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디아 마법 아카데미의 밤은 언제나 고요했다. 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웅장한 대리석 건물들은 달빛 아래 은은하게 빛났고, 마력으로 작동하는 정원수들은 바람 한 점 없는 밤에도 나뭇잎을 부드럽게 흔들었다. 하지만 이현의 가슴 속은 달랐다. 며칠 전부터 시작된 불안한 예감은 그의 심장을 무거운 돌처럼 짓눌렀다.
“젠장, 또야?”
이현은 손에 든 낡은 마력등을 들어 올렸다. 눈앞의 복도는 아카데미의 오래된 서고 지하에 위치한, ‘출입 금지’ 표지가 붙어있는 폐쇄된 구역이었다. 며칠 전부터 이곳에서 이상한 마력 파동이 감지되고 있었다. 미약하지만 불규칙하고, 섬뜩할 정도로 차가운 기운. 아카데미의 어디에서도 느껴본 적 없는 불길한 파동이었다. 교관들은 그저 ‘오래된 마법 잔류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이현은 직감했다. 이건 뭔가 다르다.
특히, 한 달 전 실종된 3학년 선배, 강지훈의 이야기가 이현의 불안감을 부추겼다. 강지훈 선배는 아카데미의 역사와 금기된 마법에 유독 관심이 많았고, 실종되기 직전까지 이 지하 구역에 대해 조사하고 있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아카데미 측은 ‘학업 부적응으로 인한 자진 퇴학’이라고 발표했지만, 그의 방에 남아있던 어지러운 연구 자료들과 벽에 새겨진 기묘한 문양들은 ‘자진 퇴학’이라는 말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변명인지 말해주고 있었다.
이현은 망설였다. 평범한 학생이라면 돌아서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며칠 밤낮을 괴롭힌 호기심과 불길한 예감은 그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그는 마력을 불어넣어 철문 잠금장치에 마법을 걸었다.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녹슨 빗장이 풀렸다. 어둠과 함께 퀴퀴한 곰팡이 냄새, 그리고 차가운 습기가 밀려들어왔다. 마력등의 흔들리는 불빛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복도는 끝없이 이어지는 듯했다. 벽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희미하게 빛나는 야광 이끼들이 벽돌 틈새에서 푸르스름한 빛을 내고 있었다. 이현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주변의 공기가 점점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상하게도 복도 바닥에는 먼지가 거의 없었다. 마치 누군가 주기적으로 이곳을 드나드는 것처럼.
‘설마, 정말 강 선배가… 아직 여기에?’
그의 등골로 식은땀이 흘렀다. 발소리가 복도에 울리며 그의 심장 박동 소리를 더욱 크게 만들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복도 끝에 희미한 빛이 감지되었다. 이현은 마력등을 끄고 벽에 바싹 붙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빛은 벽의 갈라진 틈새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틈새로 눈을 가져가자, 어두운 공간 너머로 기묘한 제단 같은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위에 놓인… 검은 돌덩이. 아니, 돌덩이라기에는 너무나 매끄럽고, 동시에 너무나 불길했다. 흡사 살아있는 생물의 심장처럼 어두운 빛을 미약하게 내뿜고 있었다.
이현은 숨을 멈췄다. 그 순간, 돌덩이에서 차가운 마력 파동이 거세게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어둠 속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속삭임이 들려왔다.
“…*피… 피를… 갈망하는…* ”
낮고 굵은 목소리, 마치 수많은 목소리가 동시에 겹쳐진 듯한 섬뜩한 울림이었다. 이현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나려던 찰나, 발아래서 ‘쨍그랑’ 소리가 났다. 이현이 밟은 것은 흙바닥에 박혀있던 조그만 돌멩이였다.
작은 소리였지만, 지하 공간의 고요를 깨트리기에는 충분했다.
속삭임이 뚝 끊겼다. 제단 위 검은 돌덩이의 빛이 잠시 강렬하게 번뜩였다가, 다시 희미해졌다.
이현은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무언가가… 그를 눈치챘다.
그때였다. 틈새 너머의 공간에서 쿵, 쿵,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치 거대한 짐승이 걸어오는 듯한 발소리였다.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이현은 등골을 타고 흐르는 전율에 몸이 굳어버리는 것을 느꼈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그의 눈앞에는 틈새 너머의 공간이 어둠에 잠겨 있었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안에는… 절대 마주쳐서는 안 될 존재가 있다는 것을.
발소리가 문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삐걱이는 나무문 너머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침입자…* ”
아까 그 섬뜩한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직접적으로 들려왔다. 마치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생생했다. 이현은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것 같은 극한의 공포를 느꼈다. 그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왔던 길을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마력등을 챙길 새도 없었다. 어둠 속에서 발이 꼬여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지만, 오직 살아야 한다는 본능만이 그를 움직였다.
뒤에서 쿵, 쿵, 쿵… 하는 발소리가 끈질기게 따라오는 듯했다. 이현은 정신없이 뛰었다. 복도의 끝, 철문이 눈앞에 보였다. 그는 온몸의 힘을 다해 철문을 밀고 뛰쳐나왔다. 그리고 마법으로 잠금장치를 다시 채웠다. 덜컥! 덜컥! 잠긴 문 안쪽에서 쿵, 쿵, 쿵… 하는 격렬한 소리가 들려왔다. 쇠문이 찌그러질 듯 크게 흔들렸다.
이현은 벽에 등을 기댄 채 주저앉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은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등 뒤에서는 여전히 철문이 덜컥거리고 있었다.
그는 방금 본 것을 애써 외면하려 했지만, 뇌리에 박힌 검은 돌덩이와 끔찍한 속삭임, 그리고 거대한 발소리는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젠장… 대체… 대체 저게 뭐야…?”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겨우 마력등을 꺼내 불을 밝혔다. 희미한 불빛 아래, 그의 발치에 떨어진 것이 보였다.
낡은 가죽 수첩. 닳아빠진 표지에는 ‘강지훈’이라는 이름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현은 수첩을 집어 들었다. 첫 장을 펼치자, 삐뚤빼뚤한 글씨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카데미 지하에 잠든 것은 단순한 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있는 저주다. 봉인은 닳아 없어지고 있고, 그들은… 그것을 먹이려 한다.」
다음 장에는 알아볼 수 없는 기이한 문양과 함께 다음과 같은 글귀가 쓰여 있었다.
「*아르카디아의 어둠이 깨어난다. 영원히 잠들지 않을 끔찍한 금기가…*」
이현의 눈은 글귀 위에서 멈췄다. 그의 손에서 수첩이 툭, 하고 떨어졌다. 철문 안쪽에서 들리던 격렬한 소리가 순간 멈췄다. 그리고, 이윽고 들려오는 것은… 마치 만족스러운 듯한, 낮고 끈적한 웃음소리였다.
크큭… 크흐흐흐…
그 웃음소리는 이현의 귓가에 맴돌며, 아카데미의 고요한 밤을 한순간에 지옥으로 만들었다.
아르카디아 마법 아카데미의 지하에는… 정말로 살아있는 무언가가, 금기된 어둠이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막 눈을 뜬 참이었다.
** (다음 화에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