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선 헤르메스 호는 심연의 장막을 가로지르며 나아가고 있었다. 빛의 속도로 삼 년을 날아온 여정, 인류가 명명한 별자리와 항로를 벗어나, 오직 미지의 검은 지도를 따라 움직이는 고독한 점과 같았다. 함장 이지아는 푹신한 조종석에 등을 기댄 채, 눈앞의 홀로그램 스크린에 펼쳐진 성간 먼지와 희미한 암흑 물질의 흐름을 응시했다. 무의미한 숫자들이 깜빡이는 함선 시스템 지표들은 오랜 시간 반복되어 왔던 일상의 권태를 대변하는 듯했다.
“함장님, 아직도 그 ‘이상 신호’에 미련이 남으십니까?”
부함장이자 수석 항해사인 김민준이 커피 잔을 들고 다가왔다. 그의 목소리에는 미약한 피로와 함께 지루함이 섞여 있었다. 민준은 지아의 오랜 동료였다. 이 지루하고도 위험한 임무의 동반자.
“미련이라기보다는, 호기심이지.” 지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기록되지 않은 성운, 예상치 못한 에너지 서지. 모든 것이 우리의 상식을 거스르고 있잖아.”
한 달 전부터, 헤르메스 호의 장거리 스캐너는 띄엄띄엄 이상 신호를 감지해 왔다. 불규칙하고 미약해서 단순한 시스템 오류로 치부되기 쉬운 종류의 신호였다. 하지만 이지아는 직감적으로 그것이 단순한 오류가 아님을 알았다.
“박선우 수석 과학자는 벌써 온갖 가설을 늘어놓고 있겠죠. 암흑 에너지의 변동, 아니면 또 다른 우주의 창조적 파괴 활동쯤으로요.” 민준이 쓴웃음을 지었다.
바로 그때, 함교 안쪽에 위치한 연구실에서 박선우 수석 과학자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함장님! 민준 씨! 이거 좀 보십시오! 드디어 잡았습니다!”
지아와 민준은 동시에 몸을 일으켜 연구실로 향했다. 선우는 홀로그램 디스플레이를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움직이며 뭔가를 확대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학자 특유의 광기 어린 흥분과 함께, 아이 같은 순수한 경이로움이 가득했다.
“이게… 대체 뭡니까?” 민준이 디스플레이를 들여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화면에는 별들의 배경 위에 검은 점 하나가 떠 있었다. 그러나 단순한 검은 점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주변의 빛을 송두리째 빨아들이는 듯한, 완벽하게 어둡고 완벽하게 정교한 형태였다. 확대될수록 그 윤곽은 더욱 선명해졌다. 육면체. 완벽한 비율의 정육면체.
“표면에 아무런 반사도 없습니다. 레이더는 물론, 심지어 중력파 스캔에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흡수하고, 왜곡하고,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하지만 분명히 여기 있습니다!” 선우가 흥분에 겨워 숨을 헐떡였다. “이런 물질은 이론적으로만 존재 가능하다고 여겨졌습니다. 아니, 존재조차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겁니다!”
지아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충돌 위험은?”
“전혀 없습니다. 현재 추정되는 크기는 헤르메스 호의 절반 정도입니다. 자전도, 공전도, 아무런 움직임도 없습니다. 마치… 그냥 그 자리에 ‘박혀’ 있는 것 같습니다.”
“정체불명… 외계 유물… 박선우 박사님, 당신이 그토록 바라던 미지의 발견이군요.” 민준이 읊조렸다.
“그 이상입니다. 이건 단순히 ‘발견’이 아닙니다. 이건… 우주의 언어입니다.” 선우의 눈빛이 번뜩였다.
“헤르메스 호, 엔진 출력 최저로. 유물에 0.5광초 거리까지 접근한다. 최윤슬 기술장, 모든 스캔 장비 준비시키고, 원격 접근 포드 점검해. 박선우 박사, 추가 스캔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줘.” 지아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새로운 미스터리에 대한 탐구욕이 숨어 있었다.
헤르메스 호는 고요히 움직였다. 웅장한 추진음 대신, 엔진의 미약한 진동만이 함선 전체에 울렸다. 검은 육면체는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냈다. 육안으로도 그 존재는 압도적이었다. 주변의 별빛조차 왜곡시키는 듯한, 완벽한 어둠의 형태. 표면은 어떤 거친 면도 없이 매끄러웠고, 빛을 반사하기는커녕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블랙홀 같았다.
“표면 온도는 절대 영도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미약한 에너지 흐름이 감지됩니다.” 선우가 데이터를 읽어 내려갔다. “구성 물질은… 알 수 없습니다. 스캔 파장이 모두 흡수되거나 산란되어 돌아오지 않습니다.”
“전혀 새로운 물질이군요.” 윤슬 기술장의 목소리가 통신망을 통해 들려왔다. “원격 접근 포드 준비 완료했습니다. 제가 직접 나가겠습니다.”
“윤슬, 함장님 허가 없이 움직이지 마!” 민준이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윤슬은 미소 지으며 포드 해치를 닫았다. 그녀는 언제나 호기심과 모험심이 넘쳤다.
작은 포드가 헤르메스 호의 격납고에서 분리되어 검은 육면체로 향했다. 포드 카메라를 통해 전송되는 영상은 유물의 존재감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했다. 윤슬은 조심스럽게 로봇 팔을 뻗어 유물 표면에 접촉을 시도했다.
“접촉 직전… 반응 없습니다.” 윤슬이 보고했다.
그녀의 로봇 팔이 유물 표면에 닿으려는 순간, 포드 내부에서 갑자기 경고음이 울렸다.
“정전기! 고전압! 로봇 팔 시스템 오류!” 윤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헤르메스 호의 함교에서도 시스템에 이상이 생겼다. 홀로그램 디스플레이가 일렁이고, 조명이 순간적으로 깜빡였다.
“함장님, 유물에서 알 수 없는 파동이 방출되고 있습니다! 헤르메스 호의 보호막과 동력 시스템에 심각한 부하가 걸리고 있습니다!” 민준이 소리쳤다.
“윤슬! 당장 포드를 후퇴시켜!” 지아가 명령했다.
“안 돼요! 로봇 팔이… 붙었어요!”
그 순간, 유물의 완벽한 검은 표면에 희미한 푸른빛이 번졌다. 마치 심해 속 생명체의 발광 기관처럼, 섬세하고 복잡한 기하학적인 문양이 수놓아지는 듯했다. 빛은 점점 강해졌고, 동시에 함선 내부의 모든 전자기기가 비명을 지르는 듯한 고주파음과 함께 일그러졌다.
“젠장! 통신 두절!” 민준이 헤드셋을 벗어던졌다.
선우는 홀로그램 스크린에 바싹 얼굴을 들이댄 채, 무언가에 홀린 듯 중얼거렸다. “아니… 이건… 언어… 패턴… 정보의 흐름…”
유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은 윤슬의 포드를 감쌌다. 포드 내부의 카메라 영상이 왜곡되기 시작하더니, 이내 지지직거리는 노이즈로 뒤덮였다.
“윤슬! 들리나! 윤슬!” 지아가 다급하게 외쳤다.
잠시 후, 노이즈가 걷히고 희미한 영상이 다시 나타났다. 윤슬은 로봇 팔을 통해 직접 유물 표면에 손을 대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그 눈빛은 경외감과 공포가 뒤섞인, 낯선 감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함장님…” 윤슬의 목소리는 떨렸다. “제가… 제가 ‘봅니다’… 이건… 별들의 탄생이고… 죽음이고… 모든 시간의… 끝이자 시작입니다…”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함교의 모든 승무원들은 머릿속에 갑작스러운 이미지들을 보았다. 광활한 우주가 찰나에 생성되고 소멸하는 모습, 이름 모를 문명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영상, 그리고 알 수 없는 언어로 속삭이는 목소리들이 귓가에 울렸다.
“이건… 과거의 기억이야… 내 기억이 아니야…” 민준이 머리를 감싸 쥐며 휘청거렸다.
선우는 이미 눈을 감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희열과 함께 고통스러운 경련이 지나갔다. 마치 유물과 직접적인 정보 교환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푸른빛은 더욱 거세졌다. 육면체 유물은 이제 하나의 거대한 발광체 같았다. 그리고 그 빛 속에서, 유물의 표면에 새겨졌던 기하학적인 문양들이 회전하며, 마치 ‘문’이 열리는 듯한 형상을 만들었다. 어둠 속에서 빛으로 이루어진 문이 활짝 열리는 듯한 착각이었다.
윤슬의 몸이 경련했다. 그녀의 눈에서는 한 줄기 피가 흘러내렸지만, 그녀는 여전히 손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 문 너머로 그녀의 시선이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함장님… 문이… 열리고 있어요…” 윤슬의 목소리는 이제 완전히 다른 사람의 것처럼 들렸다. 메아리치고, 여러 겹의 목소리가 겹쳐지는 듯했다. “그들이… 우리를… 부르고 있어요…”
“민준! 함선을 유물로부터 최대 출력으로 이탈시켜! 당장!” 지아가 소리쳤다. 그녀는 직감했다. 이 문이 열리면, 인류가 감당할 수 없는 무언가가 쏟아져 나오거나, 혹은 우리 자신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라는 것을.
“안 됩니다! 동력 시스템이 거의 마비 상태입니다! 제어 불능!” 민준이 발버둥 쳤다.
바로 그때, 선우가 소리를 질렀다. 그의 눈이 번쩍 뜨였다. 눈동자는 푸른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그의 입에서는 알 수 없는 고대어가 터져 나왔다.
“그들은… 기다려왔다… 침묵 속에서… 모든 것의 끝을… 보았다… 그리고… 이제… 시작될 것이다!”
선우는 마치 영혼을 빼앗긴 것처럼, 유물을 향해 달려가려 했다. 지아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정신 차려, 박선우!”
하지만 선우의 힘은 기이하게도 강했다. 그는 지아를 뿌리치고 함교를 벗어나 유물이 있는 격납고를 향해 달렸다. 윤슬의 포드는 유물의 빛에 완전히 삼켜져, 마치 홀로그램처럼 반투명하게 변하고 있었다. 문은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었다. 그 안에는 어둠과 함께 형언할 수 없는 색채의 소용돌이가 꿈틀거렸다.
지아는 민준의 도움으로 간신히 함선 제어권을 일부 되찾았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유물을 향해 직진하는 선우를 뒤로한 채, 헤르메스 호의 마지막 남은 모든 추진력을 끌어모아 뒤편으로 방향을 틀었다.
“젠장! 전부 타라! 유물에서 멀어져!” 지아는 절규했다.
헤르메스 호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유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유물의 문은 여전히 열려 있었고,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은 우주선 전체를 집어삼키는 듯했다. 윤슬의 포드는 빛과 함께 사라졌고, 선우는 유물의 빛 속에서 멀어지는 헤르메스 호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얼굴은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뒤섞여 있었다. 환희, 절망, 깨달음…
헤르메스 호는 가까스로 유물의 영향권에서 벗어났다. 푸른빛은 서서히 희미해졌고, 유물의 문은 천천히 다시 닫혔다. 검은 육면체는 다시 완벽한 침묵 속으로 잠겨들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러나 모든 것이 예전 같지는 않았다. 선우는 유물과의 접촉 후 함선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알 수 없는 심연을 담고 있었다. 그는 이제 말하지 않았다. 다만 가끔씩 허공을 응시하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민준은 유물의 후유증으로 인해 심한 두통과 함께, 잊고 있던 과거의 파편들이 불쑥불쑥 떠오르는 고통에 시달렸다. 윤슬은… 돌아오지 않았다.
지아는 조종석에 앉아, 멀리 사라진 검은 유물을 바라보았다. 그 유물은 분명 인류에게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깨달았으며, 무엇을 잃었는가. 헤르메스 호는 이제 방향을 잃은 채, 광활한 우주를 표류하는 작은 점이 되었다. 새로운 미스터리를 품은 채. 그들이 발견한 것은 시작일까, 아니면 파멸의 전조일까. 심연은 여전히 침묵했지만, 그 침묵은 이제 영원히 예전과 같지 않을 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