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1화: 텅 빈 아파트에 찾아온 손님**

이진우는 눈을 감은 채 심호흡을 했다. 늦은 저녁, 도시의 소음은 얇은 방음벽을 뚫고 웅웅거렸지만, 14층 작은 아파트는 그 소리마저 희미하게 묻어버릴 만큼 고요했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소파에 파묻고 명상 아닌 명상을 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낙이었다. 빌딩 숲에서 찌들어버린 혼탁한 기운을 씻어내는, 그만의 의식이었다.

“흐읍… 후우…”

어릴 적부터 익숙했던 호흡법. 깊게 들이쉬고 길게 내쉬는 동안, 온몸의 세포가 깨어나듯 미약하게 떨렸다. 근육의 긴장이 풀리고, 머릿속을 맴돌던 잡념들이 한 점 안개처럼 흩어지는 기분. 그는 잠시나마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졌다. 수십 년 전, 잊힌 숲속에서 수행하던 기억의 조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때였다.
‘쿵.’
주방 쪽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진우는 눈을 번쩍 떴다.
“뭐지?”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옆집에서 물건을 떨어뜨린 소리인가? 아니면 위층에서? 새벽에 자주 들리던 쿵쿵거림과는 달랐다. 좀 더 가까운 곳에서 들린 듯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다시 눈을 감으려던 찰나, 이번에는 ‘딸깍’ 하는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정적 속에서 유독 선명했다. 현관문 잠금쇠가 풀리는 소리처럼.

진우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잠시나마 고요했던 그의 내면이 미약하게 흔들렸다. 본능적인 경계심이 등골을 타고 올랐다. 그는 숨을 죽인 채 소파에서 내려와 거실 한가운데 섰다. 텅 빈 아파트, 그의 존재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 현관문을 바라봤지만, 굳게 닫힌 문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누구 없어요?”
무심코 튀어나온 목소리가 낯설게 울렸다.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진우는 조심스럽게 현관문으로 다가갔다. 잠금쇠는 분명히 잠겨 있었다. 손잡이를 잡고 흔들어봐도 묵직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착각이었나? 피곤해서 헛것을 들었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의 감각은 웬만한 인간의 것을 아득히 초월한다. 착각일 리 없었다.

다시 거실로 돌아와 소파에 앉으려던 순간, 이번에는 등 뒤에서 선반에 놓여 있던 작은 화분이 ‘쨍그랑’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흙먼지가 바닥에 뿌려지고 작은 다육식물이 나뒹굴었다.

진우는 재빨리 뒤를 돌아봤다. 분명히 선반 가장자리에 잘 놓여 있던 화분이었다. 바람도 불지 않는 실내에서 저절로 떨어질 리가 없었다.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단순한 피로가 아니었다.

“이게 무슨….”
그의 시선이 화분 너머의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 싱크대 위에 놓여 있던 컵 하나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마치 누군가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린 것처럼. 컵은 이내 멈췄지만, 진우의 눈에는 그 움직임이 똑똑히 보였다.

진우는 천천히 주방으로 다가갔다. 긴장감에 온몸의 세포가 곤두섰다. 어릴 적 수많은 수련을 통해 단련된 육신은 위험을 감지하자마자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손가락 끝이 저릿했고, 온몸의 기혈이 활발하게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잊고 지냈던 감각이었다.

싱크대 앞에 서서 컵을 내려다봤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팔을 뻗어 컵을 집어 들었다. 평범한 유리컵.
그때, 냉장고 문이 ‘덜컥’ 하고 저절로 열렸다.

“젠장!”
진우는 순간적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놀라움보다는 당황스러움이 컸다. 귀신? 도둑? 그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도둑이라면 벌써 제 모습을 드러냈을 터. 귀신이라면… 그는 지금까지 귀신이라는 존재를 믿지 않았다. 그가 살았던 세계에는 귀신보다 더 기괴하고 섬뜩한 존재들이 넘쳐났으니까.

그가 냉장고 문을 다시 닫으려던 순간, 손잡이를 잡기도 전에 문이 다시 ‘덜컥’ 하고 완전히 열렸다. 이번에는 안에서 차가운 기운이 확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냉장고 안의 음식물들이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우유팩이 바닥에 나뒹굴고, 반찬 통들이 굴러떨어졌다.

그 모든 것이 너무도 현실적이었다. 진우는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의 이성이 비현실적인 상황을 이해하려 애썼다.
“도대체 뭐냐, 너.”
진우의 목소리는 낮게 깔려 있었다. 그 순간, 그의 등 뒤에서 싸늘한 한기가 확 몰려왔다.

누군가 자신의 목덜미에 차가운 숨결을 불어넣는 듯한 소름 끼치는 감각. 진우는 본능적으로 몸을 틀며 뒤를 돌아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에, 진우의 그림자가 유난히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림자 끝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더 이상 단순한 장난이 아니었다. 이 기운… 익숙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아주 어둡고 깊은 곳에서 느껴봤던 감각. 그건 생명의 기운과는 거리가 멀었다. 음습하고, 사악하며, 동시에 강력했다.

“나타나라.”
진우가 나직이 말했다. 그의 전신에서 희미한 기운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잊고 지냈던 그의 본질이 이 비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핏속에 잠자고 있던 무인의 감각이 다시금 깨어나, 날카로운 송곳처럼 예민해졌다.

그가 말을 끝내기 무섭게, 거실의 전등이 ‘파지직’ 소리를 내며 깜빡이기 시작했다. 이내 모든 불이 꺼지며 아파트는 암흑 속에 잠겼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도시의 불빛만이 희미하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어둠 속에서, 진우의 심장이 격렬하게 울렸다. 그의 눈은 이미 어둠에 적응해 있었다. 그는 어둠 속을 노려봤다.
그 순간, 텔레비전 앞에 놓여 있던 작은 유리 장식품들이 하나둘씩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붙들린 것처럼 천천히, 그리고 흔들림 없이.

그리고 이내, 그 모든 장식품들이 진우를 향해 일제히 날아들었다. 마치 수십 개의 날카로운 파편처럼.
‘피할 수 없다면… 맞서야지.’
진우의 눈빛이 싸늘하게 빛났다. 그의 손바닥에서 푸른 기운이 미약하게 피어올랐다.
오랜 시간 잊고 지냈던 무인의 혈기가, 도시 아파트의 한밤중 기괴한 현상 속에서 드디어 그 존재를 드러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