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2화: 흑요석의 눈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 ‘흑요석의 서재’는 죽음 그 자체였다. 창밖으로는 낡은 성벽을 타고 흐르는 음습한 안개가 스며드는 듯했고, 서재를 가득 채운 고문서의 퀴퀴한 냄새는 공포와 절망으로 뒤섞여 있었다. 방 중앙에 쓰러진 엘도리아 남작의 시신은 마치 태고의 비극을 읊조리는 유물 같았다. 짙은 핏자국이 바닥의 고색창연한 양탄자를 검붉게 물들이고 있었고, 그의 굳은 가슴에는 정교하게 연마된 검은 흑요석 조각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강진우는 문턱에 멈춰 서서 한참을 말없이 방 안을 응시했다. 그의 검은 눈동자는 어둠에 잠식된 서재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듯했다. 그의 옆에 선 박 경감은 거친 숨을 내쉬며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강 탐정님, 보시다시피… 완벽한 밀실입니다. 문은 안에서 빗장이 걸려 있었고, 열쇠는 저기, 문 안쪽 고리에 걸려 있습니다. 창문은 옛 마법으로 강화된 철창으로 막혀 있어 어른은커녕 어린아이도 빠져나갈 수 없고요. 굴뚝은 수십 년 전에 봉쇄되었고, 숨겨진 통로 따위는 이 성의 건축 도면에도 없습니다.”
박 경감의 목소리는 절망감으로 가득했다. 시신을 둘러싼 정적 속에서 그의 말만이 공허하게 울렸다. 강진우는 아무런 대답 없이 천천히 방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의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웠지만, 그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서재의 공기는 더욱 차갑게 얼어붙는 듯했다.
그는 먼저 문으로 향했다. 거대한 참나무 문에 박힌 육중한 철제 빗장을 손으로 쓸어보았다. 무겁고 뻑뻑한 쇳덩이의 감촉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 빗장, 박 경감님께서 직접 확인하셨습니까?” 강진우가 나지막이 물었다.
“예, 탐정님. 이 빗장은 오직 안에서만 걸 수 있는 구조입니다. 문이 안으로 열리는 형태라 밖에서는 도저히 조작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열쇠는 저 고리에 그대로 걸려 있었습니다. 남작이 직접 잠그고 안에서 열쇠를 걸어두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강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은 빗장에서 벗어나 문틈으로 향했다. 굵은 먼지가 겹겹이 쌓인 문틈을 따라가던 그의 눈빛이 순간,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그리고 이 흑요석 조각… 남작의 심장에 박힌 이것은?”
그는 시신에 가까이 다가섰다. 검은 흑요석은 마치 살아있는 것 같은 불길한 광택을 뿜어냈다. 표면에는 미세하고 기묘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빛을 받을 때마다 그 문양이 희미하게 일렁이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건, 남작의 수집품 중 하나입니다. ‘꿈의 흑요석’이라고 불리는… 저주받았다고 소문이 돌던 물건이었죠. 마법에 재능이 있는 자가 다루면 영혼을 꿰뚫는 능력을 발휘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평범한 인간에게는 그저 날카로운 돌 조각일 뿐…” 박 경감이 덧붙였다.
“흠.” 강진우는 조용히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러나 그의 표정에는 아무런 감탄의 기색도 없었다. 그는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흑요석 조각을 감쌌다. 차가운 냉기가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그는 흑요석 조각을 빼지 않고, 그저 그 표면의 미세한 문양을 손가락으로 따라 훑었다. 마치 점자를 읽어내듯이.
“범인은 이 방 안에 있었습니다.” 강진우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박 경감이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어떻게 나갔다는 겁니까? 이 완벽한 밀실에서?”
“그가 나간 것이 아닙니다.” 강진우의 시선이 남작의 시신에서 다시 문으로 향했다. “빗장이 잠긴 것은… 그가 나가고 난 후입니다.”
“그럴 리가요! 빗장은 안에서만 잠글 수 있다고…” 박 경감이 반박하려 했지만, 강진우의 날카로운 눈빛에 말문이 막혔다.
“빗장은 안에서만 잠글 수 있습니다. 그건 사실이죠.” 강진우는 문득 고개를 들어 문 위쪽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마치 장식처럼 보이는 낡은 석조 부조가 있었다. 마법적인 상징이 새겨진 듯한 복잡한 문양. “하지만… 빗장을 잠근 이가 반드시 방 안에 있을 필요는 없었을 겁니다.”
그의 손이 다시 빗장으로 향했다. 그는 빗장을 손으로 잡고 아주 미세하게 흔들어 보았다. 굳건히 박혀 움직이지 않아야 할 빗장이, 그의 손에서 아주아주 미세한 유격을 보였다. 거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털끝만한 흔들림.
“이 빗장은… 움직일 수 있습니다. 외부의 힘으로도.” 강진우가 말했다. “아마도 이 서재의 마법적 구조와 연결되어 있을 겁니다. 꿈의 흑요석은 그 마법을 증폭시키는 도구였겠죠.”
박 경감이 혼란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외부의 힘으로… 저 육중한 빗장을? 탐정님,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그 어떤 마법사도 외부에서 저런 구조물을 조작할 수는… 적어도 완벽한 밀실처럼 보이게 만들면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렇습니다. 평범한 마법사라면요.” 강진우는 흑요석 조각이 박힌 남작의 가슴을 한 번 더 응시했다. 그리고 다시 문 위쪽의 석조 부조를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이 방의 건축가는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서재는 단순한 방이 아니죠. 이 방은… 스스로 잠글 수 있는 구조입니다.”
“스스로 잠근다니요? 대체 그게 무슨…?”
“남작은 심장이 꿰뚫리는 고통 속에서도 마지막으로 무엇을 보았을까요?” 강진우는 박 경감의 말을 끊으며 질문을 던졌다. 그의 시선은 바닥에 흩뿌려진 고문서 더미를 지나, 서재의 가장 깊은 곳, 거대한 책장 뒤편의 어두운 벽을 향했다. 그 벽에는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낡고 오래된 벽지가 발려 있었지만, 미세하게 다른 질감이 느껴졌다.
“범인은 이 방에서 나갔습니다. 그리고 문이 닫히는 순간, 빗장은 저절로 걸렸습니다. 그것도 안에서 걸린 것처럼 보이게요. 남작은 그 모든 과정을 보았을 겁니다. 죽어가면서도… 완벽한 밀실이 만들어지는 것을.”
강진우는 천천히 서재 가장 깊숙한 곳의 벽으로 걸어갔다. 어둡고 낡은 그 벽은 다른 어떤 곳보다도 음습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그의 손이 닿자, 낡은 벽지 아래에서 차가운 돌의 감촉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돌 틈 사이로, 거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미세한 균열이 있었다.
“이 방은, 남작의 무덤이었습니다. 그리고 범인은… 그 무덤의 가장 은밀한 문을 알고 있었던 거죠.”
그의 손이 미세한 균열 위를 쓸어내리자, 벽지 한 조각이 얇게 떨어져 나갔다. 그 아래 드러난 것은 다른 벽돌보다 유난히 매끄러운 검은 돌이었다. 그리고 그 돌의 표면에, 희미하게 빛나는 마법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강진우는 그 문양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박 경감님, 이 ‘흑요석의 서재’는… 사실 남작이 숨겨둔 비밀 통로의 입구였습니다. 그리고 그 통로를 오가는 자만이 이 방의 빗장을 외부에서 조작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죠.”
그의 손가락이 문양 위에서 미끄러지자, 낡은 벽돌이 스르륵 안쪽으로 밀려 들어갔다. 그 뒤에 드러난 것은 암흑 속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불길한 어둠의 통로였다. 그 통로의 깊이를 알 수 없는 곳에서, 차가운 바람이 섬뜩하게 불어왔다.
“그리고 이 방의 빗장은… 그 통로의 마법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특정한 마법적 조작이나, 특정 주파수의 진동을 통해… 외부에서 안으로 잠글 수 있게 설계된 겁니다. 꿈의 흑요석은 그 주파수를 조절하고 증폭하는 도구였던 거죠.”
강진우는 돌아섰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흑요석 조각이 박힌 남작의 시신에 머물렀다.
“범인은 남작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이 비밀 통로를 통해 유유히 사라졌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숨겨진 마법적 장치를 이용해 이 빗장을 잠갔습니다. 남작의 시신이 발견되기 전까지, 누구도 이 방의 진정한 ‘밀실’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도록.”
박 경감은 경악과 혼란이 뒤섞인 표정으로 비밀 통로를, 그리고 다시 강진우를 바라보았다. 그의 천재적인 통찰력 앞에서 모든 불가능은 한낱 연극에 불과했다.
“그럼… 범인은 누구라는 겁니까, 강 탐정님?” 박 경감의 목소리는 미약하게 떨렸다.
강진우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의 시선은 남작의 가슴에 박힌 흑요석 조각에 고정되어 있었다.
“범인은 이 비밀 통로의 존재와, 이 빗장의 마법적 메커니즘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자입니다. 그리고 꿈의 흑요석을 다룰 줄 알았던 자. 아마도… 남작이 가장 신뢰했던 사람 중 한 명이겠지요.”
그는 다시 시신으로 다가섰다. 그의 손가락이 흑요석 조각을 천천히 감쌌다.
“그리고 흑요석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 돌이 마지막으로 기록한 진실을 읽어내야 합니다.”
그의 눈빛이 마치 흑요석처럼 차갑게 빛났다. 밀실의 비밀은 풀렸지만, 이제 진짜 사냥이 시작될 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