칙, 칙, 칙!
새벽을 알리는 증기 파이프의 거친 숨소리가 고층 건물 사이를 헤집고 내려와 강율의 허름한 작업실 창문을 흔들었다. 덧창 너머로는 아직 태양 빛이 채 닿지 않은, 안개와 매연이 뒤섞인 회색빛 도시 풍경이 희미하게 펼쳐져 있었다. 거대한 톱니바퀴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 낡은 증기기관의 고동 소리, 그리고 아직 잠에서 덜 깬 에어십의 둔탁한 프로펠러 소리가 강율의 일상이었다. 그 소음마저 조율된 교향곡처럼 익숙한.
강율은 기름때 묻은 작업복 소매를 걷어 올리며 고글을 고쳐 썼다. 콧등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오직 작업대 위에 놓인 낡은 태엽 인형에 고정되어 있었다. 심장이 되어야 할 태엽장치는 녹슬어 멈춰 있었고, 눈 역할을 하던 유리구슬은 깨져 희뿌옇게 변색되어 있었다.
“젠장, 또 안 돌아가네.”
그는 나지막이 욕설을 읊조리며 정교한 드라이버로 태엽장치의 작은 나사를 돌렸다. 일주일째 씨름 중인 고물 인형이었다. 지난주, 뒷골목 잡상인에게서 헐값에 산 이 인형은 겉보기엔 그저 폐기물에 불과했지만, 강율의 예민한 직감은 어딘가 다른 ‘무엇’이 숨겨져 있음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의 직감은 보통 틀린 적이 없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그는 녹슨 태엽장치의 틈새로 손톱만 한 금속 조각을 발견했다. 일반적인 태엽 인형에 사용되는 부품과는 확연히 다른, 검푸른 빛을 띠는 금속이었다. 강율은 호기심에 핀셋으로 조각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조각의 표면에는 육안으로는 식별하기 어려운 미세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옆에 놓인 정밀 확대경을 끌어당겨 조각을 들여다보았다. 작은 문양들은 마치 고대 언어의 일부분 같기도 하고, 어딘가 신비로운 지도의 파편 같기도 했다. 복잡하게 얽힌 선들과 점들, 그리고 중앙에 희미하게 빛나는 삼각형 모양의 기호. 그의 심장이 갑자기 격렬하게 두근거렸다. 단순한 장식 조각이 아니었다.
“이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강율은 머릿속에 저장된 방대한 지식의 조각들을 더듬었다. 그는 공식적인 학술원 소속은 아니었지만, 이 도시의 그 어떤 학자보다도 잊혀진 기술과 고대 문명에 대한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수많은 고물 더미 속에서 찾아낸 고문서, 금지된 기술서, 심지어는 조악하게 인쇄된 민간 전설집까지.
그는 망설임 없이 작업대 구석에 쌓여 있던 낡은 서적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먼지투성이 책장을 넘기고 또 넘기다, 그의 손이 멈춘 곳은 <심연의 그림자: 잊혀진 지하 문명에 대한 단상>이라는 제목의 얇은 책이었다. 수십 년 전, 익명의 저자가 발행했다가 곧바로 금서로 지정되어 시중에서 사라졌다는 기묘한 책이었다. 강율은 우연히 폐기된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했고, 그 내용에 매료되어 여러 번 탐독했었다.
책의 한 페이지에는 그가 발견한 금속 조각의 삼각형 기호와 거의 흡사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설명을 읽어 내려가자 강율의 눈이 점차 커졌다.
[‘엘레보스’라 불리는 지하 도시의 유물에 자주 나타나는 표식으로 추정된다. 전설에 따르면 엘레보스는 지상 문명이 멸망하기 전, 지저 깊숙한 곳에 건설된 고도의 기계 문명 도시였다고 한다. 지상에서는 더 이상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으나…]
“엘레보스…!”
강율은 숨을 들이켰다. 그저 허황된 전설인 줄로만 알았던 지하 도시가 실제로 존재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는 다시 금속 조각을 확대경 아래 놓았다. 이제는 문양들이 단순한 선이 아니라, 엉성하지만 하나의 지도를 형성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도시 벨럼의 지하 깊숙한 곳,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려진 미지의 공간을 가리키는 지도였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 지도의 시작점이 벨럼의 가장 오래된 구역, ‘녹슨 심장부’로 불리는 빈민가 깊숙한 곳을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곳은 이미 개발이 중단되고 버려진 지 오래된, 지상에서도 가장 위험하고 통제되지 않는 지역이었다.
강율의 심장이 광기 어린 기대감으로 부풀어 올랐다. 그는 지금껏 상상으로만 존재하던 미지의 세계로 통하는 열쇠를 손에 쥐고 있는지도 모른다. 벨럼의 공식 학술원에서는 고대 문명 연구를 낡고 쓸모없는 일이라 치부했지만, 강율은 언제나 그들이 놓치고 있는 진실이 있다고 믿었다.
그때, 작업실 문이 ‘덜컥’ 하고 열리는 소리가 났다. 강율은 화들짝 놀라 금속 조각을 책상 아래로 숨겼다. 문틈으로는 기름 냄새와 함께 바깥의 거친 바람이 훅 끼쳐 들어왔다.
“율, 또 밤샘 작업이야? 안색이 귀신이 따로 없네.”
짙은 갈색 작업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투덜거리며 들어섰다. 강율의 스승이자 친구인 ‘메카닉 길드’ 소속의 노련한 기술자, 카를이었다. 그의 손에는 따뜻한 증기가 피어오르는 머그잔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카를 영감님. 평소보다 일찍 오셨네요.” 강율은 애써 평온한 척하며 대꾸했다.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잡는 법이지. 넌 계속 늦잠 자다가 고물만 잡고 있겠고.” 카를은 잔을 건네며 강율의 작업대를 힐끗거렸다. “이번엔 또 뭘 부활시키려다 죽이려 하고 있나?”
강율은 모른 척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뜨거운 액체가 목을 타고 넘어가자 얼어붙었던 정신이 조금씩 돌아오는 듯했다.
“그냥 흔한 태엽 인형입니다. 워낙 낡아서 복구가 어렵네요.”
카를은 픽 웃으며 강율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의 눈썰미는 예리했다. 강율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음을 간파한 듯,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흐음, 네 손에 들어온 물건 중에 ‘흔한 것’이 있었나? 늘 골치 아픈 것들만 잔뜩 끌어 모으던 녀석이.”
강율은 대답 대신 어색하게 웃었다. 카를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는 강율의 고집과 열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때로는 그 열정이 위험한 호기심으로 변질되기도 한다는 것도.
카를이 잠시 쉬러 자리를 비운 사이, 강율은 다시 금속 조각을 꺼내들었다. 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렸다. 그는 확신했다. 이것은 단순한 태엽 인형의 부속이 아니었다. 이 작은 조각은 잊혀진 문명, ‘엘레보스’로 향하는 첫 번째 단서였다. 그리고 그 지하 깊숙한 곳에는, 벨럼의 모든 지식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비밀이 잠들어 있을 터였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카를 영감님!”
작업실 입구에서 잠시 한숨 돌리던 카를이 고개를 돌렸다.
“어디 가시게요?”
“잠시… 폐기된 구역에 볼일이 생겨서요.” 강율의 눈빛은 불꽃처럼 타올랐다. “아주 중요한 고물을 찾으러요.”
강율은 망설임 없이 보관함에서 가장 튼튼한 다용도 공구 벨트를 꺼내 허리에 찼다. 야간 이동에 필수적인 증기 랜턴과 몇 가지 간단한 비상식량도 챙겼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 금속 조각이 가리키는 지저세계의 입구만이 가득했다.
벨럼의 거대한 톱니바퀴는 여전히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톱니바퀴 아래, 잊혀진 심연 속으로 향하는 또 하나의 톱니바퀴가 지금 막 움직임을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