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아포칼립스 생존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잿빛 먼지가 부유하는 폐허 속에서 진은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한때 번성했던 거대한 시장의 잔해는 이제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채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갈라진 콘크리트 틈새마다 질긴 덩굴식물들이 뿌리를 내리고, 바람은 으스스한 속삭임처럼 낡은 철골 구조물 사이를 헤집었다. 그의 손에는 찌그러진 보급 식량 캔 하나가 들려 있었다. 내용물은 분명 눅눅하고 맛없겠지만, 허기를 채우기엔 충분할 터였다.

저 위,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거대한 감시탑의 붉은 눈이 느릿하게 도시를 훑었다. 그 빛은 제국의 시선이었다. 무너진 세계의 잔해 속에서 유일하게 제 모습을 유지한 채, 모든 것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절대자의 눈. 진은 애써 시선을 피하며 낡은 천막 더미 사이로 몸을 숨겼다. 그의 폐는 먼지 섞인 공기를 들이마실 때마다 고통을 호소했지만, 소리 내어 기침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주 작은 소음조차도 죽음을 부를 수 있었다.

“젠장, 오늘은 아무것도 없네.”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며칠째 제대로 된 음식을 입에 대지 못했다. 제국은 식량을 배급한다는 명목으로 사람들을 한곳에 모아 통제하고, 그마저도 고분고분한 이들에게만 최소한의 양을 던져줄 뿐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굶어 죽거나, 병들어 죽거나, 아니면 감시탑의 눈에 띄어 총살당하는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때였다.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폐허 저편에서 울려 퍼졌다. 쿵, 쿵, 쿵. 일정한 리듬으로 다가오는 소리. 철갑 옷이 부딪히는 쨍한 소리가 먼지 가득한 공기를 갈랐다. 제국군이었다.

진은 본능적으로 낡은 상점의 잔해 뒤로 몸을 던졌다.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그는 숨을 죽이고, 모든 감각을 곤두세웠다. 세 명의 제국군 병사가 폐허 사이를 조심스럽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의 검은 갑옷은 번들거렸고, 손에 든 소총은 언제든 불을 뿜을 준비가 되어 있는 듯했다.

“이 빌어먹을 구역은 아무것도 없어.” 한 병사가 거칠게 중얼거렸다. “반란군 놈들이 숨을 만한 곳도 안 보이고.”
“그냥 놈들을 발견하는 즉시 쓸어버리면 된다.” 다른 병사가 낄낄거렸다. “황제 폐하의 자비는 한계가 있는 법이지.”

진은 들끓는 분노를 억눌렀다. 자비? 그들이 말하는 자비는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배고픔에 허덕이는 백성들에게 총구를 겨누는 것이, 부패한 귀족들이 호화로운 연회를 즐기는 동안 평민들이 쓰레기 더미를 뒤지게 하는 것이 그들의 ‘자비’였다.

병사들이 지나쳐 가는 순간, 진은 재빨리 반대편 골목으로 몸을 날렸다.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삐걱거리는 철판 조각이 그의 발밑에서 소리를 냈다.

“누구냐!”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뒤를 돌아본 병사들의 총구가 진을 향했다. 심장이 발밑으로 곤두박질치는 것 같았다. 그는 고민할 틈도 없이 있는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폐허의 미로를 헤치며, 무너진 벽을 뛰어넘고, 낡은 가구 더미 위를 질주했다. 그의 뒤에서는 총성이 울렸다. ‘피융! 피융!’ 귀청을 찢는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저놈 잡아라!”

진은 필사적이었다. 잡히면 끝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익힌 민첩함과 폐허 지형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이용했다. 어두운 골목으로 몸을 비틀어 들어가고, 간신히 총알이 스쳐 지나간 벽 뒤에 숨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멈출 수 없었다.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살아야 한다. 살아남아야 한다.’

그는 감시탑의 빛이 닿지 않는 어둡고 복잡한 구역으로 파고들었다. 마침내 추격자들의 발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진은 낡은 창고 안으로 쓰러지듯 들어섰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벽에 기댄 채, 식은땀으로 축축한 얼굴을 쓸어내렸다.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것이 일상이 된 지 오래였다.

간신히 숨을 고른 진은 다시 움직였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었다.
도시 외곽의 지하수로. 제국의 눈을 피해 숨어든 이들이 모인 곳. 낡은 철제 문을 열고 들어서자, 습하고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둠 속에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모닥불의 연기와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그를 반겼다.

“진, 무사했나?”

먼저 그를 알아본 것은 세라였다. 그녀는 언제나 그랬듯이 조용히 모닥불 옆에 앉아 있었지만, 그녀의 눈은 어떤 맹수보다도 날카로웠다. 얼굴에는 고된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지만, 꺾이지 않는 의지가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세라는 이들의 대장이자, 이 거대한 제국에 맞서 싸우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네, 대장님.” 진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낡은 지도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제국군이 서쪽 구역, 특히 제5 보급창고 주변에 병력을 증강시키고 있습니다. 감시탑의 순찰 주기도 짧아졌고요. 아마… 최근 벌어진 약탈 때문인 것 같습니다.”

최근 들어 제국군 보급창고에서 의문의 식량과 물품들이 사라지는 일이 잦았다. 물론 그 ‘의문의 존재’는 진과 같은 반란군 세력이었다.

세라는 진이 건넨 지도를 받아 들고 모닥불의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녀의 미간에는 깊은 주름이 잡혔다.
“예상했던 대로군. 백성들의 불만이 임계점에 달했으니, 놈들도 불안하겠지. 그래서 더 옥죄는 거다.”
옆에서 묵묵히 칼을 갈던 강이 거친 목소리로 내뱉었다. “옥죌수록 터질 겁니다, 대장님. 저놈들은 저희가 개돼지인 줄 알아요. 더 이상은 못 참습니다.”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이거나, 희미한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가 굶주림과 절망에 지쳐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눈에는 희망과 분노의 불씨가 살아 있었다.

“보급창고는 이제 쉽지 않겠군.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 세라가 지도를 접으며 말했다. “제국은 이 도시의 모든 자원을 독점하고 있다. 놈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면, 놈들이 가장 아끼는 것을 빼앗아야 해.”

진은 세라의 말에 무언가 떠오른 듯 물었다. “대장님, 혹시… 제국의 ‘기억 저장소’ 말씀이십니까?”
모두의 시선이 진에게로 향했다. 기억 저장소는 제국이 과거의 기술과 지식, 그리고 이 도시의 모든 정보와 역사를 보관하고 있는 거대한 데이터 저장 시설이었다. 일반인들의 접근은 꿈도 꿀 수 없는 곳이자, 동시에 제국 권력의 상징 중 하나였다.

세라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것은 슬픔과 결의가 뒤섞인, 묘한 미소였다.
“그래, 진. 놈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곳. 모든 백성의 기록과 과거의 진실이 잠들어 있는 곳. 그곳을 장악하면, 우리는 단순한 도둑 떼가 아니라,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이 제국의 거짓을 폭로할 수 있다.”
강이 눈을 번뜩이며 물었다. “하지만 그곳은 도시의 핵심 구역 아닙니까? 감시탑 바로 아래에 있지 않습니까? 거기로 들어간다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입니다.”

세라는 조용히 모닥불 속의 장작을 바라보았다. 불꽃이 그녀의 눈동자에서 춤을 추는 듯했다.
“그래, 자살행위일 수도 있지.”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모든 이의 심장을 울렸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왔는가? 단순히 오늘 하루를 버티기 위해서인가? 아니. 우리는 우리 아이들이 다시는 굶주림에 허덕이지 않고, 제국의 거짓된 역사 속에 갇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싸우는 거다. 기억 저장소는 그 시작이 될 것이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하수로의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이제 더 이상 숨어있을 수만은 없어. 다음 보름달이 뜨는 밤, 우리는 움직일 것이다. 기억 저장소를 향해.”
그녀의 말에 공간을 채우고 있던 침묵이 깨지고, 웅성거림과 함께 끓어오르는 열기가 가득 찼다. 두려움과 망설임이 공존했지만, 그보다 더 강한 희망과 결의가 모두의 얼굴에 떠올랐다. 진 역시 주먹을 꽉 쥐었다. 심장이 다시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거대한 제국에 맞서는, 작은 불씨들의 거대한 반란이 이제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