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시움 마법공학 학원. 이곳은 빛나는 아치와 홀로그램으로 수놓아진 첨단 마법의 성지였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고대 주문학과 최신형 사이버네틱스 기술이 융합된, 문자 그대로 ‘마법과 과학의 교차점’. 하지만 류진에게는 그저 지루한 룬 프로그래밍 수업이 이어지는, 탈출구 없는 거대한 감옥일 뿐이었다.
“야, 류진. 정신 차려. 벌써 세 번째 에러야. 이러다 이번 학기 학점 또 망치겠다?”
옆자리에서 민하가 톡 쏘아붙였다. 그녀의 왼팔에는 학습 보조용으로 이식된 사이버네틱스 팔이 은은한 푸른빛을 내고 있었다. 류진은 홀로그램 데스크에 펼쳐진 룬 매트릭스를 한심하다는 듯 노려봤다. 코딩만큼이나 복잡한 룬 문자들이 엉켜 지직거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왜 이 빌드만 자꾸 꼬이는 건데. ‘마나 플로우 안정화’ 모듈이 대체 어디서 충돌하는지 모르겠다고.”
류진의 오른손 손목에 새겨진 발광 문신이 미약하게 깜빡였다. 그는 남들처럼 정규 수업에 충실하기보다, 오래된 기술 문서 더미에서 주워온 정체불명의 장비들을 뜯어고치는 데 훨씬 더 열광하는 타입이었다. 학원 시스템의 방화벽을 뚫고 희귀 자료를 찾아내는 일은 일상이었고, 교수들도 그의 비상한 재능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그의 예측 불가능한 행동에 골머리를 앓았다.
“그게 네 커스텀 모듈이랑 공식 라이브러리가 섞여서 그런 거 아니냐? 네가 만든 ‘그림자 마나 스니퍼’가 분명 문제일 거야. 학원 공인 시스템이 아니잖아.”
민하의 지적에 류진은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림자 마나 스니퍼는 그가 몰래 개발한, 학원 내 마나 흐름을 감지하고 분석하는 작은 장치였다.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비공식적인 마나 파동까지 읽어낼 수 있도록 설계된 물건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학원 시스템의 틈새를 엿보는 눈’이라고 했다.
“흥, 내 스니퍼는 죄가 없어. 오히려 이 학원의 낡아빠진 보안 시스템이 문제지. 내가 직접 업데이트해줘야 할 판이라니까.”
그는 불평하면서도 손목의 문신을 몇 번 두드렸다. 그러자 홀로그램 데스크의 룬 매트릭스 대신, 그의 눈앞에 투명한 데이터 창이 여러 개 떠올랐다. 그것들은 학원 전체의 마나 흐름도와 에너지 분배망, 그리고 그 사이를 오가는 미세한 데이터 패킷들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민하는 혀를 찼다.
“수업 중에 뭘 또 해킹하는 거야? 그러다 잡혀서 지하 감금실이라도 가게 되면 난 모른다.”
“잡힐 일 없어. 나는 완벽하거든.”
류진은 대수롭지 않게 중얼거렸다. 그의 시선은 여러 데이터 창 중에서도 특히 불안정한 하나의 그래프에 고정되어 있었다. 학원 최하층, 즉 공식적으로는 ‘지하 3층 연구동’으로 알려진 구역에서 감지되는 마나 파동이었다. 평소에도 불안정했지만, 오늘은 유독 심했다. 마치 저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억지로 뿜어져 나오려는 듯, 파동이 거칠게 요동치고 있었다.
“어라, 이상하네.”
류진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의 그림자 마나 스니퍼가 감지하는 정보는 공식 시스템과는 달랐다. 학원 메인 서버에서 보내는 ‘정상’ 신호와는 분명 다른, 마치 깊은 곳에서부터 왜곡되어 올라오는 듯한 신호가 잡혔다. 그는 자신의 장치가 공식 시스템의 맹점을 뚫고 더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음을 직감했다.
“류진, 또 무슨 짓을…?”
민하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보았지만, 류진은 이미 그녀의 말을 들을 상태가 아니었다. 그는 순식간에 자신의 개인 단말기를 꺼내 들고 능숙하게 코드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공식 시스템에 존재하지 않는, 지도를 열 수 있도록 강제로 프로토콜을 우회하는 작업이었다.
“지하 3층? 아니, 그보다 더 아래야. 내 스니퍼가 잡는 건… ‘섹터 오메가’?”
그의 단말기 화면에 왜곡된 지도가 천천히 형성되기 시작했다. 공식적인 학원 배치도에는 분명히 존재하지 않는, 지하 3층 연구동 아래에 위치한 미지의 공간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낡고 오래된,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숨겨져 있던 구역.
“섹터 오메가? 그런 곳은 없어. 학원 자료에도 없어. 네 스니퍼가 오류를 일으킨 거겠지.”
민하가 반사적으로 학원 메인 서버에 접속해 데이터를 검색했지만, 결과는 역시 마찬가지였다. ‘섹터 오메가’는 존재하지 않는 데이터였다.
“아니, 민하. 이게 오류일 리 없어. 봐. 이 마나 파동의 패턴… 이건 누군가 고의적으로 숨기려 한 흔적이야. 그리고 이 구조… 이건 학원이 처음 지어졌을 때의 설계도가 아니야. 훨씬 더 오래된… 뭔가 다른 게 있어.”
류진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공식적인 기록에 없는 미지의 공간. 그 아래에서 감지되는 불안정한 마나 파동. 그리고 누군가 은폐하려 한 흔적들. 그의 해킹 본능이 끓어올랐다.
“수업 끝나고, 여기로 가볼 거야.”
그는 단말기 화면에 떠오른 왜곡된 지도의 한 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지하 3층 연구동 깊숙한 곳,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 듯 보이는 낡은 통로의 끝이었다.
“미쳤어? 거긴 보안 프로토콜이 제일 삼엄한 곳이야! 그냥 넘어가.”
“넘어갈 수 없어. 내 감이 말해주고 있어. 저 아래에, 이 학원의 모든 마나 파동의 근원, 아니… 뭔가 진짜 ‘문제’가 숨겨져 있을지도 몰라.”
류진은 민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미 결심을 굳힌 듯했다. 그의 그림자 마나 스니퍼는 여전히 지하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기이한 파동에 맞춰 옅은 보랏빛을 깜빡이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오류 신호가 아니었다. 마치 어둠 속에서 속삭이는, 금기의 초대장과도 같았다.
***
그날 밤, 모든 학원생들이 각자의 기숙사로 돌아가거나 자율 학습실에서 밤샘 공부에 매달릴 때, 류진과 민하는 어둠 속에 잠긴 학원 복도를 조심스럽게 지나고 있었다. 류진은 허리에 찬 툴벨트에서 손전등 겸용 다기능 렌치를 꺼내 들었다. 민하는 그의 뒤를 따르며 주변을 경계했다. 그녀의 사이버네틱스 팔에서 나오는 미약한 푸른빛이 주위를 희미하게 밝혔다.
“젠장, 이렇게 어두울 줄이야. 학원 지하도 이렇게까지 낡은 곳은 처음 보네.”
민하의 목소리에는 불안감이 묻어 있었다. 그들이 내려온 곳은 지하 3층 연구동의 가장 구석진 곳, 비상 발전기실 옆에 위치한 낡은 유지보수 통로였다. 공식적으로는 수십 년 전 폐쇄된 곳이라 했지만, 류진은 오래된 기술 문서를 뒤져 통로를 여는 방법을 찾아냈다.
통로 안은 습하고 축축했다. 녹슨 파이프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고, 오래된 전기 케이블들이 벽을 따라 무질서하게 늘어져 있었다. 위층의 깨끗하고 정돈된 학원과는 완전히 다른, 잊혀진 문명의 잔해 같았다. 류진의 그림자 마나 스니퍼가 팔목에서 계속해서 불안정한 파동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들의 목적지, ‘섹터 오메가’는 이 통로의 가장 아래에 위치해 있었다.
“점점 더 내려가고 있어. 내 스니퍼가 더 강한 파동을 잡고 있어. 여긴 지도에 없던 구역이야. 분명히 뭔가 있어.”
류진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통로의 끝은 거대한 철문으로 막혀 있었다. 낡고 육중한 철문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마치 그 뒤에 영원히 묻혀 있어야 할 비밀을 지키려는 듯 보였다. 문틈에서는 희미한 습기와 함께 알 수 없는 금속성 냄새가 흘러나왔다.
류진은 렌치로 철문의 낡은 잠금장치를 조심스럽게 건드렸다. 오래된 아날로그식 잠금장치였지만, 그만큼 더 복잡하고 견고했다. 그는 작은 해킹 툴을 꺼내 잠금장치의 회로에 연결했다. 미세한 전기가 흐르자, 그의 단말기 화면에 복잡한 패턴의 잠금 해제 인터페이스가 나타났다.
“이봐, 류진. 진짜 괜찮겠어? 이거… 학원 규칙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거야. 퇴학당할 수도 있다고.”
민하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는 불안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알 수 없는 기계음과 파이프를 타고 흐르는 물소리가 신경을 긁었다.
“걱정 마. 아무도 우리가 여기 온 걸 모를 테니까.”
류진은 집중했다. 그의 손가락이 단말기 화면 위를 춤추듯 움직였다. 오래된 잠금장치의 디지털 회로가 하나씩 해제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마침내, 마지막 회로가 풀리자 철문에서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철컥.’
그들이 문을 밀자, 육중한 철문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안쪽으로 천천히 열렸다. 그 뒤에는 더 깊은 어둠이 도사리고 있었다. 류진은 손전등을 켜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민하도 뒤를 따랐다.
통로의 끝에 드러난 것은 거대한 원형 공간이었다. 바닥은 닳아 해진 철판으로 되어 있었고, 천장은 수십 미터 위로 아득하게 뻗어 있었다. 공간의 중앙에는 거대한 기계 장치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은 금속과 마법적인 문양들이 뒤섞인 기이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마치 고대의 제단과 최신형 원자로를 합쳐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기계 장치의 표면에는 오래된 룬 문자들이 새겨져 있었고, 그 사이사이로 희미한 푸른빛이 깜빡였다. 그리고 그 빛은 류진의 그림자 마나 스니퍼가 감지했던 불안정한 파동의 근원이었다.
“이게 대체… 뭐야?”
민하가 숨을 들이켰다.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경이로움보다는 공포에 가까운 것이었다. 기계 장치에서는 정체 모를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는데, 그것은 순수한 마나와는 다른, 인위적으로 왜곡된 듯한 기운이었다.
류진은 천천히 기계 장치에 다가갔다. 그의 스니퍼는 최대치로 요동치고 있었다. 그는 장치 표면에 손을 뻗어 올렸다. 차가운 금속 표면 아래로, 기분 나쁜 진동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때, 그의 귀에 무언가가 들려왔다.
*쉬이이익… 끄으으윽…*
그것은 기계음이 아니었다. 마치 수많은 목소리가 뒤섞여 고통스럽게 신음하는 듯한 소리였다. 금속 장치의 심장부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듯한, 소름 끼치는 음성. 류진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이 소리… 들려?”
그는 민하에게 속삭였다. 민하도 이미 그 소리를 들은 듯, 공포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사이버네틱스 팔의 푸른빛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흐읍… 아… 끄으윽…*
소리는 점점 더 또렷해졌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무언가가 끔찍한 고통 속에서 절규하는 듯한 소리였다. 이 거대한 기계 장치가 단순히 마나를 증폭시키는 장치가 아니라,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희생시켜 마나를 추출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류진의 단말기에서 비상 경고음이 울렸다. 그의 스니퍼가 갑자기 붉은빛을 깜빡이며 격렬하게 진동했다. 화면에는 ‘미확인 접근 감지’라는 메시지가 번쩍였다. 동시에, 그들 뒤편의 철문이 닫히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젠장, 들켰어!”
민하가 외쳤다. 그들이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원형 공간의 천장 상부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그리고 차가운 기계 음성이 공간 전체에 울려 퍼졌다.
“미등록 인원 감지. 즉시 통제 구역을 이탈하십시오. 불응 시, 치명적인 물리적 제압이 실행될 것입니다.”
류진의 심장이 발소리보다 더 격렬하게 뛰었다. 그들은 덫에 걸렸다. 그리고 그 덫 아래에는, 엘리트 마법학교의 눈부신 표면 아래에 숨겨진, 끔찍한 금기의 심장이 고동치고 있었다. 희생되는 존재들의 비명과 기계 장치의 굉음이 뒤섞여, 어둠 속에서 오싹한 메아리를 만들어냈다. 그들은 이제 막, 판도라의 상자를 연 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