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인(賤人)들의 함성
흙먼지 가득한 거리, ‘진창골’이라 불리는 이곳은 숨쉬는 것조차 사치였다. 하늘은 뿌연 잿빛이고, 땅은 늘 말라붙어 있었다. 제국이 부과한 가혹한 세금과 끝없는 부역은 이곳의 모든 것을 빨아들였고, 사람들의 눈동자엔 절망만이 깃들어 있었다. 뼈대만 남은 집들 사이로 비쩍 마른 아이들이 먼지바람에 휩쓸려 다니는 모습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이봐, 이 집 문 열어! 세금 징수가 아직 안 끝났잖아!”
건장한 체구의 제국 병사들이 낡은 집 문을 발로 걷어차며 소리쳤다. 그들의 갑옷은 반질반질 빛났지만, 진창골 사람들에게는 그 빛이 마치 작열하는 태양처럼 고통스럽게 다가왔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이들은 뜯어낼 것이 없는 마른걸레에서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려 들었다.
강휘는 무너진 담벼락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긴 채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눈은 형형하게 빛났다. 말라붙은 입술을 깨물자 피 맛이 돌았다. 며칠 밤낮을 새워가며 사람들을 모으고 설득했지만, 아직 때는 아니었다. 아직은.
“이게 마지막 쌀입니다요, 나리…. 제발… 제발 이 아이에게 먹일 것만 남겨주십시오.”
문이 열리고 비쩍 마른 여인이 쌀 한 줌을 든 채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그녀의 뒤에는 열병에 시달리는 듯한 어린아이 하나가 비틀거리며 서 있었다. 병사들은 코웃음을 쳤다.
“흥, 그깟 쌀 한 줌으로 되겠느냐? 제국의 부역을 회피하려 드느냐!”
병사들 중 가장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 얼굴에 흉터가 길게 그어진 녀석이 여인의 손에서 쌀을 거칠게 빼앗았다. 쌀알 몇 개가 땅에 떨어져 먼지와 뒤섞였다. 아이가 비틀거리며 그 쌀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 이럴 순 없습니다! 저희에게는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여인이 울부짖으며 병사의 다리를 붙잡았다. 흉터 자국 병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거친 발길질로 여인을 내팽개쳤다. 여인은 벽에 부딪히며 쓰러졌고, 둔탁한 소리가 진창골의 적막을 깨트렸다. 아이는 엄마를 부르며 울기 시작했다.
강휘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허리춤의 녹슨 괭이자루를 꽉 쥐었다. 심장이 격렬하게 울렸다. 그의 눈앞에 스치는 건 어릴 적, 굶주림에 허덕이다 제국 병사들의 채찍질에 쓰러져간 그의 가족들 모습이었다. 그때도 그는 숨죽여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는 안 돼.*
강휘의 머릿속에서 거대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더 이상 숨을 곳도, 잃을 것도 없었다. 이 순간, 그를 짓눌러온 모든 체념과 공포가 거대한 분노로 폭발했다.
“그만둬라!”
그는 그림자 속에서 뛰쳐나왔다. 그의 목소리는 찢어질 듯 날카로웠지만, 진창골 전체를 뒤흔드는 듯한 울림이 있었다. 병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강휘에게로 향했다. 그들의 눈에는 경멸과 비웃음이 서려 있었다.
“저런 천민 놈이 주제도 모르고!”
흉터 병사가 칼을 뽑아 들며 강휘에게 다가섰다. 강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괭이자루를 단단히 쥐었다. 그의 손에 박힌 굳은살이 쑤셨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눈은 이미 그들의 갑옷 너머, 그들을 지배하는 부패한 제국의 심장을 겨누고 있었다.
“더 이상 당하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강휘의 외침과 동시에, 진창골의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강휘와 함께 준비했던 사람들이었다. 낡은 문들이 열리고, 창과 낫, 심지어는 부엌칼을 든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모두 강휘처럼 굶주리고, 분노하고,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자들이었다.
“죽어라, 천민 놈!”
흉터 병사가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강휘는 몸을 숙여 칼날을 피하고, 괭이로 병사의 다리를 걸었다. 병사는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강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괭이자루 끝으로 병사의 옆구리를 찍었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병사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이… 이놈들이 미쳤나! 반란이다!”
남은 병사들이 당황하며 칼을 빼 들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진창골 사람들은 물밀듯이 달려들었다. 그들의 무기는 보잘것없었지만, 그들의 눈에는 잃을 게 없는 자들의 필사적인 광기가 서려 있었다.
“죽여! 저들을 죽여야 우리가 산다!”
한 노인이 녹슨 낫을 휘두르며 병사의 팔을 찍었고, 다른 이는 돌멩이를 던져 병사의 투구를 강타했다. 병사들은 훈련된 전사였지만, 수십, 수백 명의 굶주린 민중 앞에서 그들의 무기와 훈련은 무의미했다. 이들은 체계적인 전투가 아니었다. 짐승처럼 달려드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강휘는 쓰러진 병사에게서 칼을 빼앗아 들었다. 차가운 강철의 감촉이 손에 와 닿았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미 몇몇 병사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고, 남은 병사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진창골의 분노는 쓰나미처럼 그들을 덮쳤다.
“물러서라! 제국의 정의는 너희를 용서치 않을 것이다!”
한 병사가 절규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민중의 함성에 파묻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들은 모두 제압당했다. 피와 먼지가 뒤섞인 진창골 거리에 정적이 찾아왔다. 굶주림에 허덕이던 사람들의 얼굴에는 기이한 흥분과 함께 두려움이 공존했다.
강휘는 숨을 몰아쉬며 쓰러진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갑옷은 더 이상 빛나지 않았다. 처음으로, 그들의 손으로 제국에 맞서 싸워 이겼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다가왔다.
“우리는… 우리는 돌아갈 수 없어.”
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강휘에게로 향했다. 그들은 강휘의 눈에서 자신들이 품고 있던 똑같은 결의를 보았다.
“맞아.” 강휘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그 안에 담긴 의지는 단단했다. “이제 되돌릴 수 없어. 우리가 선택한 길이다.”
그는 칼을 높이 치켜들었다. 햇빛이 칼날에 반사되어 잠시 빛을 발했다.
“하지만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제국이 우리를 죽이려 들면, 우리는 더 큰 불꽃이 되어 타오를 것이다!”
그의 외침에 진창골의 사람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그 함성은 굶주림과 절망의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억압받던 자들의 분노와 희망이 뒤섞인,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알리는 웅장한 천인(賤人)들의 함성이었다. 흙먼지 가득한 진창골에서, 비로소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