다. 핏기 없는 입술은 끔찍한 비명을 지르다 굳어버린 듯 일그러져 있었고, 두 눈은 텅 빈 채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옷은 찢겨 있었고, 드러난 가슴팍에는 거대한 검은색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표식이라기보다는, 피부 자체가 타들어 가 검게 변색된 자국에 가까웠다. 그의 손에는 낡은 은빛 부적이 꽉 쥐어져 있었다. 부적의 중심에는 기괴한 형태의 눈동자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 순간, 김여사는 머리칼이 쭈뼛 서는 경험을 했다. 분명히, 방금 전까지 자신의 등 뒤에 문이 닫혀 있었는데, 창문 밖에서 강렬한 번개가 터지는 순간, 서재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 뒤로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열린 문틈으로 섬뜩하리만치 짙은 어둠이 밀려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김여사는 미친 듯이 뒤를 돌아봤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심장이 찢어질 듯이 아파왔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기절했다.
***
“젠장,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경우야!”
박 형사는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현장에 도착한 지 두 시간째. 비는 여전히 그치지 않고 창밖에서 세상의 모든 소음을 집어삼키는 듯 울부짖고 있었다. 그는 서재를 둘러싸고 있는 특수 감식반과 경찰들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굳은 표정으로 이 황당한 사건 앞에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시신은 이미 수습되었고, 현장은 꼼꼼하게 보존되었다. 국과수의 검시관이 1차 소견을 내놓았지만, 사망 원인 또한 미궁에 빠져 있었다. 명백한 외상은 없었으나, 심장마비로 보기엔 시신의 상태가 너무나 기괴했다. 가슴팍에 새겨진 검은 표식은 마치 누군가 뜨거운 인두로 지진 듯한 형태였지만, 피부 조직을 검사한 결과 그 어떤 열에도 노출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검시관은 다만 “극심한 공포에 질려 죽은 것 같다”는 모호한 의견만 내놓을 뿐이었다.
박 형사의 머릿속을 가장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바로 이 방이 ‘밀실’이라는 사실이었다.
“다시 한번 확인해 봐. 문이나 창문 중에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은 없어?” 박 형사가 감식반장을 다그치듯 물었다.
감식반장은 고개를 저었다. “박 형사님, 처음부터 끝까지 다 확인했습니다. 모든 창문은 안에서 굳게 잠겨 있었고, 쇠못으로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외부의 힘으로는 절대 열 수 없었습니다. 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안에서 걸쇠로 굳게 잠겨 있었고, 김여사가 여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지문도 백 회장과 김여사 외에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환기구는 사람이 드나들 수 없을 만큼 좁았고, 굴뚝 또한 막혀 있었다. 이 서재는 완벽하게 외부와 차단된 공간이었다. 안에서 스스로 잠근 백 회장,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김여사가 열쇠로 열고 들어갔다. 그 사이 누군가 들어와 백 회장을 살해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 유령이라도 왔다는 거야? 시발, 귀신이 사람을 죽이고 사라졌다는 거냐고!” 박 형사가 울분을 토하듯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밀실의 공기를 가르며 섬뜩하게 울렸다.
그때, 서재 문이 다시 한번 열렸다. 이번에는 삐걱이는 소리 대신, 묵직하고 나직한 마찰음이 들렸다.
“이곳에 유령은 없습니다.”
나지막한 목소리가 서재 안의 모든 소음을 잠재웠다. 키는 크지 않았지만 단단해 보이는 체격에, 검은 코트를 입은 한 남자가 들어섰다. 그의 눈빛은 짙은 밤하늘처럼 깊었고, 그 안에 담긴 지성은 평범한 사람의 것이 아님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는 느릿하게, 그러나 확신에 찬 발걸음으로 방 안으로 들어왔다.
서지혁. 이 이름은 이미 경찰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통하고 있었다. 불가능한 사건만을 맡아 해결하는 ‘이계의 탐정’이라 불리는 남자였다. 그는 경찰이 손쓸 수 없는 기묘한 사건에만 모습을 드러냈고, 언제나 상식을 벗어나는 방식으로 진실을 밝혀냈다. 그의 존재는 박 형사에게 늘 불편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늦으셨습니다, 서 탐정님.” 박 형사가 퉁명스럽게 인사했다.
서지혁은 박 형사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곧장 현장의 중심으로 향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손전등을 들거나 돋보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눈으로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시신이 있었던 의자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곧이어 책상 위에 놓여 있던 고문서들을 집어 들었다. 그 문서들은 온통 낯선 언어와 기이한 상형문자로 가득했다.
“박 형사님, 이 방에 외부인의 침입 흔적은 없었겠죠.” 서지혁이 물었다. 목소리에는 질문이라기보다는 확인에 가까운 어조가 담겨 있었다.
“그렇습니다. 완벽한 밀실입니다. 자살일 가능성도 있지만, 시신 상태를 보면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게 분명합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박 형사의 말꼬리가 흐려졌다.
서지혁은 아무 말 없이 방 안을 천천히 걸었다. 그의 발걸음은 마치 이 저택의 일부인 것처럼 조용하고 자연스러웠다. 그는 창문 앞, 낡은 커튼을 손으로 쓸어 올렸다. 쇠못이 박힌 창문 프레임을 한참 응시하더니,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이 저택의 연식은 대략 백 년이 넘었을 겁니다. 서재가 완공된 시점 또한 비슷하겠죠.” 서지혁이 중얼거렸다. “오래된 건물을 탐색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건물이 숨기고 있는 ‘세월의 흔적’을 읽는 겁니다.”
그는 다시 시선으로 방 안을 훑었다. 낡은 책장, 먼지 쌓인 책들, 벽에 걸린 퇴색한 그림들. 그리고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은 바로 벽 한가운데에 걸린 거대한 거울이었다. 고풍스러운 장식에 둘러싸인 거울은 방 안의 모든 것을 비추고 있었다.
“거울이… 좀 이상하군.” 서지혁이 나직하게 말했다.
“예? 거울이 뭐가 이상하다는 겁니까?” 박 형사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이 거울의 위치와 크기가 이 방의 다른 가구들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서지혁은 거울 앞으로 다가가 손가락으로 거울 테두리의 낡은 나무를 만졌다. “마치 나중에 덧대어 설치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거울 주위를 몇 번 맴돌더니, 갑자기 손을 뻗어 거울 옆의 낡은 벽지를 뜯어냈다. 감식반원들이 놀라 웅성거렸다.
뜯겨 나간 벽지 아래로, 낡은 나무판자가 드러났다. 그리고 그 판자에는 희미하게 지워진, 그러나 명백히 존재하는 거대한 문양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백 회장의 가슴팍에 있던 검은 표식과 똑같은 형태였다. 기괴한 눈동자 모양의 문양.
“이것은…!” 박 형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살인사건의 범인들은 늘 현장에 자신만의 흔적을 남기죠. 어떤 이는 물리적인 단서를, 어떤 이는 심리적인 표식을. 하지만 이 사건의 범인은 둘 다 남겼습니다.” 서지혁은 굳게 닫힌 서재 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눈빛은 꿰뚫는 듯 날카로웠다.
“백승준 회장은 밀실에서 죽지 않았습니다. 밀실에 갇힌 채 ‘살해당했다’는 생각 자체가 이 사건의 가장 큰 착각입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서지혁은 거울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이 거울에 닿는 순간, 거울 속에서 섬뜩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범인은 이 방 안에 있었습니다. 아니, 이 방 안에 ‘갇혀’ 있었던 것은 우리 모두였습니다.”
서지혁의 말과 함께, 창밖으로 번개가 번쩍였다. 그 빛 아래, 거울에 비친 그의 모습 뒤로, 마치 환영처럼, 서재 문이 스르륵 열리는 듯한 착시가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열린 틈새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박 형사는 눈을 비볐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서지혁은 모두를 돌아보며 싸늘하게 웃었다.
“진범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살인자’가 아닙니다. 이 저택 전체가, 어쩌면 이 도시 전체가 감당할 수 없는 존재일지도 모르죠.”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서재 안을 감싸던 붉은빛 스탠드가 갑자기 깜빡거리더니 완전히 꺼져버렸다. 이어서 저택 전체의 전기가 나가며, 서재는 완벽한 어둠 속에 갇혔다.
밖에서는 비바람 소리가 더욱 거세게 몰아쳤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낮은 흐느낌 같은 것이 희미하게 들려오는 듯했다. 박 형사는 식은땀을 흘리며 더듬더듬 손전등을 찾았다.
서지혁은 어둠 속에서도 평온한 표정이었다. 그의 눈빛만이 어둠 속에서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게임은 이제 시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