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은 언제나 차갑고, 동시에 따뜻했다.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수놓아진 은하의 강물 위를 유유히 미끄러져 가는 거대 스타라이너 ‘아르테미스 호’. 그 최고급 라운지 바 한쪽 구석에 앉아 이안은, 방금 배달된 보라색 ‘성간 칵테일’을 천천히 흔들었다. 얼음 조각이 유리잔에 부딪히며 내는 경쾌한 소리가 우주 저 너머의 고요함과 대비되어 더욱 선명했다. 그의 옆으로는 수천 광년 떨어진 은하 성운이 거대한 유화처럼 펼쳐져 있었다.
“이안 씨, 이 아름다운 밤에, 왜 그렇게 깊은 생각에 잠겨 계십니까?”
바텐더 로봇 ‘아틀라스-5’가 그의 앞에 다가와 공손하게 물었다. 이안은 픽 웃었다. “아틀라스, 나는 늘 생각에 잠겨 있지. 그리고 아름다운 밤은 항상 문제의 서곡이 되곤 하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라운지 전체에 쨍한 비상벨이 울려 퍼졌다. 칵테일 잔을 든 승객들의 손이 일제히 멈췄고, 환한 미소를 짓던 홀로그램 웨이트리스가 깜빡거리며 사라졌다. 이안은 그저 고개를 젓더니, 칵테일을 단숨에 들이켰다.
“보라고, 아틀라스. 내가 말했잖아.”
***
사건은 아르테미스 호의 최고급 개인 스위트, 펜트하우스 ‘오리온 룸’에서 발생했다.
“피해자는 에이젤 후작입니다. 시신은 침대 옆 책상에 엎드린 자세로 발견되었습니다.”
보안 책임자인 한서 준위의 목소리에는 당혹감과 긴장이 역력했다. 이안은 후작의 스위트 문을 둘러봤다. 삼중 잠금장치가 견고하게 박혀 있었고, 에너지 실드 패널은 완벽하게 닫혀 있었다. 외부 침입의 흔적은 전혀 없었다.
“이안 씨, 후작은 분명히 스위트 내부에서 문을 잠그고 수면 모드에 들어갔습니다. 우리 보안 시스템 로그는 그 어떤 외부 침입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내부에서도 외부로 나간 기록은 없습니다. 완벽한 밀실입니다.” 한서 준위가 말했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럼 시신을 먼저 확인하죠.”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이안은 후작의 시신에 다가갔다. 에이젤 후작은 푸른색 고급 실크 잠옷을 입고 있었다. 몸에 외상은 없었다. 책상 위에는 읽다 만 데이터 패드와 펜이 놓여 있었고, 테이블에는 반쯤 남은 와인잔이 있었다. 스위트 내부는 기압, 온도, 습도 모두 정상 범주를 유지하고 있었다.
“사인은 부검 결과, 급성 심장 마비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후작은 평소 건강했고, 스트레스 레벨도 아주 낮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수사 담당 의무 장교가 덧붙였다.
이안은 후작의 손목을 잡고 맥박을 확인하는 척했지만, 실제로는 다른 것에 집중했다. 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후작의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눈은 희미하게 충혈되어 있었고, 동공은 팽창되어 있었다.
“사건 발생 시각은 대략 새벽 3시 30분에서 4시 사이로 추정됩니다. 마지막으로 후작을 본 사람은 그의 시종 로봇, 제타-7입니다. 어젯밤 11시 쯤 후작에게 잠자리 인사를 드리고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한서 준위가 보고했다.
이안은 방 안을 천천히 걸었다. 럭셔리한 가구, 은하수가 보이는 대형 홀로스크린, 개인용 데이터 단말기. 모든 것이 질서정연했다. 완벽한 밀실에서, 건강한 사람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한서 준위, 이 스위트에는 비상 대피 시스템이 있습니까?” 이안이 갑자기 물었다.
한서 준위는 고개를 갸웃했다. “네, 물론입니다. 비상 상황 시에는 실내 공기를 빠르게 순환시키고, 외부 환경과 완전히 격리시키는 기능이 탑재되어 있습니다. 이 기능을 사용하면 실내 기압과 온도를 외부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거나, 반대로 내부의 유해 물질을 신속하게 외부로 배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후작은 비상 상황을 알리지 않았고, 시스템 로그에는 아무런 작동 기록도 없습니다.”
“외부 환경과 완전히 격리시키는 기능이라…” 이안이 중얼거렸다. 그의 시선은 천장 한구석에 있는, 거의 보이지 않는 작은 환풍구 커버에 멈춰 있었다. 그것은 평범한 공기 순환용 환풍구가 아니었다. 비상 시에 대량의 공기를 빠르게 흡입하거나 배출하기 위한 특별한 장치였다.
“후작의 비서실에 확인해 본 결과, 내일 아침 9시에 셀레나 박사와의 중요한 회의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한서 준위가 말했다. “셀레나 박사는 이 함선의 환경 제어 시스템 설계에 참여했던 과학자입니다.”
이안은 홀로스크린 옆에 놓인 작은 온도계에 시선을 고정했다. 현재는 22도로 정상적인 실내 온도였다. 하지만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표면적인 평온함 너머의 무언가였다.
그는 스위트의 중앙 제어 패널로 다가갔다. 한서 준위가 황급히 암호를 입력하여 잠금을 해제했다. 이안은 수많은 시스템 로그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온도, 기압 기록은 완벽했다. 하지만 이안은 ‘비상 환경 제어 시스템’ 로그를 따로 찾아냈다.
거기에는 아주 미세하고 짧은 시간 동안의 이상 기록이 남아 있었다. 새벽 3시 42분 13초부터 3시 42분 25초까지, 약 12초간의 비정상적인 로그였다. 그 짧은 순간, 스위트 내부의 기압이 급격하게 하강한 후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고, 동시에 온도는 영하 30도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솟구쳐 올랐다. 기록은 시스템 오류로 자동 복구되었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이게… 뭐죠?” 한서 준위가 당황해서 물었다. “이런 기록은 처음 봅니다. 시스템 오류라면 보안 알림이 떴을 텐데요.”
이안은 픽 웃었다. “이건 오류가 아닙니다, 준위님. 이건 살인입니다.”
그는 후작의 시신으로 다시 다가갔다. 그리고 후작의 옷깃을 살짝 열었다. 왼쪽 가슴 부위에 아주 작은, 거미줄 같은 푸른 멍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일반적인 심장마비로는 설명할 수 없는 흔적이었다.
“범인은 이 스위트를 죽음의 밀실로 만든 게 아닙니다. 이 스위트 자체를 흉기로 사용한 겁니다.” 이안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스위트의 비상 환경 제어 시스템은 비상시 공기를 외부로 급속도로 배출하거나, 외부 공기를 급속도로 유입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범인은 이 기능을 악용한 겁니다.”
한서 준위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그 시스템은 함선 중앙 제어실에서만 조작이 가능하며, 최고 등급의 보안 암호가 필요합니다. 게다가 이 스위트 안에서는….”
“이 스위트 안에서는 말이죠, 준위님, 외부와 연결된 가장 약한 고리가 있습니다. 바로 저 비상 환풍구 커버입니다. 비상시에 엄청난 양의 공기를 순식간에 이동시키기 위한 통로죠.” 이안은 환풍구를 가리켰다. “범인은 아마도 함선 네트워크의 맹점을 찾아내거나, 혹은 이 함선의 환경 제어 시스템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중앙 제어실의 보안 프로토콜을 우회해 이 스위트의 비상 공기 순환 시스템을 원격으로 조작했을 겁니다.”
“원격 조작….”
“네. 새벽 3시 42분, 후작이 잠이 들었을 때, 범인은 이 방의 공기를 단 12초 만에 우주 공간으로 강제로 배출시킨 겁니다. 그리고 다시 급하게 채워 넣었죠. 순간적으로 방 안은 진공에 가까운 상태가 되었다가, 다시 급격한 기압 변화를 겪었을 겁니다. 동시에 우주 공간의 극저온에 노출되었다가, 다시 함선 내부의 상온으로 돌아왔을 겁니다.”
이안은 후작의 시신을 가리켰다. “이 작은 푸른 멍은 급격한 기압 변화로 인한 것입니다. 혈관이 터지거나, 장기가 손상될 정도의 충격이죠. 심장은 엄청난 부담을 받게 되고, 결국 급성 심장 마비처럼 보이는 죽음으로 이어지는 겁니다.”
한서 준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시스템 로그는 오류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정확히 그거죠. 범인은 시스템을 조작한 후, 자신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다시 로그를 조작해 단순 오류로 위장했을 겁니다. 하지만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의 비정상적인 기록은 미처 지우지 못했거나, 아니면 지울 수 없었겠죠. 그리고 이런 정교한 조작은 함선의 환경 제어 시스템에 대한 깊은 지식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이안은 한서 준위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준위님, 함선의 환경 제어 시스템을 설계했고, 후작과 내일 아침 중요한 만남이 예정되어 있었던 사람은 누구입니까?”
한서 준위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셀레나 박사입니다.”
***
셀레나 박사는 함선 중앙 제어실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눈은 이안의 논리적인 추론 앞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에이젤 후작은 제 연구 성과를 빼앗으려 했습니다. 제 미래를 송두리째 짓밟으려 했다고요!” 그녀의 목소리는 분노와 절망으로 가득했다. “그는 저의 모든 것을 파괴할 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리기로 했습니다.”
“그가 잠든 사이, 당신은 중앙 제어 시스템의 백도어를 이용해 후작의 스위트 비상 환경 시스템을 원격으로 작동시켰군요.” 이안이 말했다. “정확히 12초. 짧은 순간이었지만, 인간의 몸이 버텨낼 수 없는 극한의 환경이었죠. 그리고 시스템 로그를 조작해 흔적을 지웠습니다. 밀실에서 일어난 완벽한 살인이었지만, 당신은 당신의 지식과 이 함선의 시스템을 이용해 그 방 자체를 흉기로 만든 겁니다.”
셀레나 박사는 고개를 숙였다. “저는… 후작이 죽음으로써, 제 연구가 살아남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안은 창밖의 무한한 우주를 바라보았다. “우주는 언제나 무수한 비밀을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비밀은 때로는 인간의 어두운 욕망과 만나, 상상도 못할 방법으로 비극을 만들어내죠. 밀실은 단지 환상일 뿐입니다. 모든 것은 결국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아르테미스 호는 여전히 고요히 은하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별들은 그 모든 진실을 침묵 속에 품고, 멀리서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이안은 알고 있었다. 이 넓은 우주에서, 진실은 언제나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길을 찾아 드러난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