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연의 태양
**1화. 흑룡산맥의 속삭임**
흑룡산맥은 언제나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해발 만 리를 훌쩍 넘는 봉우리들은 검은 비늘처럼 하늘을 꿰뚫었고, 그 사이를 흐르는 골짜기마다 늙은 용의 포효가 서린 듯한 기운이 맴돌았다. 사람들은 이곳을 일컬어 ‘생명을 탐하는 자들의 무덤’이라 불렀지만, 하원에게는 그저 일용할 양식을 찾는 사냥터일 뿐이었다.
축 늘어진 넝쿨을 헤치며 발걸음을 옮기는 하원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며칠 밤낮을 쫓아온 ‘화염비늘 뱀’의 흔적은 이제 거의 끝에 다다른 듯했다. 바위틈에 스며든 미약한 열기, 그리고 희미하게 풍겨오는 유황 냄새가 그 증거였다. 놈의 영핵은 꽤 귀한 물건이었다. 그의 진기가 정체된 지금, 돌파를 위한 비약을 연성하는 데 필수적인 재료였다.
“쳇, 끈질긴 놈.”
하원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검은색 무복은 이미 흙먼지와 찢어진 자국으로 너덜너덜했지만,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날카로웠다. 등 뒤에 짊어진 녹슨 철검은 영기 한 점 없는 그저 평범한 검처럼 보였으나, 하원에게는 수십 년을 함께한 유일한 벗이자 무기였다.
가파른 절벽 아래, 빽빽한 덤불로 뒤덮인 좁은 틈새가 눈에 들어왔다. 그 틈새에서 희미한 붉은빛이 깜빡였다. 화염비늘 뱀이 숨어든 곳이 분명했다. 하원은 조심스럽게 몸을 숙여 틈새로 기어들어갔다. 내부는 예상보다 깊고 어두웠다. 축축하고 차가운 공기가 폐부를 짓눌렀지만, 이따금씩 비집고 들어오는 열기가 동굴의 주인을 알렸다.
얼마나 들어갔을까. 좁고 구불구불한 통로가 갑자기 넓어지며 거대한 동굴이 나타났다. 동굴 안은 붉은 수정처럼 빛나는 돌들이 박혀 있어 희미한 광채를 내고 있었다. 그 중앙에는 작은 웅덩이가 있었고, 그 안에서 스멀스멀 김을 내뿜는 액체 위로 화염비늘 뱀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놈은 하원의 인기척을 눈치챘는지 기다란 혀를 날름거리며 붉은 눈을 번뜩였다.
“드디어 만났군.”
하원은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 들었다. 영기가 담기지 않은 평범한 단검이었지만, 그가 다루는 검술은 어떤 영검보다도 날카로웠다. 화염비늘 뱀은 맹렬한 기세로 몸을 솟구쳤다. 놈의 비늘은 불꽃을 뿜었고, 타오르는 이빨이 하원의 목을 노렸다.
두 개의 그림자가 동굴 안을 휩쓸었다. 뱀의 움직임은 예측 불가능했지만, 하원의 몸놀림은 더욱 신묘했다. 그는 놈의 공격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하며, 틈이 보일 때마다 단검을 내리꽂았다. 수십 합이 오고 간 끝에, 마침내 뱀의 거대한 몸이 축 늘어지며 웅덩이로 떨어졌다. 푸른 피가 붉은 액체와 섞이며 이질적인 색을 냈다.
하원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쓰러진 뱀에게 다가갔다. 영핵을 적출하기 위해 놈의 머리 부분을 살폈을 때였다. 웅덩이 뒤편, 덩굴로 뒤덮여 있던 바위 벽 일부가 무너져 내리며 새로운 공간이 드러났다.
그곳은 자연적인 동굴이 아니었다. 매끄럽게 다듬어진 석벽, 벽면에 새겨진 정교한 문양들. 고대의 유적이었다. 놈은 숨어든 것이 아니라, 이곳에 둥지를 틀고 이 불가사의한 장소의 일부가 된 것이었다.
“이게… 뭐지?”
하원은 영핵을 적출하는 것도 잊고 새로운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발밑에는 수천 년의 세월이 묻어난 듯한 돌조각들이 굴러다녔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잊혀진 문명의 숨결이 그의 피부에 와닿는 듯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동굴의 아치형 천장이 거대한 홀을 이루고 있었다. 홀의 중앙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석대(石臺)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산산조각 난 옥패(玉佩) 하나가 놓여 있었다. 옥패의 조각들은 묘한 빛을 내며 하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옥패 주변의 벽면에는 거대한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먼지와 이끼에 가려져 있었지만, 하원은 그 형상을 어렴풋이 알아볼 수 있었다.
벽화는 장엄했다. 끝없이 펼쳐진 지하 도시, 머리 위에는 인공적인 태양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빛 아래에서 삶을 영위했고, 그들의 등 뒤로는 거대한 나무가 하늘을 뚫을 듯 솟아 있었다. 하지만 벽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도시는 어둠에 잠식되고, 인공 태양은 서서히 빛을 잃어가며, 사람들은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하원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옥패 조각에 닿았다. 차가운 촉감과 함께, 옥패에서 희미한 영기가 흘러나와 그의 손끝을 감쌌다. 동시에 벽화 속 인공 태양이 있던 자리에 흐릿한 글자가 새겨지며 빛을 발했다. 고대의 문자였다. 하원은 본능적으로 그 문자를 읽을 수 있었다.
“영원의 밤, 태양을 삼킨 도시, 심장을 찾아라.”
하원의 심장이 격렬하게 두근거렸다. ‘태양을 삼킨 도시’. 벽화 속에서 어둠에 잠식되어 가는 도시를 가리키는 말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심장’이라. 이 도시의 핵심을 의미하는 것일까?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공간에는 그 어떤 출입구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이 벽화와 옥패만이 이 장소가 품고 있는 거대한 비밀을 암시하고 있었다. 어째서 이곳에 잊혀진 문명의 흔적이 남아있는가? 그리고 이 도시는 왜 사라졌는가?
하원은 부서진 옥패 조각들을 조심스럽게 모아 주머니에 넣었다. 비록 조각났지만, 희미하게나마 영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리고 이 옥패가 바로 ‘태양을 삼킨 도시’의 심장을 찾는 열쇠일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들었다.
이것은 단순한 영수 사냥이 아니었다.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꿀 거대한 기연이자, 동시에 헤아릴 수 없는 위험을 품고 있는 모험의 서막이었다.
하원은 천천히 몸을 돌려 동굴 입구를 향했다. 이제 그의 목적은 화염비늘 뱀의 영핵을 얻는 것을 넘어섰다. 미지의 지하 유적, 잊혀진 고대 문명의 비밀. 그의 가슴속에서 꺼지지 않는 호기심의 불꽃이 타올랐다.
동굴 밖으로 나오자 흑룡산맥의 거친 바람이 그의 얼굴을 스쳤다. 그는 등 뒤의 좁은 틈새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그 너머에는 이제껏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 숨겨져 있었다.
“태양을 삼킨 도시….”
하원은 나직이 되뇌었다. 그의 눈빛은 어둠 속에서도 찬란하게 빛나는 별처럼 형형했다.
